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아카데미 사기 룬을 얻었다 (277)화 (277/353)

Chapter 277 - 실마리 (1)

“헤헤. 축하해, 재현아.”

그렇게 커다란 클랜 타워를 눈에 담고 있을 때쯤.

누군가 뒤에서 와락- 하며 안는 게 느껴졌다.

이제는 <이블 헌터>의 클랜원이 된 김채은이다.

나는 웃으며 그녀의 손을 맞잡았다.

“언제 왔어?”

“방금. 우리 클랜의 무려 첫 번째 회의가 있다고 해서 바로 달려왔지이.”

오늘 클랜이 창설되고 첫 공식 회의가 있는 날.

83명의 클랜원이 전원 참석해, 앞으로 클랜의 방향을 함께 논의하기로 했었다.

클랜원 중 절반이 학생 홀더였기에 회의 시각은 저녁으로 잡혔다.

‘그리고 그건 앞으로도 그러겠지.’

클랜원이 된 이상 클랜 활동에 가장 중점을 둬야 하겠지만, 불가피하게 활동 영역이 겹치게 되는 건 어쩔 수 없다.

나를 포함한 학생 홀더들이 아카데미를 졸업하기 전까진, 이런 시간 배분을 잘 조율해야만 했다.

특히 이건 클랜원들을 영입하기에 앞서 미리 양해를 구한 부분이기도 했다.

“먼저 들어가자! 다른 애들도 금방 온대.”

클랜 타워를 구경하려 일찍 왔기에, 아직 오지 않은 클랜원들이 더 많았다.

“빨리, 빨리-.”

그렇게 내 손목을 붙잡아 이끄는 김채은.

나는 웃음을 지으며, 그녀를 따라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와아… 엄청 커.”

<이블 헌터>의 클랜 타워, 일명 EH타워는 내부에서부터 그 웅장함과 화려함이 피부로 느껴졌다.

신축 건물이라는 걸 단번에 알 수 있는 고급 인테리어와 깔끔한 안내 데스크, 출입증 시스템이 갖춰진 입구까지.

마치 작년 인턴 때 처음 봤던 <불의 심판> 클랜 타워를 보는 기분이었다.

“클랜 마스터를 뵙습니다.”

“마스터를 뵙습니다!”

안내 데스크와 입구를 지나칠 땐 가드 및 직원들이 인사를 해왔다.

솔직히 아직은 마스터라는 직함이 어색해서 괜히 낯간지러웠지만, 직원들은 교육이 철저하게 됐는지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인사를 건넸다.

입구를 지나자 김채은이 은근한 얼굴로 옆구리를 찔렀다.

“완전 멋있어.”

“놀리지 마.”

“헤헤, 진심이야. 자고 일어나니 클랜 마스터가 내 남친? 무슨 소설 제목 같고 재밌어.”

“윽….”

나는 민망함을 감추며 얼른 엘리베이터 쪽으로 몸을 향했다.

“그래도 직원들 엄청 잘 뽑았네. 시간도 별로 없었는데.”

총총 뒤따라와 말을 건네는 김채은.

나 역시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우호 클랜들 도움이 컸지.”

사실 클랜 내부 사정을 이렇듯 빠르게 정리할 수 있었던 데엔, 우호 협정을 맺은 클랜들의 도움이 컸다.

국내 3대 클랜.

워낙 오랫동안 정상의 자리를 지켜왔던 그들이기에, 클랜 창설에 대한 데이터도 많고 관련 인프라도 상당히 잘 구축돼 있었다.

그들은 우호 클랜이라는 명목 하에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용광검로>는 클랜 타워 건물과 부지를 저렴하게 판매했고, <로열>은 능력 있는 직원의 선발을, <불의 심판>은 운영에 필요한 각종 물품이나 아이템 등을 지원했다.

그들 입장에선 말 그대로 우호 클랜으로서 관계 유지를 위해 지원한 거겠지만, 아직 창설 초창기라 준비된 게 많이 없던 <이블 헌터>엔 정말 천금 같은 지원이었다.

‘…뭔가 이미지에도 도움이 됐고.’

자칫 지원이 과해지면 사실 우리가 3대 클랜의 산하 클랜으로 비춰질 수도 있다.

저들은 워낙 대형 클랜이고, <이블 헌터>는 이제서야 막 만들어진 신규 클랜이니까.

하지만 3대 클랜 모두에게 골고루 도움받았다는 점이 인식의 변화를 줬다.

지원 양상이 특정 클랜에 치우치지 않았기에, 오히려 국내 3대 클랜의 비호를 받는다는 이미지가 형성된 것이다.

덕분에 <이블 헌터>의 인기는 창설 시작부터 하늘을 찌를 듯 치솟고 있었다.

“마스터를 뵙습니다.”

그렇게 엘리베이터를 타고 최고층인 31층에 도착했을 때.

깔끔한 오피스 룩을 입은 비서가 우릴 맞이했다.

스마트한 이미지와 지적 아름다움을 동시에 갖춘 미녀. 

…그렇다.

미녀였다.

“뭐야?”

옆에 있던 김채은이 실눈으로 날 본다.

나는 전혀 찔릴 게 없음에도 괜히 당황했다.

“뭐, 뭐가.”

“비서 언니가 왜 이렇게 예뻐.”

“아니, 오해야. 애초에 면접자가 여자밖에 없었다고. 로열에서 추려준 지원자들이었어.”

이건 진짜 억울하다.

<이블 헌터>의 클랜원들은 처음부터 내 손으로 직접 뽑았지만, 일반인 직원들은 그렇지 않다.

이 분야에서 전문성을 갖춘 <로열>에 자문을 구하고 추천을 받았었다.

물론 최종면접은 내가 보긴 했지만, 애초에 지원자가 전부 여자였다고….

하지만 김채은은 이미 의심의 끈을 놓을 생각이 없어 보였다.

“안 그래도 요즘 들어 경쟁자가 많아지는 기분인데….”

“어? 뭐라고?”

거의 들리지 않는 김채은의 목소리에 곧장 되물었지만, 그녀는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아무것도 아니야. 이따 애들 오면 다시 얘기해.”

“아니….”

여기에 강주연과 문가은까지 합류한다고?

순간 머리가 어지러워지는 걸 느꼈다.

…이게 연인을 여럿 둔 사람의 숙명인 건가.

“저… 마스터?”

그렇게 김채은과 농담반 진담반 투닥거림을 하고 있을 때.

한쪽에서 정자세로 서 있던 비서가 내게 말을 걸어왔다.

문득 고개를 돌리니, 그녀의 손엔 웬 종이 한 장이 들려있었다.

‘…뭐지?’

클랜 일정에 관해선 이미 보고를 받았었는데, 그와는 또 별개의 내용인 모양이다.

그녀는 천천히 내 쪽으로 다가와 종이를 보여줬다.

“한국 홀더 협회에서 의뢰신청서 형태로 보낸 정식 공문입니다. 방금 도착해서 연락을 드리려다가, 마침 마스터 룸에 올라오셔서….”

“의뢰신청서?”

“네. 최근 종로에서 연쇄적으로 발생한 홀더 납치 사건에 관한 조사 의뢰입니다.”

나는 비서가 건넨 공문을 받아 확인했다.

그녀의 말대로 정말 협회장의 직인이 찍힌 의뢰신청서였다.

물론 우리 클랜이 누군가의 의뢰를 받고 해결하는 ‘용병 클랜’은 아니지만, 홀더 협회와는 <이블 헌터>의 창설 때부터 조건으로 약속한 내용이 있었다.

“…협회에선 아무래도 이번 사건이, 루덴아크 학파와 연관이 있다고 판단한 모양입니다.”

그건 바로 루덴아크 학파.

악을 모조하는 그들의 실마리를 잡고, 기회가 된다면 척살하는 것.

현재 우리 클랜의 1차적 목표이기도 한 내용이었다.

* * *

[Web 발신]  <이블 헌터> 비서실입니다. 현재 클랜 내에 급하게 처리할 일이 생겨, 예정돼 있던 회의시각을 1시간 일찍 앞당기고자 합니다. 변경된 회의 시각에 참석할 수 없으신 클랜원께서는 클랜 비서실로 연락바랍니다. 감사합니다.

“뭔 일이지?”

문자를 확인한 박진우는 수업이 끝나는 대로 곧장 클랜 타워로 왔다.

그로서는 처음 보는 클랜 타워지만…

그 화려함에 놀라고 있을 틈도 없었다.

그대로 입구로 들어와, 엘리베이터를 타고 회의실로 이동했다.

목적지는 28층 회의실.

현재 83명인 클랜원들이 모두 모일 수 있는 대회의실이었다.

도착하니 다른 클랜원들은 딱히 일정이 없었는지 대부분 착석해 있었다.

박진우는 그대로 뒤쪽의 빈자리를 찾아 앉았다. 

“박진우 홀더님까지 오셨군요. 모든 클랜원들이 모였으니 그럼 회의를 시작하도록 하겠습니다.”

회의실 정중앙에 있던 한 남자가 마이크를 들었다.

이름은 기억나지 않지만, 익숙한 얼굴.

<파문 공격대>를 함께 했던 대원이었다.

친구 녀석인 도재현이 설명을 할 줄 알았는데, 그는 중앙에서 살짝 떨어진 구석에 자리를 잡고 있었다.

그리고 그 옆엔 영입부터 화제가 됐던 S급 홀더 유은설이 앉아있었다.

“반갑습니다, 클랜원 여러분. 저는 현재 이블 헌터 클랜에서 임시 기획팀장을 맡게 된 특수 계열 홀더 한상진이라고 합니다.”

한상진은 특수 계열.

그중에서도 조련 계열을 맡은 홀더다.

<울펜서> 공략 도중 문가은도 조련 쪽에 눈을 뜨고, 공대장 도재현 역시 뛰어난 계약자를 소유하고 있었기에…

이들을 모두 통틀어 조련 계열 3인방으로 부르기도 했었다.

한상진은 공격대 내에서도 날카로운 분석력과 빠른 판단력으로 좋은 의견을 내던 대원이었는데, 아마 도재현 역시 그런 점을 높게 사 클랜의 임시 기획팀장 자리를 맡긴 모양이었다.

“사실 오늘 계획되었던 회의는 앞으로의 운영 계획과 부서 및 직위 편제 등을 정리하고, 추가로 클랜 창설을 자축할 예정이었습니다만….”

한상진이 포인터를 들어 PPT를 넘겼다.

<종로구 홀더 연쇄납치 사건 관련 자료>

보기만 해도 눈쌀이 찌푸려지는 제목이 나타났다.

홀더 연쇄납치 사건.

최근 들어 몇몇 홀더들의 실종사건이 잦아지며, 혹시 납치당한 게 아니냐는 흉흉한 소문이 돌았었는데…

마치 그게 사실이라고 단정짓는 듯한 자료였다.

“납치사건으로 분류되고 있는 종로구 실종사건에, 현 서울 아카데미에 재학 중인 학생 홀더가 포함돼 있다는 게 확인됐습니다. 그리고 그 사건에 루덴아크 학파가 연루됐을 가능성이 포착되면서… 이 사건은 우리 클랜의 최우선 단기 목표가 됐습니다.”

한상진의 그 충격적인 발언에 회의실이 바로 술렁였다.

“뭐, 뭐라고?”

“학생 홀더?”

“갑자기 루덴아크라니….”

학생 홀더가 납치됐다.

이건 더 이상 협회 및 정부만의 관할이 아닌, 아카데미의 관할로도 넘어오는 문제였기 때문이다.

게다가 클랜의 최우선 목표인 루덴아크 학파가 연루됐다는 건, <이블 헌터> 역시 이 문제를 가만히 두고 볼 수는 없다는 이야기였다.

“때문에 클랜의 모든 우선사항을 차치해두고, 현재 모인 클랜원들을 사냥팀으로 묶어 임시 활동을 진행하겠습니다. 임시 편제는 다음과 같습니다.”

휙, 휙-.

PPT가 넘어가고…

순식간에 클랜원 임시 부서 설정이 완료됐다.

모든 클랜원은 사냥팀에 배정받고, 사냥팀은 1팀에서 5팀까지 나뉜다.

“클랜 마스터는 도재현, 부마스터는 유은설입니다. 또한, 부마스터께선 임시 편제상 자동으로 사냥 1팀의 팀장이 되십니다.”

클랜의 창시자와 클랜 내 절대강자.

그들이 마스터와 부마스터에 편제되는 건 당연한 이야기.

“이어서 사냥 2팀 팀장 임현, 3팀 팀장 정선영, 4팀 팀장 김아름. 그리고…”

말이 잠시 멈추고, 한상진의 시선이 뒤쪽에 머무른다.

멍하니 자료를 바라보던 박진우.

그와 눈이 마주치는 순간이었다.

“5팀 팀장 박진우. 이상 호명된 클랜원들께서는 임시 팀장을 맡게 될 간부급이자, 확정된 선임 클랜원입니다. 팀장님들께선 자신의 팀원들을 확인하시고, 앞으로 있을 작전에 차질이 없도록 해주십시오.”

“…….”

가만히 그걸 듣던 박진우는 생각했다.

‘아.’

쟁쟁한 베테랑 홀더들을 모두 거르고…

자신이 팀장급 간부로 뽑히다니.

빌어먹을 친구놈이 또 일을 저지르는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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