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247 - 선전포고 (3)
바라텐 진영의 각성 전사, 쉴르텐은 살짝 감탄한 눈으로 전장을 바라봤다.
어느 날 자신들의 전쟁을 돕겠다며 나타난 인간.
부족의 일원에게 [신뢰의 증표]를 받은 동료.
총공격의 선봉을 맡으며 나선 그가, 연달아 놀라운 활약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었다.
‘강하다.’
출격 전 작전 회의 땐 약간의 트러블이 있었지만, 이제 쉴르텐은 그를 의심하지 않았다.
그는 강하고, 실력 있는 인간이었다.
웬 아룡을 소환해 돌격하다가 적들에게 포위됐을 때만 해도 분명 목숨이 위험해 보였는데, 어느새 자신만의 방법으로 위기를 탈출해 나가고 있다.
이쯤이면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수정구로 볼 때보다 더 대단하군.’
이미 [기록 수정구]를 통해 자신의 능력을 입증했었지만, 지금 그가 보이는 능력들은 그때보다 훨씬 다양하다.
그 첫 번째가 화려하고 강렬한 마력 공격.
‘궁극스킬’로 보이는 물의 원형 방어막과 곧장 이어진 참격.
이것만 봐도 입이 딱 벌어지는데, 여기에 번개속성 마력공격까지 얹으며 파괴력을 더했다.
즉사.
15명이 넘는 위르겐을 모조리 즉사시킨, 그야말로 괴멸적인 퍼포먼스였다.
‘그리고….’
콰아앙-!!
아우우우-.
쉴르텐은 눈앞의 위르겐 한 마리를 찍어눌러 가볍게 쓰러뜨리며, 여전히 시선을 도재현에게 고정했다.
선제 공격이 끝난 이후, 그는 아군의 원조를 받아 포위망에서 벗어날 수 있음에도 굳이 그 자리를 벗어나지 않았다.
그건 바로, 그가 보인 두 번째 능력.
압도적인 신체 능력과 파괴적인 물리 공격 때문이었다.
도재현은 무려 10명이 넘는 라이칸 전사, 그리고 각성 전사인 라크의 공격을 막아내고 흘려내며 전방을 지키고 있었다.
아무리 아군의 원조가 있다곤 해도…
정말이지 믿기 힘든 탱킹 실력이었다.
‘저건 마치….’
그리고 이를 보는 쉴르텐의 눈빛은 어딘가 꺼림칙하게 변해갔다.
집중력, 지구력, 회복력, 민첩함…
그의 유독 특출난 능력들이 어딘지 모르게 익숙하다.
이렇듯 전투 보조에 중요한 포인트들만 골라서 ‘강화’하는 이들.
그 존재들을 쉴르텐은 잘 알고 있었다.
‘…바바리안.’
야만 일족, 바바리안.
짐승들이 지닌 강점만을 몸에 받아들이며, 짐승과 하나 된 인간이 되고자 했던 전사들.
그들이 사용하는 ‘강화술’이 꼭 저런 형태의 힘이었다.
그리고 쉴르텐이 알기론, 그 능력은 오직 바바리안과 그들의 왕만이 쓸 수 있었다.
바바리안이 아닌 이들이 이 힘을 사용한다면…
그건 오직 하나.
라이칸 일족을 나락으로 떨어뜨린, 빌어먹을 ‘그 녀석들’ 뿐이었다.
‘…저번처럼 속단하진 않겠소.’
쉴르텐은 고개를 내저으며 다시 전투에 집중했다.
그가 보이는 기세와 힘들이 묘한 구석이 있지만, 그것만으로 속단하며 의심할 수는 없었다.
애초에 그 추측대로라면 도재현이 굳이 칼라크 진영의 전사들을 때려잡으며 죽일 이유가 전혀 없었다.
약간 꺼림칙한 부분만 뺀다면.
그는 이번 전투에서 최고의 공훈을 세운 동료였다.
* * *
“와아아아!!”
“적을 몰살했다! 승리다!”
“바라텐! 바라텐! 바라텐!”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길었던 전투가 모두 끝이 났다.
물밀듯이 밀려온 아군 늑대인간들과 우리 공격대원들의 후방 지원.
병력 수와 화력에서 차이가 나니 승리를 거머쥐는 건 쉬웠다.
특히 이제는 콤비라고 봐도 될 정도로, 김채은과 강주연의 화려한 마법들.
두 사람의 상반되는 마법 조합이 끈질기던 라이칸들의 숨통을 끊어내며 전투의 끝을 알렸다.
‘…진짜 뒤질 뻔했네.’
라이칸들의 환호가 쌓이는 승리의 현장.
그 안에서 나는 홀로 조용히 숨을 토해냈다.
아수라장이나 다름없던 전장 한가운데에서, 방패도 없이 홀로 탱킹을 전담했던 건 역시 무리였다.
분노로 가득 찬 칼라크 진영 라이칸들은 정말 누구 하나 찢어버릴 기세로 달려들었다.
아군의 지원이 조금만 늦었으면 진짜로 뒤질 뻔했다.
‘아오, 괜히 객기 부려서.’
[진 유수활검]과 [체인 라이트닝].
두 스킬을 연계한 마력 공격까진 퍼펙트였다.
위르겐 15마리를 단번에 즉사시키기도 했고, 구멍이 안 보이던 적들의 포위망까지 완벽히 뚫어낸 결과였으니까.
하지만 그다음이 문제였다.
괜히 혼자 신나서 ‘마력 공격 다음은 물리 공격이지!’ 같은 마음으로 앞선에 서는 바람에, 여전히 수가 많던 적들의 공격을 동시에 상대하게 됐다.
아무리 각성하지 않았어도 라이칸은 라이칸.
A급 최상위 괴수들이 협력하며 한꺼번에 몰려들면 위험할 수밖에 없었다.
도중에 [광폭화]를 쓸지 말지 얼마나 고민했는지 모른다.
‘그래도 보조룬이 많아서 버텨지긴 하네.’
무너질 것 같던 상황을 붙잡아준 건 보조룬들 덕분.
워낙 룬의 개수가 많으니, 이젠 굳이 의식하지 않더라도 알아서 내 전투를 보조해줬다.
[야만왕의 후예]는 신체 스펙을 올려줬다.
하위룬으로 편입된 [도마뱀의 비늘], [견고한 이빨], [괴력] 등은 모두 짐승의 힘을 본딴 강화 계열 룬들이었기에… 상위룬으로 묶인 후에도 내 모든 신체 능력을 보조했다.
반면, 전투 자체를 보조하는 룬들도 있다.
보법류 룬인 [날렵한 몸놀림]이나 [단단한 지구력], [냉철한 집중력] 같은 룬들이 그러했다.
이들은 다른 룬들처럼 눈에 띄는 특수효과나 파생스킬은 없지만, 룬 이름 그대로의 힘을 확실히 발휘한다.
남들보다 훨씬 날렵하고, 끈기 있어지며, 쉽게 집중력을 잃지 않는다.
이러한 보조룬들이 있었기에 아까 같은 무모한 전투가 가능했다.
게다가….
[결투에서 승리했습니다! … … 복제할 룬을 선택해주세요.]
[‘끓어오르는 늑대인간의 힘’ 룬을 선택하셨습니다.]
[중복되는 룬입니다! ‘룬 사냥꾼’이 연계된 특수효과로, 해당 룬의 파생스킬만을 복제할 수 있습니다.]
[파생스킬 ‘곤색 포스하울링’이 새로이 추가됩니다.]
[결투에서 승리했습니다! … … 복제할 룬을 선택해주세요.]
[‘유연한 반사신경’ 룬을 선택하셨습니다. 14레벨의 레어룬이기에 레벨이 하락해, 7레벨로 등록됩니다.]
[룬의 성향으로 속력을 3 획득합니다.]
[결투에서 승리했습니다! … … 복제할 룬을 선택해주세요.]
[‘정확한 동체시력’ 룬을 선택하셨습니다. 15레벨의 레어룬이기에 레벨이 하락해, 8레벨로 등록됩니다.]
[룬의 성향으로 속력을 3 획득합니다.]
살짝 무리한 만큼 돌아오는 보상도 달콤했다.
사실 저번 소규모 전투 땐 듀크를 처치하는 기여도는 높았어도, 다른 라이칸들을 잡는 데엔 기여도가 부족했다.
그래서인지 당시 라이칸이 넷이나 있었는데도 얻었던 룬이 없었다.
하지만 이번엔 최전선에서 홀로 탱킹을 맡은 전투가 승리로 끝나니, [룬 사냥꾼]의 승리 기여도가 모두 인정됐다.
라크라는 각성 전사가 사용하던 [곤색 포스하울링]이 하울링 스킬로 추가됐고, 다른 라이칸 사냥을 통해[유연한 반사신경]과 [정확한 동체시력]이라는 보조룬들도 얻게 됐다.
‘드디어 100이다….’
그러나 난 다른 사실에 감격했다.
이번에 새로 얻은 보조룬들의 능력치 상승 효과.
그로 인해, 내 ‘속력’ 수치가 드디어 100을 찍게 된 것.
내가 보유한 모든 일반 능력치 중 최초의 100이다.
A급 홀더로 올라선 이후로 능력치의 중요도가 다소 떨어지긴 했지만, 그래도 능력치는 여전히 룬 홀더의 무력을 측정하는 중요 요소 중 하나다.
당연히 100까지 올리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고, 나로서도 감회가 새로웠다.
게다가 현존하는 S급 홀더 중, 주력 능력치가 100을 넘지 않는 홀더는 없다는 걸 생각해 보면… 뭔가 S급 홀더로 가기 위한 길에, 한 발짝을 내딛은 기분도 들었다.
“재현아! 다친 데 없어?”
“…괜찮아?”
잠깐 감상에 젖어있을 때쯤.
전투를 마무리한 우리 대원들이 내게 달려왔다.
선두는 김채은과 강주연.
그녀들은 누구보다 빨리 내게 오며 걱정스러운 얼굴로 물었다.
전부터 부탁했던 공대장 칭호와 존댓말까지 안 하는 걸 보면, 어지간히 걱정되긴 했나 보다.
“난 괜찮아. 다른 대원들은 안 다쳤지?”
“이 바보가…!! 너 말고 다칠 사람이 누가 있어. 혼자 불도저처럼 앞으로 달리는데.”
거침없이 내게 면박을 주는 또 다른 공대원.
뒤늦게 합류한 문가은이었다.
…아니.
대원들 다 보는데 이렇게 막 몰려다녀도 되는 거야?
그런 생각도 잠시 들었지만, 어쨌든 지은 죄가 있기에 난 헛기침을 하며 말을 돌렸다.
“흠흠. 문가은 홀더? 그 혹시, 공대장에 대한 예의를 좀….”
“이씨- 진짜 죽을래?”
“미안.”
이럴 땐 그냥 머리 박고 사과하는 게 제일이다.
스스로 느끼기에도 조금 아슬아슬하게 전투를 했는데, 멀리서 볼 땐 확실히 위험해 보였을 것 같았다.
중요한 전투라서 살짝 무리했다-
그런 핑계를 대며 그녀들을 안심시켰다.
“공대장님, 수고 많으셨습니다.”
“와, 형님! 진짜 대박입니다. 어떻게 혼자서 그렇게 많은 위르겐들을…!!”
멀리서 다른 대원들도 감탄 어린 눈빛으로 인사를 건네왔다.
도승민은 잔뜩 흥분해서 또다시 형님 형님 하고 있었다.
아군 사상자가 거의 없고, 그중 <파문 공격대>의 피해는 전무.
전례 없는 대승에 대원들 역시 한껏 들뜬 게 눈에 보였다.
나는 그제야 치열했던 전투가 끝났음을 실감했다.
“도재현.”
또 옆에서 들려오는 거친 목소리.
이번엔 공격대원이 아닌, 늑대인간…
바라텐 전사 중 하나인 쉴르텐이었다.
“수고했소. 기대보다 훨씬 뛰어나더군.”
“감사합니다. 다같이 도와줘서 가능했습니다.”
“곧바로 톨에게 보고하려 하는데, 같이 가겠소?”
우리가 전투를 치르는 동안, 엔리히텐의 본대는 이미 도착해 있었다.
그런 그에게 함께 보고하러 가자는 쉴르텐.
나는 주변을 둘러보며 잠시 고민하다가 고개를 저었다.
“먼저 가시죠. 저는 잠깐 볼일이 있어서, 필요한 추가사항은 따로 보고하겠습니다.”
“음….”
내 완곡한 거절에 쉴르텐이 묘한 표정을 지었다.
그리곤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소. 그럼 이따 보지.”
그렇게 쉴르텐은 보고를 위해 먼저 자리를 떴다.
그리고 나 역시, 공대원들에게 잠시 양해를 구하고 인적이 없는 곳으로 잠깐 자리를 옮겼다.
내가 굳이 보고까지 미뤄가며 혼자 자리를 비운 이유.
그건….
[현재 조합 가능한 룬이 존재합니다! 룬 사냥꾼의 신묘한 힘을 이용해 상위룬을 획득할 수 있습니다.]
[상위룬: 전사들의 강화술 / 하위룬: 날렵한 몸놀림, 단단한 지구력, 냉철한 집중력, 빠른 회복력, 유연한 반사신경, 정확한 동체시력]
아주 오랜만에 등장한…
나로선 꽤 중요한 볼일이 있었기 때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