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252 - 급습과 반격 (3)
처음부터 윤곽은 잡혀있었다.
칼라크 진영과 내통하는 스파이가 아군에 있을 수도 있다는 점.
적들이 내 [액셀 피어싱] 대처법을 알아낸 데에서 그런 의심을 품었고, 적들이 보유한 룬에서 ‘루덴아크’라는 키워드가 나오면서 의심은 확신이 되어갔다.
이번 전쟁은 단순히 던전 공략이 아니다.
어쩌면 홀더 계에 나타날 새로운 적, 루덴아크라는 단체가 개입돼있다.
또한 외부 단체가 개입되었다면, 아군에 스파이가 있을 가능성은….
‘공격대.’
내가 창설한 공격대에 있을 확률이 가장 높았다.
그래서 난 공격대 창설 때부터 시작해왔던 스파이 경계의 강도를 높였다.
그 주인공은 아이러니하게도 도승민이었다.
“저, 저보고 스파이를 찾으라고요?”
“굳이 찾으라는 건 아니고, 그냥 경계만 하라는 거지. 네가 은신 룬을 잘 다루니까.”
홀더들이 작정하고 탐색류 룬이나 마력 탐지를 쓰지 않는 이상, 암살자 계열의 [은신]은 어지간해선 안 들킨다.
도승민이 부족한 점이 많긴 해도, 연차가 매우 높은 암살자 계열.
[은신]에 대한 숙련도는 A급 암살자 계열에 못지 않았다.
물론 처음엔 도승민도 경계 대상에서 놓지 않았었지만, 그는 앞서 말했듯 경력이 오래돼서 알리바이도 확실하고 어렸을 때의 기사들도 꽤 많았다.
신원이 확실하면서 이번 공격대로 나와 처음 본 사람.
그가 이 일에 가장 적합한 인물이었다.
“근데 이제 빌런은 다 소탕됐잖아요. 스파이를 보낼 만한 단체가 또 있나요?”
“어. 어쩌면 빌런보다 더 지독할 수도 있는 녀석들이야.”
그렇게 경계를 극대화한 이후, 나는 새벽에 엔리히텐을 찾아갔다.
그의 막사엔 4명의 각성 전사들이 추가로 모여있었다.
오늘 밤 적의 급습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내 조언에 구성된 별동대였다.
하지만 갑작스러운 전략에 불만인 라이칸들도 있는 모양이었다.
“톨. 우린 아직도 이해가 가질 않소. 아무리 제이텐에게 신뢰의 증표를 받고, 강한 무력을 입증했다지만 어디까지나 인간이오. 게다가 저 자는 불결한 그자들의 힘을…!!”
“쉴르텐.”
엔리히텐은 그의 말을 자르며 가볍게 설득했다.
“보고싶은 것만 보려 하지 말고, 자세히 그의 기운을 느껴봐라.”
“…그게 무슨 말이오?”
“그는 분명 전투에서 바바리안들의 강화술을 썼지만, 그건 그자들에게 인위적으로 주입된 힘이 아니다. 도재현은 야만왕 마그누스 바바리안의 후예. 바바리안들의 온전한 정식 강화술을 쓰고 있는 거다.”
“……!”
아마도 내가 사용하는 룬 [전사들의 강화술] 때문에 오해가 생긴 모양이었다.
이 힘은 야만 일족인 바바리안의 것이고, 또 루덴아크 학파가 칼라크 부족에게 이 힘을 부여하면서 전쟁이 급격히 기울었었으니까.
‘따지고 보면 나도 걔네 거 뺏어서 조합한 룬이긴 한데….’
어쨌든 지금 내게 있는 룬은 정식 [전사들의 강화술].
그리고 그 힘을 입증하는 [야만왕의 후예]까지.
엔리히텐은 칼라크 진영의 불안정한 힘과 내가 보유한 힘을 정확히 구분하며 쉴르텐을 설득했다.
전략을 이야기하는 내 말에 확실한 힘이 실리는 순간이었다.
“그럼 엔리히텐, 이어서 설명하겠습니다. 만약 적들이 오늘 밤 급습을 한다면, 별동대는 이쪽 방향으로 가서 적의 보급로부터 끊은 후 … … ”
대략 30분 정도.
치밀한 반격 계획을 그들에게 설명할 때쯤.
-저, 적군이다!! 칼라크 녀석들의 기습이다!
불침번 근무를 서던 라이칸이 목이 터져라 외쳤다.
어느 정도 예상했던 대로.
새벽에 칼라크 진영의 급습이 시작된 것이다.
우리는 그대로 막사를 나와 전투를 준비했다.
“이런….”
그런데 밖으로 나온 엔리히텐의 표정이 좋지 않았다.
마치 전혀 예상치 못했다는 듯 낭패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왜 그러십니까?”
“그자들이 마법을 펼쳤다. 억지로 보름달을 채워 라이칸들의 각성을 유도하는, 펄 문라이트 마법이다.”
그자들.
루덴아크 학파를 지칭하는 말.
나는 그 말에 깜짝 놀랐다.
루덴아크 학파가 여기에 또 있다고?
그럼 아예 처음부터 던전 내에 있었다는 건가?
그런 의문들을 해결할 틈은 없었다.
“이 마법은 우리 바라텐도 각성해 강해질 수 있기에 그리 위협적이진 않지만, 문제는 그다음 마법이다. 루덴아크의 마법은 기이한 것들이 많아, 라이칸들을 땅속에 침투시켜 이동시키는 급습 방법도 있다. 대비가 안 된 이들에겐 매우 타격이 큰 공격 형태지.”
다시 말해 그 말은.
“막사 전방에 있는 아군들이 위험하다. 불침번을 맡은 전사들은 어쩌면 이미… 도재현? 어딜 가나, 도재현!”
그의 말을 끝까지 들을 일은 없었다.
나는 곧바로 돌격류 룬을 사용하며 전력으로 달렸다.
지금 시간 불침번을 맡은 공대원은 김채은.
그걸 알고도 가만히 있을 수는 없었다.
* * *
그렇게 죽을 힘으로 돌격해 달려온 게 지금의 상황이었다.
‘채은이가 혼자 라이칸을…?’
처음 도착하고 곁눈질로 전투 상황을 봤을 땐 놀랐다.
A급 최상위 괴수, 라이칸스로프.
심지어 [펄 문라이트]라는 마법을 통해 늑대 형태로 각성까지 한 괴물이 사망한 채 너부러져 있었다.
우리 측 라이칸도 쓰러진 걸 보면, 아마 김채은이 탱킹도 없이 홀로 잡은 것 같았다.
마법사가 A급 최상위 괴수를 혼자 잡다니… 밖에서 알면 깜짝 놀랄 만한 일이 펼쳐져 있었지만, 그걸 감상하고 있을 시간은 없었다.
‘거리부터 좁혀야 돼.’
나는 일단 궁극스킬들을 있는 대로 모두 때려박았다.
적에게 순간이동하듯 다가감과 동시에 강력한 일격을 먹이는 [왜곡의 그림자].
덕분에 라이칸 한 마리가 순식간에 리타이어된다.
그 녀석을 발판 삼아 도약해 채은이를 안은 후.
한손만으로 [진 유수활검]을 펼친다.
나도 처음 해보는 기예였지만 약간은 어설프게 성공해낼 수 있었다.
늦지 않게 도착해 위기를 모면하는 순간이었다.
“파도에 터져라.”
나는 쉬지 않고 곧바로 전투를 이어갔다.
궁극스킬 [진 파상천검].
기존의 [파상천검]이 단일 대상에게만 찔러 터뜨리는 스킬이었다면, [진 파상천검]은 그 위력을 사방으로 퍼뜨릴 수 있는 광역기가 됐다.
물 안에 검을 찌르고 마력을 담으면, 곧장 7개의 ‘물의 칼날’이 만들어진다.
그렇게 만들어진 칼날을 원하는 방향으로 쏘면…
칼날에 찔린 대상에게 강렬한 마력을 터뜨릴 수 있다.
즉, 기존의 [파상천검]을 원격으로 조종하며 다수에게 사용할 수 있게 된 것.
위력은 기존보다 떨어지지만, 범용성은 압도적이었다.
팟- 파바밧-
------!!
콰앙-!!
콰아앙-!!
부드러운 물속성 마력이 마치 폭발하듯 라이칸들의 몸에서 춤춘다.
이미 [진 유수활검]의 참격으로 예열이 한 번 됐었는데, [진 파상천검]의 마무리 타격까지 가해지니 라이칸들은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펑- 펑-
‘물의 칼날’이 닿을 때마다 녀석들은 쉽사리 쓰러지며 전투력을 상실했다.
“허억- 허억….”
…물론, 나도 정상은 아니었다.
일반적인 홀더들은 하나도 갖기 힘들다는 궁극스킬.
이걸 무려 3개나 연달아 썼다.
어마어마한 양의 마력이 빠져나가며 단번에 고갈 상태가 됐고, 체력적으로도 몸이 지쳐가는 게 느껴졌다.
그나마 [잊혀진 용기사의 긍지] 혹은 [전사들의 강화술]처럼 체력과 마력을 보조해주는 룬들이 있어 망정이지, 그게 아니었다면 저 라이칸들보다 내가 먼저 쓰러졌을 거다.
“재현아, 마무리…!!”
그리고 그 순간.
어딘가 익숙한 ‘얼음의 기운’이 주변을 감싼다.
안개처럼 밀려와 차갑게 대기를 얼리려는 마력.
나로선 수십 번이나 봐왔던 김채은의 주력 스킬, [프로즌 포그]였다.
‘옛날 생각 나네.’
그녀와 함께 전투를 할 땐 항상 이런 느낌이었다.
[프로즌 포그]나 [필드 프리징]으로 괴수들의 발을 묶은 후, 내가 마무리 공격을 가하는 루트.
정석적이면서도, 늘 효율이 좋은 공격 방식이었다.
비록 내 능력들이 다양해지고 수준이 올라오면서 이런 전투를 할 일이 거의 없었지만, 이렇게 또다시 그녀와 함께 전투를 하게 되니 느낌이 새로웠다.
그때의 추억을 되살리며…
나는 ‘무구교체술’로 [클로우 숏소드]를 들었다.
빠르게 마무리 공격을 가할 땐.
역시 ‘단검술’과 [매화검법]만한 게 없었다.
------!!
아우우우-!!
마침내 숨통이 끊어지는 라이칸들.
압도적인 수 차이를 극복하고 녀석들을 전부 처치했다.
그리고 그 수는 앞으로 더 불어나겠지.
칼라크 진영의 급습에 대한 반격의 서막이었다.
* * *
한편 바라텐 진영 막사 측면 쪽.
불침번 근무들의 경보로 적습을 알게 된 아군들은 자신들만의 치열한 전투를 펼치고 있었다.
문가은은 손가락이 터질 듯 활 시위를 당겼다.
다행히 적습 경보가 빨랐기에 전투 준비는 제대로 돼 있었지만… 적의 수가 많다.
많아도 너무 많았다.
아무리 화살을 맞추고 마력을 쏘아대도, 적들은 수적 우위를 내세우며 밀고 들어왔다.
“버텨라! 아군이 작전을 펼칠 때까지 기다려!”
“최대한 인간들을 지켜라! 지원이 안 끊기게 해라!”
각 부대의 지휘를 맡은 각성 전사들이 목이 터져라 외쳤다.
처음엔 라이칸과 인간의 개별 전투를 선호했던 그들이지만, 전쟁이 꽤 진행된 지금은 후방지원 홀더들이 전투의 핵심이란 걸 잘 알고 있었다.
“왜 이렇게! 늑대 형태들! 인 거야! 잡기! 힘들게!!”
그 속에서 문가은은 묵묵히 활을 쐈다.
그러면서도 마음속에서 짜증이 샘솟았다.
보름달의 달빛을 받고 각성한 라이칸들은 모두 늑대 형태로 몸을 바꿔 달려들고 있었다.
그 때문에 보폭 영역이 다양해져 공격을 적중시키기 매우 까다로웠고, 특히 각성으로 능력치까지 상승해 움직임이 너무 날카로웠다.
한 마디로 아군이 너무 불리했다.
“그건 말이죠. 보름달이 떴기 때문입니다. 라이칸과 위르겐들은 보름달이 뜨면 각성으로 더 강해지고 늑대 형태로 변할 수 있거든요. 물론 저 보름달은 마법으로 만들어지긴 했습니다만!”
그리고 어디선가 들리는 목소리.
문가은의 호위를 맡은 라이칸, 하텐이었다.
이 위급 상황에도 태평하게 말이 많았다.
“그럼 너희도 변하면 되잖아…!!”
“수적 열세 때문에 안 변하는 겁니다. 방어할 땐 인간 형태가 더 편하거든요.”
“이씨- 그냥 변신해! 이러다 다 죽겠어!”
그 말에 신나게 싸우던 하텐이 박수를 쳤다.
“그 말을 기다렸습니다!”
말이 끝남과 동시에.
촤락!
순식간에 하텐의 몸이 변형하기 시작한다.
꼿꼿이 선 몸은 굽어져 늑대 형태로.
날 선 발톱과 이빨은 더 날카롭게.
여기저기 뻗은 갈기들은 더 기다랗게.
그리고.
[고립되어 있던 늑대인간이 달빛에 각성하며 본래의 모습을 되찾습니다. 선택받은 늑대 ‘퓰리엔’ 일족은 오래 전부터 발키리와 함께 싸워온 친우입니다. 퓰리엔의 후예 ‘하텐’은 풍파 속에 변종을 겪으며 늑대인간이 되었지만, 원래의 모습을 되찾은 지금이라면 그녀와 계약을 맺을 수 있습니다.]
[‘전장의 발키리’ 룬과 ‘발키리의 말’ 룬이 감응합니다. 숨겨진 특수 조건을 모두 만족해, ‘하텐’과의 계약이 가능해집니다. 이 계약은 통솔 수치와 룬 레벨에 영향을 받지 않습니다.]
오랫동안 기다린, 새로운 힘도 발현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