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250 - 급습과 반격 (1)
이번 던전 공략을 통해, <파문 공격대>에선 새로이 명성을 얻게 된 신예 홀더들이 꽤 많았다.
그중 대표 인물을 꼽으라면 역시 박진우.
내 친구 녀석은 이번 전쟁으로 완전히 이름을 알렸다.
박진우는 원래도 실력 있는 유망주로 평가받고 있었고, 아카데미 내에선 그 위상이 엄청났지만…
정식 홀더로서 어떤 모습을 보여줄까에 대해선 그간 의문점이 있었다.
어쨌든 녀석은 아직 학생이고, <빌런 소탕 작전> 말곤 마땅히 대외 활동도 하지 않았었기 때문이다.
실력을 보여줄 기회 자체가 별로 없었기에, 그동안 홀더 계에서 저평가 혹은 무관심을 받았던 게 박진우였다.
‘이번 공략으로 완전히 바뀌었지.’
그런 평가는 박진우가 이번 공격대에서 부공대장 및 A팀 팀장을 맡으며 확 달라졌다.
녀석은 팀장으로서 냉철함은 다소 부족하지만, 최전선에 거침없이 앞장서며 위르겐들을 때려잡는 모습을 보였다.
직접 전투에 참여해 팀을 이끄는 파이팅 리더의 자질을 보여준 것.
특히 첫 던전 입장 때 각성 전사 듀크를 마무리한 쾌검…
그 강렬했던 궁극스킬의 시전 영상이 밝혀진 후.
홀더 계에서는 ‘쾌검 전문가’, ‘속도의 박진우’, ‘느려’ 등의 다양한 별명이 생겨나고 있었다.
어쨌든 덕분에 공격대 내 A팀 팀원들의 신뢰는 깊어졌고, 그를 미심쩍게 보던 대원들의 시선도 긍정적으로 변해갔다.
‘그러고 보면 A팀이 유독 신예가 많네.’
B팀과 C팀엔 이미 이름 있는 이들이 많았다.
C팀은 애초에 임현과 성나연으로 구성된 베테랑 팀이라 말할 것도 없었고, B팀 역시 나를 비롯해 강주연, 문가은 등 이미 홀더 계에서 유명해진 케이스가 대다수였다.
그나마 핫한 인물을 꼽으라면…
그간 명성이 부족했던 김채은과 요즘 내 전담 교육으로 조금씩 실력 발휘를 하는 도승민 정도?
‘A팀은….’
반면 A팀엔 큼지막한 활약들을 펼치는 신예들이 꽤 많았다.
그중 돋보이는 홀더들은 단연 카밀라와 안젤라.
공격대 내에 단 둘밖에 없는 미국 홀더들.
카밀라는 방어형 전사 계열로서 그야말로 정석과도 같은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고, 안젤라는 순도 높은 마력과 화려한 공격 방식으로 연일 대원들의 찬사를 받고 있었다.
박진우 다음으로 높은 평가를 받는 신예들이 바로 그녀들이었다.
“대장, 진우 어딨는지 못 봤나?”
“카밀라. 공대장님한테는 존댓말을 써야 한다니까.”
“…한국말 어렵다.”
그리고 그 주인공들은.
지금 내가 쉬고 있는 임시 천막에 들어와 있었다.
나는 그녀들의 만담에 가볍게 손을 내저었다.
“편하게 말해도 괜찮아. 이제 대원들 다 친해져서 서로 반말하는데, 뭐. 그리고 진우는 저기 왼쪽 끝자락 막사 가면 있을 거야. 아까 라이칸한테 한 방 먹었는지 치료받고 있더라.”
“아. 고맙다, 대장. 내가 꼭 까치 되겠다.”
“…까치가 된다고?”
그 뜬금없는 말을 이해하기도 전에 카밀라가 바로 자리를 떠났다.
그렇게 내가 바보처럼 서 있자, 안젤라가 살짝 미소 지으며 내게 다가왔다.
“공대장이 이해하세요. 카밀라가 전래동화로 한국말을 배워서.”
“전래동화?”
“네. 너무 어렵다고 읽기 쉬운 걸로 배웠거든요. 은혜 갚은 까치가 되겠다, 뭐 이런 말일 거예요.”
“아….”
아직 한국어를 제대로 쓰지도 못하는데, 응용력은 아주 수준급이다.
“안젤라는 번역 마법 쓰는 거지?”
“…어떻게 아셨어요?”
“발음이 너무 완벽하잖아. 몇 년 배운 솜씨론 안 나오는 실력 같아서. 그리고 말 편하게 해도 돼. 우리 다 동갑이니까.”
“이것도 많이 편하게 한 거예요.”
그리고 그 순간.
헉.
나는 나도 모르게 숨을 삼켰다.
말을 끝마친 안젤라가 내 옆으로 다가와 앉았기 때문이다.
…그것도 매우 가까이.
막사 안에 설치된 간이 침대.
그에 걸터앉은 채로 가까이 오니, 부드러운 허벅지 살결이 그대로 느껴졌다.
속으로 기겁하며 자리를 살짝 옮겼다.
“…너무 가깝지 않아?”
“편하게 하라고 한 건 공대장이잖아요.”
“행동까지 편하게 하라는 건 아니었는데….”
혼자 쉬고 있는데 공대원과 이러고 있는 걸 연인들에게 들키면 난 죽는다.
특히 안젤라 같은 미녀라면 더더욱.
안 그래도 요즘 문가은이 “이젠 늑대인간까지 꼬셔?!”와 같은 이상한 소리를 해서 난감하기 짝이 없는데 말이다.
듣기로는 하텐이 여자였다나 뭐라나….
“전 앞으로의 공략 방향을 묻기 위해서 왔어요.”
안젤라가 여전히 고혹적인 목소리로 내게 말했다.
날 빤히 쳐다보는 저 눈빛.
그리고 왠지 모르게 노출이 좀 있는 의상이 부담스럽다.
“내일이 되면 칼라크 진영과 전면전이 펼쳐질 거고, 전쟁의 규모만큼 공격대의 방향성도 이전과는 달라지지 않을까 해서요.”
하지만 그녀의 질문은 여느 때처럼 날카로웠다.
안젤라는 공격대 내에서 가장 능동적으로 움직이는 공대원 중 하나였다.
자신이 마법사 계열 공대원으로서 뭘 해야 할지 정확히 알고 200%의 실력을 발휘했고, 또 단순히 명령을 따르는 것만이 아닌 공격대의 방향성과 공략 루트에 대해 끊임없이 고민했다.
그에 대해 나와 몇 번이나 논의하기도 했었고.
이번 역시 그런 능동적 행동의 연장선으로 날 찾아왔겠지.
그러나….
“공략 방향은 잘 잡혀가고 있어. 내일 전투 결과가 승리로 끝나든, 실패로 끝나든 이미 짜인 플랜은 충분해. 그러니까… 안젤라는 A팀 마법사 계열로서 맡은 바 일을 충실히 해내면 돼.”
“…네?”
싱긋 웃으며 말을 잇는다.
“안젤라의 질문이 과하단 뜻이야. 공략 루트는 이미 충분해. 내가 그래도 공대장이니까, 믿고 따라와줬으면 좋겠어.”
“하, 하지만 전 단지 공대장이 미처 생각지 못한 부분을 컨트롤…”
“그 역할은 부공대장인 진우나 C팀 팀장 임현 홀더가 하는 거지, 안젤라가 하는 게 아니야.”
딱딱한 말에 그녀의 몸이 흠칫 떨리는 게 보였다.
능동적인 행동과 선을 넘는 행동은 엄연히 다르다.
안젤라는 지금 마치 자신이 공격대 간부라도 된 것처럼 내게 토론을 제안하고 있지만… 현실은 그냥 평범한 공대원 1에 불과하다.
공격대의 정식 간부는 박진우와 임현 두 명뿐.
공대원 중 누구도 함부로 그 권한을 침범할 순 없었다.
이는 공격대 창설부터 내가 경계했던 주의사항이고, 연인들에게도 공유하지 않는 부분이었다.
“그리고 밤늦게 이런 차림으로 공대장하고 있는 거 보면 대원들이 오해해.”
그렇게 살짝 벗겨진 그녀의 겉옷을 어깨까지 올려준다.
왠지 모르게 입술을 깨물고 있는 듯한 안젤라의 표정.
나는 아랑곳 않고 웃으며 말했다.
“쉬고 내일 보자. 알았지?”
즉.
슬슬 내 천막에서 나가달라.
나는 그 말을 하고 있었다.
똑똑한 안젤라가 이를 이해하지 못할 리 없었다.
“알겠…습니다.”
묘한 긴장감 속에 안젤라가 천막을 나갔다.
그리고 잠시 후.
나는 [통신 수정구] 아이템을 꺼내 연락을 시도했다.
통신 대상은 도승민이었다.
-승민아.
-네, 형님.
다행히 그는 혼자 있었는지 곧바로 연락이 닿았다.
나는 지체없이 그에게 말을 전했다.
-단계 좀 높여야겠다.
-지금요? 어느 정도까지요?
-최대로.
-…! 알겠습니다.
의심이 깊어지는 밤.
그 실체는 정확히 알 수 없지만 대비는 충분히 해둬야만 했다.
* * *
전면전을 시작하고 첫 번째 밤.
모두 잠을 안 잘 수는 없기에 바라텐 진영은 불침번 형태로 경계 근무를 섰다.
인간도 예외는 없다.
김채은은 자신의 불침번 시간에 일어나 순찰을 돌고 있었다.
불침번 파트너는 바라텐 진영 라이칸 중 하나.
만약의 상황에 대비해 앞장서서 그녀를 보호해줄 전사 계열 라이칸이었다.
초기에는 라이칸들이 은근슬쩍 공격대를 소외시키는 경향이 있었지만, 밤새 수많은 전투를 치러오며 이제는 약간의 전우애가 쌓여있었다.
자신들의 활약만을 최고로 치던 라이칸들도, 슬슬 인간들의 활약을 인정하는 모양새였다.
“ … … 그때 도재현 님이 딱 제 앞에 오셔서 칼라크 녀석의 어깨를 후려치시는데… 와, 저는 그렇게 주먹을 잘 쓰는 인간 전사는 처음 봤습니다. 도재현 님은 원래 격투술이 주 무술입니까?”
“아니, 검이 주무기야.”
“예에에?!”
“푸훗.”
메인 테마는 역시 도재현.
워낙 압도적인 활약을 보이고 있었기에, 라이칸들의 입에서 인간 얘기가 나왔다 하면 온통 그에 관한 말뿐이었다.
특히 라이칸들은 격투술을 사용하는 것에 자부심이 강해서, 수준급 이상의 맨몸 전투를 펼치는 도재현에게 더욱 관심이 많았다.
덕분에 김채은은 불침번 근무가 지루하지 않았다.
대화 주제가 자신의 남자친구였으니 사실 재미가 없는 게 더 힘들었다.
“ … … 이야, 그 정도면 하텐 녀석이 말하는 것도 허언은 아니겠군요. 도재현 님이 혼자서 15마리의 위르겐들을 동시에 죽였다고 하도 떠들어대서 지겹기만 했었는데, 그 위력을 직접 보니 정말…”
“저기, 잠깐만.”
그렇게 서로 떠들며 움직이던 중.
그녀는 뭔가 이상한 기운을 느끼고 라이칸을 멈춰 세웠다.
막사 주변을 맴도는 을씨년스러운 분위기.
육안으로 보기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지만, 마법사 계열로서 마력에 대해 조예가 깊은 김채은은 특이점을 감지할 수 있었다.
“이건….”
제자리에 잠시 앉아, 가만히 땅에 손을 얹어본다.
------!!
쿠, 쿠구구-
“……!!”
폭주.
그건 일종의 폭주였다.
어마어마한 마력이 온 땅을 헤집을 듯이 쏘다니고 있었고, 그게 그녀의 손을 타고 명백히 느껴졌다.
그리고….
아우우우--!!
-------!!!
아우우우우-!!
앞, 뒤, 옆.
사방을 둘러싼 언덕 위에서.
소름끼치는 울음소리와 함께…
수백, 아니 수천 마리의 늑대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보는 순간 몸이 굳을 정도로.
압도적인 수의 늑대들이었다.
이를 확인한 라이칸이 기겁하며 소리를 질렀다.
“저, 적군이다!! 칼라크 녀석들의 기습이다!! 그리고 각성까지…!!”
이어서 종을 울리기 위해 달려가려는 라이칸.
하지만.
콰, 콰가가-!!
-----!!
“크, 크아악…!!”
갑작스럽게 땅 속에서 웬 늑대 한 마리가 치솟아 오르며, 해당 라이칸의 목을 물어뜯었다.
적은 멀리에만 있는 게 아니었다.
바로 가까이, 땅 안에서도 나타나고 있었다.
“…….”
김채은은 입술을 지그시 물며 자신의 스태프를 잡았다.
이럴 때일수록 정신을 바짝 차려야 한다.
이런 때를 대비한 불침번 근무였다.
지금은 전쟁이 시작하고 난 후…
바라텐 진영의 최대 위기 상황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