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구역 - 버려진 연구소 (2)
[결투에서 승리했습니다! 룬 사냥꾼의 신묘한 힘으로, 상대방의 룬 하나를 복제할 수 있습니다. 복제할 룬을 선택해주세요.]
[1.루덴아크 주문 2.어둠의 서약 3.흑마법 4.돌연변이 제작 5.마력제어(선택불가)… …]
[‘루덴아크 주문’ 룬을 선택하셨습니다. 18레벨의 노멀룬이기에 레벨이 하락해 9레벨로 등록됩니다.]
[룬의 성향으로 마력을 3, 신성을 1 획득합니다.]
<룬 정보>
◎이름: 루덴아크 주문
◎등급: 노멀(Normal)
◎레벨: 9
◎새겨진 부위: 손등 (중복)
◎특수효과
*사용조건: ‘어둠의 서약’ 룬을 보유한 자들만 사용할 수 있다.
1) 악마의 힘을 빌려 주문한다. 일반 주문보다 30% 높은 위력을 낼 수 있고, 더블 캐스팅이 가능해진다. 대신, 그 대가는 마법의 종류에 따라 달라진다.
◎파생스킬
◎세부정보
: 악을 모조하는 무리, 루덴아크 학파가 개발해낸 주문법. 마력을 배열하고 발현시키는 방식이 매우 특이해서, 오랜 기간 훈련하지 않으면 쉽게 익힐 수 없다. 특히 악마에게 대가를 바쳐 힘을 빌려오는 금단의 방법 때문에, 일반적인 주문보다 훨씬 강력한 위력을 낸다.
적 마법사로부터 가져온 룬은 [루덴아크 주문]이었다.
선택할 수 있는 룬은 4개나 있었지만, 애초에 룬 선택에 큰 의미를 두지 않았다.
어차피 던전 공략을 이어가다 보면 다 얻을 수 있는 룬이고, 또 얻는다고 해서 당장 내 전력에 크게 도움이 될 룬으로는 안 보였기 때문이다.
중요한 건 정보.
루덴아크 학파에 관한 일말의 정보라도 얻어내는 것이었다.
‘…악마의 힘이라고?’
그리고 <룬 정보>에 적혀있는 생소한 단어.
악마.
[루덴아크 주문]은 악마의 힘을 빌린다는 표현과 함께, [어둠의 서약]이라는 특수한 룬이 있어야만 사용 가능하다고 나와있었다.
‘악을 모조하는 무리’라더니 정말 악의 근원에 가까워져 있는 단체였나 보다.
나는 혀를 차며 시선을 돌렸다.
치열했던 던전 입구에서의 첫 전투.
우리 클랜은 단 한 명의 부상자도 없이 깔끔한 완승을 거뒀다.
아득한 숫자를 자랑하던 키메라들은 모조리 사체가 되어 너부러져 있었고, 미리 포로로 잡아둔 마법사 역시 피투성이가 된 상태로 붙잡혀 있었다.
‘…좀 세게 물었나 보네.’
무릎 꿇은 마법사의 꼴은 말이 아니었다.
특히 허리 쪽이 상당히 붉게 물들어 있는 게, 아무래도 티르본드가 무는 힘을 조절하지 않은 모양이다.
“죽여라.”
마법사가 문득 치를 떨며 내게 말했다.
아까까지만 살려달라고 하더니 그새 또 죽이라고 말이 바뀐다.
나는 코웃음을 치며 심문을 시작했다.
“이름은?”
“너 따위 하등한 인간에게 말해줄 이름은 없다.”
같은 인간끼리 무슨.
표정을 보니 아무 정보도 털어낼 생각이 없는 것 같지만… 애초에 큰 기대를 하지도 않았다.
“나이는?”
“모른다.”
“소속은?”
“모른다.”
“루덴아크 학파겠지, 뭐.”
“……!!”
직접적인 언급에 깜짝 놀라는 마법사의 얼굴.
거기서 난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빙고.’
단서가 하나 생겼다.
적들은 아직 우리가 이 던전에 왔다는 걸 모른다는 사실.
처음 마법사 놈이 날 향해 1인 궁극스킬을 사용할 때만 해도 그 반대라고 생각했는데, 아무래도 나에 관한 정보만 공유하고 현 상황에 대해선 잘 모르는 모양이다.
그리고 그건 다시 말해…
최아린의 납치가 의도되지 않았을 수도 있다는 것.
던전에 올 때 가장 걱정했던 게 그녀의 신변 상태였는데, 어쩌면 아직 크게 다치거나 문제가 생기지 않았을 수도 있었다.
나는 눈물이 그렁그렁한 최유민에게 잠시 시선을 돌려 안심하라는 눈빛을 보내고, 심문을 이어갔다.
“성별은?”
“…뭐?”
“계열은… 뭐, 싸워보니까 마법사인 것 같고.”
“…뭐하자는 거냐?”
“너네 윗선들이 있는 위치도 안 알려줄 거지? 납치된 홀더들 위치는 당연히 알려줄 생각 없을 거고.”
“인간!! 지금 나랑 장난치자는… 끄악?!”
퍽-!
소리와 함께 놈의 머리를 한 대 후려친다.
이 새끼는 왜 심문을 안 해도 지랄이야.
나는 고개를 돌리며 발걸음을 옮겼다.
여전히 무장 상태로 내게 집중하던 클랜원들.
그들은 의아한 얼굴로 날 보고 있었다.
“휴식 시간은 충분했을 거라 생각합니다. 이제 곧 출발할 테니 다들 준비하세요.”
“자, 잠깐만요, 마스터.”
갑작스러운 출발 명령에 4팀 팀장인 김아름이 날 불렀다.
그녀는 뭔가 이상하다는 듯 마법사와 날 번갈아보며 물었다.
“이대로 가시려구요? 아직 할 일이 더 있지 않나요?”
“심문은 이 정도면 충분합니다.”
“…이게요? 아니, 아니. 설령 그렇다쳐도 저 마법사는 어떻게 처리하시려구요.”
[파워 메테오]와 어둠속성 궁극스킬.
펼쳐낸 공격만 봐도 그 수준을 알 수 있다.
앞에 있는 루덴아크의 마법사는 최소 A급 홀더 이상의 강자였다.
당연히 이대로 풀어주는 건 절대 안 될 일이고, 계속 포로 상태로 끌고가는 것도 클랜 입장에선 부담되는 일.
김아름은 그런 그의 처리에 대해 묻고 있었다.
…최소한 여기서 죽여야하는 게 아니냐.
그런 암묵적인 의미로.
몇몇 클랜원들도 비슷한 의문을 품고 있는 것 같아, 나는 간단히 그들에게 답해줬다.
“계속 포로 상태로 둡니다.”
“마스터!”
“물론, 저희가 데리고 있진 않을 거예요.”
“…네?”
흥분해서 소리친 김아름의 표정이 다시 바뀐다.
포로 상태로 두는데 우리가 데리고 있지 않는다니.
순간적으로 무슨 말인지 이해가 잘 안 된 것.
그에 나는 고개를 돌려 던전의 입구 방향을 바라봤다.
탁, 탁, 탁.
촤르륵-!
거기에선.
완벽하게 무장을 마친 홀더들이…
무리를 지어 단체로 하나둘 입장하고 있었다.
이곳 던전은 <울펜서>와 달리 특별한 입장 조건이 없는 던전.
당연히 우리 말고 다른 홀더들도 들어올 수 있다.
그리고 그들의 정체는 나도, 클랜원들도 쉽게 파악할 수 있는 유명한 이들이었다.
“아…!”
“협회 소속 홀더들이…!!”
“…불의 심판?”
“저긴 로열 클랜원들도 있습니다!”
그런 그들을 보며 클랜원들이 깜짝 놀란다.
<불의 심판>, <로열>, <용광검로>.
우리 클랜과 우호 협정을 맺은 3대 클랜부터 시작해, 내로라하는 국내 주요 클랜들.
심지어 가장 앞에는 우리에게 의뢰를 맡긴 홀더 협회도 있었다.
협력이 예정되어있긴 했지만…
훨씬 빠른 타이밍에, 훨씬 많은 전력이 도착했다.
그에 나는 클랜원들을 보며 설명을 덧붙였다.
“지금부터 작전은 협회 및 각 클랜의 합동으로 이어집니다. 포로의 호송은 홀더 협회에서 전적으로 맡을 겁니다. 또한, 나침반을 보유한 저희 클랜이 가장 선두의 탐색자가 되겠지만, 나침반이 가리키지 않는 방향에 대해선 타 클랜들이 탐색을 해줄 겁니다.”
홀더들이 연쇄적으로 납치당한 사건.
아무리 의뢰 형태로 우리 클랜에 맡겨진 사건이라지만, 전대미문의 사건인 만큼 타 클랜들도 가만히 있지만은 않았다.
국내 주요 클랜 대부분이 <이블 헌터>의 협력 요청을 받아들이며 추가 병력을 지원해왔다.
그들의 주 역할은 우리 클랜을 도와 던전을 전반적으로 탐색하는 것.
납치자들을 주로 탐색하는 우리가 놓칠 수도 있는, 루덴아크 학파의 일원들을 잡아두거나 관련 정보를 캐치해내는 일이었다.
“홀더 협회는 던전 내의 입구와 바깥의 입구에서 상주하며 우리 클랜을 도울 겁니다.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건 시간. 최대한 빨리 납치 피해자들을 찾아내고, 보호해야 합니다. 그 외 나머지 일들은 협력자들이 도와줄 겁니다.”
다시 말해, 마법사의 심문을 너무 빨리 끝낸 것.
그건 심문의 필요성이 부족해서가 아니다.
그럴 시간이 부족해서였다.
포로 한 명을 심문하고 정보를 내뱉게 만드는 건 굉장히 오랜 시간과 노력을 요하는 일이기에, 지금의 우리 클랜이 거기까지 신경 쓰고 있을 시간이 없었다.
당장 납치된 홀더들을 찾아내고, 그들을 통해 뭔가 일을 벌이려는 루덴아크의 계획을 분쇄해야 한다.
그걸 위한 역할 분담이었다.
“그리고 조금 더 효율적인 탐색을 위해, 외부로부터 또 다른 협력자를 구했습니다. 이분은 이번 사건동안 우리 클랜의 임시 일원으로 활동하며, 탐색과 공략을 도울 겁니다.”
“…또 다른 협력자?”
이번엔 클랜 부마스터인 유은설도 고개를 갸웃했다.
클랜원들에게 완전히 처음 꺼내는 이야기.
이건 스승님도 전해듣지 못한 내용이었다.
“네, 소개하겠습니다. 현 국내 홀더 중 루덴아크 학파에 대해 가장 잘 알고 있는 홀더, 박지환 홀더님입니다.”
저 멀리서 걸어오던 홀더 한 명이…
내 말이 끝나자, 순식간에 옆으로 도달한다.
거의 돌격류 룬을 쓴 것 같은 수준의 민첩함과 속력.
그에 클랜원들이 놀란 틈을 타, 나는 곧장 설명을 덧붙였다.
“국내에선 류지혁이라는 이름으로 불리고 계십니다. 국내에 다섯 분밖에 없는 S급 홀더죠.”
“……!!”
“류, 류지혁 홀더님?!”
“아니, 그게 무슨….”
뜬금없는 이름이 등장한다.
류지혁.
국내에 다섯 명밖에 없는 S급 홀더이자, 워낙 신출귀몰해서 베일에 싸인 홀더로 불리기도 하는 남자.
특유의 밸런스 잡힌 능력 덕분에 전사 계열에선 꽤 많은 존경을 받는 홀더였다.
‘…원래 이름을 밝히는 건 처음이시겠네.’
그러나 그의 진짜 정체는 박지환.
류지혁이라는 이름은 특수한 능력으로 얼굴을 바꿔 만들어낸 새 신분이었다.
그는 내게 처음으로 루덴아크 학파의 위험성을 설파었했고, 날 제외하면 루덴아크에 대해 가장 잘 아는 인물이기도 하다.
나는 이번 일이 터졌을 때부터 그와의 협력을 생각했다.
전에 한번 연락이 닿았을 때 관련 정보를 공유하자는 이야기가 있었고, 무엇보다 S급 홀더가 합류해 돕는다면 일이 훨씬 쉽게 풀릴 거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진짜 오실 줄은 몰랐지만.’
원래 이름까지 밝히면서 흔쾌히 오실 줄은 몰랐다.
그의 말로는 루덴아크의 꼬리를 확실히 잡은 만큼, 이젠 이름을 감출 필요가 없다고 했다.
어쨌든 우리로선 매우 든든한 원군의 등장.
그의 정체를 알게 된 클랜원들의 놀란 입이 다물어지지 않고 있었다.
그리고, 정작 박지환의 등장에 가장 크게 놀란 클랜원은 따로 있었다.
임시 사냥 5팀이 자리한 곳의 선두.
내 절친이자 팀장 박진우가 있는 곳.
“…아빠?”
뜻밖의 부자상봉이 이루어지는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