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구역 - 버려진 연구소 (6)
차선책을 생각할 동안 아퀼렌의 마법이 먼저 완성됐다.
[블랙 쉴드]를 펼치면서 끊임없이 마력을 모으던 녀석은, 일순 응집된 기운을 폭발시키며 날 향해 손을 뻗었다.
“죽음으로!”
그리고 동시에 터져나오는 검은색 마력.
형태는 넝쿨.
수십 개의 넝쿨처럼 만들어진 형상이 내게 다가온다.
나는 서둘러 [퓨어 팔라딘의 버클러]를 꺼내며 방어를 준비했다.
‘궁극스킬은 아니야.’
언령처럼 여겨질 법한 말을 외치긴 했지만, 이는 단순한 신호탄일 확률이 높다.
마력 공격의 궁극스킬치곤 응집된 마력량이 그렇게 높지도 않았고, 내뱉은 말 역시 일반적인 언령의 문법과는 조금 달랐기 때문이다.
팟- 파바바-
캉! 스캉!
카가강-!!
수십 개의 검은 넝쿨이 방패에 달라붙어 부딪힌다.
굳이 [철벽수비] 스킬까지 사용할 필요도 없었다.
[은빛 달그림자] 룬을 통해 감응도가 높아진 신성 방패는, 어둠속성의 마력 공격에 대해 효과적인 방어를 선보였다.
‘이거, 그때 봤던 검은색 손길이랑 비슷해.’
거침없이 밀려오는 공격들을 막아내며 그 힘을 분석했다.
던전 초입의 마법사가 사용했던 궁극스킬.
‘움켜쥐어라’라는 언령으로 만들어진 거대한 검은색 손길.
당시엔 [트릴리온의 찬란한 맹세] 덕에 나도 모르게 스킬을 막아내면서 자세히 느껴볼 겨를이 없었지만, 수십 개의 넝쿨로 나뉘어 공격받는 지금은 확실히 알 수 있다.
저 특이한 마력과 스킬들은 아마 루덴아크 학파 일원들에게 공통되는 능력인 것 같았다.
형태는 다르더라도, 본질은 동일하다.
그렇다면 눈앞의 아퀼렌도 얼마든지 해당 궁극스킬을 사용할 수 있다는 뜻.
그 시간을 내주기 전에 빨리 타격을 줘야했다.
“죽음으로! 더 깊은 죽음으로!”
아퀼렌의 목소리가 연달아 퍼지고, 이번엔 검은 넝쿨들이 방향을 바꾼다.
앞, 뒤, 오른쪽, 왼쪽.
경계를 두지 않고 사방에서 몰려드는 검은 넝쿨.
더 이상 방패만으로 막아설 수 없는 공격이었다.
하지만.
‘모였다.’
나 역시 가만히 있던 건 아니었다.
아까부터 천천히 끌어모으던 마력의 응집이 모두 끝나고, 보조룬인 [마력증폭]과 [플로리안 주문]의 곁들임까지 끝났을 때.
나는 비로소 주먹을 꽉 쥔 채 소리쳤다.
“역전하라!”
전 <빌런> 클랜의 간부, 차수연이 쓰던 궁극스킬.
[견딜 수 없는 중력]의 [리버스 그래비티].
일반적으로 중력을 증가시켜 압박을 가하는 형식의 공격이 아닌, 일종의 무중력처럼 순간적인 척력을 발생시키는 고위 마법.
중력을 다루는 스킬 중 가장 독특한 마법이 주변에 펼쳐진다.
“뭐, 뭣…?!”
당황한 기색이 역력한 목소리가 들려온다.
아퀼렌의 몸이 순식간에 허공으로 떠오르고, 그는 공중에서 불안정한 자세로 허우적거렸다.
그리고 사방에서 날 향해 쏘아지던 ‘검은 넝쿨’ 또한, 공격 방향을 잃은 채 갈 곳을 몰라 이리저리 튀었다.
마력의 배열이 어그러진 상황에선 그 어떤 공격도 정상적으로 가할 수 없다.
반중력으로 인해 몸이 하늘로 떠버리면서, 아퀼렌의 집중력이 완전히 흐트러진 것이다.
덕분에 난 위기에서 벗어남과 동시에, 아퀼렌을 무방비 상태로 만들어냈다.
‘은신.’
하지만 난 잠깐의 기회에 취하지 않았다.
상대는 최소 A급에서 S급으로 예측되는 마법사 계열.
궁극스킬까지 사용해가며 극한의 상태이상으로 몰아넣었지만, 이런 급박한 상황에서도 반격의 여지는 얼마든 있을 수 있었다.
하다 못해 [블랙 쉴드]를 펼칠 힘은 남아있겠지.
따라서 난 곧장 공격을 취하지 않고, [은신] 룬을 활용하며 몸을 숨겼다.
루덴아크 학파의 절대 방어와도 같은 [블랙 쉴드].
그 방어막을 뚫어내기 위해.
“어디냐! 어디로 숨은 거냐!!”
고레벨의 [은신]은 상대의 시야에서 사라지기만 해도 모든 기척을 감출 수 있다.
덕분에 공중에서 허우적거리는 아퀼렌은 답답한 듯 소리쳤다.
어디서 공격이 날아들지 모른다는 불안감.
그게 전투에서의 침착함을 잃게 만들고 있었다.
물론, 상대도 고위 마법사인 만큼 이 은신이 오래가진 못한다.
‘하이드 어택.’
그러나 그 잠깐의 시간이면 충분했다.
[하이드 어택]은 반드시 은신 상태에서만 쓸 수 있는 파생스킬.
나는 잠깐의 은신을 마치고, 보란 듯이 모습을 드러내며 아퀼렌에게 검을 찔렀다.
“소용없다고 몇 번을…!!”
그리고 날 발견한 아퀼렌이 짜증난다는 듯 검은색 마력을 불러 모은다.
절대 방어인 [블랙 쉴드]의 발현.
내 검은 또다시 어둠 속으로 빨려들어가며 뭉툭하게 흡수당하는 듯했다.
하지만.
“흡…!!”
“……?!”
카, 카그그-
쩌적-!
한없이 견고해 보이던 철벽에 틈이 생긴다.
[하이드 어택]은 암습을 통해 파괴력을 높이는 공격 스킬이기도 하지만, 내가 보유한 스킬 중 몇 안 되는 ‘내구 감소’ 효과를 보유한 스킬이다.
이걸로 [블랙 쉴드]를 완전히 부술 순 없어도…
최소한 작은 틈 하나 정도는 만들어낼 수 있는 것.
그리고 뚫리지 않을 것 같던 검은 마력 속을 파고들어, 마침내 아퀼렌의 살갗까지 내 검이 도착했을 때.
‘예술은 폭발이다, 임마.’
나는 그대로 [폭발하는 검의 기세]를 활용했다.
검 안에 최대치로 깃든 마력이 폭발하는 순간이었다.
콰가, 콰가가-!!
콰아아앙-!!
엄청난 굉음이 공중에서 폭죽처럼 터진다.
“끄, 끄아아악-!!”
그리고 한 템포 늦게 아퀼렌의 비명도 들려왔다.
‘빙고.’
나는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짧은 시간 안에 분석해낸 내용이 예상대로 적중했다.
[블랙 쉴드]는 물리 방어와 마력 방어를 동시에 겸하기에 무적처럼 보이지만, 오히려 ‘동시에 겸한다’는 그 능력이 맹점으로 작용하고 있었다.
‘둘 중 하나만 뚫으면 되니까.’
마법사 계열이 고도로 응축시킨 마력 방어를 뚫는 건 결코 쉽지 않다.
같은 마력 공격으로 뚫으려면 훨씬 더 상위의 공격을 가해야 하고, 뚫는다 해도 제대로 타격을 줄 수 있을지 의문이니까.
하지만 [블랙 쉴드]는 마력 방어와 물리 방어를 ‘동시에’ 겸하는 능력.
따라서 둘 중 하나만 뚫어도 공격을 성공시킬 수 있는 것이다.
‘물리 방어는 밥 먹듯이 뚫어왔어.’
그리고 내게 있어, 물리 방어를 뚫는 건 꽤 쉬운 일이다.
어쨌든 난 전사 계열에 가까운 능력치 세팅을 지니고 있고, 상대의 내구 수치를 깎을 수 있는 수단도 보유하고 있다.
거기에 나 역시 [마력 방어막]보단 ‘갑옷’과 ‘방패’를 훨씬 많이 상대해왔다.
당연히 이를 뚫기 위한 매커니즘도 충분히 연구가 돼 있었다.
“숨기고 던져라.”
한번 뚫고 들어가니 연쇄적으로 공격의 기회는 생긴다.
나는 벌써 세 번째에 다다른 궁극스킬을 사용했다.
이번엔 [은닉의 비도술] 룬의 [나이프 레인].
21자루의 단검을 단일 대상에게 쏟아붓는 강력한 물리 공격 스킬.
[블랙 쉴드]만 없다면 물리 공격에 내성이 거의 없다시피 한 아퀼렌에게… 그야말로 쥐약과도 같은 추가타였다.
“끅- 끄으읅…!!”
마치 고슴도치처럼 21자루의 단검에 꽂힌 아퀼렌.
온몸이 만신창이가 된 그는 참기 힘든 고통 속에 몸부림쳤다.
첫 폭발엔 비명으로.
이어진 추가타엔 신음성으로.
타격이 커질수록 소리조차 내기 힘든 그의 상태가 절실히 느껴졌다.
“빌…어먹을.”
하지만 쥐도 궁지에 물리면 고양이를 문다고 했던가.
평범한 상대라면 몸을 가누기조차 힘든 그 상황에서…
아퀼렌이 무언가 또 꿍꿍이를 펼치려는 게 보였다.
전투 내내 날 괴롭혔던 검은색 마력이, 이번엔 아퀼렌의 심장 부근으로 모인다.
스스스-
불길한 소리와 함께, 더욱 진한 색채를 보이며 강렬하게 모여들었다.
그리고 점점 소용돌이치듯.
매섭게 응축되기 시작했을 때.
“죽음을 맞이하… 컥?!”
더 들을 필요도 없이.
나는 바로 그의 머리에 [참회자의 검]을 찔러넣었다.
아까 미처 못 다 했던, ‘체인지 스트라이크’ 풀스택의 검격.
물속성이 막혔기에 이번엔 불속성으로 변환한 공격이다.
“필살기는 진작에 썼어야지.”
보아하니 궁극스킬로 추정되는 능력을 쓰려고 했던 것 같은데 어림도 없다.
그걸 가만히 기다려주고 있으면 병신이지.
이미 [폭발하는 검의 기세]와 [나이프 레인]으로 확실히 승기를 잡은 상황에서, 마무리 타격을 하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파츳-
츠츠츠-!!
거기에 [침투하는 뇌기]로 한 번 더 확인사살.
번개속성이라 체인지 스트라이크 효과는 발동하지 않지만, 감전을 통해 빈사 상태인 적을 확실하게 무너뜨린다.
존재하는 모든 만약의 가능성을 제거한 것이다.
철퍼덕-
그렇게 아퀼렌이 사망하며 쓰러졌다.
있는 힘을 전부 쓰지 못하고 끝난…
어떻게 보면 꽤나 허망한 죽음이었다.
“…….”
이계의 존재라곤 해도, 어쨌든 살면서 처음으로 괴수가 아닌 사람을 죽였다.
손끝엔 머리를 꿰뚫은 불쾌한 감촉이 남아있었다.
살짝 찝찝한 기분이 맴돌았지만…
다행히 딱 찝찝한 수준에서 끝이었다.
죄책감 같은 건 전혀 들지 않았다.
‘인간을 키메라로 만든 쓰레기들이니까.’
루덴아크 학파의 악행을 이미 이 미친 연구 단지에서 봐왔기 때문이다.
전 <빌런> 클랜의 범죄 행각을 돕고, 죄 없는 사람들을 납치해 실험하며, 심지어는 키메라로 만드는 용서할 수 없는 짓까지 벌인 이들.
그런 놈들을 인도적으로 살려줄 이유는 조금도 없었다.
“재현아!”
그리고 뒤쪽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내가 아퀼렌과 치열한 전투를 벌였듯, 홀로 연구소 내에 키메라들과 싸움을 벌인 박지환이다.
역시 S급은 S급인 걸까.
얼핏 봐도 키메라의 수가 20 가까이 되는 것 같았는데, 그 많던 수를 벌써 다 잡았다.
아까 함께 전투를 할 때부터 놀라긴 했지만, 정말 괴물 같은 실력의 소유자였다.
“다행이구나, 안 다쳐서.”
“최아린 홀더는 안전하가요?”
“음. 최대한 키메라가 없는 쪽으로 길을 텄으니 잘 도망갔을 거다. 우리도 얼른 나가자. 다른 피해자들을 구해야지.”
“네.”
정말 다행히도 시간에 맞게 최아린을 구했지만, 아직 구출하지 못한 납치 피해자들은 훨씬 더 많았다.
아마 그들은 이 미친 연구 단지 어딘가에 갇혀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