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236 - 파문된 늑대들의 도시 (4)
“형님, 저게 대체 무슨 상황입니까?”
옆자리에 찰싹 달라붙은 도승민이 내게 물었다.
도승민은 공격대 내 B팀의 암살자 계열.
일부러 나와 같은 팀의 팀원으로 배정했다.
[은빛 달그림자] 룬을 지닌 녀석은 조금만 가다듬으면 이번 던전 공략에서 크게 활약할 여지가 있다.
그래서 난 직접 가르치기 위해 녀석을 옆에 뒀다.
어쨌든 당장 도승민은 우리 공격대 암살자 계열 중 가장 약한 홀더니까.
뭐, 그렇다고 ‘내 생애 첫 번째 제자를 받겠다!’와 같은 거창한 의미는 아니다.
당장 나부터 홀더 경력 2년차인 신입 홀더인데 무슨 제자를 받겠는가.
다만 어차피 팀당 2명씩 들어가야 하는 암살자 계열에, 특별 관리 대상 한 명을 추가했을 뿐이었다.
“도승민 홀더. 공대장으로 부르라니까요.”
그건 그거고 이건 이거다.
이 자식은 왜 자꾸 틈만 나면 날 형님이라고 부르는지 모르겠다.
정작 만난 것도 오늘이 사흘째인데.
“아. 죄송합니다, 공대장님. 하지만 공대장님께선 얼마든지 절 편하게 부르셔도 됩…”
“…그것도 내가 알아서 할게요.”
“아, 넵!”
아오, 승민아 좀….
철없는 동생의 말에 절로 한숨이 나온다.
하필 성씨도 같아서 진짜 동생이 하나 생긴 기분이다.
나는 다시 고개를 들어 앞을 봤다.
-----!!
크르으으…!!
웨어울프들의 거친 괴성과 몇몇 라이칸의 소리 없는 기세가 느껴진다.
얼핏 눈으로 봤을 때 웨어울프의 개체는 30마리 정도?
그중 20마리는 언덕 반대편에 있었고, 그 뒤엔 세 마리의 라이칸이 있었다.
라이칸들은 웨어울프들보다 훨씬 큰 몸집과 부드러운 갈기, 넘실거리는 마력 등을 자랑했고… 심지어 그중 가운데에 자리한 라이칸은 짙은 남색의 갈기를 보유하고 있었다.
‘저 녀석이 대장격인가.’
흔히들 ‘라이칸스로프는 은색 갈기를 가진 늑대인간이다!’라고 알려져 있지만, 실제로 라이칸들의 갈기 색깔은 천차만별이다.
정확히는 동족 중에서도 일정 무력을 넘어선, S급 라이칸들부터는 갈기 색깔이 달라진다.
즉 저기 있는 다섯 마리의 라이칸 중 은빛 갈기의 네 마리는 A급, 가운데 라이칸은 S급으로 녀석들의 대장격일 확률이 높았다.
던전 내 괴수로 치면 중간보스격이다.
‘그리고 이쪽은….’
반면 우리와 가까이에 있는…
언덕 근처의 라이칸은 단 2마리.
색깔도 모두 은색이라 A급 라이칸에, 함께 있는 웨어울프도 10마리밖에 없었다.
상대 늑대인간들에 비해 압도적인 열세.
당연히 아까부터 이어진 전투에서도 불리한 구도를 가져갈 수밖에 없었다.
“공대장님. 어떻게 하실 생각입니까?”
근처에 있던 C팀 팀장, 임현이 내게 물어왔다.
확실히 공격대 쪽에 경험이 많은 베테랑 홀더라서인지, 질문의 수준부터 질적으로 다르다.
어떻게 할 것인가.
그래.
저들이 무엇이고, 무슨 상황인지는 별로 중요한 게 아니었다.
중요한 건 던전 공략 도중 갑작스럽게 특정 상황이 발생했고, 그 상황에 대해 우리 공격대는 어떤 방향으로 대처할 것인지.
그게 핵심이었다.
“돕겠습니다.”
“돕…다니요?”
돕는다.
괴수들을 상대로 하기엔 매우 부적절한 그 단어에 임현은 물론, 대부분의 공대원들이 의아한 얼굴로 날 바라봤다.
나는 언덕 쪽에 시선을 고정하며 그 답을 줬다.
“다들 처음 던전에 입장하셨을 때 정보창으로 떠올랐던 문구, 기억나십니까?”
입장 당시의 정보창.
[던전에 입장하셨습니다.]라는 문구와 함께 나타난, [‘바라텐 진영’에 발을 디딥니다.]라는 문구.
기존의 던전엔 없던 그 특이한 정보창.
공대원들은 당시 이를 그저 던전 공략에 있어 파헤쳐야 할 정보 중 하나로만 여겼지만, 사실 공략의 키는 처음부터 그 문구에 있었다.
“바라텐 진영에 발을 디딘다. 그건 말 그대로 이 던전의 이름을 말하는 걸 수도 있지만, 말 그대로의 뜻을 받아들이면… 우리가 던전 내의 특정 진영에 와 있는 것일지도 모릅니다.”
나는 턱짓으로 언덕 위를 가리켰다.
“그리고 저들의 전투는, 해당 진영과 다른 진영의 싸움일 가능성이 있죠. 어쨌든 괴수들이 서로 싸움을 벌이는 것에 대한 정보는 지금껏 홀더 계에서 나타난 적이 없으니까요.”
“……!”
“아…!”
거기까지 설명을 마치자 몇몇 대원들이 감탄했다.
서로 다른 진영으로 보이는 저 라이칸들의 세력 다툼.
그 사이에 끼어들어 한쪽 세력의 편을 들겠다.
아까 선언했던 ‘돕는다’는 내 말뜻을 그제야 이해한 것이다.
물론, 이 던전에 관해 사전 정보가 없던 대원들에겐 이런 내 추측과 결정이 무모한 오답처럼 보일 수도 있다.
어쨌든 홀더들의 상식에서 괴수를 도와 싸운다는 건 더없이 특이하게 비춰지니까.
하지만 나는 정답을 내리는 사람이 아니다.
공격대장은 공격대가 나아갈 방향을 제시하고, 그 결과에 책임을 지는 사람.
던전 입장 때부터 제시된 단서에 근거해, 최선이라고 생각한 길을 골랐을 뿐이었다.
그래서일까.
몇몇 대원들은 여전히 이해가 안 가는 얼굴로 날 바라봤지만, 이런 전반적인 과정을 납득한 대원들은 초롱초롱한 눈으로 날 보고 있었다.
특히 임현의 눈동자가 부담될 정도로 빛이 난다.
…공대장으로서 점수라도 딴 건가.
“공대장님의 말을 어느 정도는 이해했어요. 그래서 저희는 어느 쪽을 도우는 거죠?”
한쪽에 있던 또 다른 대원이 물어온다.
안젤라 그렘빌.
A팀에서 마법사 계열로 큰 활약을 펼치는 공격대의 핵심 대원이었다.
나는 그녀의 날카로운 질문에 시선을 다시 위로 돌린다.
“수가 적은 쪽입니다.”
“…굳이 그쪽을 돕는 이유가 있나요?”
“그래야 극적일 테니까요.”
이어지는 질문엔 곧바로 답한다.
사실 수가 적은 쪽이 바라텐 진영이라는 건 이미 알고 있지만, 대원들을 이해시키기 위해 조금 더 합리적인 이유들을 살로 덧붙였다.
“수가 많은 쪽은 우리가 도와봐야 전투 승리에 큰 기여를 못할 겁니다. 어차피 우리가 없어도 이기는 싸움이니까요. 새로운 정보와 던전, 그 공략의 핵심이 될지도 모르는 이들에게 영향을 미치지 못하는 것. 그건 당연히 우리에게 좋은 소식이 아닙니다.”
나는 잠시 숨을 돌리며 말을 이었다.
“그래서 수적으로 열세인 늑대인간들을 돕습니다. 우리의 영향력이 닿을 수 있도록.”
“하지만 열세 쪽인 늑대인간들이 바라텐 진영이 아닐 수도 있지 않나요?”
안젤라가 연달아 날카로운 질문을 던졌다.
내심 놀랐다.
이 여자, 은근히 공략의 핵심을 잘 꿰뚫고 있다.
지금까지 주어진 단서들과 내가 추측한 방향만으로, 우리가 특정 진영에 붙어야한다는 걸 알아내고 있었다.
괜히 A팀의 에이스를 먹은 게 아니었다.
“그건 중요하지 않습니다.”
“…중요하지 않다고요?”
“네. 우리가 와 있는 곳이 바라텐이라는 자들의 진영이지만, 그렇다고 꼭 그들 편에 서야 하는 건 아니니까요. 다른 진영을 도와도 상관없습니다. 그리고 이 모든 건 추측일 뿐, 어디까지나 확실한 건 없습니다. 당장 도움을 주자마자 다시 열세 쪽 라이칸스로프들과 싸워야 할 수도 있어요.”
물론 다 개소리다.
던전을 공략하려면 무조건 바라텐 진영에 붙어야한다.
애초에 칼라크 진영은 협상 자체가 안 되는 호전적인 부족이다.
나는 그 사실을 잘 알고 있고, 열세 쪽 라이칸들이 바라텐이라는 것도 알고 있다.
다만 그걸 사실대로 대원들에게 말해줄 순 없으니, 그냥 궤변을 붙여서 그럴 듯한 이유로 포장할 뿐이었다.
“…….”
그에 안젤라는 뭔가 더 할 말이 있는 듯 보였지만, 이내 곧 고개를 끄덕이며 내 의견에 수긍했다.
-----!!
크르으아아…!!
쾅! 콰가가가-!!
전장의 기세가 급격히 기울어지기 시작했다.
칼라크 진영 라이칸들은 수적 우위 및 능력적 차이를 이용해 거침없이 바라텐 라이칸들을 몰아붙였고, 조금만 있으면 전투는 칼라크의 승리로 끝이 날 것 같았다.
“모든 공격형 전사 계열, 그리고 암살자 계열은 저를 따릅니다.”
그에 나는 곧장 대원들에게 지시를 내렸다.
따로 팀을 구분하지 않은, 일종의 별동대 구성이다.
이러한 급습 상황에선 방어형 전사 계열들의 효율이 그리 높지 않기 때문에 이들은 후미의 호위 역할로 두고, 공격형 전사 계열과 암살자 계열들을 별동대에 넣는다.
그들은 룬 세팅이 공격에 특화되어 있기에, 대부분 ‘보법류 룬’을 보유하고 있다.
게다가 신성 계열 및 아이템 등의 보조를 받아 속력을 극한으로 끌어올릴 수 있었다.
그리고 낼 수 있는 최대한의 속도로 움직이며…
라이칸들의 전투가 벌어지는 ‘측면’을 노린다.
‘계약의 부름.’
빠르게 움직이는 대원들 사이에서, 나는 곧장 [소환] 룬을 사용했다.
불러들이는 계약자는 티르본드.
나와 가장 많은 전투를 치러온 녀석.
덩치가 워낙 커서 기척을 바로 들키겠지만, 이런 난전 속에선 녀석만큼 효과적인 돌격마가 없었다.
캬오오오-!!
늑대들의 울음 속에서 거친 아룡의 목소리가 울려퍼졌다.
허공에 튀어나온 티르본드에게 곧장 도약하며 녀석의 비행에 탑승한다.
이후 [와이번 스피어]도 함께 꺼내든다.
[천하제일 경주마]로 인한 티르본드의 거침없는 돌격.
그리고 그에 맞물리듯 사용하는 [액셀 피어싱].
기습과 선공에 있어서 이보다 효과적인 공격은 없었다.
‘티르본드, 더 빠르게.’
-이게 최대다, 주인.
목표는 가운데에 서 있는 남색 갈기의 늑대인간.
대장격으로 보이는 클라크 진영의 라이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