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274 - 클랜 창설 (3)
작은 등불이 비춰지는 방 안.
사람 두 명이 들어가기도 좁을 정도로 밀집된 이곳엔, 불쾌한 냄새가 코를 찌르고 있었다.
약간의 탄내와 피비린내.
그리고… 썩은내.
방 안에선 지독한 썩은내가 진동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냄새의 근원지는 당연하게도 시체.
이 공간을 빼곡하게 채우고 있는 ‘제물’들이었다.
“관리를 해도 이 모양이군.”
아퀼렌은 방에 들어오자마자 얼굴을 찌푸리며 코를 막았다.
나름 관리를 한답시고 방부 처리를 하긴 했는데, 전문가가 아닌 터라 아무래도 완벽할 순 없었다.
그래도 정해진 수를 모두 채운 건 다행이었다.
시체 쪽의 할당량을 채웠으니, 이제 생체 쪽만 채우면 부학파장이 맡긴 임무는 마무리할 수 있었다.
“아, 여기 계셨군요.”
그렇게 잠깐 방 안을 구경하고 있자, 비열한 인상을 지닌 한 남자가 아퀼렌을 따라 들어왔다.
남자는 이번 임무를 위해 고용한 임시 부하.
데이브나 아퀼렌처럼 ‘이탈자’ 멤버는 아니었고, 아웃홀더라고 불리는 일종의 깡패 홀더였다.
어딜 가나 쓰레기는 있다는 건지, <빌런>이 소탕됐음에도 돈만 주면 범죄를 저지르는 녀석들이 있었다.
덕분에 이번 일은 꽤 수월하게 해결되고 있었다.
“선생님, 맡기신 일이 거의 다 끝났습니다. 헤헤.”
“언제쯤 마무리되지?”
“예에- 이번 무리는 아이템 및 마력석 직거래로 꼬셨는뎁쇼, 아마 며칠 뒤 거래일에서 납치할 수 있을 겁니다. 특히 이번엔 유독 품질이 좋은 녀석들이 많아서, 기대하셔도 좋습니다.”
게다가 뒤를 생각하지 않는 녀석들이었기에 홀더들의 납치는 오히려 쉽게 진행될 수 있었다.
이번엔 유독 품질이 좋다는 남자의 아부에, 아퀼렌은 피식- 하고 웃음을 흘렸다.
탁-
그리고 한쪽에 있던 주머니를 그에게 던졌다.
이번 건의 의뢰 비용으로 책정했던 잔금이었다.
“일을 마치면 연락해라. 내가 직접 확인할 테니.”
드는 것만으로 무게가 느껴지는 묵직한 의뢰비.
이를 확인하자 남자는 함박웃음을 지었다.
그리곤 아퀼렌에게 연신 고개를 숙이며 답했다.
“예, 예에! 당연합죠!”
그렇게 허리가 부러져라 고개를 숙이며 방을 나간 남자.
혼자 남게 된 아퀼렌은 썩은내가 풍기는 방 안에서 담배를 꺼냈다.
담배는 아퀼렌이 지구로 ‘이탈’하고 난 후.
가장 많이 즐기게 된 기호식품이었다.
“곧… 결론이 지어지겠군.”
그리고 허공에 읊조리며 생각했다.
생체와 시체 제물들이 각각 준비가 끝나면…
계획은 이제 실행 단계로 넘어가리라.
자신의 상사인 데이브는 이런 부분에서 실수하는 이가 아니었고, 아퀼렌 역시 오랜 시간을 공들여온 계획에서 차질을 빚을 인물이 아니었다.
루덴아크 학파가 오랫동안 마련해왔던 계획.
학파장 ‘플린클로’의 이탈 준비였다.
* * *
“흠….”
무거운 침응성이 방 안에 흘러넘친다.
나는 그 어느 때보다 긴장한 얼굴로 조용히 숨을 삼켰다.
몇 번이나 경험한 적 있는 대면이지만 오늘처럼 중압감이 느껴지는 날은 없었다.
그만큼 중요한 논의였고, 복잡한 이해관계가 얽혀있었다.
“주연이 넌 나가 있어라.”
“…또?”
옆에 함께 있던 강주연이 얼굴을 찡그렸다.
그녀에게선 꽤 보기 드문 표정이다.
아마 대화가 시작된 후 한 마디도 안 한 채 가만히 자리를 지켰는데, 또다시 저번처럼 방을 나가라는 말에 살며시 짜증이 난 모양이다.
“중요한 이야기다. 사위와 둘이서 해야 해.”
단호한 얼굴로 선을 긋는 강우현.
그 말에서 잠시 딴생각이 든다.
‘…이젠 그냥 사위라고 부르시는 구나.’
일전에 결혼을 염두에 두고 있다고 말하긴 했지만, 호칭 변화가 너무나 자연스러웠다.
어쨌든 강우현은 보기 드문 표정으로 축객령을 내렸다.
하지만 강주연도 이번만큼은 쉽게 물러나지 않았다.
“…나랑 관련된 이야기야. 나도 같이 이야기하고 싶어.”
“어허!”
방 안의 분위기가 순식간에 차갑게 식어간다.
딸의 말이라면 뭐든 들어주던 아빠와…
아빠의 말은 늘 군말없이 따라왔던 딸.
두 사람이 처음으로 대립하는 순간은, 가까이서 숨조차 제대로 쉬기 힘들 정도로 싸늘했다.
정작 대립의 당사자인 나도 쉽게 끼어들 수 없는 상황이었다.
“단지 너만 관련된 게 아니다. 넌 불의 심판의 유일한 후계자이자 선임 클랜원이야. 그런 핵심 인력을 이제 막 창설되는 신규 클랜에 이적시킨다는 게 어떤 의미인지… 정말 모르는 거냐?”
“…….”
강우현의 말엔 조금도 틀린 말이 없었다.
아마 이건 둘만 남게 됐을 때 내가 들었을 말일 거다.
시도 자체만으로 불화의 씨앗이 되는 행위.
클랜 간 상도덕이 없다고 여겨지는 행위.
사실상 하이재킹이라고 봐도 무방한 행위….
강우현의 화가 머리 끝까지 나 있다고 봐도 이상할 게 없었다.
“…그래도 난 재현이 클랜에 가고 싶어.”
“강주연!”
기어코 강우현의 목소리가 방안을 크게 때렸다.
강주연도 아빠의 고함은 예상치 못했는지 꽤나 놀란 얼굴이었다.
‘…안 되겠다.’
나는 조심스럽게 개입해야 할 때임을 직감했다.
여기서 끼어들면 그의 화를 더 돋울 수도 있지만, 순전히 내 욕심과 행동으로 부녀 사이가 악화되는 것을 난 원치 않았다.
“장인어른, 조금만 진정하시죠.”
“자네는 빠지게.”
그에게서 처음 듣는 날카로운 말.
살짝 마음이 아프긴 했지만 괜찮았다.
난 당황하지 않고 천천히 말을 이었다.
“장인어른도 주연이도 모두 타협할 수 있는 방안이 있습니다.”
“…….”
그 말에 강우현의 감정이 살짝 진정되는 게 느껴졌다.
조용히 숨을 몰아쉬던 그는 내게 시선을 맞췄다.
“…뭔가, 그게.”
“제가 만들 클랜과 우호 클랜을 맺는 겁니다.”
…우호 클랜?
뜬금없이 튀어나온 그 단어에 강우현이 되묻고, 강주연도 의아한 얼굴이 됐다.
이건 그녀에게도 말해주지 않았던 방안이었기에 당연했다.
나는 자리를 잠시 벗어나, 방 안에 있는 화이트보드 쪽으로 걸어갔다.
그리고 보드마카로 큼지막한 그림들을 그려갔다.
“일전에 저희 써클 안티 빌런과 맺었던 관계, 그리고 현재 남자의조건 클랜과 맺고 계신 관계를 생각하시면 편합니다.”
<불의 심판>은 작년 <안티 빌런>과 긴밀한 협력관계를 유지했었고, 그 관계의 일환으로 ‘사냥 5팀’을 통째로 파견하며 작전을 성공으로 이끌었었다.
<남자의 조건> 클랜과 맺고 있는 우호 관계 역시 마찬가지.
당장 지금도 일본에 파견을 가 있는 <불의 심판> 클랜원들이 꽤나 많았다.
가장 높은 우호 관계를 맺은 상태에서 클랜원이 잠깐 이적하는 건, 일종의 ‘파견 근무’가 되기 때문에 문제가 없는 것이다.
“저는 당장 주연이를 필요로 하고, 주연이 역시 제가 만들 클랜에 함께 하기를 원합니다. 하지만 이건 어디까지나 초기의 클랜 결성을 함께하고 싶다는 거지, 영원히 불의 심판을 떠나겠다는 게 아닙니다. 주연아 그렇지?”
말을 끝마치며 돌리는 시선.
그에 강주연도 조심스럽게 고개를 끄덕인다.
그녀 역시 나와 함께하고 싶은 마음이 컸을 뿐, 무턱대고 <불의 심판> 후계자 자리를 포기할 생각까진 없었을 거다.
나는 다시 강우현과 눈을 마주치며 말했다.
“그러니 저희 클랜과 우호 관계를 맺고, 파견 형식으로 주연이를 보내주시죠. 그럼 서로의 고민이 해결되고, 외부에서도 이를 합병으로 바라보진 않게 될 겁니다.”
강우현이 걱정하는 건 클랜의 후계자가 사라지는 것.
그로 인해 자연스럽게 <불의 심판>이 흡수-합병되는 것.
그건 당연히 <불의 심판> 내 클랜원들이 바라지 않는 일이고, 나나 주연이도 전혀 생각지 않는 부분일 거다.
주연이는 그저 내가 클랜을 창설하는 그 순간에 함께하고 싶은 것뿐이었다.
“기한은 2년. 주연이가 졸업할 때까지만 함께하겠습니다.”
“…2년이라.”
구체적인 기한까지 나오자 강우현은 턱을 쓰다듬었다.
상당히 합리적이고 바람직한 방향의 제안.
간단히 생각해봐도 거절할 이유가 없었다.
특히 딸을 끔찍이도 아끼는 그에게 있어, 오랜 시간 딸과 싸운다는 건 상당히 견디기 힘든 일이다.
아마 강우현 또한 본의 아니게 서로 날을 세우게 된 지금 상황이 매우 불편했을 것이다.
그런 면에서…
부녀가 모두 만족할 수 있는 이 방안은 너무 매력적이었다.
“좋네. 우호 클랜, 받아들이지.”
마침내 강우현이 긍정적인 사인을 보냈다.
그와 동시에 나와 강주연의 표정도 밝아졌다.
우호 협정을 위해 복잡한 절차가 남아있긴 했지만, 가장 큰 산을 넘은 기분이었다.
* * *
“우호 클랜이라….”
<로열>에서도 마찬가지의 이야기가 이뤄졌다.
여기선 문정혁뿐만 아니라, 다른 남자가 한 명 더 있었다.
황건욱.
<로열>의 클랜마스터이자, 전사 계열 S급 홀더.
또한 문정혁의 매형으로, 문가은에겐 고모부인 중년이었다.
그는 상당히 점잖고 이성적인 사람으로, 감정에 휘둘리지 않고 내 제안을 고민했다.
“나쁘지 않군요.”
다행히 결과는 긍정적이었다.
사실 내가 생각해도 효과적인 방안이긴 하다.
아무리 선임 클랜원이니 클랜의 후계자니 해도, 어쨌든 강주연과 문가은은 아직은 아카데미를 졸업하지 않은 학생 홀더다.
때문에 재능이 얼마나 뛰어나든, 실력이 어느 정도로 출중하든… 무조건 방학이 아닌 기간은 2년간 아카데미에 있어야 한단 뜻이다.
그런 상황에서 아카데미의 전적인 지원을 받으면서, 자유로운 활동이 보장된 신규 특수 클랜에 임시로 들어간다?
명성과 실리를 모두 챙길 수 있는 파견이었다.
“그런데 도재현 홀더. 한 가지 궁금한 게 있습니다.”
“말씀하시죠.”
“이 제안, 혹시 불의 심판에도 갔었습니까?”
황건욱의 날카로운 촉이 발동했다.
내가 문가은은 물론 강주연과도 연인이라는 건 모두가 암암리에 아는 사실.
당연히 강주연을 위해, <불의 심판>에도 먼저 갔을 거라는 합당한 추론이었다.
그에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그렇습니다. 불의 심판과는 우호 클랜 협정까지 마친 상황입니다.”
“그렇군요.”
황건욱은 마치 가장 중요한 이야기를 들었다는 듯.
확신에 찬 얼굴로 웃으며 내게 손을 내밀었다.
“좋습니다. 로열도 함께하도록 하죠. 협정도 반드시 오늘 맺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렇게 말하는 황건욱의 눈동자에선…
뭔가 알 수 없는 승부욕이 일렁이고 있었다.
나는 당혹스러운 눈길로 옆의 문가은을 바라봤지만, 그녀 또한 영문을 모르겠다는 얼굴이었다.
그리고….
-안녕하십니까, 도재현 홀더님. 저는 용광검로 클랜 비서팀장 안호진이라고 합니다. 다름이 아니라, 저희 클랜 마스터께서 도재현 홀더님을 뵙고 싶어 하셔서 이렇게 무례를 무릅쓰고 연락을 드립니다. 홀더님께서 새로 창설하시는 클랜과 우호 협정을 맺는 것에 관한 논의입니다.
낯선 번호로 걸려온 문자.
<용광검로> 클랜 마스터, 송도혁의 비서가 건 문자였다.
그리고 접견 주제는 역시 예상했던 대로 우호 클랜 협정에 관한 것.
<로열>과의 협정이 끝나자마자.
마치 경쟁하듯 달라붙은 <용광검로>였다.
‘아니, 이게 경쟁할 거리냐고.’
나는 황당한 얼굴로 핸드폰을 바라봤다.
내 딴엔 강주연과 문가은을 초창기 멤버로 섭외하기 위해 나름 머리 써서 발품을 판 건데, 어째선지 타 클랜들이 우리 클랜과 적극적으로 접촉 중이었다.
‘아직 창설 시작도 안 했는데….’
뭔가 생각지도 않았던 부담감이 어깨를 누르기 시작한다.
이거 혹시라도.
만에 하나라도 클랜 창설이 엎어지면 큰일 난다.
이젠 정말 물러설 수 없는 단계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