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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카데미 사기 룬을 얻었다 (272)화 (272/353)

Chapter 272 - 클랜 창설 (1)

“일정이 예정보다 앞당겨졌다.”

오랜만에 마주친 탁원호 교수는 그런 말을 먼저 꺼냈었다.

예정보다 앞당겨졌다는 일정.

그 안엔 저번 학기에 언급했던 ‘학생 클랜 창설’이라는 계획도 있었지만, 그와 동시에 내가 창설했던 써클 <안티 빌런>의 조기 폐쇄도 포함돼 있었다.

“저번 주 금요일을 끝으로 구 빌런 클랜의 잔당들이 모두 체포됐다. 예상보다 훨씬 빠르게 진행된 결과지.”

<안티 빌런>이 끝을 예고한 이유는 간단했다.

써클의 목적이라고 볼 수 있는 <빌런>의 클랜원들이 모두 소탕됐기 때문.

극심한 복수심을 갖고 활동하던 이현호를 비롯한 몇몇 부원들, 그리고 아카데미 및 각 클랜들의 협력 덕분에 잔당 소탕은 매우 성공적으로 끝날 수 있었다.

“이제 구 빌런의 남은 클랜원은…”

“…황성연.”

흐려진 말끝에 내가 곧장 대답하자, 탁원호 교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남은 건 황성연 한 명. 그리고 그의 소재지가 확실해진 이상, 구 빌런을 쫓는 일은 크게 의미가 없어졌지.”

사실 그동안 구 <빌런> 클랜의 소탕은 황성연을 쫓기 위한 중간 단계나 다름없었다.

윗선이 누군지도 모른 채 심부름을 하던 말단 클랜원보단, <빌런>의 부마스터이자 국내 최악의 범죄자였던 그를 찾아 잡는 게 훨씬 중요했으니까.

하지만 그 계획 동안 남은 잔당들을 모두 잡아버렸고, 심지어 이번 <울펜서> 공략을 통해 황성연의 정확한 소재지 또한 밝혀졌다.

루덴아크 학파.

이제는 홀더 계의 새로운 적으로 떠오른 단체.

그들의 실마리를 잡은 순간부터, 목표 대상은 변경된 것이었다.

“그 계획의 일환으로, 도재현. 네게 제안했던 학생 클랜 창설을 앞당기고자 한다.”

“계획의 일환… 이요?”

“그래.”

탁-.

스승님은 책상 한쪽에 쌓여있던 서류 더미를 가져와 내 앞에 놓았다.

얼핏 보니 홀더 협회나 국내 각 클랜들의 성명서 같은 게 보인다.

강우현, 황건욱, 송도혁….

국내 3대 클랜 마스터들의 이름부터, 국내에서 날고 긴다 하는 유명인사들의 이름이 스치듯이 보였다.

‘뭐야, 이게.’

뭔가 엄청난 일들이 순식간에 착착 진행되는 기분이다.

탁원호 교수는 그 서류를 나중에 봐도 된다는 듯 잠시 치워뒀다.

그리곤 한쪽에 있던 태블릿을 가져와, 내게 몇몇 자료들을 보여줬다.

“이걸 한번 읽어봐라.”

“…스승님, 태블릿도 쓰시네요?”

“무슨 편견이냐, 그건.”

…사실 상남자라서 현대 문물 잘 안 쓸 줄 알았다.

무공도 [파상검법]처럼 극도로 공격에 치중된 검법만 쓰시니까.

나는 그의 핀잔에 헛기침을 하며 곧장 태블릿을 봤다.

가장 먼저 보이는 건 새로 만들어질 클랜의 ‘임시 목표’였다.

“사실 그동안 아카데미 내에서 클랜이 창설되지 않았던 건, 학생 홀더들을 교육해야 할 공적 의무가 있는 아카데미가 사설 클랜들처럼 권력화되는 걸 막기 위해서였다. 일전에 클랜들과 모여 협약을 맺은 적도 있고, 굳이 협약이 아니더라도 이는 암묵적인 룰이었지.”

아카데미 내부의 클랜이 창설되는 건, 일단 외부 클랜들이 허용하지 않는다.

기본적으로 학생 홀더들은 졸업 후에 자신들의 클랜에 들어올 인재들인데, 그들을 아카데미 내부 클랜에서 데려간다고 하면 당장 생길 인적 손실이 만만치 않기 때문.

그렇기 때문에 과거엔 관련 협약도 맺어졌었고, 이후엔 암묵적으로 그에 대한 논의조차 하지 않았었다.

즉, 아무리 <빌런> 소탕의 보상이라곤 해도…

내가 학생 클랜을 창설하는 건 대외적인 여러 문제가 겹쳐있는 것이다.

하지만 탁원호 교수는 그런 문제점을 다른 방향으로 타파해냈다.

“그런 그들의 동의를 얻기 위해 생각해낸 게 공익성 의뢰다.”

태블릿 내에 ‘임시 목표’ 란을 가리키는 스승님.

그에 나는 의아한 얼굴로 되물었다.

“…공익성 의뢰요?”

“그래. 그동안 빌런 클랜이 소탕되지 않았던 이유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국내 각 클랜들이 적극적으로 협조하지 않았던 점도 크다. 어쨌든 클랜의 사익과는 연관이 없는 일이고, 참여한다 해도 크게 돌아오는 이득이 없으니까. 저번 소탕 때도 국내 3대 클랜이 협조를 선언하지 않았다면, 타 클랜들도 여전히 소극적이었을 거다.”

그게 이번 ‘학생 클랜 창설’의 핵심이었다.

다른 클랜들은 계획하지 않는 공익성 목표.

이를 임시 목표로 삼아 각 클랜들의 동의를 받는 것.

예를 들어….

“루덴아크 학파와 황성연. 홀더 계의 새로운 적이 된 이들을 네가 만들 클랜이 쫓는 거지. 물론 이건 엄연히 홀더 협회의 업무이기에, 협회의 의뢰 형식으로 진행된다.”

촤락-.

탁원호 교수가 서류 더미에 섞여 있던 종이 몇 장을 꺼내왔다.

아까 얼핏 봤던 국내 주요 클랜들의 성명서였다.

복잡한 것처럼 보이지만, 내용의 요지는 앞으로 내가 만들어 갈 클랜의 창설을 지지하고 격려한다는 것이었다.

‘…머리 잘 쓰셨네.’

나는 스승님의 수에 감탄했다.

사실 루덴아크 학파와 황성연은 어차피 쫓게 될 녀석들이었다.

처음 정보를 밝히고 경계 강화를 요구한 사람으로서 나름 책임감도 있었고, 애초에 황성연은 나 스스로 세운 하나의 목표 대상이기도 했기 때문이다.

특히 최근엔 박지환 및 홀더 협회와 자주 접촉하며 이들을 소탕할 방법을 계속 구상 중이었다.

그런데 다른 클랜들은 이런 내부 사정에 대해 알 리가 없다.

그래서 내가 클랜을 만들어 루덴아크를 쫓는다면…

폭탄을 알아서 가져갔구나 하고 박수를 치겠지. 

아카데미 내 클랜 창설 동의엔 이런 내막이 있었던 것이다.

더구나….

-아니면, 당신들 클랜이 이런 의뢰를 맡겠습니까?

이런 식으로 나가버리니 클랜들도 마땅히 할 말이 없었다.

검뿐만 아니라, 펜도 잡을 줄 아는 탁원호 교수의 묘수였다.

“중요한 건 독립성이다. 아카데미 내부 지원과 인적 자원들로 구성될 클랜이지만, 아카데미 혹은 협회와도 전혀 독립된 별개의 클랜이라는 게 핵심이다. 임시 목표는 단지 협회의 의뢰를 받아 처리하는 것뿐이야.”

독립성.

아카데미 내에서 내가 만들 클랜은…

그 운영을 도운 아카데미로부터 자유롭다.

아이러니한 일이지만, 타 클랜들이 동의는 이런 전제로부터 나온 것이었다.

나는 그런 이야기를 들으며 한 가지 의문이 생겼다.

“스승님, 그럼 아카데미는 아무런 이득이 없지 않나요?”

내부 클랜을 창설하는 데에 도움을 주고, 인적 자원까지 소모하는데… 그 클랜이 아카데미로부터 독립적이다.

이는 상당히 모순적인 이야기였다.

그리고 그런 의문에.

탁원호 교수는 살며시 미소를 지으며 답했다.

“당연한 이야기다. 이건 아카데미 내의 프로젝트가 아니라, 오롯이 도재현… 네가 일전에 활약했던 공로에 대한 보상이니까.”

“…아.”

나조차 잠시 잊고 있던 <빌런> 클랜 소탕 보상.

그걸 스승님은 계속해서 생각해왔던 것이었다.

“그러니까 마음이 바뀌면 언제든 말해라. 내가 아무리 도와준다고 해도, 개인이 클랜을 창설한다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니.”

“…알겠습니다.”

그의 배려에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하지만 여기까지 와서 그만둘 생각은 없었다.

<안티 빌런>을 만들었을 때부터 나만의 클랜을 만들고 싶다는 생각은 꾸준히 해왔었고, <파문 공격대>를 이끌면서 그 마음은 더 강해졌다.

내게 모여든 사람들과 함께 만들어갈 클랜.

그건 이제 내가 꿈꾸는 목표 중에 하나였다.

촤락-.

촤라락-.

나는 스승님이 건네주신 관련 자료들을 꼼꼼히 살펴봤다.

태블릿 안에 있는 여러 시각자료들과 서면으로 작성된 클랜 창설계획.

어느 하나 중요하지 않은 정보들이 없었다.

이들을 모두 눈에 담고, 필요한 자료들은 내 메일로 직접 넘겼다.

그리고 작게 감탄했다.

‘…빈틈이 거의 없네.’

계획서와 자료들에 눈에 띄는 흠이 별로 없었다.

작년까지만 해도 두루뭉술하게 진행됐던 계획이었는데, 이젠 정말 구체적이고 세밀하게 준비돼 있다는 게 눈으로 보였다.

그동안 탁원호 교수가 이를 얼마나 꼼꼼히 준비해왔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었다. 

“다 확인했나.”

“예, 스승님. 정말 감사합니다.”

꾸벅 고개를 숙이며 인사하자, 그는 내 어깨를 가볍게 두드렸다.

“기한은 딱히 없다. 아마 준비할 것들이 많아서, 시간이 꽤 걸릴 거다. 구체적인 계획을 모두 세우면 내게 와서 보고해라. 네가 원하는 때에 맞춰서 클랜 창설을 도울 테니.”

“예, 알겠습니다.”

* * *

그렇게 시작된 게 지금의 클랜 창설 계획이었다.

연인들의 부모님께 허락을 받은 이후.

얼마 가지 않아 곧바로 이런 대형 이슈라니.

머리가 살짝 아프긴 했지만, 그래도 ‘내 클랜’을 만든다는 생각에 들뜨는 마음이 더 컸다.

“넌 당연히 올 거지?”

신기한 눈빛으로 서류들을 훑고 있는 박진우를 본다.

“어? 당연…”

녀석은 홀린 듯이 끄덕이다가, 이내 휙휙 고개를 저었다.

“아니지. 내가 왜?”

“아, 이러기야? 너 오는 건 내 계획에 픽스라고. 어차피 다른 데 갈 생각도 없었잖아.”

“그야 그렇긴 한데….”

별다른 딜 없이 그냥 수락하는 게 아쉬운 걸까.

박진우는 곰곰이 생각에 잠겨있다가, 뭔가 생각났다는 듯 손가락을 튕겼다.

“특별 코칭. 그거 성공하면 합류할게.”

“…뭐?”

이 자식.

그 순간에 그걸 떠올리다니.

이렇게 된 이상 박진우와 카밀라가 잘 돼야 할 이유가 하나 더 생겨버렸다.

나는 결심한 얼굴로 녀석을 가리켰다.

“오케이. 내가 이번 일 끝나면 너 제대로 코치해준다.”

“콜.”

박진우의 조건부 입단 답변을 들은 후.

나는 작성 중이던 계획서로 다시 시선을 돌렸다.

<클랜원 모집 계획서>.

클랜 창설의 기본이라고도 볼 수 있는 단계.

작년의 써클 창설 때도 가장 골머리를 앓았던 ‘인력 모집’이었다.

“아카데미에 공고 올릴 거야?”

“아카데미?”

“어. 학생들 중에서 뽑아야 되는 거 아니야?”

어쩌면 당연하다고 볼 수 있는 질문.

하지만 내 머릿속엔 전혀 없던 계획에…

난 가볍게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아니. 학생 홀더 중에 뽑을 사람은 이미 정해놨어.”

아카데미 내부에서 만드는 클랜.

가칭 ‘학생 클랜’이라고도 불리는 단체.

그러나 이름이 그렇게 불린다고 해서, 굳이 학생들만 뽑아야 할 이유는 없었다.

‘아직은 아마추어니까.’

학생은 괜히 학생이 아니다.

정말 유능한 몇몇 학생들을 제외하면, 아직 프로라고 부르기 힘든 단계의 홀더들이 훨씬 많은 게 현실이었다.

때문에 새 클랜원으로 생각해둔 학생들은 그렇게 많지 않았다.

‘가장 화끈한 신규 클랜을 만들어야지.’

툭툭.

손가락으로 두드리는 책상 위의 계획서.

그 첫 번째 머릿말엔…

‘무소속 홀더’와 ‘파문 공격대’라는 문구들이 적혀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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