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280 - 제1구역 - 버려진 연구소 (1)
갸오오오-!!
끼이이이-!!
티르본드의 저공비행이 시작된다.
높은 곳으로 날아오르면 적 마법사의 위치를 파악하기 힘들기에, 낮은 곳에서 비행하며 탐색을 하는 게 베스트였다.
물론, 낮게 날면 단점도 있다.
크허어엉-!!
끼이-
끼기기기-!!
하늘로 올라가며 겨우 떼어냈던 키메라들이 또다시 달려든다.
대여섯 마리에서 열 마리.
열 마리에서 수십 마리.
다 헤아리기 힘든 숫자의 괴수들이 도약을 시도하며 우리에게 날아왔다.
덕분에 나와 티르본드는 놈들을 쳐내고 때론 사냥하면서, 집중력을 잃지 않고 적 마법사의 위치를 탐색했다.
그야말로 치열한 추격전이었다.
[계약자 ‘티르본드’가 ‘계약의 법칙’ 룬의 파생스킬, ‘충직한 모방’을 사용했습니다. 1분간 티르본드의 속력이 106이 됩니다.]
그리고 전투 도중 발동하는 [계약의 법칙] 파생스킬.
티르본드의 자가 판단 하에 사용된 스킬에 나는 쾌재를 불렀다.
‘잘했어, 티르본드.’
-이 정도는 기본이다.
티르본드의 원래 속력은 63.
100을 가볍게 넘는 근력이나 내구에 비하면 다소 낮은 능력치다.
게다가 녀석이 유일하게 보유한 보법류 룬 [민첩성] 또한, 내가 ‘룬 부여’를 통해 넘겼었기에 아직은 7레벨의 낮은 레벨.
이런 조건 속에서 [충직한 모방]을 활용해 속력을 올리는 건 너무도 탁월한 선택이다.
지금처럼 괴수들이 몰려드는 난전 상황에선 더더욱.
파바밧-!!
크허어어-
쾅! 콰앙!
육탄전이라고 보기 힘들 정도의 소리가 들려오고, 티르본드는 곡예에 가까운 비행을 지속했다.
날개로 후려치고, 꼬리론 감싸고, 몸통으론 밀어낸다.
최근에 획득한 격투 계열 룬, [창공의 무투가]가 빛을 발하고 있었다.
적 키메라들은 날아드는 족족 떨어졌고, 티르본드의 비행은 멈출 기미가 안 보였다.
“흐읍…!!”
나도 가만히 있진 않았다.
이제는 꽤 익숙해진 우리의 전투 패턴.
비행 도중 떨어져 개별 전투를 하고…
다시 티르본드에게 돌아와 비행을 재개하는 것.
나는 녀석과의 호흡을 믿으며 그대로 하늘에서 떨어졌다.
그리고 양손에 꺼내든 [클로우 숏소드].
사용하는 룬은 [매화검법].
[스쳐가는 바람과 떨어지는 꽃잎. 표현하기 힘든 아름다움이 당신의 검법에 계속해서 녹아들고 있습니다. 놀라운 깨달음의 반복으로, 희미하게 빛나던 조각들이 뭉쳐 마침내 완성됩니다.]
[‘매화검법’ 룬의 궁극스킬 ’낙화의 미학’이 정식으로 등록됩니다. 언령을 통해 스킬을 사용할 수 있습니다!]
그동안 스승님과의 공동 연구 및 개인 훈련을 통해 드디어 완성시킨 궁극스킬.
이제는 몸이 기억할 정도로 스킬의 작동 원리를 완벽히 이해하고 있었고, 스킬 사용의 가장 효율적인 출력값을 알고 있었다.
그리고 그간 계속 연습하며 익숙해진 언령.
“떨어져라.”
[낙화의 미학]을 시전한다.
나는 티르본드에게서 떨어지던 속도를 발판 삼아, 그대로 범위 내에 있는 모든 키메라들에게 검격을 먹였다.
질풍에 가까운 속도.
참격과 비슷한 위력.
거칠고 맹목적이기만 한 움직임은, 하나로 섞여 쏘아질 때 비로소 규칙을 만들어가고 있었다.
그건 마치.
아름답게 피어난 꽃들이 흔들리듯 하늘을 수놓는…
한 폭의 풍경화와도 같은 공격이었다.
콰, 콰가가가-!!
쾅! 쾅! 콰가강-!!
크어어어-!!
파괴적인 타격이 가해지고, 괴수들의 비명이 연달아 들려온다.
여기서 각 잡고 놈들을 더 잡아도 되겠지만 나는 굳이 무리하지 않았다.
어차피 티르본드와 내 목적은 눈앞의 키메라가 아니다.
우리의 목표는…
‘찾았다, 주인.’
-그대로 쫓아가. 난 알아서 따라붙을게.
목표물을 발견한 티르본드의 추격.
타이밍을 놓치지 않기 위해, 티르본드를 내 쪽으로 불러들이지 않는다.
어차피 난 하늘에서 자유롭다.
[영험한 드래곤 부츠] 덕에 허공에서 움직일 수 있고, [천하제일 경주마] 룬으로 공중에서의 돌격이 가능하다.
맨몸으로 움직이기에 비행이 불안정하다는 점만 빼면, 어설프게나마 티르본드의 움직임을 따라잡을 수 있었다.
파밧- 팟-
탁-!
그렇게 허공에서 티르본드와 교차한 후, 그대로 녀석의 몸 위로 올라탔을 때.
고개 너머로 마법사를 발견할 수 있었다.
꾀죄죄한 차림과 불안에 가득 찬 얼굴.
한 손엔 마법서가 들려있고 주변엔 마력이 넘실거린다.
그리고…
끊임없이 무언가를 중얼거리고 있다.
그 모습을 보자마자, 나는 뭔가 잘못됐음을 깨달았다.
‘씨발! 본드, 위로 도망쳐!’
-뭐? 갑자기 그게 무슨…
‘빨리! 시간 없어!’
다급한 마음에 녀석의 예전 이름을 부르며 명령하고, 나는 다시 아까처럼 허공으로 떨어졌다.
이후 ‘무구교체술’로 [퓨어 팔라딘의 버클러]를 꺼내든다.
너무 급한 상황이라 방어할 준비는 부족한데, 어떻게든 방패로 그의 공격을 막아보려는 계획이었다.
하지만.
“움켜쥐어라…!!”
이미 준비를 모두 마친 마법사의 캐스팅이 더 빨랐다.
심지어 언령을 읊었다.
궁극스킬의 사용이다.
마법사의 앞에서 모이기 시작하던 검은색 마력은, 모이고 또 모여 거대한 결정체를 이루었다.
그리고 순식간에 변형되는 마력.
그 형태는 건물보다 더 커다란 ‘손’의 형태였다.
그가 읊은 언령 그대로.
뭐든지 움켜쥐어버릴 듯한 마력의 형체였다.
‘빌어처먹을….’
최악이다.
내가 제이텐과 티르본드를 갈아타며 여기까지 도달해 올 동안, 대체 뭘 하고 있나 싶었었는데…
이 음침한 새끼는 그새 날 향한 ‘대인용 공격스킬’을 준비하고 있었던 모양이다.
다른 클랜원들은 고려하지 않은, 오직 나만을 노린 공격.
아마도 루덴아크 윗선으로부터 뭔가를 전해 들었고, 내 인상착의 정보도 알고 있었을 게 분명했다.
‘철벽 수비라도…!!’
정면으로 이 공격을 막아내면 아마 막대한 타격과 부상을 입겠지.
그런데도 특별히 방법이 없다.
마법사 계열의 궁극스킬은 준비 시간이 오래 걸리는 만큼, 완성됐을 때 파괴력이 엄청나다.
진작 마법 시전을 방해해야 했는데 이미 늦어버린 것이다.
나는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방패를 들었다.
그리고 [철벽 수비] 스킬을 사용하려던 찰나.
[응집된 악의 결정체를 감지합니다! 갑옷 안에 새겨진 트릴리온의 찬란한 맹세가 악을 처단코자 깨어납니다. ‘신성한 가호’ 효과가 발동합니다.]
[착용자의 보유 신성 수치는 70. 해당 수치에 비례한 ‘신성한 가호’가 … … ]
[‘은빛 달그림자’ 룬의 특수효과로, 장비의 신성 감응도를 극한까지 끌어올립니다! 가호의 위력이 40% 증가합니다.]
난데없는 정보창들이 주르륵 나타나 핑글핑글 주변을 돌았다.
이내 내 몸에 덮어지는…
어마어마한 양의 신성력.
눈부실 정도의 신성력이 온몸을 감싼다.
이들은 몸 곳곳에서 금세 한곳으로 집중되기 시작하더니, 이윽고 내 앞을 막아서는 하나의 커다란 방패가 됐다.
그리고.
화아악-
쿠, 콰아아아-!!
정말 거짓말처럼.
거무튀튀한 마력의 손길을 ‘삭제’시켰다.
적 마법사가 펼친 회심의 궁극스킬을…
장비에 내재된 특수효과 하나로 막아버린 것이다.
3초 전까지 생각했던 미래가 완전히 뒤바뀌었다.
“마, 말도 안 돼….”
그 광경을 지켜보던 적 마법사가 멍하니 중얼거렸다.
도무지 믿을 수 없다는 얼굴.
‘…이쪽도 마찬가지야.’
사실 나도 놀라긴 했다.
내 갑옷 [트릴리온의 찬란한 맹세]에 ‘신성한 가호’ 효과가 있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그 효과를 기습 공격이나 저주술 등을 막아내는 걸로 생각했지, 이렇듯 정면에서 막아낼 줄은 몰랐다.
게다가 [은빛 달그림자] 룬의 특수효과.
신성 계열 장비의 감응도를 극한까지 끌어올려주는 성능.
예상치 못한 두 효과의 시너지가 발생하면서, 원래의 내 신성 능력치(73)로는 펼칠 수 없는 강력한 가호를 만들어냈다.
그동안 좋은 룬이라면 뭐든 획득해왔던 시도의 결과물이었다.
‘보라색 포스하울링…!!’
나는 제 발로 굴러온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허공에서 떨어져가는 상태에서, 그대로 악을 지르며 [보라색 포스하울링]을 사용한다.
[끓어오르는 늑대인간의 힘] 파생스킬인 ‘하울링’.
그중 보라색은 지정 대상들의 시야를 감소시키는 디버프다.
주변에 마법사를 보호하기 위해 나타나는 키메라들의 시야를 모조리 제한한다.
놈들은 날 막아서려다가 서로 부딪히며 갈 길을 잃었다.
그리고.
“어딜 도망 가, 임마.”
푸쉬이-!!
다급히 발길을 돌리려는 마법사의 어깻죽지에 검을 꼽는다.
빠른 속도로 [마력 방어막]이 생성되는 게 보였지만, 내 검은 가볍게 방어막을 뚫고 녀석의 살갗까지 찔러들어갔다.
당연히 검 이름은 [참회자의 검].
흑마법을 주로 쓰는 이 자식한텐 더 쥐약이었다.
“끄, 끄아아악…!!”
마법사의 고통스러운 비명이 들려온다.
얼마나 고통스러웠는지, 놈은 이 찌르기 한 번에 완전히 전의를 상실한 것 같다.
[결투에서 승리했습니다! 룬 사냥꾼의 신묘한 힘으로, 상대방의 룬 하나를 복제할 수 있습니다. 복제할 룬을 선택해주세요.]
이 정보창이 조금의 텀도 없이 바로 나오는 걸 보면 말이다.
‘근성 없는 자식.’
나는 혀를 차며, 아까 하늘로 올려보낸 티르본드를 불렀다.
‘본드, 다시 돌아와.’
-…주인, 은근슬쩍 본드라고 부른다.
‘아, 미안. 티르본드, 빨리 와서 이 자식 좀 물고 있어.’
-물라고?
‘어. 안 죽을 정도로만. 아니면 문 상태로 우리 클랜원들한테 데려가도 좋아. 뭐가 됐든 이 녀석은 포로로 생포하고 심문 좀 해야 돼.’
-알겠다.
이에 티르본드는 곧장 우리 근처로 다가왔다.
그리곤 명령대로 마법사의 허리를 물었다.
안 죽을 정도로만.
“으아악!! 으, 으그아… 사, 살려줘!!”
“안 죽어, 임마.”
엄살이 심한 마법사 자식의 머리를 한 대 쳐 돌려보낸 후, 나는 다시 검을 들었다.
제일 중요한 놈을 처리했으니, 이젠 아군을 돕고 전투를 마무리할 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