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237 - 파문된 늑대들의 도시 (5)
평범한 홀더들에 비하면, 나는 보유 룬이 상당히 많은 편이다.
[룬 사냥꾼]이라는 사기적인 룬 덕분에 그동안 내가 복제해 온 룬은 수십 개에 이르렀고, 심지어 ‘상위룬 시스템’이나 ‘개수 제한이 50개’로 늘어나는 등의 특수효과 덕에 획득 가능 룬의 풀 자체가 넓어졌다.
하지만 그 많은 룬들 중에서도…
활용 빈도가 높은 ‘주력룬’은 분명 존재한다.
자주 사용하고, 오래 사용해왔으며.
그런 만큼 더 애정이 가는 룬.
[극한의 상황에서 펼치는 기예와도 같은 비행! 특수효과인 ‘래피드 라이딩’을 누구보다 효과적으로 활용하고 있습니다. 룬에 대한 당신의 이해도는 꾸준히 쌓여가고 있습니다.]
[‘천하제일 경주마’ 룬의 레벨이 올랐습니다.]
[룬의 성향으로 속력을 1 획득합니다.]
그런 면에서 [천하제일 경주마]는 내 확실한 주력룬 중 하나다.
아주 오래 전, 이곳 세계에 떨어졌을 때.
가장 처음 얻었던 7개의 룬 중 하나, [질주].
여타 무기룬이나 마력룬이 부족하던 당시의 내게 있어, ‘돌격’을 통해 변수를 만들어낼 수 있는 [질주] 룬은 항상 활용도가 높던 매력적인 주력룬이었다.
이후 다른 돌격류 룬들을 추가로 얻고, 그간 비어 있던 내 보유 룬들도 화려하게 채워지며 많은 성장을 이룩했지만…
‘돌격을 통한 기습’은, 여전히 나의 단골 공격 루트였다.
이제는 상위룬으로 조합된 [천하제일 경주마]가 벌써 10레벨까지 오른 건, 결코 우연의 결과가 아닌 것이다.
‘액셀 피어싱.’
그 때문에 주력룬을 활용할 때의 나는 거칠 게 없다.
어떤 적이 앞에 있어도 모두 찢어버릴 기세로 달려든다.
압도적으로 빠른 속력과 원거리를 무시한 돌격.
하늘에서 내리꽂으며 한층 힘을 더한 파괴력.
그 모두를 하나로 모아, 일격으로 내지르는 창 찌르기.
내 [액셀 피어싱]은 늑대인간들이 모인 전장 한가운데에서, 어마어마한 기세로 적장 라이칸에게 찔러들어갔다.
-저게 뭐야?
-인간! 인간입니다!
-일단 피하십시오, 듀크 님!
멀리선 전혀 들리지 않았는데, 가까이 오니 [언어] 룬이 제대로 작동한다.
라이칸들의 소통이 확실히 들려왔다.
반면 웨어울프들은 뭔가 문제가 있는 건지 아까부터 언어적인 소통이 없었다.
‘이미 늦었다, 새끼들아.’
나는 라이칸들의 분주한 대화에 코웃음을 치며, 손에 쥔 창에 꽉 힘을 줬다.
아마 티르본드가 등장했을 때부터 녀석들도 이쪽의 기척을 알아차렸겠지만, 그들이 뭔가 반응하기도 전에 티르본드와 나는 코앞까지 도달해 있었다.
10레벨에 오르며 숙련도가 궤도에 오른 [천하제일 경주마]는 재앙에 가깝다.
돌격 속도가 빨라도 너무 빨랐다.
캉- 그그그-
찌지직-
푸쉬이이-!!
뭔가를 찢어내는 느낌이 손을 타고 흐른다.
‘…마력 방어막인가?’
남색 갈기를 지닌 이 S급 라이칸.
생긴 것과는 다르게 마력룬을 중점적으로 다루는 녀석인가 보다.
라이칸스로프들은 강력한 신체 능력을 바탕으로 한 육탄전에 강점이 있는 괴수들이지만, 그렇다고 마력을 다룰 줄 모르는 건 아니다.
인간들처럼 [마력제어] 룬을 보유하고 있는 괴수들이고, 그 활용법도 자기들만의 방식으로 잘 갖추고 있다.
특히 S급 괴수에 다다르며 새로운 능력과 힘을 얻으면, 오히려 마력룬을 주력으로 삼는 라이칸들도 생긴다.
아무래도 ‘듀크’라는 이름을 가진 눈앞의 늑대인간은 그런 부류의 라이칸인 모양이다.
‘마법 쓰는 늑대인간? 땡큐지.’
하지만 내게 있어선 오히려 사냥하기 좋은 먹잇감에 불과하다.
돌격 후 기습으로 선공을 거는데, 상대가 마법사다?
이보다 더 먹음직스러운 상대는 없다.
게다가 원래도 마력 방어를 손쉽게 뚫어내는 [액셀 피어싱]이다.
하물며 특별한 주문법도 없이, 조잡하게 만들어진 방어막… 이를 뚫는 건 숨 쉬는 것보다 쉬웠다.
-끄, 끄아아악!!
-듀크 님!! 젠장!
-저 인간을 쫓아!!
카강- 푸쉭!
단단한 갈기를 뚫는 소리와 함께 피분수가 튀고, 듀크라는 라이칸의 비명 소리가 귓가를 자극한다.
온갖 버프를 받아 강력해진 돌격 찌르기.
추가로 [은빛 달그림자] 룬 ‘은의 축복’ 효과 때문에 위력이 증가한다.
이 공격으로 S급 괴수를 즉사시킬 순 없지만, 강한 타격을 입힐 순 있었다.
-젠자아앙!!
-저 빌어처먹을 인간을 잡아라!!
-잠깐! 저기 다른 쪽에서도 인간들이…!!
-바라텐 녀석들도 다시 일어선다! 막아!!
겹겹이 쌓여 있던 늑대인간들의 호위를 뚫고 듀크에게 치명적인 피해를 입히자, 광분한 다른 라이칸들과 그 휘하의 웨어울프들이 미쳐 날뛰기 시작했다.
잡아라, 죽여라, 찢어라…
별의별 살벌한 말들이 [언어]를 타고 들려온다.
하지만 그와 반대로 우리의 반격도 진행된다.
미리 이쪽까지 접근해 있던 공격대 대원들이, 내 기습을 신호탄으로 총공세를 시작한 것.
뒤쪽에선 후방 인원들의 사격 보조도 들어오고 있었다.
게다가 바라텐 진영 라이칸들도 그렇게 멍청한 녀석들은 아닌 건지, 갑작스러운 상황에 어리둥절하면서도 재빨리 일어서고 있다.
바라텐 라이칸 입장에선.
그야말로 완벽한 전세 역전이었다.
나는 서둘러 티르본드에게 후속 명령을 지시했다.
‘티르본드, 다시 위로.’
-이미 가고 있다.
역시 도망쳐야 할 상황의 냄새는 기 막히게 잘 맡는 티르본드다.
내가 명령을 내리기도 전에, 녀석은 이미 비행 방향을 위쪽으로 바꾸며 전장 이탈을 시도하고 있었다.
물론 완벽히 피하는 건 어려웠다.
이미 라이칸에게 명령을 받은 웨어울프 몇 마리가, 이 높은 곳까지 도약하며 우리에게 달려들었다.
녀석에게 올라탄 상태에서 전투하면 나야 편하지만, 티르본드가 위험해질 가능성이 있다.
티르본드의 내구 수치가 아무리 높아도, A급 괴수 여럿이 작정하고 공격하면 막아내는 게 쉽지 않기 때문.
게다가 웨어울프는 만티코어 같은 괴수들보다 훨씬 더 공격에 치중된 괴수들이었다.
‘티르본드!’
-알겠다, 주인.
그에 또다시 명령을 바꾼다.
오랫동안 다져진 우리의 호흡은…
이제 별다른 설명이 없어도 서로의 행동을 예측한다.
나는 티르본드에게서 낙하했고, 녀석은 그대로 하늘 위로 솟구쳤다.
낙하 지점은 도약한 웨어울프의 머리.
이게 위험을 제거할 가장 완벽한 방법이다.
‘계단 베기.’
그 상태에서 곧장 [클로우 숏소드]로 무구를 교체하며 웨어울프의 어깨부터 다리까지 [계단 베기]를 먹인다.
원래 [계단 베기]는 아래에서 계단을 타듯 올라가듯 상대를 베어내는 스킬이지만, 지금 웨어울프와 내 몸의 방향은 정반대.
덕분에 난 하늘에서 내려오듯 웨어울프의 몸을 베어갈 수 있었다.
‘속성은 불, 폭발은 마지막.’
마력을 잠깐 일으켜 [엘리멘탈 마스터]로 ‘불’의 속성을 넣는다.
이후의 연계 과정을 더 강화하기 위해.
그리고 [폭발하는 검의 기세].
첫 베기를 스킵하고, 마지막 베기에만 효과를 넣는다.
콰, 콰아앙-!!
크르으으…!!
순식간에 웨어울프의 몸을 다섯 번 베며 강렬한 폭격을 먹였다.
A급 괴수를 1초도 안 돼 리타이어시켰다.
구경할 시간은 없었다.
나는 그대로 놈의 다리를 박차고 도약하며, 위쪽에 있던 또 다른 웨어울프 네 마리에게 올라섰다.
이번에 교체한 무구는 [참회자의 검].
사용하는 스킬은 [연격].
부여하는 속성은 흙, 물, 바람 순서.
속성을 꾸준히 바꿔주는 이유는 [엘리멘탈 마스터]의 ‘체인지 스트라이크’ 효과를 극대화시키기 위함이었다.
‘포이즌 어택, 그리고 쿼터 나이프.’
[연격]은 마력을 담지 않는 물리 속성 공격이기에 [폭발하는 검의 기세] 효과를 받을 수 없다.
대신 독은 쓸 수 있었다.
나는 [연격]의 [포이즌 어택]을 쓴 채 세 마리의 웨어울프를 동시에 베어냈고, 마지막으로 남은 한 마리에겐 [쿼터 나이프]를 선사했다.
물론, [쿼터 나이프]에 폭발을 가미해주는 건 서비스다.
콰, 콰아아앙-!!
크르으아아…!!
-무슨 말도 안 되는…!!
-위르겐 5마리가 순식간에…!!
웨어울프들의 비명과 경악한 라이칸들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그럴 만도 하다.
5초도 안 된 시간에 웨어울프 전력 1/4이 날아갔으니까.
그리고 그 모든 걸 마친 나는….
-주인, 강하다.
‘그걸 이제 알았냐?’
어느새 고공비행을 마치고, 내가 낙하하는 지점까지 돌아온 티르본드.
녀석의 몸에 턱- 하고 떨어졌다.
완벽한 타이밍과 호흡이었다.
“마법사 계열 공격대원 전원, 상대에게…!!”
그리고 이쯤이면 마법사들의 준비가 끝이 났을 시간.
나는 이를 체크하며 곧장 총공격 명령을 내렸다.
아니, 내리려던 찰나였다.
-----!!
아우우우우-!!
지금껏 늑대인간들에게서 간간이 들렸던 울음소리.
그중에서도 가장 크고, 맹렬한 울음소리가 온 전장을 덮었다.
그리고.
[클라크 진영 라이칸 ‘듀크’의 ‘남색 포스하울링’이 울려 퍼집니다. 하울링을 들은 모든 범위 내 지정 대상의 마력이 일시적으로 통제됩니다!]
[‘명경지수’ 룬의 특별한 힘이 대상의 맑은 정신을 유지하게 합니다. 어떠한 저주나 상태 이상에도 흔들리지 않습니다.]
선제 기습을 허용했지만, 쉽게 당하진 않는다는 걸까.
일종의 중간보스격인 라이칸, 듀크의 특수 능력이 발동됐다.
그에 모든 공격대원들과 바라텐 진영 라이칸들의 마력이 통제됐다.
갑작스러운 위기 상황.
하지만 [명경지수] 덕분에 곧장 그 위기에서 벗어난 나는 씨익 웃었다.
‘…새끼, 좋은 거 갖고 있네.’
다행히 내 마력은 아직 많이 남았고, 사용하지 않은 특수효과와 스킬도 많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