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270 - 장비 강화 (2)
경매장은 크게 두 종류의 옥션으로 나뉜다.
‘커맨드 옥션’과 ‘블라인드 옥션’.
전자는 말 그대로 감정이 끝난 정식 품목들을 경매로 진행하는 것이고, 후자는 미감정 아이템들의 경매였다.
일전에 내가 대구 경매장에서 아이템들을 거의 쓸어가다시피 했던 미감정 아이템 경매.
그게 용산에선 아예 별개의 옥션으로 존재하는 것이다.
이렇게 경매 방식으로 경매장이 갈리는 반면…
판매하는 품목의 종류별로 경매장이 나뉠 때도 있다.
‘여긴 갑옷만 파나 보네.’
그중 <슈프림 커맨드 옥션: 프리미엄 아머>는 이름 그대로 갑옷 종류의 장비들만 파는 경매 장소였다.
강주연은 이미 한 번 와본 적이 있는 듯, 자연스럽게 직원에게 출입증을 제시하며 안쪽으로 들어갔다.
“난 출입증 없는데 들어갈 수 있는 거야?”
문득 궁금해져 묻자, 그녀가 출입증을 보여줬다.
은은한 투명색이 비치는 고급 출입증.
그 안엔 작은 다이아몬드 그림도 박혀 있었다.
“VVIP 출입증은 1인 동승 가능해.”
“…….”
역시 부와 권력을 가진 여자친구가 있으면 편하구나.
나는 주연이 덕분에 프리패스로 경매장에 입장할 수 있었다.
사실 나도 마음만 먹으면 VVIP 출입증을 만들 수야 있겠지만, 오늘 바로 이용하는 건 어려웠을 거다.
복잡한 절차를 밟는 출입증은 발급 자체에도 시간이 걸리니까.
-한국 홀더 경매장 용산 본점에 오신 홀더 여러분, 만나서 반갑습니다. 경매 시작에 앞서, ‘슈프림 커맨드 옥션: 프리미엄 아머’는 갑옷 종류의 보호구 장비를 주 품목으로 올리는 경매입니다. 혹시 타 품목을 찾는 분들께서는 다른 옥션을 찾아주시길 바랍니다.
유리창으로 가려진 고급 참여석에 앉은 후.
얼마 안 있어 진행자가 장내에 나타나 마이크를 잡았다.
-본 경매는 공개경쟁 입찰 방식으로 진행됩니다. 홀더 여러분께서는 자리에 있는 버저와 마이크를 통해 경매에 참여하실 수 있으며, 구매를 희망하는 품목에 진행되는 가격보다 높은 가격을 호가하셔야만 합니다. 진행자인 제가 세 번의 호가를 할 때까지 최종가격에 변함이 없다면, 해당 품목은 그 최종가격으로 낙찰됩니다.
경매 방식은 대구에서와 마찬가지였다.
애초에 주관하는 곳이 똑같고, 본점과 지점의 차이였으니 당연하겠지.
“재현아.”
“응?”
“금액은 얼마까지 쓸 생각이야?”
문득 내게 묻는 강주연에 잠시 생각에 잠겼다.
사실 그동안 돈은 정말 많이 모았다.
소유권 지분 보유 던전만 무려 5개에, 그간 공략한 던전들의 다양한 성과들, 괴수 사냥에서 나온 각종 부산물과 마력석들, 아카데미로부터 받은 금전적 보상 등….
경제적으로 풍족해질 수단들이 상당히 많았다.
크게 신경 쓰지 않아도, 알아서 자본이 축적되고 있던 것이다.
‘자금을 모은 이유는 따로 있지만….’
물론, 내가 경제 감각이 부족해서 돈을 안 쓴 건 아니다.
나도 나름 받아들인 제안과 생각해둔 계획이 있었고, 그 준비를 위해 잠시 돈을 모아두고 있었을 뿐이다.
해당 계획의 실현엔 자금이 많이 필요하니까.
‘오늘은 돈 좀 써도 되겠지.’
하지만 수업 과제를 하는 김에 장비를 강화하기로 마음을 먹었고, 어느 정도 돈을 써도 무리가 가진 않는 상황.
굳이 아낄 필요는 없었다.
“제한 없어.”
“없…어?”
“응.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거면 사야겠어. 대신 나 경매 안 한지 오래돼서 시세는 잘 모르니까, 주연이 네가 옆에서 잘 케어해줘.”
대구 경매장 땐 원작에서의 정보도 있었고, 워낙 준비를 많이 했었기에 큰 문제가 없었지만… 용산 경매장은 초짜나 다름없다.
이쪽 방면에 경험이 많은 주연이의 도움이 필요했다.
살짝 놀랐던 그녀도 그런 내 말에 미소를 지었다.
그리곤 살포시 손을 맞잡으며, 막 시작되는 경매로 눈을 돌렸다.
-그럼 첫 번째 경매 품목입니다. 최소 주문가격은 1억 원. 1억 원부터 호가 시작하도록 하겠습니다.
진행자의 멘트와 함께 디지털 화면에 <아이템 정보>가 뜬다.
이름은 [블레이크의 찢어진 분노].
가죽 갑옷의 형태를 한 에픽급 아이템이었다.
나는 화면에 뜬 아이템 정보와 이름을 보자마자 깜짝 놀랐다.
“어? 이건….”
“응. 울펜서 공략 보상, 라이칸 가죽으로 만든 갑옷이야.”
옆에서 강주연이 조용히 설명을 덧붙였다.
내가 [루푸스의 반지]와 ‘계약자 제이텐’을 보상으로 받았듯, 공대원들 역시 각자 자신들만의 보상을 다르게 받았다.
그중 탱킹형 전사 계열을 맡았던, 전동석이라는 공대원이 받은 보상.
적 진영이었던 칼라크 부족 라이칸의 가죽.
심지어 최종 보스였던 ‘블레이크’의 부산물이라 더 화제가 됐었다.
아마 공대원들 중 가장 뛰어난 탱킹 실력을 보였고, <울펜서>의 공략 보상 자체가 대원의 활약상 형태에 따라 달라지기 때문에 그런 보상을 받은 것 같았다.
“…이도권 홀더한테 맡긴 작품이래.”
“헐. 진짜?”
“응. 그래서 공동 소유로 경매장에 올렸다나 봐.”
그건 더 놀랍다.
이도권은 국내 최고의 대장장이라고 불리는 특수 계열 홀더.
<안티 빌런> 서클원인 이현호의 아버지이기도 하다.
이도권에게 직접 제작 의뢰를 맡기는 건 천문학적인 비용이 든다고 들었는데, 공동 소유라는 걸 보니 아마 경매 대금을 나눠 갖는 조건으로 무상 제작한 모양이었다.
최고의 대장장이와 최고의 재료가 만나 제작된 작품.
그만큼 그 성능과 효과도 엄청났다.
“살까?”
그래서 고민이 됐다.
첫 번째 품목이긴 하지만…
어쨌든 나한테 잘 맞는 아이템일 것 같아서.
그새 다른 참여자들도 관심이 생기는지, 아이템 가격은 벌써 천정부지로 치솟고 있었다.
“…추천하진 않아.”
“어?”
하지만 의외로 주연이에게서 나온 답은 부정적이었다.
조언을 듣기로 했어도, 처음부터 거절당할 줄은 몰랐기에 난 의아한 듯 물었다.
“따로 이유라도 있어?”
“…첫 번째로 나온 품목이라, 나중에 더 좋은 게 나올 수도 있어.”
일반적으로 경매장에 나오는 품목들은 ‘블라인드 옥션’이 아닌 이상 다 공개되지만, 용산 경매장은 특이하게 절반의 품목만 공개하고 절반은 비공개로 남긴다.
예상치 못한 품목이 나왔을 때 경매 열기를 끌어올리기 위해서다.
이번에 첫 번째로 나온 [블레이크의 찢어진 분노] 또한, 그런 미공개 품목이었다.
“…그리고 제작 장비는 가격에 거품이 껴.”
“아.”
납득 가능한 이유가 추가로 나왔다.
대장장이 홀더들이 만드는 장비는, 시스템 보상으로 나오는 장비에 비해 대체로 가격에 거품이 낀다.
딱 하나밖에 없다는 희소성.
그리고 대장장이의 솜씨에 따라 성능이 달라진다는 것.
그 외에도 수요과잉 등 다양한 이유로 가격이 오르곤 한다.
특히 오늘처럼 첫 번째 품목에, 그것도 그동안 공개되지 않던 특급 장비가 나타나면…
그 가격은 두 배, 세 배로 뛰기도 한다.
장비 수준에 합당한 가격이 아닌, 훨씬 높은 비용을 지불해야 할 수도 있는 것이다.
아무리 내가 탄알이 많다곤 하지만, 굳이 그런 과소비를 나서서 할 필요는 없었다.
“마지막으로… 너한테 필요한 장비가 아닌 것 같아.”
“…어?”
나를 빤히 쳐다보며 말하는 강주연.
마지막으로 든 이유에 대해선 제대로 설명을 듣지 못했지만, 어쨌든 내가 생각해도 억지로 첫 품목을 구매할 필요는 없었다.
그래서 처음엔 적당히 호가에 따라 붙다가, 나중엔 주문을 포기했다.
[블레이크의 찢어진 분노]는 웬 장신의 전사 계열로 보이는 홀더가 고가에 낚아채 갔다.
-두 번째 품목입니다. … …
-다섯 번째 품목입니다! … …
그렇게 다음 품목으로 넘어가며, 순조롭게 진행되는 경매.
이후 품목들은 마땅히 원하는 것이 나오지 않아, 대부분 주문하지 않고 넘겼다.
그렇게 여섯 번째를 넘어…
일고 번째 품목이 찾아온 순간.
나는 아까 강주연의 의미심장했던 눈빛의 의미를 깨달을 수 있었다.
-일곱 번째 품목입니다. 울펜서 이전에 짙푸른 초원이 있었다! 몇 달 전, 임현 홀더의 공격대가 미발견 던전을 성공적으로 공략한 후 나왔던 아이템이죠. 트릴리온의 찬란한 맹세입니다. 최소 주문가격은 역시 1억 원입니다.
요란한 진행자의 설명과 함께 새 아이템이 등장했다.
[트릴리온의 찬란한 맹세].
일전에 A급 홀더 임현이 임시 공격대를 창설해 공략했던 <짙푸른 초원>의 최종 보상 중 하나.
당시 전설급 아이템의 등장으로 크게 화제가 됐었는데, 이제서야 경매장에 올라온 모양이었다.
이 역시 경매 전엔 밝혀지지 않았던 미공개 품목이었다.
<아이템 정보>
◎이름: 트릴리온의 찬란한 맹세
◎종류: 갑옷(가죽)
◎등급: 전설(Legendary)
◎내구도: 정상 (무한)
◎제작자: -
◎특수효과
*조건: 신성 감응도를 높이는 룬 혹은 신성력 발현이 가능한 룬 보유자만 사용할 수 있다.
1) 내구+5, 신성+5, 정신+3
2) 무한한 내구도를 지니고 있다. 아무리 훼손되고 망가지더라도, 신성력을 불어넣는다면 정상적인 원래 상태로 복구할 수 있다.
3) 보유한 신성 수치에 비례해 ‘신성한 가호’ 효과가 상시 적용된다. 흑마법, 저주, 어둠속성 마력 등 각종 ‘악’ 성향을 띄는 공격을 1회 자동으로 방어해낸다. (쿨타임: 24시간)
◎내재스킬
[단죄의 벼락]
: 악을 처단하고자 하는 트릴리온의 맹세가 단죄의 도구로 구현된다. 신성력과 마력을 결합해 거대한 벼락을 대상에게 쏘아낸다. 번개속성 마력룬을 보유했을 경우 20%, ‘악’ 성향의 대상에 쏘아낼 땐 80%의 추가 위력을 낸다.
◎세부정보
: 찬란하게 빛나던 선의의 수호자, 위대한 성기사 ‘트릴리온’의 갑옷이다. ‘악의 처단’을 평생의 신념으로 삼았던 그의 다짐이 갑옷 안에 새겨져 있다. 트릴리온의 찬란했던 맹세로 악을 몰아낸다면, 새로 찾아오는 성스러운 아침을 맞이할 수 있을 것이다.
“아…!”
그리고 아이템 정보를 끝까지 읽었을 때.
나는 한 가지 중요한 사실을 알게 됐다.
‘신성 계열 장비….’
대장장이 홀더들은 만들 수 없는, 오로지 시스템 상의 아이템으로만 존재하는 신성 계열 장비.
수요자도 많지 않고, 조건이 까다로울 때도 있어서…
타 아이템에 비해 인기 품목은 아니지만.
지금의 내겐 꼭 필요한 아이템이었다.
‘…황성연.’
벌써 두 번이나 놓쳤던 나의 적.
내가 반드시 쓰러뜨리고자 하는 목표.
그 대상의 천적이, 곧 신성 계열 장비였기 때문이다.
게다가….
‘아무도 안 사려고 할 텐데.’
잠깐 시선을 돌려 경매장 내부를 본다.
아까까지만 해도 뜨겁던 장내의 열기가…
신기하게도 차갑게 식어가고 있었다.
안 그래도 수요가 없는 신성 계열 장비인데, 심지어 ‘신성 감응도를 높이는 룬 혹은 신성력 발현이 가능한 룬 보유자만 사용할 수 있다’는 미친 사용조건까지 달렸다.
아무리 전설급 아이템이라고 해도, 이렇게 까다로운 아이템을 비싸게 사려는 참여자는 많지 않을 것이었다.
‘심봤다…!’
나는 들뜬 마음을 애써 감추며 버저에 손을 댔다.
그리고 마이크에 대고 말했다.
-1억.
너무나 기분 좋게 시작하는 호가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