Chapter 234 - 파문된 늑대들의 도시 (2)
강원도 속초.
<파문된 늑대들의 도시> 던전이 위치한 도시.
이번 던전은 필드 내에 자리한 던전이 아닌, 도시 안에 있는 한 폐공장을 매개로 연결된다.
때문에 주변은 특별히 괴수의 위험이 없어, 협회에서 ‘공략권 보호’를 수행하기에도 수월했다.
나는 속초 근처에 있는 연무장 하나를 통째로 빌려, 대원들과 함께 들어왔다.
던전에 입장하기 전 간략한 작전 회의를 하기 위함이었다.
“오늘 말씀드릴 건 일전에 사전 회의에서 말했던 내용과 비슷하지만, 더 구체적이고 추가적인 사항에 관한 것입니다.”
작전 회의는 전 대원이 참석한 사전 모임에서도 진행됐지만, 정식 공략 시작 전에도 진행된다.
무대나 공연을 설 때도 리허설이 필요하듯…
던전 공략에도 작전의 합을 맞추는 게 필요하다.
이번 회의는 그런 공략 루트의 복습과 재논의였다.
펄럭-
나는 마법 가방에서 아이템 하나를 꺼내 대원들에게 보여줬다.
워낙 닳고 낡아서 곧바로 찢어질 것 같은 종이묶음.
던전 입장 열쇠인 특수 아이템, [울부짖는 광인의 일지]다.
“이 일지는 대원 분들도 아시다시피 이번 던전에 입장하기 위한 열쇠입니다. 던전 입장에 필요한 특수아이템. 일지에 마력을 불어넣은 채 입구에 대면 약 30초동안 닫혔던 던전의 문이 열리죠. 이 아이템이 없으면 애초에 입장 자체가 불가하기에, 사실 협회의 공략권 보호는 이 30초를 위해 존재하기도 합니다.”
대원들의 시선이 내 손으로 모인다.
이미 구두로 말했던 내용이고, 언론에도 어느 정도 밝혀졌지만… 이 아이템을 직접 보는 건 그들도 처음일 거다.
“이 아이템의 이름은 울부짖는 광인의 일지. 별다른 효과도 정보도 없는 아이템인데… 재밌게도 던전에 입장하면, 그 이름이 바뀝니다.”
[울부짖는 광인의 일지]는 정말 특이한 아이템이다.
겉에 드러난 정보와 효과만으론 아무 쓸모도 없는 일지로 보이지만, 던전 입구에 대면 문을 여는 열쇠가 되고 또 그와 동시에 아이템의 정보가 바뀐다.
아이템에 내재됐던 정보의 봉인이 풀리는 것.
기록되지 않았던 새로운 정보가 드러나며…
녀석은 던전 공략에 일종의 나침반 역할을 해준다.
“파문된 늑대인간의 일지. 그게 바뀐 아이템의 이름입니다. 즉 해당 일지는 늑대인간과 관련된 아이템이고, 이번 던전에서 나오게 될 괴수 또한 늑대인간일 확률이 높은 걸 암시하죠. <파문된 늑대들의 도시>라는 던전 이름은 그런 이유에서 고안됐습니다.”
늑대인간.
A급인 웨어울프와 A~S급인 라이칸스로프로 구분되는 괴수.
원래는 같은 의미를 지닌 단어들이지만, 학계에서는 명백히 다른 종인 두 괴수의 구분을 위해 명칭을 다르게 부른다.
웨어울프는 갈색 갈기, 라이칸스로프는 은빛 갈기를 지닌 게 특징이었다.
홀더 계에도 지금껏 총 3번 출현했었고, 그때마다 등급과 무력이 달라 홀더들에게 혼란을 안기곤 했었다.
“때문에 이번 던전에서, 우리는 늑대인간과의 전투를 우선적으로 시뮬레이팅해야 합니다. 타 무기에 비해 사용가치가 좀 떨어지는 은제 무기를 대원 분들께 제공한 것도 같은 이유입니다.”
이현호와 최유민 콤비는 2주 안에 기어코 은제 무기들을 수십 개씩 만들어냈다.
은제 도검, 은제 화살, 은제 창…
다양한 종류의 은제 무기들이 공대원들의 장비에 최소 2개씩 갖춰졌다.
내가 맡겼지만 정말 감탄이 나오는 결과다.
아무리 다른 대장장이들의 도움을 받았다곤 해도, 주 제작자들이 야금술에 천재성을 지니지 않았다면 불가능에 가까운 속도였다.
“ … … 이번 공략에서 가장 중요한 건 궁수 계열입니다. 늑대인간들은 압도적인 신체 스펙을 지녔기에 궁수 계열이 은제 화살을 사용하며 먼저 발을 묶어줘야 합니다. 그리고 암살자 계열은 … … ”
이후 나는 공략 핵심요소 중 하나인 ‘괴수 상대법’에 대해서 상세히 대원들에게 설명했다.
웨어울프나 라이칸스로프는 육체 능력이 워낙 압도적인 괴수들이기에, 조금 귀찮더라도 여러 번 설명을 반복하며 상대법을 강조할 필요가 있었다.
대원들 또한 고위 홀더, 중견 홀더 가를 것 없이 모두 집중하며 진지한 자세를 보였다.
그렇게 30분 정도 설명을 마쳤을까.
마지막으로 나는 가장 중요한 내용을 이야기했다.
“추가적으로, 던전에 입장하면 ‘바라텐 진영’이라는 특이 정보창이 뜰 겁니다.”
“바라텐…이요?”
낯선 단어에, 베테랑 홀더 임현이 물었다.
여기서부턴 사전 모임에서도 말하지 않은 내용.
나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예. 이는 지금껏 홀더 계에 한 번도 나타나지 않았던 정보입니다. 초입부, 중간부, 보스 룸으로 이어지는 기존의 공략 루트와는 다른 던전이라는 뜻이죠. 저는 아마 이 바라텐이라는 단어의 정보가, 이번 던전 공략의 핵심 키가 되지 않을까 생각하고 있습니다.”
“아…!”
그리고 이 이야기에, 모든 대원이 감탄성을 터뜨렸다.
새로운 정보와 특별한 던전.
그건 다시 말해, 이를 공략할 우리 <파문 공격대>가…
홀더 계의 새로운 바람을 선도하는 공격대가 된다는 뜻이었기 때문이다.
마치.
<초월자의 방> 정보를 처음 공개한, 스승님과 나처럼.
내가 이 정도로 거대한 공격대를 홀로 창설하고 운영할 수 있었던 데엔, 아마 <초월자의 방> 정보 공개에 핵심 역할을 했다는 점이 가장 클 것이다.
“그럼 아직 바라텐이라는 것에 대한 정보는 없는 겁니까?”
또 다른 대원의 질문에 곧장 대답해준다.
“추측되는 건 있지만 확실하게 정해진 내용은 없죠. 우리가 공략하며 알아가야 할 부분일 겁니다.”
물론, 나는 바라텐에 대해 알고 있다.
던전의 중심이 되는 늑대인간들.
일명 ‘라이칸’이란 불리는 라이칸 스로프 일족의 한 부족.
경쟁 부족인 ‘클라크 진영’에 밀려 중심 도시에서 쫓겨난 비운의 부족이기도 하다.
즉 <파문된 늑대들의 도시>에서 ‘파문’을 당한 이들은 이 바라텐 부족이고, [파문된 늑대인간의 일지] 또한 바라텐 부족 출신의 라이칸이 남긴 일지였다.
하지만 이런 내용은 원작을 통해 미리 안 사실이기에 대원들에게 밝힐 순 없었고, 또 어차피 공략을 진행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알게 돼서 굳이 알릴 필요도 없었다.
“리허설 작전 회의는 여기까지입니다. 혹시 다른 의견이나 따로 할 말 있으신 대원 분 있으십니까?”
주변을 훑으며 물어봤지만, 대원들에게서 답은 없었다.
오히려 질문은커녕…
살짝 감탄한 눈빛으로 날 보고 있었다.
그 이유는 대충 알 것 같다.
‘초짜 공대장이라는 게 안 믿어지겠지.’
처음으로 내 이름을 걸고 하는 공략.
나는 그 공들인 탑을 무너뜨리지 않기 위해, 상당히 철저하고 꼼꼼하게 이번 공략을 준비했다.
경력 많은 홀더들로부터 많은 조언을 받았고, 대형 클랜의 작전팀과 미팅을 하며 자문을 구했었다.
특히 보급품 제작에 있어선 주변의 인맥을 총동원했다.
그 결과.
웬만한 정규 공격대나 베테랑 임시 공격대에 밀리지 않는, 탄탄한 공격대를 구성할 수 있었다.
공격대장 경험을 지니고 있는 대원들이 특별히 태클 걸지 않는 것만 봐도, 그 완성도를 알 수 있다.
나로서는 상당히 만족스럽고 보람 찬 결과였다.
나는 한 차례 더 시선을 돌린 후 대원들에게 말했다.
“그럼, 지체하지 않고 바로 던전에 진입하겠습니다.”
* * *
[던전에 입장하셨습니다.]
[‘바라텐 진영’에 발을 디딥니다. 파문된 자들의 증오가 묻어나오고 있습니다.]
우리는 전투 태세를 갖춘 채로 던전 내부를 걸었다.
내부의 배경은 황무지.
그렇다고 저번 <초월자의 방: 카날레스> 때처럼 완전히 없는 황무지는 아니고, 저 멀리 풀과 나무들이 종종 보이는 황무지다.
아마 광활한 공간을 자랑하는 이 던전의 특성상, 이대로 쭉 걸어가다 보면 특수 지형이나 건축물들이 갑자기 튀어나올지도 몰랐다.
“계속 전진합니다.”
우리 공격대의 배치는 정석적이었다.
총 9명의 전사 계열이 전방을 담당하고, 마법사, 궁수 등 지원 인원들은 중간에 자리한다.
그리고 후미를 암살자 계열이 호위하는 형식.
그중 공대장인 나는 한가운데에 자리를 잡았다.
대원들에게 모두 통하는 지시를 내리려면 중앙이 편하기도 하고, 또 ‘탐색류 룬’을 펼치는 궁수 계열에게서 보고를 들으려면 그들의 옆에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문가은 홀더, 어때요?”
“아직 잡히는 건 없어요.”
문가은이 탐색을 마치고 어색하게 답했다.
사적으론 내 여자친구인 그녀지만, 공적으론 현재 우리 공격대의 대원 중 한 명.
평소완 달리 격식을 차려 대하는 게 서로에게 좋았다.
“아키바 홀더, 김아름 홀더는 어떻습니까?”
“저도 잡히는 건 없습니다.”
“마찬가지예요. 더 가야 할 것 같아요.”
세 사람은 공격대의 탐색을 전담한 궁수 계열들이다.
특히 김아름은 A급의 궁수 계열로 무소속 홀더 중엔 꽤 베테랑에 속하는데, 그런 그녀까지 별다른 이상이 없다는 걸 보면 앞으로 더 가야 하는 모양이다.
우리는 진형을 유지한 채 그대로 전진했다.
“…진짜 더럽게 넓네.”
“이 정도면 짙푸른 초원보다 초입 괴수가 늦게 나오는 것 같네요.”
“애초에 공대장님이 초입부와 중간부 같은 기존 던전의 형태가 아니라고 하셨으니까요.”
워낙 오랜 시간을 걷다 보니 공대원들도 차츰 긴장을 풀었다.
잡담도 나누고, 던전 공략에 관한 의견도 조금씩 주고받았다.
그렇게 대략 20분을 걸었을까?
여전히 도시는 보이지 않았고, 던전은 너무도 넓었다.
황폐한 땅과 높낮이가 다른 바위…
그 속에 간간이 보이는 풀들이 눈에 들어왔다.
하지만.
아우우우-.
크르으으…!!
아우우-!!
지루했던 행군을 멈추게 할, 갈색 갈기의 늑대인간들이 드디어 모습을 드러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