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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카데미 사기 룬을 얻었다 (244)화 (244/353)

Chapter 244 - 바라텐의 전사들 (6)

“전면전은 너무 위험하다.”

속전속결로 전쟁을 이끌자는 내 제안에 엔리히텐이 고개를 저었다.

일반적으로 전면전은 가진 바 모든 힘을 동원해 싸우는 총력전의 한 형태.

국지전이나 게릴라 전투와는 달리 모든 병력을 쏟아부어 싸우는 전투고, 그런 만큼 서로 간 병력이 균일하지 않으면 기세가 한쪽으로 기울 확률이 높다.

“지금은 빌어먹을 원수가 됐지만, 칼라크는 전부터 일족에서 강인하기로 유명했던 부족이다. 전투력도 매우 뛰어나고, 병력의 수도 압도적이다.”

전면전을 하기엔 숫자 싸움에서 밀린다.

이곳에 자리한 바라텐의 전사들은 13명.

반면 엔리히텐에게서 듣기로 칼라크의 전사들은 22명이라고 한다.

그중 척후부대를 이끌던 듀크가 죽었으니 21명.

각성 라이칸 전사의 숫자부터 절대적으로 밀리고, 그 외에 각성하지 못한 라이칸 및 훈련된 위르겐의 수도 크게 부족했다.

바라텐의 다른 전사들이 경계선 쪽으로 일일이 파견을 나가 있던 건, 그런 불리한 전선을 최대한 국지전으로 막아보기 위함이었다.

하지만 나는 포기하지 않고 그를 설득했다.

“탐색전이나 국지전도 한계가 있습니다. 상대 전력을 깎아낼 만한 기막힌 묘수를 찾아내지 않는 이상, 언젠가는 전면전에 부딪히게 돼있죠. 특히 이곳 땅은 유독 황무지가 많아 지형지물의 도움을 받기도 어렵잖습니까.”

그뿐만이 아니다.

각성 라이칸 전사였던 듀크의 사살.

이를 분기점으로 칼라크 진영은 더욱 적극적으로 나올 것이다.

자신들의 주 전력원을 잃고 가만히 있을 정도로 그들은 바보가 아닐 테니까.

“음….”

나름 합리적인 이유에 엔리히텐이 고민 어린 얼굴을 한다.

주변의 전사들도 이 말엔 동의하는지 고개를 끄덕이는 이들이 많았다.

나는 이 시점에 준비해온 쐐기를 박았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저희에겐 전사들을 강화시킬 수단이 있습니다.”

“강화 수단? 그게 뭐지?”

“방어구를 쓰는 겁니다.”

“방어구…?”

낯선 단어에 엔리히텐의 목소리가 의문에 잠긴다.

흥미롭게 우리의 대화를 지켜보던 다른 라이칸 전사들도 마찬가지였다.

지금껏 한 번도 장비를 갖추고 싸워본 적 없는 그들이었기에, 난데없이 ‘방어구를 사용하자’는 내 제안이 이상하게 들릴 수밖에 없었다.

“엔리히텐, 그리고 다른 전사 분들도 직접 눈으로 확인하셔서 알겠지만… 우리 공격대의 전투력은 압도적으로 강하다고 보긴 힘듭니다. 분명 이 전쟁에 있어 도움은 되더라도, 불리한 전세를 완전히 역전시킬 정도의 힘은 아니죠.”

당연한 이야기다.

각성한 라이칸 전사들은 대부분 S급 괴수로 판정 받는 힘을 지녔고, 일반적으로 S급 괴수는 A급 및 B급 홀더들이 공격대 단위로 붙어야 사냥할 수 있는 괴수다.

나와 박진우가 칼라크 진영의 듀크를 그나마 손쉽게 죽일 수 있었던 건…

라이칸들에게 강한 위력을 보이는 ‘은제무기’를 쓴 것과 상대가 마법사 계열 라이칸이었다는 점, 거기에 풀파워 [액셀 피어싱]을 선제 공격으로 먹였다는 점 때문이었다.

즉, 32명의 우리 대원들 한 명 한 명이 모두 각성한 전사들 급의 실력은 아니라는 뜻이다.

“그럼에도 저희가 라이칸 전사들을 쓰러뜨릴 수 있었던 건, 능력에 따른 역할 분담. 그리고 각자에게 맞는 적절한 장비 활용 덕분이었습니다.”

그 말과 동시에 나는 마법 가방에서 아이템 두 개를 꺼냈다.

하나는 [단단한 철문]이라는 아이템.

다른 하나는 평범한 철제 갑옷이다.

“이 철문은 자체 내구 수치를 보유하고 있는 특수 아이템입니다. 딱 50만큼의 내구 수치를 보유하고 있죠.”

때론 설명보다는 행동이 더 높은 이해를 가져다준다.

나는 긴 말 하지 않고 한쪽엔 [단단한 철문]을, 다른 한쪽엔 갑옷을 입히듯 덧댄 [단단한 철문]을 놔뒀다.

그리고 오른손에 힘을 실어, 강하게 한 번씩 내려쳤다.

쾅! 쾅!

90의 근력 수치.

격투술을 보조하는 [무술의 달인] 룬.

결코 평범하지 않은 전투 홀더의 주먹이 내려쳐지자, [단단한 철문]은 형체도 알아볼 수 없을 만큼 찌그러졌다.

하지만.

“보시다시피 이 철문은 일반 철문에 비해 훨씬 안정적으로 보호됐죠. 그만큼 보호 장비를 착용하는 건 전투 도중 방어에 있어 큰 힘을 발휘합니다. 물리력뿐 아니라, 마력 공격이 가해진다면 더더욱.”

보호 장비의 방어력을 보여준 직관적 실험.

그에 꽤 놀란 듯한 바라텐의 전사들을 둘러보며 난 말했다.

“따라서 저는 이번 전쟁에서, 바라텐의 전사들을 위한 맞춤 방어구를 제공하고자 합니다.”

“맞춤 방어구…?”

“예.”

특수 계열 대원을 통해 미리 가져온 마법 가방을 털어, 테이블 위에 아이템들을 우수수 쏟는다.

캉- 카강-

데구르르-.

몇십 개, 아니 몇백 개인지 모를 어마어마한 양의 제작 장비.

특이하게도 이 장비들은…

평범한 홀더들의 규격에 맞춘 장비가 아닌, 매우 넓고 큼지막한 규격의 장비였다.

마치, 라이칸들이 착용하기에 맞춰진 장비처럼.

‘이것 때문에 돈을 있는 대로 다 갖다 박았지.’

그동안 최유민, 이현호, 그리고 그 외 수많은 대장장이 계열 홀더들이 <파문된 늑대들의 도시> 던전 공략을 위해 제작했던 준비물.

그건 ‘은제 무기’만이 아니라, 지금의 라이칸 전용 방어구도 포함되었던 것이다.

그 개수가 100 단위를 넘어가니, 아무리 노멀급 아이템이라고 해도 돈이 엄청나게 깨질 수밖에 없었다.

“이, 이게 다… 도재현. 정말 이걸 다 우리에게 그냥 주는 건가?”

그래서일까.

눈앞의 광경에 깜짝 놀라며 내게 묻는 엔리히텐에게…

나도 모르게 진한 미소가 지어졌다.

“그럴 리가요. 어떻게 해야 이 장비들을 전사들에게 합리적으로 지급할 수 있을지, 지금부터 논의해보죠.”

전쟁은 전쟁.

장사는 장사.

무상 지급 같은 건 내 사전에 절대 없었다.

* * *

“…….”

카밀라 플로레스는 눈앞에 펼쳐진 비상식적인 광경에 멍하니 입을 벌렸다.

늑대인간을 상대로 한 방어구 판매 장사.

이 말도 안 되는 일을 행하는 것도 믿기지 않는데, 심지어 제대로 가격을 후려치고 있다.

원래 받아야 할 가격의 거의 4~5배.

세상 물정 모르는 바라텐의 전사들은 좋다고 그 가격을 받아들였다.

늑대인간들이 사는 곳이기에 당연히 화폐는 없어서, 그에 상응하는 마력석, 부산물, 특수 아이템 등을 물물교환 형태로 받고 있었다.

“진우.”

“…어, 어?”

카밀라는 공격대 내에서 그녀와 가장 친한 남자를 불렀다.

박진우.

한국에 교류 학생으로 오고 처음 만났던 홀더.

그는 이번 공격대에서 부공대장을 맡고 있으면서, 공대장인 도재현과 제일 가까운 인물이기도 했다.

“공대장. 뭔가, 지독해.”

“…….”

카밀라의 그런 어설픈 한국말이 전해지자, 박진우는 자기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의 친구지만…

정말 지독한 만큼의 장사 실력을 보여준다.

방어구를 구매한 라이칸들이 모두 만족스러운 얼굴을 하고 있는 게 정말 아이러니한 포인트였다.

하지만 이건 투자한 만큼의 보상이기도 했다.

늑대인간들이 출몰한다는 정보와 ‘바라텐 진영’이라는 단어.

그것만으로 괴수 간의 진영전을 추측해내고, 그에 대비해 전용 방어구를 준비해왔다.

미래를 보는 능력이라도 있나?

그런 허무맹랑한 생각이 들 정도로, 보통 담력이 아니고서야 실행하기 힘든 투자였다.

“똑똑한 녀석이야. 능력도 있고. 공격대 방향에 안 틀어지게, 막힘없이 일하잖아. 아마 그래서 이번 공략도 성공적으로 이어지고 있는 것 같아.”

그래서 박진우는 그런 자신의 친구를 존중했다.

도재현이 이번 공격대를 이끔에 있어서 부족했던 건 단 하나도 없었다.

계획한 작전을 문제없이 펼치는 실행력.

어떤 변수에도 흔들리지 않는 리더십.

심지어 지켜보던 공대원 모두를 경악에 물들게 한…

홀더 개인으로서의 압도적인 무력까지.

그는 공대장으로서 보여줄 수 있는 모든 걸 보여주고 있었다.

21살 아카데미 학생의 임시 공격대?

과연 잘 해낼 수 있을까?

그렇게 의심하던 언론과 홀더 계의 의문들을, 말끔히 실력으로 증명해낸 것이다.

덕분에 약간은 산만했던 분위기의 공격대 또한, 그를 중심으로 똘똘 뭉쳐 이제는 끈끈한 팀워크를 자랑하고 있었다.

“진우가 칭찬하는 거. 처음 봐.”

카밀라가 신기한 듯 박진우를 바라본다.

매일 장난만 치고, “그 자식은 사기꾼이야! 그게 어딜 봐서 암살자야?”라는 한탄만 늘어놓던 그였는데…

이런 진심 어린 인정을 보이니 새삼 신기했다.

“오우, 그랬나? 뭐, 인정할 건 인정해야지. 저 녀석 겉으론 가벼워 보여도, 사람들 이끌 땐 진지하게 행동하니까. 실력은 뭐 말할 것도 없고.”

가장 가까이에서 그를 봐왔기에…

누구보다 그를 인정할 줄 아는 박진우였다.

그리고 그런 모습에 카밀라도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멋있어.”

“응? 아, 하하. 재현이 녀석이 좀 멋있긴 하지. 실력도, 외모도-”

당황해서 살짝 말이 빨라진 박진우.

그에 카밀라가 고개를 젓는다.

“진우가.”

“…어?”

“진우가 멋있어. 인정하고 존중할 줄 아는 거. 그리고 진우도 능력 있어. 진우도 똑똑해.”

“…….”

순식간에 쏟아지는 칭찬 릴레이.

카밀라의 말이라면 온 신경을 곤두세우고 듣는 박진우에게 있어, 이런 갑작스러운 칭찬들은 도무지 면역력이 없었다.

진우가 멋있어.

진우가 멋있어….

그 말들이 메아리치듯 박진우의 머릿속을 맴돌았다.

자그맣게 타오르고 있던 마음 속 불씨가…

마치 활화산이 되어 터지는 느낌이었다.

그리고 가만히 생각했다.

‘…내가 진짜 똑똑한가?’

카밀라의 말이라면 모두 믿고 싶은 박진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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