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아카데미 사기 룬을 얻었다 (283)화 (283/353)

제1구역 - 버려진 연구소 (4)

만티코어와의 전투는 생각보다 빠르게 끝났다.

아무리 A급 괴수에 그 수가 많다곤 해도, S급 홀더 2명과 다수의 베테랑 홀더들이 포진된 우리의 전력에 비빌 바는 못 됐다.

박지환과 유은설은 가볍게 움직일 때마다 몇 마리씩의 만티코어를 사냥했고, 다른 클랜원들 역시 내가 지휘한 포메이션 하에서 깔끔한 팀워크를 보여줬다.

‘궁수 계열을 잘 뽑긴 했네.’

그 중심엔 궁수 계열 클랜원들이 있었다.

공중형 괴수들은 대부분 비행 관련 룬을 지니고 있고, 이 때문에 전사 계열이 탱킹을 맡고 마법사 계열이 딜링을 맡는 일반적인 형태의 싸움 구도가 나오질 않는다.

그래서 시작부터 궁수 계열을 메인 딜러로 삼는 포메이션을 취했다.

그리고, 노림수는 보기 좋게 적중했다.

4팀 팀장 김아름을 위시한 궁수 계열들은 타 계열 클랜원들의 보조를 받아 자신들의 역할을 완벽하게 해냈다.

규격 이외의 몇몇 강한 클랜원들이 끼어들 틈도 없이, 깔끔하게 전투가 끝났다.

-주인. 난 저 여자가 무섭다.

‘…익숙해져. 네 형수님 될 사람이야.’

-싫다!

아까에 이어 재소환된 티르본드가 치를 떨었다.

녀석이 말하는 ‘저 여자’란 당연히 문가은.

그녀는 이번 전투에서 가장 돋보이는 활약을 펼쳤다.

자신의 계약자인 ‘하텐’을 타고 자유롭게 전장을 누비며 정확한 사격을 보여줬고, <구름을 가린 둥지>를 통해 이제는 만티코어 사냥의 전문가가 됐음을 알려주는 사냥 솜씨.

특히 아까 전투 도중엔 포지셔닝이 여의치 않았는지, 갑자기 “재현아, 용 좀 빌릴게!”라고 말하며 티르본드 위에 올라탔는데…

그런 급변하는 상황 속에서도 침착하게 전투를 이어갔다.

상당히 유동적인 전투에 나도 모르게 절로 감탄했지만, 티르본드는 그렇지 않은 모양이다.

…문가은과 함께 하는 비행은 너무 난폭하다나 뭐라나.

“다들 고생하셨습니다.”

어쨌든 그렇게 초입에서의 전투가 끝났다.

나는 전투 종료 후 이곳저곳에서 정비 중인 클랜원들을 일단 한데로 모았다.

“쉬는 시간을 넉넉히 드리고 싶지만, 상황이 상황인 만큼 바로 출발해야 할 것 같아요. 지금부터 저희는 피해자들의 납치 장소로 추정되는 이 연구 단지를 수색할 겁니다. 수색은 각 팀별로, 정해진 구역 별로 진행하겠습니다.”

박지환의 [공유 제작 지도]를 건네받아, 지도 안에 그려진 구역들을 가리킨다.

전투가 끝나자마자 미리 표시해 놓은 단지 내 특수 지점들이었다.

“사냥 1팀은 A구역부터 C구역까지 순차적으로 탐색합니다. 탐색 도중 특이사항이 발견되거나 위급한 상황이 되면 아이템 써서 신호주시면 됩니다. 탐색의 최우선 목표는 어디까지나 납치 피해자들입니다.”

마찬가지로 2팀은 D구역부터 F구역까지.

3팀과 4팀, 5팀 또한 세 구역씩 분산된 탐색을 맡겼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저와 박지환 홀더님은 P구역과 Q구역을 둘이서 탐색합니다.”

“마스터! 그건 위험합니다!”

2팀 팀장인 임현이 소리치며 제지했다.

아무리 클랜 마스터와 S급 홀더의 팀 결성이라지만, 2명만으로 미지의 영역을 탐색하는 건 너무 위험하다 생각하는 것 같았다.

…물론 실제로 위험하기도 하고 말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지금은 앞으로 나아가야 했다.

“임현 홀더, 지금은 명령에 따라주세요. 시간이 부족합니다.”

“하지만…”

“위험하다는 건 저도 인정합니다. 다만, 위험을 무릅쓰고서라도 일을 진행해야 해요. 그만큼 급한 상황입니다. S급 홀더인 박지환 홀더님이 함께 움직일 테니, 서로 최소한의 안전 장치는 돼줄 겁니다. 만약 저희도 위급해지면 신호 드리겠습니다.”

굳은 표정으로 말하는 내 모습에, 임현도 난감해하다가 금세 상황을 받아들였다.

이러니저러니 해도 그는 공격대부터 클랜까지 함께 해 온 고정 멤버.

그동안 파격적으로 이뤄졌던 내 결정들이 틀린 적이 별로 없다는 걸 알기에, 이번에도 쉽게 수긍한 모양이었다.

다행히 다른 클랜원들 중에도 반발은 많지 않았다.

우리는 그렇게 탐색을 위해 서둘러 연구 단지로 발을 옮겼다.

* * *

‘아빠가 S급 홀더였다니….’

박진우는 살짝 멍한 얼굴로 걸음을 옮겼다.

클랜의 첫 활동인 이번 탐색은 그에게 있어 충격의 연속이었다.

난데없이 임시 사냥팀의 팀장이라는 큰 역할을 맡은 것부터 부담스러웠는데, 던전에 들어오자마자 아빠와 마주치다니….

당황하지 않았다면 거짓말이다.

물론 친구놈에게서 ‘박지환 홀더님은 루덴아크 추격의 핵심 인물이고, 그래서 앞으로 마주칠 일이 많을 거다’라는 말을 듣긴 했지만… 그게 당장 오늘일 줄은 몰랐다.

심지어 그런 아빠의 정체가 S급 홀더 류지혁이라는 사실.

얼굴을 바꾸는 그의 능력을 전혀 몰랐기에 놀랄 수밖에 없었다.

“팀장, 정신 차려.”

하지만 지금은 그런 데에 신경 쓸 여유가 없었다.

바로 옆에서 다그치듯 말하는 카밀라.

그에 박진우는 잡생각을 털어내듯 고개를 흔들었다.

개인적으로 놀랐던 일보다 훨씬 중요한 사건이 눈앞에 놓여있었다.

“전사 계열은 방어 태세를 놓지 않고 움직입니다. 아까의 전투들을 되짚어보면 이곳 던전 내 괴수들은 최소 B급 이상. 앞선이 섣불리 공격으로 치고 나가면 뒷선이 불안해질 수 있습니다. 진형 유지하면서 움직여주세요.”

곧바로 팀원들에게 오더를 내린다.

박진우의 리더십은 이미 <파문 공격대>에서부터 정평이 났었다.

상황에 흔들리지 않는 냉철한 판단력, 한번 마음먹은 건 밀고나가는 결단력, 천부적이라고 봐도 될 정도의 임기응변 솜씨까지.

열정적인 전투 스타일과는 정반대지만, 확실히 그는 지휘에 재능이 있었다.

기획팀장 한상진이 괜히 그를 5팀 팀장으로 추천한 게 아니었다.

덕분에 그의 팀원들도 어린 팀장에게 나름의 신뢰를 보내며 지시를 따랐다.

“팀장님, 전방에 괴수로 추정되는 형체가 있습니다.”

그리고 탐색 5분 만에 발견된 무언가.

궁수 계열 팀원의 보고에 박진우는 경계를 강화하며 집중했다.

좁은 공간은 대면 직후 전투가 일어날 확률이 높기에, 언제든 선제 공격을 할 준비가 되어있어야 했다.

그렇게 적과의 거리가 점점 가까워지고…

마침내 정체불명의 무언가가 모습을 드러냈을 때.

“저, 저건…?”

“이게 무슨….”

박진우는 물론, 팀원들까지 모두 혼란에 빠지고 말았다.

그도 그럴 게.

당장 앞에 보인 적의 형체는.

“사, 사람입니다.”

“그것도 한국인…!”

인간의 모습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울펜서>에 있는 위르겐 혹은 라이칸처럼 인간의 형태를 본뜨고만 있는 게 아니다.

누가 봐도 평범한 인간의 모습.

심지어 그 생김새는 한국인이다.

“이, 미친 새끼들이….”

박진우는 욕이 턱 끝까지 밀려오는 걸 참을 수 없었다.

눈앞의 인간을 보자마자 단번에 상황을 눈치챘기 때문이다.

키메라.

루덴아크 학파는 인간을 재료로 키메라를 만들었다.

얼굴은 평범하지만, 짐승처럼 부풀어오른 근육과 이질적인 형태의 하체… 결정적으로 등 뒤에서 펄럭이고 있는 커다란 날개만 봐도 알 수 있다.

상대는 전투병기가 된 괴수화 인간이었다.

“팀장님, 저거 설마…”

“납치 피해자 목록에 있는 사람은 아닙니다. 아마 그 전에 잡혀 실험 당했는데 밝혀지지 않은 케이스인 것 같아요.”

납치 피해자들의 목록은 각 팀의 팀장들이 모두 확인했었다.

박진우 역시 이를 알고 있었기에 미리 의심을 종식시켰다.

“…….”

“저걸 어떻게….”

하지만 팀원들의 동요는 쉽사리 가라앉지 않았다.

과정이야 어쨌든 결과물은 인간의 모습을 하고 있고, 정작 실험 대상이 된 이의 목숨이 붙어있는지조차 확실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무턱대고 괴수랍시고 사냥했다가, 살인을 저지르는 일이 될 수도 있었다.

스릉- 캉.

그 혼란스러운 분위기 속에서…

박진우는 조용히 자신의 검을 꺼냈다.

팀을 이끄는 팀장으로서, 그리고 한 명의 클랜원으로서.

부담을 짊어지고 직접 앞으로 나서기 위해서였다.

‘…이미 죽은 거나 다름없어.’

게다가 박진우는 확신했다.

눈앞의 키메라가 된 인간은 더 이상 살아있지 않다.

대상의 내부 구조, 외적 컨디션, 마력 영향 등을 확인할 수 있게 해주는 [조율의 눈동자].

구도자로서 새로 얻게 된 룬이 이를 말해주고 있었다.

머리는 인간의 모습을 하고 있지만 그 안엔 뇌가 존재하지 않고, 심장이 있어야 할 자리엔 동력의 역할을 해줄 마력석이 대신하고 있다.

저건 외양만 사람의 모습이지, 사실상 좀비나 다름없는 개체였다.

“흐읍…!!”

그 때문에 마음을 독하게 먹고 적에게 검을 휘두른다.

다행히 어떤 상황에도 흔들리지 않도록 하는 [명경지수] 룬이, 그의 망설임을 잡아주고 있었다.

* * *

“여기도 아니네요.”

방 안의 구석구석까지 다 살핀 후, 한숨을 쉬며 말한다.

우리가 담당한 P구역 연구소를 전부 다 돌았지만, 납치 피해자들의 흔적은 전혀 보이질 않았다.

그리고.

“놈들을 찢어죽여야 한다는 것만 알게 됐군.”

옆에 있던 박지환에게서 거친 욕설이 튀어나왔다.

그 마음이 십분 이해가 갔다.

이 연구소를 돌며 상대했던 ‘인간 형태의 키메라’.

그 기괴한 괴수들을 사냥하면서, 그간 루덴아크가 행해온 만행을 알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건 같은 인간으로서 결코 용서할 수 없는 악행이었다.

“그럼 제물 때문에 납치했다는 가설은 틀린 걸까요?”

그런 내 질문에 박지환이 고개를 저었다.

“그건 아닐 거다. 일단 우리가 상대한 키메라들 중엔 이번 납치의 피해자가 없고, 이렇게 대량으로 납치한 건 이번이 처음일 테니까. 이 키메라들은 아마 오래 전부터 조금씩 제작해온 결과물이겠지.”

오직 간악한 실험과 그 결과물.

연구소 안에서 얻은 소득은 그것 말곤 없었다.

나는 씁쓸하게 고개를 저으며 박지환에게 말했다.

“바로 Q구역으로 가시죠.”

“그래.”

어쩌면 벌써 일이 잘못됐을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피어오르지만, 그렇다고 가만히 앉아있을 수만은 없었다.

우리는 그대로 연구소를 나와, 단지 끝자락에 자리한 Q구역 연구소로 발을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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