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254 - 재회 (1)
[계약에 성공합니다! ‘발키리의 말’ 룬의 계약 대상 목록에, ‘하텐(-/특수)’이 추가됩니다. 이미 이름이 확정된 대상이기에 새로 이름을 지을 수 없습니다. 비정상적인 계약으로 계약자의 능력이 일부분 제한됩니다.]
[현재 계약 괴수 목록(2/2)]
[잠시 잊혔던 오랜 친우의 종족과 계약을 맺었습니다. 그들과 함께 싸워온 세월의 흔적은, 룬에 대한당신의 이해도를 급격히 상승시킬 것입니다.]
[‘발키리의 말’ 룬의 레벨이 올랐습니다.]
[룬의 성향으로 통솔을 5 획득합니다.]
퓰리엔 일족, 하텐.
아쓰타 신궁의 ‘구미호’에 이어 두 번째로 얻게 된 계약자다.
사실 구미호는 이런 난전에서 그리 매력적인 계약자는 아니었다.
능력치와 룬 세팅 자체가 주술 쪽에 집중된 괴수였기에 멀리서 선공으로 대량 상태이상을 걸 때 가장 효과적이고, 또 마구잡이로 달려드는 적들을 회피하기에도 마땅치 않았다.
반면, 하텐은 근접 전투를 위해 태어난 종족.
본래 늑대인간일 때도 육탄전에 능했던 괴수인데, 늑대로 변한 지금은 말할 것도 없다.
날카롭게 벼려진 이빨과 발톱은 적들을 찢어내기에 부족함이 없었고, 늑대로서 속도와 근력은 계약을 통해 더욱 강화되며 어지간한 각성 라이칸 뺨치는 수준이 됐다.
근접전에 최적화되어 강해진 계약자.
거기에 올라탄 주인은 궁수 계열.
지금과 같은 난전 상황에서, 가장 효과적으로 전장을 헤집을 수 있는 조합이었다.
아우우우-!!
푸쉬이-
카앙! 카아앙!!
쿠, 콰가가가-!!
마력과 물리력이 적절히 배합된 화살이 빗발친다.
그리고 그 위를 자유롭게 쏘다니는 한 마리의 늑대.
난데없이 나타난 영웅 같은 이들의 모습에, 바라텐 진영 전사들도 눈이 휘둥그레졌다.
“저건… 하텐?”
“하텐과 인간 궁수가 함께…!!”
“기마 궁수, 아니 기랑 궁수다!!”
사실 이목이 집중될 수밖에 없다.
갑작스럽게 나타난 하텐과 문가은이, 전장 내 이곳저곳을 거침없이 쏘다니며 무자비하게 적들을 밟아대니…
눈길이 안 갈래야 안 갈 수가 없었다.
하텐은 늑대 형태의 장점을 이용해 빠른 속도로 적들을 물어뜯고 찢었으며, 문가은은 그 위에서 끊임없이 화살을 쏘며 아군 보조 및 마무리를 도맡았다.
전장의 발키리와 퓰리엔 일족.
두 개체의 호흡은 상상 이상으로 뛰어나서, 상당히 거칠고 격한 움직임이 펼쳐지는데도 문가은은 능숙하게 전투를 이어갔다.
‘하텐, 나 내려올 때 다시 받아!’
-알겠습니다!
특히 압권은 전투 도중 적군이 너무 많아졌을 때였다.
적 늑대들이 수를 앞세워 거의 포위할듯 다가오자…
문가은은 아예 하텐으로부터 도약해 하늘로 오른 후, 공중에서 활을 쏘며 적들을 소탕했다.
적당히 수가 정리됨과 동시에 땅으로 떨어지는 문가은.
그런 그녀에게 뛰어올라 다시 태우는 하텐.
환상에 가까운 호흡과 움직임.
‘기승 전투의 백미’라고 봐도 좋을 모습이었다.
“와, 와….”
“이, 이길 수 있다! 우리도 이길 수 있다!”
“싸우자! 전사들이여, 각성해서 싸우자!!”
그리고 그들을 향한 아군의 신기한 눈빛은…
어느새 열정으로 바뀌어 바라텐의 전사들을 자극했다.
수비적으로 일관하던 라이칸들은 조금씩 전진하기 시작했다.
게다가 문가은의 활약으로 발이 풀리면서, 그들 역시 늑대 형태로 변하는 데에 망설임이 없어졌다.
더 이상 아까처럼 방어만 할 필요가 없어진 것이다.
급격히 증가한 사기와 할 수 있다는 희망.
바라텐의 전사들은 너나 할 것 없이 늑대 형태로 각성하며 반격을 시도했다.
-주인님, 승마 기술이 정말 탁월하십니다. 적들이 정신을 못 차리는군요!
‘너보다 더 거칠고 멋진 사람을 타 본 적 있거든.’
-…사람을 탔다고요?
‘응. 그리고 징그러우니까 주인님이라고 하지 말아줄래?’
-아니, 주인님을 주인님이라고 하지 그럼 뭐라고 합니까?
상상치도 못한 조합으로 대활약을 펼치는 하텐과 문가은.
고전하던 오른쪽 측면 구역도.
드디어 역전을 이룩하고 있었다.
* * *
아우우우-!!
콰앙- 콰가강-!!
‘진짜 더럽게 많네.’
위르겐과 라이칸이 뒤섞인 늑대 무리를 계속 쓰러뜨려가며, 나는 혀를 찼다.
수가 많다.
많아도 너무 많다.
일반적이라면 도시에서 농성하며 방어하는 쪽이 전투에 있어 훨씬 편할 텐데, 굳이 전 병력을 이끌고 와 우릴 급습한 이유가 있었다.
압도적인 병력의 수 차이.
이미 알고는 있던 내용이지만, 직접 눈과 몸으로 이를 확인하니 그 불리함이 여실히 체감됐다.
땅에서 튀어나왔던 라이칸은 8마리로 끝이었지만, 이후 정면 구역에서 끊임없이 늑대들이 아군 영역을 침범해왔다.
“도재현, 괜찮나?”
탁-
정신없이 싸우던 도중, 함께 싸우던 ‘톨 바라텐’ 엔리히텐과 등을 맞댄다.
그는 아까 내가 달려온 흔적을 그대로 따라와 정면 구역에서 아군을 이끌고 있었다.
“전 문제없습니다. 작전을 떠난 아군은 어떻게 됐습니까?”
적의 급습이 시작되기 전.
이 상황을 예측하며 우리가 계획했던 작전.
막사를 벗어나 전장을 둥글게 돌아간 후, 적의 후미 보급로를 끊는 별동대 전략.
이에 대해 답하는 엔리히텐의 목소리는 밝았다.
“별동대를 이끈 쉴르텐이 신호를 보내왔다. 대성공이야. 이번 총력전을 버텨낼 수만 있다면, 아마 칼라크 녀석들이 돌아간다고 해도 전쟁은 우리 쪽에 유리해질 거다.”
듣던 중 반가운 소리였다.
그동안 날 의심하고 약간 트러블도 있었던 쉴르텐이지만 실력 하나는 믿을 만했다.
보란듯이 작전을 성공하며 길을 텄다.
그럼 이제….
“우리만 버티면 되겠군요.”
“그게 제일 문제지.”
“푸흐- 죽지 마십쇼.”
죽여도 죽여도 끝이 안 보이는 적의 병력.
이들을 버텨내기만 한다면…
이번 전투는 물론 전쟁까지 승리로 가져갈 수 있었다.
나는 짤막했던 엔리히텐과의 대화를 마친 후.
곧장 다시 앞으로 뛰쳐갔다.
손에 든 건 [클로우 숏소드], 사용하는 무공은 [매화검법]이다.
‘검보다 소검이 효율이 좋아.’
검을 사용하면 더 확실하게 적을 죽일 순 있다.
어쨌든 지금의 내 주력 물리 공격은 검술에 있고, 활용도와 응용도 역시 다른 무기보단 검이 훨씬 뛰어나니까.
하지만 지금은 적에게 강한 타격을 입히는 것보다, 얕은 타격을 넓게 입히는 게 중요했다.
왜냐하면 지금 상황은 다대다 전투.
나 혼자서 사냥을 하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내 공격과 움직임을 보조해 줄 후방 인력도 있고, 내가 피해를 입혔을 때 마무리해 줄 아군도 있다.
특히 적들이 모두 날렵한 늑대 형태이기에 그 속도에 맞추려면 리치가 짧을수록 좋았다.
아우우우-!!
캉! 캉! 카강-!
다행히 그 판단은 옳았다.
지속적으로 움직이며 적을 사냥하는 데에 특화된 [매화검법]은 다수의 적을 사냥하는 데에 매우 효과적이었다.
또한 [전사들의 강화술]로 신체는 강화되고, [은빛 달그림자] 덕분에 공격의 위력은 증가한다.
특별히 스킬을 사용하지 않아도 적들에게 타격을 주고 있는 것이었다.
그래도 혹시나 부족하다고 느껴지면, 중간중간 [맹독]이나 [폭발하는 검의 기세]를 섞어 공격을 강화했다.
캉- 카강-
카강- 카가강-!!
나는 멈추지 않고 움직였다.
‘더 빨리. 더 강하게.’
거의 무아지경의 자세로 소검들을 휘두른다.
스승님 유은설이 가르친 [매화검법]의 초식들은 내 몸에 깊숙이 새겨져 있다.
비록 그녀의 [설중매화]나 원형 무공인 [이십사수매화검법]만큼의 화려한 초식은 아니지만, 내가 이해하고 완성한 초식들은 자신들만의 또 다른 영역을 구성하며 내 몸을 이끌었다.
베고, 베고, 찌르고, 베고.
다시 찌르고, 베고, 베고.
두 자루의 소검은 내 손바닥과 손끝에서 너무도 자유로웠다.
때론 역수로, 때론 정자세로.
쉴 새 없이 소검들을 움직이다가 손이 터져버릴 것 같았지만, 나는 조금도 흔들리지 않고 공격을 이어나갔다.
그건 뭐랄까.
마치 세상이 멈추고…
나 홀로 움직이고 있는 기분이었다.
그리고, 마침내.
[궁극스킬의 묘리를 발견했습니다! 스쳐가는 바람과 떨어지는 꽃잎… 당신의 검법엔 표현하기 힘든 아름다움이 깃들어 있습니다. 그 누구도 활용한 적 없던 움직임이 당신에게서 펼쳐집니다.]
[‘매화검법’ 룬의 궁극스킬 ‘낙화의 미학’을 만들어냈습니다. 앞으로 5번 이를 구현할 경우, 정식 궁극스킬로 등록됩니다. 스킬에 사용된 룬은 ‘전사들의 강화술’. 이와 관련된 룬을 보유해야만 해당 스킬을 사용할 수 있습니다.]
전혀 생각지 못했던 깨달음 또한 얻을 수 있었다.
‘…궁극스킬?’
궁극스킬의 창조.
최소 10년 이상 한 무공을 판 홀더들만이 할 수 있다는 일.
천재 중 천재들만 할 수 있지만, 그중에서도 운이 좋아야만 할 수 있다는 일.
그 일이 내게도 펼쳐졌다.
[이십사수매화검법]의 열화판으로 만들어진 룬, [매화검법].
당연히 정식 무공이 아니기에 마땅히 보유한 스킬도 없었고, 초식 자체도 투박했지만…
이 검법이 내게 찾아오며 완전히 새롭게 해석된 모양이다.
나는 [전사들의 강화술] 룬을 통해 신체 보조를 극한으로 끌어올렸고, 그에 힘입어 수없이 많은 늑대들을 소검으로 긁어왔다.
그 안에 들어간 공격은 빠르면서도.
그 위력은 결코 가볍지 않았다.
‘다시 말해.’
매우 빠른 시간 안에 적진을 파고들어간 후.
모조리 긁어내며 강력한 피해를 입히는 효과.
궁극스킬 [낙화의 미학]은, 물리 공격 형태의 광역기였다.
‘내가 궁극스킬을 만들어다니….’
솔직히 너무 예상치 못한 일을 겪어서 어안이 벙벙했다.
탁원호 스승님이 만든 [파상천검]이나 김명현 스승님이 만든 [유수활검].
오랜 경험과 노하우가 깃들어 쌓인 그런 궁극스킬을, 나 또한 만들어냈다는 게 믿기지 않았다.
아우우우-!!
쾅! 콰가가-!!
하지만 그걸 감상하고 있을 시간은 없었다.
궁극스킬을 만들었다곤 해도 아직 사용할 수 없는 미완의 단계였고, 이 전투를 완전히 종결시킬 만한 힘도 아니었다.
당장 몰려오는 적들을 상대하는 게 우선이었다.
“……?!”
그런데 그때.
적 라이칸과 위르겐 사이에서.
아주 익숙하면서도 불길한 기운이 느껴졌다.
주변의 늑대들과는 다른, 완전한 인간의 느낌.
지금껏 무수히 많은 사람을 죽여온 듯한…
어둡고 파멸적인 기세의 마력.
‘무구교체술…!’
나는 곧바로 [참회자의 검]으로 무기를 바꿨다.
그리고 잡은 손에 힘을 꽉 쥔 채…
그대로 회전하듯 몸을 돌리며 검을 휘둘렀다.
카아앙-!!
검과 검이 맞부딪히는, 강렬한 금속음이 들린다.
그리고.
“정말… 재밌는 만남이군, 도재현.”
“황성연…!!”
여전히 홀더 계에서 추적 중인 인물.
<빌런>의 전 부마스터이자, 한국 내 최악의 범죄자.
일전에 나를 죽음까지 내몰았던…
S급 홀더로 추정되는 남자.
황성연이, 내 눈앞에서 검을 맞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