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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카데미 사기 룬을 얻었다 (269)화 (269/353)

Chapter 269 - 장비 강화 (1)

그동안 쌓였던 큼지막한 문제들을 모두 해결했다.

방학 내 핵심 과제였던 <울펜서> 공략과 이후의 처리 과정, [융화의 질서] 연구 완료와 보유 계약자들의 정리, 가진 바 능력들의 성장과 강화.

무엇보다 가장 큰 문제였던…

연인들과의 관계를 부모님께 허락받는 것.

모든 것들을 긍정적인 방향으로 마무리하고 나서야, 후련하게 정리가 끝난 기분이었다.

물론 당장 눈앞에 쌓인 과제들만 해결했을 뿐.

나아가 해결해야 할 더 큰 문제가 남아있긴 했다.

[박지환 홀더님] 재현아, 나 박지환이다. 진우에게 물어서 번호를 좀 받았다. 루덴아크 학파와 관련해 이야기할 것들이 있으니, 시간 될 때 연락 주거라.

<빌런>에 이어 나타난 새로운 ‘악’의 집단.

어쩌면 더 악독할 지도 모르는 단체, 루덴아크 학파.

그들을 쫓고, 최종적으론 무너뜨려야 하는 여정이었다.

나는 장인어른들과의 숨 막혔던 만남을 모두 마친 후, 박지환과 만나 앞으로의 일정을 공유했다.

루덴아크 학파에 관한 각종 보고서 공유, 그들을 발견했을 때의 행동 지침, 협회 및 대형 클랜들과의 협력 구도 등….

그들을 무너뜨리기 위한 구체적인 방안의 논의였다.

박지환을 만나 이에 대해 이야기하고 나니, 두루뭉술하던 계획에 짜임새가 생기는 느낌이었다.

“드디어 개강한 느낌 좀 나네.”

그렇게 큼지막한 일들을 모두 마무리한 후.

나는 강의실 책상에 엎드려, 자유가 된 기분을 만끽했다.

이제서야 새해와 새 학기를 맞이하는 것만 같다.

“아빠가 뭐라냐?”

그리고 옆에서 들려오는 징그러운 목소리.

나는 화들짝 놀라 고개를 들었다.

“뭐야. 너 이 강의 들어?”

“오우, 미안한데 그동안 수업 빼먹은 건 너야.”

어이없다는 얼굴로 날 보는 박진우.

…사실 그의 말이 맞았다.

학기 초에 바쁜 일들이 너무 몰려 있어서, 그나마 중요도가 떨어지는 교양 수업은 몇 번 빼먹었었다.

내 사전에 수업을 빠지는 건 어떤 상황에도 있을 수 없는 일인데, 가끔은 사전이 찢어지는 일도 있긴 하더라.

정신없이 닥친 일들을 처리하다 보면 나외의 약속도 가끔씩은 깨지는 법이었다.

“그래도 OT 포함 두 번밖에 안 빼먹었어.”

“자랑이다. 그래서, 우리 아빠가 뭐라 하냐고.”

“루덴아크 관련해서 얘기했어. 앞으로 어떤 스탠스를 취해야 할 지, 어떻게 놈들을 쫓아야 할 지.”

박지환은 현 홀더 계에서 루덴아크에 대해 가장 잘 알고 있는 사람.

내게 처음 단서를 건넸던 것도 그였기에, 그와 루덴아크 관련 이야기를 하는 건 당연했다.

그런데 내 말에 박진우가 깜짝 놀라 되물었다.

“아빠가 루덴아크를 알아?”

“…뭐라는 거야. 너 아빠 뭐하는 사람인지 몰라?”

“홀더인 건 알아.”

자신의 아빠에 대해 나보다 아는 게 없다니.

그런 황당한 이야기를 당연하게 꺼낸 박진우는, 드르륵- 소리를 내며 내 옆자리 의자를 빼 앉았다.

“우리 아빠 극한의 기러기 아빠라서, 집에 돈은 엄청 보내는데 뭐하고 다니는 지를 안 밝히거든. 그래서 집에 오면 엄마한테 뒤지게 맞아. 요즘은 동생 자식 머리가 커서 가끔은 여동생한테도 맞고.”

“…….”

도대체 어떤 집안에서 살아온 거냐….

내 표정이 경악에 물드는 동안, 박진우는 별 거 아니라는 듯 어깨를 으쓱였다.

“아빠가 구도자의 힘을 가졌다는 것도 이제야 알았다. 이번에 나도 그 힘을 각성해서 그런가, 아빠가 먼저 알아보더라고. 드디어 얻게 됐냐면서.”

박진우의 새로운 각성에 대해선 일전에 들었었다.

[균형의 구도자].

난생 처음 들어보는 룬을 얻게 됐다는 그는, 관련 부속 룬들을 여럿 획득하며 일명 ‘구도자의 힘’을 얻게 됐다고 했다.

일반적으로 룬 획득은 홀더 각성, 레스트 룸 보상, 특수 아이템 등 어떤 매개체를 통해서 발현되곤 하는데… 박진우는 특이하게도 전투 도중 깨달음을 통해 룬을 얻게 됐다.

그 말이 뜻하는 바는 하나.

‘원래 그 힘에 대한 재능이 있었다는 거지.’

방금 그가 말했듯, 박진우의 아빠 박지환도 ‘구도자의 힘’을 지니고 있었다.

즉, 원래 박진우가 가지고 있던 재능이 아직 발현되지 않았단 뜻.

빌어먹을 주인공 버프.

그렇게 강력한 룬들을 보유하고 있었으면서, 또 뭔가 튀어나올 힘들이 있었나 보다.

어쨌든 박진우는 새로이 각성하게 되며, 측면 구역에서 루덴아크의 마법사들을 격파하는 혁혁한 공을 세웠다.

특히 녀석이 직접 상대했다던 ‘로브를 쓴 남자’의 마법들은, 루덴아크에 관해 보고서를 작성하는 데에 큰 도움이 됐다.

“아무튼 아빠가 루덴아크 추격에 중요한 사람이란 거지?”

“엄청. 현존 홀더 중에 루덴아크에 대해 가장 잘 아시는 분일걸. 아마 앞으로 마주칠 일 많을 거야.”

“그건 반가운 소리네.”

드르륵-

얘기를 나누던 중 강의실 문이 열린다.

이번 수업 <전투 장비의 이해와 활용>의 담당 교수였다.

교수는 강의실에 들어오자마자 출석도 부르지 않고 곧장 교재를 폈다.

‘맞네.’

교수가 출석을 안 부르는 걸로 유명한 강의.

그것 때문에 신청했는데, 정말 소문대로였다.

아마 그간 빠졌던 날들도 출석이 인정됐겠지.

한동안 바빴던 나로선 너무나 다행인 일.

교양 강의임에도 경쟁률이 치열한 이유가 있었다.

그런데….

“저번 시간에도 미리 말씀드렸지만, 다음 수업 시간엔 개인 발표가 있습니다. 보고서 및 PPT를 직접 만들어 와 발표를 준비하길 바랍니다.”

교재를 펼치고 입을 연 교수에게서, 청천벽력 같은 소리가 튀어나왔다.

난데없는 과제 소식이었다.

나는 재빨리 고개를 돌려 복화술을 시도했다.

-야, 뭐야. 과제 얘긴 없었잖아.

-몰라, 나도. 수업 시간에 계속 자느라 그런 거 있는 줄도 몰랐음.

-뭐? 아오, 진짜….

이 자식을 믿은 내가 바보다.

하긴 박진우가 실습도 없는 강의를 집중해 들을 리가 없었다.

출석도 안 부르는 수업에 들어온 것만으로 기적이다.

물론 지금의 내 명성이면 이름 모를 교양 수업의 과제 정돈 제껴도 되겠지만….

‘굳이 기삿거리 만들 필요는 없지.’

오히려 명성이 높아져서 문제였다.

뭐든 이슈로 만들고 싶은 이들은 이런 사소한 이야기들도 기삿거리로 삼을 수 있었다.

내가 주변 시선을 잘 신경쓰지 않긴 해도, 굳이 그런 긁어부스럼을 억지로 만들 필요는 없었다.

그래도 불행 중 다행히, 교수님은 자비가 있었다.

“크흠. 수업에 집중하지 않은 학생들이 있는 것 같으니, 다시 공지합니다. 이번 과제는 자신이 쓸 장비를 직접 구매해보고, 그 과정에서 느꼈던 점이나 애로사항 등을 보고서로 작성해 발표하는 겁니다.”

아, 생각났다.

이 강의가 학생들에게 유명한 또 다른 이유.

자신이 쓸 전투 장비를 직접 구매하고 사용해보며, 그 감상을 발표하는 특이 과제 때문이었다.

아무래도 비용 문제가 발생하다보니 수강생들 사이에서도 화제가 됐었고, 그래서인지 강의계획서에도 매우 강력한 주의사항으로 적혀있었다.

“몇만원짜리 노멀 장비든, 수백만원짜리 레어 장비든 상관없습니다. 중요한 건 수강생 여러분이 그 장비를 직접 구매하고 사용하며 느꼈던 점들. 이를 솔직하게 보고서에 작성하길 바랍니다.”

교수는 그 공지를 끝으로 수업을 시작했다.

난 다시 고개를 슬쩍 돌리며 복화술을 했다.

-야, 뭐 살 거야?

-뭘 뭐 사. 그냥 노멀 장비 아무거나 사야지. 제일 싼 걸로.

-뭐? 기껏 사야하는데 필요한 거 사는 게 낫지 않아?

-필요한 거 없는데? 아직 네가 사 준 장비들도 짱짱해. 돈 아까워.

이 자식은 돈도 많이 벌고, 심지어 잘 쓰지도 않는 놈이 뭘 이리 아낄까.

간만에 녀석이랑 같이 장비 좀 둘러볼까 했던 내가 바보였다.

나는 고개를 내저으며 수업에 집중했다.

아무래도 쇼핑 상대는 더 적절한 사람을 찾아야 할 것 같다.

* * *

적당한 쇼핑 상대를 고르긴 했다.

“아니, 주연아….”

하지만 너무 거물을 골라 버렸다.

“그렇다고 경매장까지 오자는 건 아니었는데….”

강주연은 아예 작정하고 날 경매장에 데려왔다.

용산 프리미엄 경매장.

서울에서 가장 큰 규모를 지녔다는 홀더 전용 경매장으로, 일전에 갔던 대구 경매장보다 훨씬 크고 화려한 건물들을 자랑하는 곳.

전국의 난다 긴다 하는 재력가와 홀더들이 모두 모이는 곳이었다.

난 그저 쇼핑이나 같이 하며 데이트하자는 생각에 가볍게 강주연을 불렀는데, 그녀의 생각은 아니었나 보다.

“…아이템은 살 때 잘 사야 해.”

국내 3대 클랜 <불의 심판>의 유일한 후계자.

오랜 기간 홀더들의 생활을 접해온 그녀에게, 장비 구매는 결코 가벼이 진행되면 안 되는 일이었다.

특히 지금의 난 고위 홀더에 자금도 충분한 상황.

그럴수록 더욱 신중하게 아이템을 골라야 한단다.

덕분에 난 그녀의 손길에 이끌려, 최고급 경매가 진행된다는 ‘슈프림 커맨드 옥션’ 층까지 와 있는 상태였다.

“…혹시 특별히 사려는 건 있어?”

강주연이 맞잡은 손을 어루만지며 내게 물었다.

재밌게도, 바라보는 그 눈빛이 살짝 들뜬 게 느껴진다.

한동안 <울펜서> 공략을 하느라 정신이 없었고, 이후 학기 초엔 아버지들께 허락을 받고 관련 일들을 처리하느라 너무 바빴다.

이렇게 둘이서 시간을 가질 여유가 없었다.

‘오랜만이긴 하네.’

다른 목적이 있다곤 하지만 오랜만에 단둘이서 즐기는 데이트에, 주연이도 기분이 꽤 좋은 모양이었다.

그 모습에 나도 웃음을 지으며 답했다.

“음… 방패랑 갑옷을 살까 하긴 했는데.”

장비 강화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건 방패와 갑옷이다.

[홉고블린의 청동방패]와 [그을린 도마뱀 가죽갑옷].

함께 한 시간도 오래됐고, 충분히 괜찮은 성능을 지닌 레어급 아이템들이지만… 슬슬 교체의 필요성이 있기도 했다.

워낙 초창기 때부터 사용한 아이템들인 데다가, 갑자기 등급이 확 높아진 내 다른 장비들에 비하면 확실히 부족한 면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럼 이쪽으로 먼저 가자.”

그에 강주연이 고개를 끄덕이며 날 이끌었다.

용산 경매장 중앙 건물의 13층.

<슈프림 커맨드 옥션: 프리미엄 아머>.

그런 간판이 내걸린 곳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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