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275 - 클랜 창설 (4)
“나도 입단하고 싶어!”
박윤서가 억울하다는 듯 말을 꺼냈다.
수업이 끝나고 서둘러 달려온 카페 안.
그녀의 옆에는 절친인 송현아와 최아린이 앉아있었다.
그리고 그녀들의 공통된 관심사는 오직 하나.
“선배님의 신규 클랜! 나도 들어가고 싶어어.”
도재현이 창설한다는 신규 클랜.
이는 요즘 아카데미는 물론, 한국에서 가장 핫한 이슈였다.
단순히 학생이 클랜을 만든다는 것 때문이 아니다.
-학생 홀더도 클랜원이 될 수 있다!
협회와 아카데미의 협약을 통해, 이번에 한해 학생 홀더를 클랜원으로 받을 수 있다는 조건.
이 특수한 조건이 아카데미 내 모든 학생들의 심장을 뜨겁게 만들고 있었다.
3년의 공부기간을 단축하고 곧바로 클랜 생활을 시작할 수 있는데다가, 그 클랜의 마스터가 홀더 계의 역사를 새로 쓰고 있는 도재현이다.
그의 활약상과 위상을 눈앞에서 직접 봐온 학생들은, 너나 할 것 없이 신규 클랜에 들어가길 희망했다.
하물며 팬클럽까지 가입한 박윤서는 말할 필요도 없다.
그녀는 요즘 친구들과 만날 때마다, 어김없이 도재현 클랜에 들어가고 싶다는 얘기를 입에 달고 살았다.
“꿈 깨. 1학년은 못 들어가.”
그러나 그때마다 찬물을 끼얹는 최아린.
냉정한 한 마디에 박윤서의 표정이 일그러진다.
“아, 왜! 나도 어디 가서 뒤처지는 재능은 아니란 말이야.”
박윤서는 이번 신입생 중 암살자 계열 수석을 차지한 학생이다.
에픽룬인 [서늘한 암습]을 비롯해 화려한 보조룬들의 세팅.
신입생치고 뛰어난 숙련도와 매우 높은 능력치들.
아마 이대로 가면 암살자 계열에서 꽤 이름을 날리게 될 유망주임은 분명했다.
하지만 최아린은 여전히 부정적인 얼굴로 고개를 저었다.
“클랜은 재능을 뽑는 단체가 아니야. 프로페셔널한 실력자를 뽑는 단체지.”
“아린이 말이 맞아. 나도 너무 들어가고 싶은데, 당장 우리가 증명한 게 없어. 선배님께서 우리에 대해뭘 아시고 뽑겠어. 알려진 게 없는데.”
그녀와 앙숙처럼 지내는 송현아도 이번엔 동조의 반응을 보였다.
그녀는 홀더로 각성하기 전부터 도재현을 동경해왔고, 팬클럽이 만들어질 때도 그 시작을 함께했던 열렬한 팬이다.
아마 이 중에 도재현의 클랜에 가장 들어가고 싶은 이들을 꼽으라면 누가 뭐래도 송현아일 거다.
하지만.
“애초에 공고도 안 내셨잖아.”
들어가고 싶어도 방법이 없다.
공고를 안 냈으니까.
도재현은 클랜원 모집 공고를 내지 않고, 오로지 자신의 지인과 인맥을 동원해 개인 면접으로 클랜원을 뽑았다.
당연히 그와 연이 없는 1학년 신입생들은…
5명이라는 제한 인원에조차 들어가지 못했다.
그 때문에 도재현을 향해서 아쉬움 섞인 원성이 쏟아졌지만, 전문가들은 이러한 그의 모집 방침을 효과적이라고 평가했다.
아직 체계가 잡히지 않은 신규 클랜의 경우, 정식 클랜원 공개채용은 오히려 독이 될 수 있다는 것이었다.
“쳇. 초코라떼나 마실래.”
아쉬움에 혀를 찬 박윤서가 빨대를 입에 가져왔다.
그렇게 세 사람은 주제를 돌렸다.
“ … 이번에 임현 홀더도 신규 클랜에 들어간다던데 들었어?”
“정선영 홀더도 들어간다더라.”
“와, 그럼 사실상 무소속 어벤저스 … ”
…돌린 주제도 결국 도재현 클랜에 관한 이야기였지만 말이다.
예전엔 항상 질린다는 듯 고개를 젓던 최아린도, 요즘은 이런 이야기에 활발히 동참하고 있었다.
언제부턴가 묘한 덕질에 스며들기 시작한 그녀였다.
* * *
아득하게만 느껴졌던 클랜원 모집이 드디어 끝났다.
아직 부서 설정과 세부 운영 계획이 실행되진 않았지만, 가장 중요한 건 역시 인적 자원인 클랜원 모집이었다.
소형 클랜 기준 최소 클랜원은 80명.
당연히 재무팀 등 비홀더 직원들을 제외한 인원이다.
우리 클랜엔 총 82명의 클랜원이 모였다.
3학년 학생 홀더는 17명.
주로 <안티 빌런> 소속이었던 선배들을 선발했고, 그 외에도 대외적으로 실력이 검증된 재능들만을 뽑았다.
“……?”
그리고 이걸 3학년이라고 봐야할진 모르겠는데.
작년까지만 해도 3학년이었던…
웬 졸업생 한 명 또한 내게 찾아왔다.
“오랜만이에요, 회장. 저도 새로 만들어질 클랜에 들어가고 싶어요.”
전 <염무>의 회장이자 전 <안티 빌런>의 부회장.
강주연을 자극했던 불속성 최고의 재능.
마법사 계열 수석 졸업생, 윤지아였다.
뜬금없는 그녀의 등장에 나는 멍한 얼굴로 물었다.
“선배님이 왜 여기에 계세요?”
“말했잖아요. 회장이 만드는 새 클랜에 들어가고 싶다니까요.”
“…아니, 불의 심판은 어쩌시구요?”
윤지아는 작년 졸업생 중 최고로 꼽히는 재능.
때문에 그녀가 희망하던 <불의 심판> 클랜에도 상당히 가볍게 들어갔었다.
주연이에게 듣기론 사냥팀에 들어가 잘 적응하고 있다고 들었는데, 갑자기 이렇게 뛰쳐나와 날 찾아올 줄은 생각도 못했다.
윤지아가 살짝 미소를 지으며 날 봤다.
“불의 심판은 분명 좋은 클랜이에요. 대형 클랜답게 클랜원에 대한 복지도 뛰어나고, 클랜원으로서 성과를 낼 수 있는 기회도 많죠. 하지만… 온 맘을 다해 이 클랜에서 쭉 활동하고 싶단 생각까진 안 들었어요. 당연하겠죠. 그렇게 낭만적으로 활동하는 홀더가 얼마나 있겠어요.”
그녀는 자신의 가슴에 손을 올리며 말했다.
“근데요. 회장이 클랜을 만들게 됐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심장이 뛰더라구요. 겉잡을 수 없을 정도로 쿵, 쿵 하고 말이에요. 아무래도 저. 회장, 부원들과 함께 싸웠던 써클 활동이 그리웠었나 봐요.”
“…….”
윤지아가 다시 웃는 얼굴로 내게 손을 내밀었다.
그건 분명 작년까지만 해도 자주 봤던.
존경하는 선배의 기품 있는 모습이었다.
“나 받아줄 거죠, 회장?”
이렇게 말하는 그녀를 어떻게 거절할 수 있을까.
나는 얕은 쓴웃음을 지으며 그 손을 붙잡았다.
“이젠 회장이 아니라, 클랜 마스터입니다.”
그렇게 졸업생 윤지아를 포함된 멤버.
3학년 학생 홀더는 총 17명을 선발했다.
<클랜원 선발 현황 - 2학년 학생 홀더>
그리고 이어진 2학년 선발.
여긴 3학년과 달리 아예 20명을 꽉꽉 채웠다.
2학년엔 확실히 재능 있고 뛰어난 실력의 소유자들이 많았다.
언론에서 ‘황금세대’라고 칭하며 높이 치켜세우긴 하지만, 그런 평가에 마냥 거품만 낀 건 아니었다.
우선 나와 함께 신입생 때부터 파티 사냥, 던전 공략, 그 외 자질구레한 일들을 모두 함께 처리해온 4명의 친구들.
김채은, 강주연, 문가은, 박진우.
이젠 내 친구들이라는 호칭보다, 국내 탑급 기대주라는 타이틀이 더 어울리는 유망주들.
든든한 내 동료들은 당연히 프리패스였다.
그리고 2학년의 또 다른 황금 재능.
“허락해준다면 나도 들어가겠다, 회장.”
특수 계열의 대장장이 홀더.
이현호도 입단 의사를 드러냈다.
“황성연은 내가 반드시 잡아야 할 숙적. 회장의 클랜이 그자를 쫓는다면, 나도 그 클랜에 들어가겠다.”
원수가 살아있는 한, 이현호의 복수는 끝나지 않았다.
녀석은 어떻게 내가 만들 클랜이 황성연과 루덴아크를 쫓을 거라는 걸 알게 됐는지, 곧장 자신도 클랜에 입단하고 싶다며 찾아왔다.
“나, 나도 들어가고 싶어! 써클 땐 아쉽게 못 들어갔었지만….”
신입생 때부터 연이 깊었던 최유민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들은 비록 전투 자원은 아니지만, 비전투 자원에서 최상의 결과물을 낼 수 있는 인재들.
클랜원으로 받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공대장. 아니, 이제 마스터라고 불러야 하나?”
그리고 영입대상 1순위 중 한 명이었던 2학년.
탱킹형 전사 계열의 기대주, 카밀라 플로레스.
의외로 그녀의 영입 절차는 어렵지 않았다.
“캘리포니아 아카데미에서 쉽게 허락해줬다.”
어차피 카밀라는 캘리포니아 아카데미 소속의 교환 학생.
미국의 아카데미는 교환 학생들이 타국에서 하는 활동에 대해 크게 터치하지 않았다.
그게 써클 활동이든, 클랜 활동이든 말이다.
다만 졸업하기 전까진 미국으로 돌아가야 할 때가 종종 있기에, 그런 점은 융통성 있게 넘어가기로 했다.
‘다른 동기들도 확답을 줬고….’
그 외에도 과거 전사 계열 수석이었던 이태준이나, 창술사로 조금씩 두각을 드러내던 서진아 등.
황금세대라는 칭호에 걸맞은 동기들이 대거 입단을 희망했다.
아카데미 내에서도 손꼽히는 재능들로, 2학년 인원제한을 모두 채운 것이다.
‘그리고 무소속 홀더들.’
가장 중요하다고 볼 수 있는 영입 현황.
현재 무소속 상태인 프로 홀더 선배들.
총 45명을 선발한 이 인원 속엔…
정말 기라성 같은 실력자들이 포진돼 있었다.
“제자 가는 곳에 스승님이 안 갈 수 있겠니? 게다가 내가 또 재현이 풋내기 시절에 함께했던 동료기도 하고 말이야.”
제자 김채은을 보조한다는 명목으로 왔지만, 사실상 가까이서 우리의 연애를 지켜보려는 의도가 엿보이는 홀더.
얼음속성 마법사 계열의 정점, 정선영이 그 시작이었다.
“우리 공대장처럼 유능한 사람이랑 두 번 정도는 일해봐야지. 재현아, 난 무조건 합격이지?”
<울펜서> 공략을 통해 나와 상당히 친해진 홀더.
무소속 홀더 중 ‘전사 계열’에선 1위라 불리는 임현.
그 역시 생각보다 가볍게 입단을 확정지었다.
“재현 님께 받은 은혜를 갚은 기회가 왔군요. 받아주신다면, 저도 함께하고 싶습니다.”
거기에 일본에서 연을 맺고, 공격대까지 따라와준…
궁수 계열 및 무녀의 힘을 지닌 아키바.
“뽑아주시기만 하면 분골쇄신, 견마지로를 다해 활동하겠습니다! 형님 가는 곳엔 저도 무조건 따라갑니다…!!”
…얘를 ‘기라성 같은 고위 홀더’ 라인에 넣긴 좀 그런데.
어쨌든 충성심 하나는 기가 막힌 도승민까지.
나와 친분이 있던 무소속 홀더들은, 특별한 문제가 없는 한 대부분 입단을 확정했다.
타 클랜에 비해 훨씬 좋은 입단 조건과 대우.
확실한 역할 분담과 꽤 체계적인 운영 계획.
또한, 미래가 유망한 신규 클랜의 개국공신이 된다는 것.
각기 다양한 이유들이, 그들의 입단을 결정시켰다.
그리고….
[유은설 스승님] 지금 막 귀국했어요. 내가 아카데미로 갈 테니까, 직접 만나서 얘기해요.
가능성을 그리 높게는 보지 않았던…
마지막 퍼즐이 기다리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