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260 - 뜨거운 승전보 (5)
“오우, 도재현. 쟤들 좀 말려 봐.”
“왜 자꾸 나보고 말려달래. 자기들이 얻은 별명이면서.”
“씨발 친구야, 제발.”
아주 그냥 자기 급할 때만 친구지.
나는 박진우의 간절한 호소를 무시하며 다른 곳으로 발길을 옮겼다.
어쨌든 가장 안부가 궁금했던 두 연인과 친구 한 놈, 그리고 많은 공대원들의 안전을 확인하고 나니 불안했던 마음이 조금은 안심이 된다.
정말 다행히 공격대 내에 사망자는 없는 모양이었다.
“형님.”
“어, 승민아.”
축제에 가까운 라이칸들의 행렬을 지나, 한쪽 구역에 도달하니 기다렸던 인물도 있었다.
새벽 급습이 시작되기 전.
아니, 실은 <파문 공격대>가 창설된 시점부터 특별한 임무를 맡겼던 공대원… 도승민이었다.
그는 평소엔 장난기 많은 동생이자 날 떠받드는 열렬한 팬이었지만, 지금만큼은 진중한 태도로 고개를 숙이며 보고했다.
“안젤라 그렘빌을 묶어놓는 데에 성공했습니다. 형님께서 말하셨던 루덴아크 쪽과 안젤라가 통신하는 증거를 확보했고, 새벽에 진영을 탈출하려고 했던 정황도 모두 포착한 상태입니다.”
루덴아크 학파의 스파이는 결국 안젤라가 맞았다.
그동안 자신이 스파이라는 점을 철저하게 숨겨왔던 그녀는, 막판에 휘몰아치는 상황과 ‘이미 발각됐을지도 모른다’는 내 암시를 끝내 견디지 못했다.
사실 나도 심증만 있고 물증은 없던 상태라 대놓고 감시하긴 쉽지 않았는데, 도승민이 맡은 역할을 충실하게 잘 수행해준 모양이었다.
“고생했다. 워낙 고위 마법사라, 억류하는 것 자체도 쉽지 않았을 텐데.”
“제이텐과 다른 라이칸들이 잘 도와줬습니다. 형님 덕분에요.”
그동안 감시 활동을 할 땐 홀로 활동했던 도승민이지만, 칼라크의 급습이 시작된 시점엔 엔리히텐에게 부탁해 라이칸들을 미리 붙여놨다.
우리에게 [신뢰의 증표]를 건넸던 제이텐을 비롯해 총 3명의 라이칸.
오직 도승민의 활동을 보조하기 위해 붙인 병력이었다.
덕분에 안젤라의 억류는 생각보다 쉽게 진행된 것 같다.
아무리 그녀가 루덴아크의 강력한 마법사라곤 해도, 근접 계열 A급 괴수 3명에 B급 암살자 계열 홀더가 합심한 공격을 막아낼 순 없었다.
“지금 포로 전용 막사에 있습니다. 확인하시겠습니까?”
“그래, 잠깐 보자.”
도승민의 제안에 포로 전용 막사를 찾아갔다.
그의 말처럼 안엔 제이텐 및 라이칸들이 안젤라를 가둬두고 있었다.
그 짧은 새에 약간의 다툼이 있었는지, 머리는 산발에 몸 곳곳엔 생채기들이 새겨져있다.
입술을 꽉 깨물고 있던 그녀는…
입구에 내 얼굴이 보이자마자 눈을 부라렸다.
“공대장! 이게 대체 무슨 짓이죠? 무고한 공대원을 이렇게 맘대로 억류해도 되는 건가요?”
이야.
아예 당당한 태도로 나오시겠다?
눈 하나 깜짝 안 하고 구라를 치는 안젤라의 모습에, 나는 혀를 내두르며 그녀에게 다가갔다.
이미 증거가 나왔음에도 그녀는 뻔뻔함을 잃지 않았다.
“현세로 돌아가면 한국 홀더 협회와 서울 홀더 아카데미에 정식으로 항의하겠어요. 한국의 학생 홀더 한 명이, 고작 공대장이라는 이유로 미국의 학생 홀더를-!!”
“너 이제 미국 홀더 아닐걸?”
“…뭐라구요?”
잔뜩 화가 난 안젤라에게 찬물을 끼얹어준다.
나는 고개를 숙여 그녀에게 시선을 맞추며 천천히 말해줬다.
“네 친구들 다 우리한테 져서 도망간 건 알지? 루덴아크랑 황성연 말이야.”
상황은 박진우에게 대강 들었다.
녀석이 있던 구역에 분명 ‘인간들’로 보이는 마법사 두 명이 있었고, 강력한 마법을 사용하며 아군을 압박했다고 한다.
아마 그들이 루덴아크 학파의 주 멤버.
안젤라에게 간첩을 지시했던 상관들이겠지.
그들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자 안젤라의 표정이 굳기 시작했다.
“…무슨 얘기를 하는지 모르겠네요.”
“굳이 모른 척 안 해도 돼. 그래봤자 달라지는 건 없으니까. 어쨌든 놈들은 졌고 그 길로 도망쳤어. 뭐, 맘대로 이곳에 들어왔던 것처럼 어떻게든 다시 현세로 돌아갔겠지.”
그들이 어떤 방식으로 이 던전에 들어온지는 나도 잘 모른다.
그건 아마 안젤라를 심문해야 알 수 있겠지.
다만, 그들은 믿는 구석이 있었기에 리스크를 고려하지 않고 침투했을 것이다.
그래서 굳이 공격대나 아군에게 그들의 뒤를 쫓을 걸 지시하지 않았었다.
어차피 이미 현세로 돌아갔을 것 같아서.
“근데 그런 그들이… 너와 연락했던 흔적, 너와 관련된 정보, 널 위해 마련한 미국에서의 신분-. 그걸 다 그대로 둘까?”
안젤라의 눈빛이 살짝 흔들렸다.
나는 가볍게 고개를 저으며 말을 이었다.
“내 생각엔 아닐 것 같은데. 뭐라도 의심갈 만한 건 싹 다 말소하겠지. 남겨서 좋을 건 없으니까.”
“…….”
아까까지만 해도 기세가 등등했던 안젤라는, 얼빠진 상태로 멍하니 내 말을 듣고 있었다.
이제야 상황 파악이 조금 되는 모양이었다.
그에 나는 살짝 웃으며 말을 덧붙였다.
“안젤라. 내가 왜 처음부터 널 의심했는지 알아?”
루덴아크의 스파이.
그 의심 폭을 안젤라로 점점 좁혀갔던 이유.
정확히 말하면 처음부터 의심까진 아니었다.
애초에 그녀는 실력 좋고 통찰력 있는 명석한 공대원으로 인식되고 있었고, 만약 미국 출신이라는 게 의심거리라면 카밀라도 그 대상에 포함됐어야 하니까.
다만.
“너한테서 익숙한 기운이 느껴졌거든. 분명 어디선가 느껴본 듯한.”
안젤라에게서 느껴지던 너무나도 익숙한 기운.
그게 부정적인 건지 긍정적인 건지 구분이 안 돼서…
솔직히 처음엔 조금 헷갈렸었다.
하지만.
지금은 그 정체를 명확하게 알 수 있었다.
“너, 본 드래곤 제작자였지?”
“……!!”
본 드래곤.
지금은 티르본드라는 이름으로 내 계약자가 된 ‘언데드’의 원형을, 그녀가 제작했었다.
총 제작자였는지, 제작에 참여만 한지는 몰라도…
어쨌든 그녀에게서 느껴지던 희미한 기운은 티르본드의 것이었다.
루덴아크의 실력 있는 언데드 제작자.
아무래도 그게 그녀의 진짜 정체였던 모양이다.
그 모든 추론과 사실을 듣자, 안젤라의 표정은 거의 사색이 되어갔다.
나는 그런 그녀의 귀에 대고 조용히 속삭였다.
“본 드래곤은 내가 잘 쓸게. 그러니까 이제 좀 체념하고 받아들여. 복귀하면 네가 아무리 발악해도 바로 조사 들어갈 거니까.”
루덴아크 학파의 스파이, 안젤라 그렘빌.
그녀가 빠져나갈 구석은 어디에도 없었다.
* * *
바라텐 연합군은 시간을 질질 끌지 않았다.
이미 대규모 전투에서 한 차례 승리를 거뒀고, 적들을 궁지로 몰아넣은 상황에서… 굳이 도시로 돌아가 방어할 시간을 줄 이유는 전혀 없었다.
약간의 휴식 이후 곧바로 적들의 도시로 진격.
남아있는 칼라크 진영의 늑대들을 모조리 쓸어버리며 연이은 대승을 거뒀다.
그리고.
<파문된 늑대들의 도시>였던 ‘울펜서’에…
파문됐던 모든 늑대들이 모여있었다.
그 한가운데엔, 바라텐의 수장인 엔리히텐이 있었다.
“전사들이여! 이게 바로 톨 칼라크인 블레이크의 목이다! 승리다! 우리 바라텐이, 라이칸 일족의 기나긴 대전쟁에서 승리한 것이다-!!”
적군 수장인 블레이크의 수급을 번쩍 들어올린 엔리히텐.
그 모습에 바라텐 진영의 모든 늑대들이 열광했다.
“와아아아!!”
“이겼다! 우리가 드디어 이겼다!”
“바라텐을 위하여! 우리의 친우인 인간들을 위하여!”
모든 늑대인간들이 서로를 부둥켜안고, 심지어 인간들과도 껴안으며 승리를 자축했다.
황무지와 같던 던전에 들어와, 바라텐을 도와 연합군을 결성해, 칼라크와 싸워 이기기까지.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았던 그 과정이…
드디어 결실을 맺는 순간이었다.
[‘바라텐 진영’을 종족 대전쟁의 승리자로 이끌었습니다! 던전 내에 있던 다양한 해방 조건 중 하나를 풀어냈습니다. 도시 ‘울펜서’엔 특별히 보스 룸이 존재하지 않으며, 황궁 내의 특별접견실이 보스 룸의 역할을 대체합니다.]
[놀라운 업적! 아직 그 누구도 쌓지 못한 금자탑, ‘적응자’들의 시련을 도와 승리했습니다. 믿을 수 없는 업적에 당신이 보유한 모든 힘이, 빠르고 눈부신 성장을 이룹니다.]
[모든 일반 및 특수 능력치를 각각 3씩, 모든 내성 능력치를 각각 1씩 획득합니다.]
[‘전사들의 강화술’ 룬의 레벨이 올랐습니다! … … ]
[‘끓어오르는 늑대의 힘’ 룬의 레벨이 올랐습니다! … …]
그리고 그 순간.
시스템 역시 던전의 공략이 완료됐음을 인정했다.
던전 공략 조건 자체가 한 진영을 이끌어 전쟁에서 승리하는 것이었기에, 특별히 보스 룸도 존재하지 않는 모양이었다.
황궁 내의 특별접견실이라는 곳은 아마 레스트 룸일 확률이 높았다.
그러나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게 있었다.
‘적응자….’
정보창에 나온, 적응자라는 새로운 명칭이었다.
마치 <초월자의 방>에서 위대하고 아득한 존재인 초월자를 마주했듯, 바라텐 진영처럼 인간과 함께 소통하고 협력할 수 있는 존재들은 ‘적응자’라고 통칭되는 모양이었다.
던전 <울펜서>는 역시 기존 던전과 달랐다.
그저 지성 없는 괴수들을 사냥하던 것과는 확연히 다른 형태였고, 덕분에 공략 성공의 결과 또한 ‘놀라운 업적’으로 기록되며 남다른 보상들을 제공했다.
능력치들이 또다시 성장을 거듭했고, 특정 룬들도 레벨이 올랐다.
<홀더 정보>
◎이름: 도재현
◎성별: 남(21)
◎일반 능력치
[근력: 103] [마력: 100]
[속력: 106] [신성: 70]
[내구: 73] [정신: 73]
◎내성 능력치
[불: 22] [물: 24] [땅: 15] [바람: 15]
[번개: 19] [독: 18]
◎특수 능력치
[통솔: 65]
…
…
‘마력도 이제 100이네.’
한동안 정체됐던 능력치들은 모두 70을 넘으며 매우 높은 수치를 기록했고, 주력 능력치(근력, 속력, 마력)들은 모두 100을 넘어섰다.
이 정도라면…
이제 어디 가서 능력치로 밀릴 일은 없었다.
당장 황성연과 싸울 때만 해도, [광폭화]와 [용인화]를 통해 비등비등한 전투를 펼쳤었으니까.
“도재현.”
그렇게 잠시 정보창을 확인하던 도중.
라이칸들의 환호 속에 둘러싸여있던 엔리히텐이 어느새 내게 다가와 말을 건넸다.
그리고 그 이유는 아마도 하나.
“그대와 공격대의 친우들을 우리 울펜서의 황궁으로 초대하고 싶은데.”
이제는 라이칸의 친우가 되어버린 <파문 공격대>.
우리에게, 던전 공략의 진짜 보상을 주기 위해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