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256 - 뜨거운 승전보 (1)
전쟁터가 된 바라텐 진영 임시 막사.
그 중앙과 측면 사이의 한 구역.
여느 구역과 마찬가지로 바라텐과 칼라크의 늑대들이 치열하게 싸우고 있었고, <파문 공격대>의 인간들 역시 최선을 다해 힘을 보태고 있었다.
전반적인 흐름 자체는 좋았다.
‘늑대인간 전용 방어구’로 무장한 바라텐 진영 라이칸들과 경험 많은 인간들은 철저하게 방어선을 구축하며 적들을 저지했다.
앞에서의 탱킹은 단단하게.
뒤에서의 딜링은 확실하게.
인간과 라이칸 간의 협력 전투.
그 경험도 점점 쌓이며 서로의 손발이 맞아가는 기분이었다.
그리고 그중 가장 활약하는 건, 역시 인간이었다.
“쾌검의 달인이 적군 각성 전사를 쓰러뜨렸다…!!”
“와아아아-!!”
“고요한 여전사가 버틴다! 다같이 버텨라!!”
박진우와 카밀라.
최근 공격대 내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맡던 그들은, 갑작스러운 급습의 반격에서도 빛이 났다.
박진우는 아군을 이끌면서도 공격의 선봉장에, 카밀라는 커다란 방패를 기반으로 방어의 중심에.
각각 공격과 방어의 핵심을 도맡으며 아군을 이끌었다.
특히 라이칸들은 유독 전사들에게 별명을 붙이는 걸 좋아해서, 전시 상황인데도 그들에겐 독특한 별명들이 붙었다.
쾌검의 달인과 고요한 여전사.
유치하지만 그들의 활약을 확실하게 드러내는 이름.
두 사람만 있으면…
이 구역의 전투도 금세 승리로 끝날 것만 같았다.
‘안 좋아.’
그러나 환호 속 주인공인 박진우는…
실시간으로 상황이 악화됐음을 직감해야 했다.
일단 잘 막아내고는 있었지만, 워낙 갑작스럽게 이뤄진 전투라 체력과 마력이 너무 빠르게 소모됐다.
게다가 새벽에 자다 깨서 하는 전투이기에 컨디션이 온전치 않은 점, 그런 이유 때문에 내적으로 스트레스가 쌓여가는 점 등….
전투에서 불리하게 적용되는 심리적 요인들이 많았다.
아마 지금의 구도를 확 뒤집을 무언가가 나오지 않는다면, 아군의 진형은 금세 무너질 확률이 높았다.
‘젠장… 이딴 건 생각도 안 했었는데.’
사실 이전까지의 박진우는 눈치채지 못했던 부분들.
별 생각 없이 앞에서 싸우기만 했었고, 리더를 맡아본 적도 없어 굳이 알 필요도 없었던 부분들이다.
그러나 <파문 공격대>의 부대장이 되고, 바라텐-공격대 연합의 중심인물이 되어가며… 그는 비로소 깨달을 수 있었다.
작은 위치라도 한 집단의 리더를 맡는 이는, 그 휘하 아군의 부담감을 오롯이 떠안아야만 했다.
그게 리더의 책임감이었다.
“꺄아아악…!!”
“카밀라!!”
그리고 그 순간.
악화되던 전장의 상황이 기어코 최악으로 치달았다.
지금껏 ‘각성한 늑대의 형태’로 근접 전투만을 노리던 칼라크 진영에서, 난데없이 마법이 튀어나온 것이다.
넘실거리는 검은색 마력과 거대한 가시.
그 불길하고 위험한 마법이 닿은 곳은…
최전방에 서 있는 카밀라의 몸이었다.
“어떤 새끼들이…!! 카밀라! 괜찮아?”
박진우는 다급히 달려가 그녀를 안았다.
휘청거릴 뻔한 몸이 그의 손에 붙잡히고, 상처에선 다량의 피가 묻어 나온다.
어디서 날아왔는지 모를 ‘어둠의 가시’.
이는 카밀라의 커다란 방패를 꿰뚫고, 그녀의 가슴까지 밀려와 살갗을 찌르고 있었다.
“쿨럭- 진우, 저기….”
카밀라가 떨리는 손으로 먼 곳을 가리켰다.
그를 따라 박진우도 시선을 옮긴다.
그곳엔…
미친 듯이 전장을 날뛰는 늑대들 사이로.
‘인간들’이 걸어오고 있었다.
‘…인간이라고?’
상황을 인지했지만, 박진우는 순간 자신의 눈을 의심했다.
로브를 뒤집어쓴 남자와 금발의 남자.
외국인처럼 보이는 저들은 분명, 인간이었다.
던전 입장은 ‘특수 아이템’을 통해서만 진행되니 저들은 타국의 홀더일 리가 없다.
말 그대로 던전에 있는 인간들이란 뜻이다.
‘…어떻게?’
지금껏 던전에서 인간이 나왔던 적은 없다.
지금 던전의 늑대인간들, 혹은 <초월자의 방> 속 드래곤이 [폴리모프]로 인간의 형태를 한 적은 있어도… 온전히 인간의 모습을 했던 개체는 없었다.
난생 처음 겪는 상황.
그리고 처음 보는 ‘이계의 인간’.
“아퀼렌. 아직 미숙하구나.”
“죄송합니다. 저 여자의 룬과 능력치가 방어 쪽에 몰려있는 듯합니다.”
“변명은 됐다. 내가 나서지.”
그러나 이에 대해 탐구하고 있을 시간은 없었다.
저들은 분명한 적군.
카밀라를 공격해 치명상을 입혔고, 또다시 아군에게 마법을 쏟으려 하고 있다.
‘막아야 해.’
상황이 어떻게 흘러가는 건진 몰라도, 최소한 저들의 마법은 막아내야 했다.
박진우는 닳고 닳은 자신의 검을 꽉 쥐었다.
그리고 잠시 쉬고 있던 룬들을 작동시키며 아껴뒀던 궁극스킬을 준비한다.
목표는 로브를 뒤집어쓴 남자.
적 딜러진 핵심의 제거였다.
“쫓아…”
하지만 로브의 남자는.
가볍게 손가락을 튕기며 그의 말을 무시했다.
“아, 그것도 됐네. 이미 파악했거든.”
콰, 콰아아앙-!!
“크아악…!!”
“진우!!”
박진우가 있던 자리에 거대한 폭발이 일어나고, 그는 피투성이가 된 채 바닥을 굴렀다.
이번엔 카밀라가 다가와 그를 안았다.
당연히 시전하려던 궁극스킬도 취소.
마치 패턴을 외운 듯한 타이밍 마법에, 그는 속수무책으로 당해야만 했다.
‘씨…발.’
쿨럭-
한 번에 너무 큰 타격을 입어, 기침을 타고 피가 쏟아진다.
얼마나 높은 마력과 강한 룬을 지니고 있는지, 박진우의 모든 방어 계열 룬과 내구 수치를 단숨에 뚫으며 치명상을 줬다.
옆에 있던 다른 마법사가 카밀라에게 가한 공격도 강하긴 했지만, 로브의 남자가 쓴 마법은 차원이 다른 수준의 공격이었다.
“아퀼렌.”
“예!”
“날 보조해라. 저 둘을 포함해서 나머지를 쓸어버릴 테니.”
“알겠습니다.”
사형선고와도 같은 선언이 내려진다.
이미 캐스팅이 준비돼 있던 마법만으로 이 정도 타격인데, 제대로 마력을 쏟아 광역 마법을 펼치면…
어느 정도의 피해가 일어날지 가늠조차 가질 않았다.
‘안 돼… 막아야 해.’
박진우는 없는 힘까지 모두 짜내며 일어서려고 했다.
막아야 한다.
이대로 가만히 있으면, 모두가 끝이었다.
‘…지켜야 해.’
지키고 싶었다.
눈앞의 카밀라와 박진우 자신.
그의 지휘를 받는 수많은 공격대원들.
지금껏 함께 싸워온 라이칸과 위르겐들….
전우라는 이름으로 등을 맞댔던 모든 이들을 지키고 싶었다.
‘길을… 지키는 길을.’
지금까지의 그는 목적 없이 싸워왔다.
그저 싸우는 게 좋았고, 그 싸움을 준비하는 과정이 좋았다.
그러나 동료들을 모두 잃을 수도 있는…
절체절명의 이 순간.
그는 그제야 깨달을 수 있었다.
자신이 그동안 방황하고 찾던 길은.
그 모두를 지키는 길이었다는 걸.
빈칸이었던 목적에, 굵은 글자가 새겨지는 순간이었다.
[방황하던 구도자의 길에 뜻이 생겼습니다! 당신 안에 내재돼 있던 구도자의 능력이 비로소 제 힘을 되찾습니다. 당신이 찾던 길은 주변의 모든 것들이 외부의 압력으로부터 흔들리지 않도록, 일관적으로 그들을 지켜내는 것. 당신은 ‘균형의 구도자’입니다.]
[새로운 룬 ‘균형의 구도자’를 얻었습니다!]
[룬의 성향으로 모든 일반 능력치를 5씩 획득합니다.]
[구도자의 온전한 힘을 되찾으며, 에픽룬 ‘쫓을 수 없는 쾌검’이 전설룬 ‘그림자를 밟은 검’으로 진화합니다.]
[룬의 성향으로 근력과 마력을 각각 3, 속력을 7 획득합니다.]
…
…
[새로운 룬 ‘마력지배’를 얻었습니다.]
[새로운 룬 ‘조율의 눈동자’를 얻었습니다.]
…
…
그리고.
박진우가 곧 눈을 뜨며.
아까 못다 한 궁극스킬의 언령을 읊었다.
“어둠을 쫓아라.”
강해진 힘과 달라진 공격.
루덴아크 학파의 데이브와 아퀼렌.
그들이 참전한 곳에도…
반격이 시작되고 있었다.
* * *
아스는 소환에 제약이 있는 계약자다.
반드시 물이 있는 곳에서만 소환할 수 있고, 또 가진 능력과 수준이 매우 높기에 소환 자체에 소모되는 마력도 상당하다.
소환하는 것만으로 리스크를 떠안는 계약자.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리턴 값은 확실했다.
[계약자 ‘아스’가 ‘뉴 웨이브’ 스킬을 사용합니다. 드넓은 바다의 파도가 전장에 덮칩니다.]
[계약자 ‘아스’가 ‘질곡의 폭포’ 스킬을 사용합니다. 총 20명의 지정 대상에게 뻣뻣한 물줄기의 속박이 가해집니다.]
아스는 수송에 특화된 귀룡이지만, 전투에 있어선 그 누구보다 뛰어난 마법사이기도 하다.
주력룬 [소용돌이를 삼킨 파도]는 16레벨, 주문법 룬 [드래고니안 주문]은 17레벨, 심지어 마력 관련 기본룬 [마력제어]는 20레벨이다.
물속성 마법에 더없이 특화된 룬 세팅과 숙련도.
다대다 전투인 지금 상황에서…
그 파괴력은, 말로 설명할 수 없을 정도였다.
쏴아아아-!!
쿠, 콰가가가-!!
-젠장! 라이칸들은 위르겐들을 방패 삼아 물을 피해라!!
-무슨 저딴 괴물이…!!
-으아아악!! 살려줘-!!
거센 파도와 날카로운 물줄기가 쏟아지고, 전장은 순식간에 아수라장으로 변했다.
칼라크 진영 라이칸들은 어떻게든 지형지물에 올라서며 물 마법을 피하려 들었지만….
‘그럴 거면 아스 소환도 안 했지.’
S급 괴수의 마법은 고작 속력만으로 피할 수 있는 게 아니다.
마찬가지로 S급 괴수인 각성 전사들을 제외한, 거의 모든 늑대들이 물 마법에 휘말렸다.
얼핏 보니 날 향해 다가오던 황성연도 물에 빠져있다.
다만, 여전히 흥미로운 얼굴로 날 보고 있었다.
재수없는 새끼.
아스의 등껍질 위에 올라탄 나는 재빨리 오더를 내렸다.
‘아스. 물 마법 더 가능해?’
-다음 마법까진 시간이 필요합니다. 대신 아까처럼 더블 캐스팅으로 두 마법을 동시에 쓸 순 있습니다.
‘오케이. 그럼 안정적인 곳으로 가서 마법 준비해줘.’
-맹약자의 뜻대로.
명령 하달과 동시에 아스에게서 뛰어내린다.
그리고 곧바로 활용하는 [천하제일 경주마].
공중에서 돌격류 룬을 사용해 달려간다.
도달 위치는 아스의 [질곡의 폭포] 스킬에 맞은 라이칸들.
상태이상 부류의 스킬이기에 큰 타격을 입진 않았지만, 20마리의 라이칸이 한 스킬로 묶여있다는 건 내게 다른 의미로 다가왔다.
‘체인 라이트닝!’
일전에 위르겐 15마리를 동시 사낭할때 썼던 스킬.
[침투하는 뇌기]의 [체인 라이트닝].
이 공격에 먹기 좋게 서 있는 걸로밖에 안 보였다.
파츳- 파츠츠츠-!!
콰, 콰르르-!!
강렬한 번개의 구들이 솟구치고, 적 라이칸들의 괴성이 들려온다.
명중이었다.
물론 그와 동시에 물 속에 빠지긴 했지만, [엘리멘탈 마스터]와 [수중호흡]이 있는 내게 물은 또 다른 홈그라운드다.
‘이대로 계속 줄여나가야 해.’
나는 고개를 돌려 주변을 둘러봤다.
여전히 진정되지 않은 전장과 물에 빠진 늑대들.
…그리고 황성연.
황성연을 잡기 위해서라도, 이렇게 적들을 하나씩 물리쳐야 했다.
‘아군 수가 더 많아질 때까지!’
황성연을 상대할 때 가장 힘들었던 건.
나 혼자 녀석을 상대해야 했다는 점이다.
S급 홀더 중에서도 최고위급 실력과 마검을 소유한 그.
그런 녀석을 혼자 상대하는 건 사실 억지에 가까웠다.
[디바인 슬래쉬]를 이미 써버리고, [광폭화]가 끝나가는 지금은 더더욱.
‘그럼 상대 안 하면 돼.’
해결책은 간단했다.
이가 안 되면 잇몸으로.
검이 없으면 주먹으로.
질이 부족하면, 양으로 승부하면 그만이었다.
이 전장의 물이 다 사라지기 전까지…
내 목표는, 황성연을 제외한 적군의 전원 제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