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240 - 바라텐의 전사들 (2)
늑대인간은 크게 두 종류로 나뉜다.
웨어울프와 라이칸스로프.
하지만 이건 어디까지나 홀더들이 붙인 괴수명이고, 실제로 그들은 ‘위르겐’과 ‘라이칸’이라는 명칭을 사용한다.
위르겐은 갈색 갈기가 특징인 늑대인간으로서, 기본적으로 A급 하위 괴수 정도의 힘을 지녔다.
게다가 라이칸과 달리 언어가 발달하지 않은 일족이라, 몸짓과 신호, 울음소리만으로 의사소통을 한다.
[언어] 룬이 있는데도 녀석들의 대화가 들리지 않았던 건 그런 이유.
이족보행을 하는 늑대인간인데도, 인간보단 오히려 늑대 쪽에 가까운 성향이었다.
그 때문인지 라이칸 일족도 위르겐을 일종의 ‘조련 괴수’ 혹은 병사 취급을 하는 것 같았다.
“그럼 저희가 사냥한 위르겐들이 문제가 되는 것 아닙니까?”
혹시 바라텐 진영의 위르겐들을 건든 게 아니냐는 질문.
옆에서 나란히 걷는 제이텐에게 물었는데, 뒤쪽의 하텐이 끼어들며 답했다.
“그건 걱정 안 하셔도 됩니다! 조련된 위르겐들은 저희의 병력이자 자산이지만, 밖에서 돌아다니는 위르겐들은 저희와 아무 상관이 없거든요. 오히려 조련된 위르겐보다 야생의 위르겐이 개체 수는 훨씬 많을 겁니다! 하하.”
하텐은 늑대인간치고 상당히 말이 많은 녀석이지만, 이렇게 가끔 도움이 되는 정보들도 자주 내뱉는다.
추가로 야생의 위르겐들은 기본적으로 라이칸에게 복종하려는 습성이 있어서, 진영 내를 걷다가 이들을 마주쳐도 싸울 일이 없었다.
인간인 우리를 보며 으르렁거리다가도, 선두의 라이칸 둘을 보면 알아서 꼬리를 말고 도망친다.
덕분에 우리는 ‘바라텐 진영 근거지’로 걸어가는 동안, 단 한 번의 전투도 치르지 않고 편안히 이동할 수 있었다.
‘그리고 라이칸들은….’
위르겐이 군집하지 않는 하나의 야생 집단이라면, 라이칸은 지성과 무력을 모두 갖춘 늑대인간의 고위층이다.
천편일률적으로 비슷한 무력을 지닌 위르겐들과 달리, 라이칸들은 개체마다 가진 힘이 다르고 또 시간이 흐를수록 성장을 거듭할 수 있다.
때문에 갈기 색이 은빛을 띠는 라이칸들은 A급 상위 괴수 정도의 실력을 지니고 있고, 각성을 마치며 자신만의 갈기 색깔을 갖춘 라이칸들은 모두 S급 괴수의 힘을 보였다.
‘마지막으로 부족.’
라이칸이 위르겐과 다른 결정적인 특성.
이들은 언어가 매우 발달해 있고, 군집하는 습성을 지닌 탓에 각기 군락을 이뤄 생활한다.
주거, 무기, 전투 방식, 문화 등 자신들만의 다양한 문명을 개발해가는 일족이고, 심지어 그러한 결과물들이 집대성하며 ‘울펜서’라는 도시까지 만들어졌다.
인간들이 지은 던전 이름.
<파문된 늑대들의 도시>.
여기서의 도시는 이 ‘울펜서’를 말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문명이 발달하면 갈등도 자연히 생기는 법.
서로 생각하는 바와 추구하는 방향이 달라서, 같은 라이칸 내에서도 무수히 많은 부족들이 나뉘게 됐는데…
그중 가장 큰 규모를 자랑하는 두 부족이 바로 ‘바라텐’과 ‘칼라크’였다.
“부족 이름의 어원은 고대 전사들이다.”
“…고대 전사들?”
“그렇다. 칼라크와 바라텐은 라이칸의 역사에서 가장 뛰어났던 전사들이다. 우린 그들을 숭배하면서 모이게 된 부족이지. 빌어먹을 칼라크 녀석들은 조상 이름에 먹칠을 하고 있지만.”
제이텐의 짤막한 설명.
그리고 하텐이 또 따라붙으며 구구절절 부족의 역사 같은 걸 설명해온다.
나는 이를 대충 흘려들으며 생각했다.
어쨌든 중요한 건.
가장 큰 규모의 두 부족이 서로 의견이 맞지 않아 전쟁을 벌였고, 여기서 패배하게 된 바라텐 부족이 도시 울펜서로부터 쫓겨났다는 것.
또한 그를 되찾기 위한 전쟁이, 여전히 진행 중이라는 것.
현재 바라텐이 거주하는 이 땅이 ‘바라텐 진영’으로 불리는 건 그런 이유였다.
“도착했습니다!”
그렇게 찾아온 바라텐 진영의 근거지.
주변엔 무수히 많은 위르겐들이 조련된 상태로 훈련 중이었고, 바라텐 부족의 라이칸들도 삼삼오오 모여 우릴 신기한 듯 구경하고 있었다.
하텐과 제이텐이 미리 위르겐 한 마리로 전서구를 보내놨던 탓에, 다행히 라이칸들의 경계심은 많이 누그러져 있었다.
“무슨 진지가….”
하지만 천천히 라이칸들을 눈에 담고, 근거지를 둘러보던 나와 대원들은… 얼마 지나지 않아 금세 입을 다물고 말았다.
그리곤 다들 흔들리는 눈빛으로 날 쳐다봤다.
그 이유는 간단했다.
‘…이 새끼들, 거지였었냐?’
바라텐이 구축한 진지가 너무 허름했기 때문이다.
곳곳에 세워진 천막들은 찢어질 기세였고, 임시방편으로 만들어진 각종 생필품들은 낡아서 언제라도 박살날 것만 같았다.
조금 더 자세히 살펴봐도 뭐 하나 깔끔히 마련된 도구나 자재들이 없었다.
워낙 오래 전 기억이라 구체적으로 생각나지 않았었는데… 바라텐 녀석들, 의외로 궁핍하게 지내는 모양이다.
어쩌면 늑대인간이라서 부유하고 깔끔한 생활에 그리 집착하지 않는 걸 수도 있었다.
아무튼 우리는 제이텐과 하텐의 배려로 무혈입성하듯 바라텐의 근거지로 들어올 수 있었고, 얼마 지나지 않아 그들의 리더도 만나 볼 수 있었다.
“반갑다. 난 위대한 전사의 후예, 엔리히텐이라고 한다. 우리 부족에겐 톨 바라텐이라는 호칭으로 불리고 있지.”
거구인 늑대인간들 중에서도 유독 큰 키.
어마어마한 몸집과 우락부락한 근육.
그를 모두 덮은 푸른 색깔의 갈기….
톨 바라텐, 엔리히텐.
그가 내 앞에서 악수를 건넸다.
게다가 미리 언질을 들은 건지, 우릴 만나는 순간부터 한국어를 구사하는 배려를 보였다.
나는 그 풍채와 울림에 감탄하며 함께 손을 맞잡았다.
“반갑습니다. 파문 공격대의 공격대장, 도재현이라고 합니다. 들으셨을진 모르지만, 이계에서 각성을 이룬 인간들 중 하나입니다.”
“아아. 그것도 제이텐에게서 들었다. 도시가 전이된 이후, 이계의 인간들이 우릴 찾아오는 건 처음이군.”
“…저희의 이야기를 모두 믿으시는 겁니까?”
엔리히텐이 푸근한 웃음을 지으며 편안하게 이야기하자, 나는 살짝 놀라며 물었다.
아무리 전서구를 통해 미리 알려줬다곤 해도, 완전히 처음 보고 듣는 정보들이다.
직접 봐도 믿기 힘든 내용들이 많을 텐데…
그는 조금도 의심하지 않는 모습을 보였다.
그러자 엔리히텐은 옆쪽에 자리한 제이텐에게 시선을 돌리며 답했다.
“그대들이 목숨을 구해준 여기 제이텐이 내 친조카다. 조카가 보낸 전서구, 그리고 그대에게 있는 ‘신뢰의 증표’를 보고도 어떻게 안 믿을 수 있겠나.”
“아….”
그런 내막이 숨어있는지는 또 몰랐다.
어쩐지 진영에 들어오는 것도, 들어와서 ‘톨 바라텐‘과 만나는 것도 너무 쉽게 진행된다 싶었다.
우리가 구해준 라이칸들이 부족장의 혈통이었다니.
어떻게 보면 참 운이 좋았다.
“고맙다. 조카의 목숨을 구해준 은혜는, 우리가 앞으로 이야기할 내용과는 별개로 꼭 따로 보상하도록 하겠다.”
“감사합니다.”
자신의 어깨를 두 번 툭툭 두드리며 감사를 전하는 엔리히텐.
나 역시 꾸벅 고개를 숙이며 그에게 인사했다.
우리는 짧은 소개를 마치며, 곧바로 자리를 이동했다.
“이쪽으로 오면 된다.”
엔리히텐과 함께 옮긴 장소는 매우 커다란 천막 안이었다.
많은 인원 수용이 가능한 거대 테이블과 수십 개의 의자들.
그 주변 군데군데에 자리한 특이 형태의 무기들.
그리고 제일 앞쪽에는 나무판자와 펜 같은 것들이 놓여있었다.
아까 봤던 허름한 천막들과 같은 장소가 맞나 싶을 정도로 쾌적하고 깔끔했다.
역시 그들은 생활의 편의보단 전투의 효율에 더 치중하는 것 같았다.
“이곳이 우리 바라텐의 전사들이 작전 회의를 펼치는 곳이다. 일주일에 한 번씩 모두 모여 큼지막한 작전을 세우거나, 이미 진행 중인 작전에 대한 보고를 하지.”
“생각보다 자주 모이진 않군요.”
“그렇다. 우리 바라텐 진영의 땅은 생각보다 넓고, 경계선 부근에 파견을 나간 전사들이 많기 때문이지.”
한 차례 테이블을 쓸던 엔리히텐이 내게 다시 말했다.
“그리고 다음 있을 작전 회의는 사흘 뒤. 도재현. 그대와 그대의 대원들이 그 날 회의에 참석해줬으면 한다.”
“…예?”
뭐야, 갑자기.
뭐가 이렇게 빠르게 전개돼?
갑작스러운 제안에 내가 당황한 표정을 짓자…
그는 짧게 목례하듯 내게 고개를 숙였다.
아까의 제이텐에게서도 봤듯, 저건 라이칸들이 보일 수 있는 최대한의 예였다.
“칼라크 척후부대의 대장 중 하나인 듀크를 처치했다는 말을 들었다. 내 평생 각성 라이칸 및 산하 위르겐들을 그렇게 가볍게 제압한 인간들은 들어본 적이 없다. 그만큼 그대들이 한계를 뛰어넘은 강력한 존재라는 거겠지.”
쿵- 쿵-
다시 한번.
엔리히텐이 자신의 어깨를 두 번 두드렸다.
“우린 그대들의 힘이 필요하다. 원하는 게 있다면 얼마든 들어줄 의향이 있다. 그러니 부디, 사흘 뒤에 있을 작전 회의에 참석해줄 수 있겠나.”
“아니, 잠깐. 잠깐만요.”
거의 무릎이라도 꿇을 기세의 엔리히텐을 간신히 저지했다.
거절하려는 생각은 아니다.
애초에 그들을 도와주려 여기까지 온 거고, 협업할 상대가 이렇게 저자세로 나와준다면 우리야 땡큐다.
다만….
“작전 회의 그거, 꼭 사흘 뒤에 해야 합니까? 이곳으로 들어올 수 있는 입구와 이쪽 근거지 간의 거리가 상당히 멀어서 왔다갔다 하기가 애매할 것 같은데.”
시간과 거리가 문제였다.
우리는 아침 일찍부터 던전에 들어오며 공략을 시작했지만, 완전한 밤이 다 돼서야 바라텐 진영 근거지에 도착했다.
즉, 던전 입구와 바라텐 진영 근거지 사이의 거리가 상당히 멀다는 뜻.
그런데 사흘 후에 또 여기로 와야 한다는 건 껄끄러울 수밖에 없었다.
“아, 그건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그대들이 왔던 방향에, 워프 게이트가 마련돼 있으니.”
“…워프 게이트요?”
또다시 뜬금없는 엔리히텐의 말에 따라, 우리는 자리를 이동했다.
그리고 금세 목표했던 장소에 도착했다.
진영 근거지 한가운데에 자리한 거대 마력 구조물.
형태와 구조는 살짝 다르지만…
분명 우리가 지금껏 봐왔던 [워프 게이트]가 맞았다.
“아마 제이텐과 하텐이 파견 갔던 좌표로 이동하면 되겠지? 그대들도 그쪽에서 왔으니.”
“…….”
나와 공격대원들은 할 말을 잃은 채 [워프게이트]를 바라봤다.
…늑대인간들은 의외로 마법에 조예가 깊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