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273 - 클랜 창설 (2)
홀더 계에서 베테랑 궁수 계열은 꽤 희귀한 편이다.
계열 특성상 룬과 능력치들의 성장이 더디기도 하고, 탐색과 추적 등 원거리 지원 외에도 부과되는 주요 업무들이 꽤 많기 때문이기도 했다.
당장 홀더 강국을 불리는 한국에 궁수 계열 S급이 없다는 것만 봐도, 솜씨 좋고 경험 많은 궁수 계열이 얼마나 인기가 많을지 쉽게 예상할 수 있었다.
<홀더 등록증>
-김아름 (여)
-A급 홀더 (궁수 계열)
-특수 이력 … …
그 때문에 김아름은 자신의 위치에 나름 자부심이 있었다.
궁수 계열 무소속 A급 홀더.
이는 결코 흔한 타이틀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동안 국내 3대 클랜을 비롯해 무수히 많은 클랜들의 각종 러브콜이 있었지만, 그녀는 이를 모두 정중히 거절해왔다.
딱히 거창한 이유가 있는 건 아니었다.
그냥 혼자 활동하는 게 편하기도 하고, 굳이 클랜에 소속되지 않아도 충분히 윤택한 생활을 하고 있어서.
그리고 무엇보다 그녀의 마음을 움직일 만큼의 매력적인 제안이 없기 때문이기도 했다.
“클랜을… 만들었다구요?”
하지만 지금.
김아름은 귀를 의심할 만한 충격적인 제안을 듣고 있었다.
그건 13년간 활동해온 자신의 홀더 경력 중.
단 한 번도 들어본 적 없는 이야기였다.
“정확히는 만들 예정인 거죠. 물론, 김아름 홀더님이 들어와주셔야 가능한 시나리오입니다.”
“아니, 잠깐만. 잠깐만요, 공대장.”
<파문 공격대>의 젊은 공대장, 도재현.
국내 홀더 계를 뒤흔들었던 21살의 학생 홀더.
최연소 S급 홀더에 도전하고 있는 최고의 유망주.
수식어가 많아도 너무 많아서 다 나열하기 힘들 정도의 유명인사.
김아름 역시 그와 공격대를 함께하며, 나이는 어리지만 존경할 만한 인물이라고 여겼었다.
배울 점이 많은 사람이었고…
이렇듯 금세 다시 봐서 너무나 반가웠다.
그런데 다시 만난 그가 꺼내는 제안은 이상하기 그지없었다.
“공대장은 아직 학생 아닌가요? 제가 알기론 아카데미 학생은 클랜을 창설할 수 없는 걸로 아는데… 어떻게 클랜을 만들겠다는 거예요?”
신규 클랜 창설.
그리고 그 클랜의 개국공신으로 김아름을 영입하겠다.
그게 도재현이 꺼낸 제안이었다.
하지만 클랜 창설에 드는 천문학적인 금액과 복잡한 운영은 어떻게 처리할 것이며, 최소 80명은 모집해야 하는 클랜원은 어떻게 구할 생각인 걸까.
무엇보다 학생 홀더는 클랜을 못 만든다.
당장 시작부터 조건 제한에 걸릴 텐데, 공대장은 무슨 생각으로 이런 얘기를 꺼낸 건지 이해할 수 없었다.
“허가받았어요.”
“…네?”
“협회와 아카데미간 협정을 통해 저만 예외사항으로 클랜 창설을 허가받았습니다. 국내 주요 클랜들도 동의하는 성명서를 보내와서 전혀 문제없어요.”
“……?”
마치 바보가 된 기분이었다.
분명 공대장은 이유를 설명해줬는데, 정작 그 이유들이 머릿속에서 제대로 조합되질 않았다.
그러니까 그의 이야기를 종합해보면…
-원래는 안 되는데요, 얘는 됩니다.
그런 말이었다.
아니, 그게 말이 돼?
아무리 도재현이라도 이런 것까지 허용이 된다고?
그런 의문들이 맴돌았지만…
도재현은 그녀가 멍하니 있는 걸 가만히 두지 않았다.
“자, 김아름 홀더님? 이제부터 집중하고 들어보시죠. 홀더님께서 저희 클랜에 합류하셨을 때 얻게 되는 혜택들입니다. 아마 이걸 들으면 머릿속이 번쩍하실 겁니다.”
“…….”
태블릿을 꺼내 열심히 설명을 시작하는 도재현.
내심 존경하고 있던 공대장의 적극적인 모습에, 김아름 역시 멍한 상태를 벗어나 조금씩 설명에 집중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생각했다.
‘…왜 이렇게 대우가 좋은 건데?’
그냥 하는 말이 아니었다.
각종 혜택과 대우가 좋다.
좋아도 너무 좋았다.
김아름도 무소속 홀더로서 오랜 경력을 쌓아온 탓에 계약조건엔 나름 깐깐한 편이었지만, 지금 도재현이 건네는 이야기는 확실히 흥미가 돋았다.
지금껏 받았던 어떤 러브콜보다, 훨씬 더 매력적인 제안.
그의 말대로…
정말 머릿속이 번쩍해지는 순간이었다.
* * *
-행보 하나하나가 모두 화제! 도재현, 이번엔 클랜 창설?
-<안티 빌런>의 연장선… 이번에도 범죄 집단 쫓는다.
-아카데미 재단이사 탁원호, “아카데미와는 독립적인 형태의 클랜이 될 것.”
-한국 홀더 협회장, “미지의 단체를 쫓는 특수 상황을 고려했다. 학생 클랜 창설은 오로지 이번만 적용되는 예외사항일 것.”
꽤 오랫동안 지켜졌던 엠바고가 드디어 터졌다.
이미 소문은 소문대로 타고 흐른 상황이었고, 알 만한 사람들은 다 알고 있었기에…
더 이상 지체할 필요가 없기도 했다.
기사가 터지며 사방에서 전화가 오고 클랜 가입 문의가 쏟아졌지만, 나는 조심스럽게 핸드폰 전원을 끄며 그런 연락을 모두 거절했다.
이미 구성 계획은 대략적으로 마친 상황이었다.
“재현이 요즘 너무 바빠.”
침대에 걸터앉아 서류를 살피던 중…
거침없이 허리를 감싸는 손.
그리고 등 뒤에서 느껴지는 부드러운 감촉.
김채은이었다.
그녀는 울상을 지은 채 토끼처럼 날 보고 있었다.
요즘 들어 자주 보는 표정이었다.
“놀아주세요.”
“어떻게 놀아줄까.”
“음….”
허리를 감싼 손을 감싸쥐며 고개를 돌려 묻는다.
그러자 김채은은 잠시 고민에 빠진 얼굴을 하다가…
이내 좋은 생각이 났다는 듯 눈을 크게 떴다.
“야한 거?”
“그건 좀 어렵겠는데. 지금은 너무 바빠서.”
“칫.”
다시 울상이 되는 김채은의 얼굴.
그 귀여운 모습에 입꼬리가 절로 올라갔다.
나는 토라진 척하는 그녀의 이마에 살짝 입을 맞췄다.
“대신 이걸로 봐주면 안 될까?”
다행히 효과적인 해결책인가 보다.
그녀의 입가에 금세 미소가 돌아왔다.
“헤헤. 입에도 해주면 봐줄게.”
“당연히 해야죠.”
고개를 살짝 숙여 가볍게 입을 맞추자, 김채은은 완전히 기분이 풀린 듯 함박웃음을 지었다.
그리고 백허그를 풀지 않은 채, 그대로 내 어깨에 턱을 괴며 서류들을 함께 봤다.
“클랜원 모집 계획은 모두 마친 거야?”
“아직. 해결할 문제들이 좀 남았어.”
아카데미 내부에서 창설되는 클랜.
그 장점은 다 세기 힘들 정도로 많지만…
가장 핵심은 역시 ‘학생 홀더’의 클랜원 선발이다.
아카데미 운영진 측에선 내게 클랜 창설 시 뽑을 수 있는 학생 홀더의 수에 대해 가이드라인을 제시했다.
1학년 5명, 2학년 20명, 3학년 20명.
총 45명의 인원 제한이었다.
아카데미 내에서 창설하는 클랜인데 선발 인원에 왜 제한을 두냐고 반론할 수도 있겠지만, 여기엔 나름 합리적인 이유가 있다.
-아마추어만으로 구성되면 루덴아크 관련 의뢰가 실패로 돌아갈 수 있다.
홀더 협회에서 인원 제한 조건으로 내건 논리였다.
물론 작년 <빌런> 소탕에선 나를 비롯한 학생 홀더들이 대거 활약하긴 했지만, 그런 일부 사례만으로 모든 학생을 일반화시키긴 어렵다는 이야기였다.
‘맞는 말이야.’
이에 대해선 충분히 인정했다.
아무리 언론에서 황금세대니 어쩌니 떠들어대도, 학생 홀더들은 여전히 미숙하고 부적한 점이 많았다.
아마 학생들로만 구성된 클랜을 창설하면 협회의 우려처럼 루덴아크 관련 의뢰는 실패로 돌아갈 확률이 높았다.
나 또한 실패가 예견된 클랜을 만들고 싶지는 않았다.
‘나한텐 그렇게 큰 걸림돌도 아니고.’
사실 인원제한은 내게 있어서 그리 중요하지 않았다.
이미 <파문 공격대>를 통해 프로 홀더들을 직접 이끌어본 경험이 있고, 인턴 활동과 써클 활동, 그 외의 수많은 던전 공략 등을 통해 인맥을 다져놓은 상황.
애초부터 학생 홀더는 그리 많이 뽑을 생각이 없었다.
‘1학년은….’
고작 5명밖에 뽑을 수 없는 1학년.
이들은 아예 계획에서 제외하고 시작했다.
뽑고 싶은 재능이 없는 건 아니었지만, 정보도 거의 없는 1학년들을 충동적으로 뽑는 건 아무래도 리스크가 있었다.
게다가 1학년과는 친분도 거의 없어서 선발 자체가 어려울 수도 있었다.
아무리 내가 유명인이라곤 해도, 클랜 가입과 같은 중대사를 결정하는데 이름만 믿고 따라오진 않을 테니까.
‘3학년, 그리고 경력직들도 다 뽑았고.’
졸업을 준비 중인 3학년의 선발은 쉬웠다.
작년 <안티 빌런>에서 활동하던 2학년 선배들이 모두 올해 3학년이 됐고, 그들 중 재능있는 홀더들이 상당히 많았기 때문이다.
전원이 최소 C급 홀더 이상, 개중엔 B급 홀더들도 있었다.
경력직 홀더의 선발은 더더욱 막강했다.
주로 <파문 공격대>에서 활약하던 무소속 홀더들을 구슬렸고, 그들은 모두 B급 홀더 이상이었기에 엄청난 플러스 전력이 돼줬다.
만약 이대로 클랜원 선발이 마무리된다면, 신규 클랜 중엔 전무후무한 소수 정예 클랜이 탄생할지도 몰랐다.
문제는…
오히려 2학년 클랜원 선발이었다.
“클랜원 수가 부족한 거야?”
잠깐 생각에 잠긴 내게 김채은이 물어왔다.
그에 나는 가볍게 고개를 저었다.
“아니. 계획된 인원은 진작에 기준 수보다 넘었어.”
“그럼 뭐가 아직 해결되지 않은 건데?”
나는 마지막으로 넘긴 서류를 손가락으로 톡톡 두드렸다.
그 보고서엔 아이러니하게도…
강주연과 문가은.
내 연인들의 홀더 이력이 화려하게 적혀있었다.
“어이없는 얘기지만, 타 클랜에서 빼와야 하는 인재들이 있거든. 그것도 클랜 창설에 꼭 필요한.”
나와 가장 많은 파티 사냥을 해왔고, 그동안의 내 조직 운영에 깊게 관여해온 이들.
또래 어떤 홀더들보다 뛰어난 재능을 지녔고, 훗날 기라성 같은 고위 홀더들을 뛰어넘을 게 확실한 유망주들.
무엇보다.
내가 너무나 좋아하고…
함께 있을 때 내게 안정감을 주는 이들.
그녀들은 새로 만들 내 클랜에 꼭 필요한 클랜원들이었다.
‘…장인어른들한테 뭐라고 말하지?’
따님과 연애하게 허락해달라는 것도 쉽지 않았는데, 이젠 아예 따님들을 클랜에서 내놓으라고 설득해야 할 처지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