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아카데미 사기 룬을 얻었다 (282)화 (282/353)

제1구역 - 버려진 연구소 (3)

박지환이 합류하고 난 후, 우리 클랜의 탐색엔 가속도가 붙었다.

최아린의 나침반을 따라서 이동하는 기존의 방식은 동일했지만, 그간 루덴아크를 조사해오며 지식을 쌓아온 박지환의 던전 분석이 날카로웠다.

“지금 우리가 있는 곳이 여기다. 아마 루덴아크 학파에서 키메라나 제작 사령들을 연구하던 곳일 확률이 높지.”

박지환은 웬 지도 하나를 펼쳐 특정 지점을 가리켰다.

넓게 그려진 영역의 초반부였고, 거기엔 X자가 쳐져있다.

이 마도구는 [공유 제작 지도]라는 특수 아이템.

총 5개의 지도로 나뉘어져 있는데, 지도를 보유한 홀더들이 각자 마력을 활용해 그리면 모두의 지도에 똑같은 그림이 그려지는 방식의 마도구다.

덕분에 이곳 던전을 탐사하는 주요 클랜들과 우리 클랜은 이를 하나씩 가져와, 서로의 탐색 결과를 약속에 따라 그려가며 던전 지도를 완성해가고 있었다.

‘국내에 몇 개 없다고 들었는데.’

[공유 제작 지도]는 미국의 천재 연금술사가 만들어냈다는 마도구.

워낙 그 가치가 뛰어나고 희귀해서, 국내에 풀린 물량도 몇 개 없는 걸로 알고 있다.

그럼에도 이런 아이템들까지 아끼지 않는 걸 보면, 협회에서 이번 사건을 얼마나 중요시 여기고 있는지 느껴졌다.

“실제로 이계에 있었던 공간이라는 거죠?”

나는 박지환의 짧은 설명을 해석해 질문했다.

그러자 그는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그래. 그중에서도 활용 가치가 떨어져 폐기가 확정된 곳이지. ‘버려진 연구소’라는 이름은 그래서 붙여진 걸 거다.”

“그럼 폐기 공간 말고도, 새로 만들어진 공간이 있을 수도 있겠네요.”

그 추측엔, 박지환의 눈동자가 살짝 커진다.

그의 생각과 그대로 일치해 꽤 놀란 모양이다.

“정확해. 내 생각이 맞다면, 이 던전은 몇몇 구역 별로 나뉘어져 있다. 우린 지금 ‘버려진 연구소’라는 특정 구역에 와 있는 게 분명해. 던전의 넓이가 얼마나 광활한지는 모르지만, 이대로 전진하다 보면 또 다른 구역을 맞이하게 될 확률이 높지.”

확신에 찬 그의 말을 곱씹었다.

“구역 별 구분이라….”

“그래. 마치 재현이 네가 울펜서 던전을 공략할 때 겪었던, 라이칸들의 진영 별 구분처럼 말이다.”

<울펜서>의 구역 구분은 간단했다.

칼라크 진영과 바라텐 진영의 영토 구분.

그리고 일종의 중간 지점이자 두 진영이 모두 차지하고자 했던 도시, <울펜서>.

라이칸들은 이 도시를 두고 끊임없이 전쟁을 이어가고 있었고, 이계에서의 이러한 활동은 던전 형태로 바뀌어 현계로 넘어오고도 똑같았다.

타 괴수들처럼 그저 지성 없이 인간들을 공격하는 게 아니라, 던전 내에서 자신들만의 목적을 지닌 채 그 달성을 위해 인간과 협력할 수도 있는 존재들.

그들에게 ‘적응자’라는 이름이 붙은 건 그런 이유였던 것이다.

‘그리고 그건 루덴아크도 마찬가지.’

이 던전이 정말 루덴아크 학파의 근거지가 맞다면.

아마 이곳 던전에 상주 중인 학파의 일원들도 ‘적응자’다.

던전의 구조를 누구보다 잘 이해하고 있고, 던전에서의 활동 역시 자신들의 목적과 연관이 있는 걸 테니까.

“그리고 이러한 던전으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워져, 인간처럼 입장과 퇴장을 할 수 있게 된 존재들. 그런 이들을 이탈자라고 한다.”

“이탈자…요?”

박지환이 지도를 접고 주변을 보며 말했다.

“루덴아크가 적응한 던전은 여기만 있는 게 아니거든. 그 던전들을 정신없이 찾다가 알게 됐지. 아마 재현이 네가 울펜서에서 마주쳤다던 로브의 남자가 바로 그 이탈자 중 한 명일 거다. 루덴아크 학파의 부학파장, 데이브.”

“부학파장 데이브….”

완전히 새로운 정보가 연달아 쏟아졌다.

사실 박지환과는 <초월자의 방: 카날레스> 이후로 문자만 몇 번 주고받았을 뿐 별다른 정보 교환이 없었는데, 그동안 홀로 열심히 루덴아크를 쫓아왔던 모양인지 상당히 중요한 정보들을 알고 있는 그였다.

동시에 데이브라는 남자가 황성연과 함께 <울펜서>에 침투했던 것도 납득이 됐다.

던전 내외를 자유롭게 오갈 수 있는 ‘이탈자’이기에 가능했던 일인 것이다.

“그리고 이건 어디까지나 내 추측이지만… 그들의 계획은 아마 루덴아크의 학파장을 이탈자로 만드는 것일 확률이 높다.”

“학파장은 아직 이탈자가 아니라면, 확실히 그럴 가능성이 있겠네요.”

“어쩌면 홀더들을 납치한 것도 그 과정에 필요한 것일지도 몰라. 납치된 홀더들을 대상으로 무슨 일을 벌일지 알 수 없는 노릇이지. 그래서 하루 빨리 피해자들을 구출해야 한다.”

상당히 합리적인 추론이었다.

박지환의 이야기에 나 역시 깊게 수긍하며, 탐색을 향한 발걸음에 속도를 올렸다.

그렇게 30분쯤 걸었을까.

나침반을 담당하고 있는 클랜원이 큰 목소리로 소리쳤다.

“마스터! 나침반에 추가 신호가 왔습니다!”

최아린의 [원격 마력 나침반].

이는 마력 연결자의 위치를 방향으로만 가리키지만, 거리가 매우 가까워지거나 중요 포인트를 알려줄 땐 추가 신호를 보낸다.

이번에 나타난 나침반의 추가 신호는 초록색 마름모.

처음 보는 신호였다.

나는 이번이 결정적인 신호임을 직감하고, 나침반이 가리키는 방향으로의 전진을 지시했다.

“클랜원 전원, 이대로 언덕을 넘어갑니다!”

가파르게 솟은 언덕 너머를 가리키는 나침반의 방향.

우리는 서둘러 움직이며 그 언덕을 넘어섰다.

그리고.

“이, 이게….”

“던전에 무슨 건물이 이렇게 많이….”

갑자기 <버려진 연구소>라는 이름이 확 와닿는다.

언덕 너머엔.

눈으로 다 세기도 힘들 정도로 많은 건물들이 있었다.

건물의 색깔은 모조리 흰색.

문이나 창문 따위도 빠짐없이 흰색으로 칠해져 있어, 마치 정신병원이라고 생각될 정도의 기괴한 외관을 보였다.

연구 단지.

언덕 너머엔 특이한 양식의 연구 단지가 있었다.

“마스터. 전방에 공중형 괴수 무리가 있습니다. 수는 대략 열… 아니, 11마리. 확인되지 않았지만 측면에선 더 많은 수의 만티코어들이 몰려오고 있습니다.”

옆에서 빠르게 탐색 결과를 보고하는 궁수 계열 클랜원.

그에 나도 눈에 마력을 집중해 시야를 확장한다.

그 정체는 단번에 알아챌 수 있었다.

A급 괴수 만티코어.

그동안 지겹도록 사냥해왔던 만티코어들이 무리로 몰려오고 있었다.

그리고 그걸 보며 번뜩 머리를 스치는 생각.

‘여기, 키메라 연구소였구나.’

만티코어는 기본적으로 다양한 짐승이 결합된 형태의 키메라고, 우리가 던전 초입에서 만난 괴수 역시 짐승 결합 형태의 키메라였다.

두 가지 사실을 조합해 보면, 이곳이 키메라를 양성하는 연구소라는 추측에 도달할 수 있었다.

특히 일전에 <구름을 가린 둥지>에서 만났던 [빠른 회복력] 룬을 보유한 변종 만티코어.

바바리안의 강화술을 인위적으로 투입당했던 그 때의 만티코어는, 이곳 연구소에서 루덴아크 학파가 만들어낸 키메라가 분명했다.

<버려진 연구소>는 루덴아크 학파의 다양한 능력 중에서도, 유독 ‘제작’에 초점이 맞춰진 특수한 장소인 것이다.

나는 그러한 단서들을 염두에 두며 클랜원들에게 명령을 하달했다.

“궁수 계열 전원, 메인 딜링 포메이션을 취합니다.”

일단 눈앞에 닥친 괴수들부터 처치하는 게 급선무.

그리고 공중형 괴수를 가장 잘 사냥하는 건 역시 궁수 계열이었다.

* * *

A급 궁수 계열이자 <이블 헌터> 사냥 4팀의 임시 팀장인 김아름은, 보조룬까지 활용하며 집중력을 최대치로 끌어올렸다.

난데없이 등장해 순식간에 하늘을 가득 메운 만티코어 무리.

클랜이 앞으로 가기 위해선, 일단 이들을 모두 처치해야만 했다.

‘익스트림 샷.’

스킬 시전과 함께 강렬하게 쏘아지는 화살.

마력이 듬뿍 담긴 [익스트림 샷]은 낮게 비행하던 만티코어 한 마리의 머리를 제대로 꿰뚫었다.

쿨타임이 빠르게 돌아 벌써 다섯 번째로 적중하는 스킬이었다.

‘잡아도 잡아도 끝이 없구나.’

김아름은 이를 까득거리며 다시 화살을 꺼냈다.

아까 던전 초입의 키메라를 상대할 때도 그 양이 어마어마했지만, 이번 만티코어 또한 절대 수적으로 부족하지 않았다.

당장이라도 연구 단지에 쳐들어가 납치된 피해자들을 구출하고 싶은데, 몰려든 만티코어의 수가 너무 많으니 사냥에 우선할 수밖에 없었다.

“파이어 애…”

그러던 중.

김아름은 문득 자신의 팀원 중 한 명이 불속성 마법을 사용하려는 걸 감지했다.

얼굴을 확인하니 아카데미의 학생 홀더.

3학년 전형으로 들어온 마법사 계열 클랜원이었다.

그녀는 순간 짜증이 밀려오는 걸 느끼며 소리쳤다.

“멈춰요!”

“로… 네, 네?”

“전투 지시 때 공격마법 쓰지 말란 말 못 들었어요?”

“하지만 괴수가 저렇게 많은데…!”

“박은혜 홀더! 상사 명령에 불응하는 겁니까? 지금은 실전입니다!”

“죄, 죄송합니다!”

공격마법을 쓰지 못하게 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적중할 확률이 제로에 가깝기 때문이다.

공중형 괴수들은 일반적으로 비행과 관련된 룬을 보유하고 있고, 만티코어와 같은 고위 괴수들은 더더욱 하늘을 자유롭게 날아다닌다.

전사 계열 홀더들도 붙잡기 힘든, 막강한 회피력을 지닌 것.

따라서 이런 상황에서 마법을 쓰다가 적중에 실패하면, 캐스팅에 들인 시간과 마력을 모두 날리는 거고… 특히 방금처럼 어설픈 캐스팅을 하면 오히려 아군을 공격하게 될 수도 있었다.

궁수 계열 전원, 메인 딜링 포메이션으로.

클랜 마스터인 도재현이 괜히 그런 지시를 내린 게 아니었다.

‘같은 학생인데 어떻게 이렇게 차이가….’

방금의 미숙한 팀원과 냉철한 판단력을 지닌 클랜 마스터가, 같은 아카데미 학생이라는 게 믿기지 않았다.

그럴수록 마스터의 재능이 더욱 특별하다는 게 체감이 됐다.

홀더 내적인 부분이든, 외적인 부분이든 말이다.

물론, 그런 특별한 재능은 마스터에게만 있는 건 아니었다.

“하텐, 더 빠르게 움직여! 만티코어한테 안 붙잡히게!”

저 멀리서 웬 늑대 한 마리를 탄 채, 전사 계열보다 더 거침없이 전장을 누비고 있는 ‘궁수 계열’.

사냥 1팀의 팀원이자 <로열>의 파견 클랜원, 문가은.

이번 전투에서 그녀의 활약상은 유독 빛나고 있었다.

궁수 계열 홀더가 계약자를 통해 기동성을 장착한 것도 매서운데, 거기에 그녀는 <구름을 가린 둥지> 공략 때 이미 만티코어 사냥을 마스터한 홀더.

아마 도재현을 제외하면, 클랜원들 중 가장 효율적으로 만티코어를 사냥할 수 있는 게 그녀일 것이다.

푸쉬이이-!

팟- 파밧-!!

엄청난 속도로 움직이며 만티코어들을 속속 쓰러뜨려가는 문가은.

달리는 상태에서도 그녀가 쏘는 화살은 정확하고 파괴적이었다.

벌써 그녀의 손에 사냥된 만티코어가 10마리를 넘어가고 있었다.

‘마스터 주변엔 정말 괴물들밖에 없구나.’

김아름은 고개를 내저으며 다시 활을 잡았다.

놀라운 활약상이지만 감상하고 있을 틈은 없었다.

최대한 빨리 이들을 모두 사냥하고, 납치 피해자들을 찾아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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