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구역 - 죽음이 닿은 땅 (2)
<이탈자의 방> 베이스캠프.
이곳엔 한국 홀더 협회를 비롯해 국내 주요 클랜, 그리고 <이블 헌터> 클랜이 협력하는 연합 본부가 구성돼 있었다.
본부의 역할은 전반적으로 던전 공략을 총괄하고, 구역 별 공략을 클랜들과 협의하는 것, 그리고 공략 도중 나온 루덴아크 학파의 정보를 공유 및 분석하는 것이다.
던전 내에서 가장 치열하게 싸우는 건 역시 현장의 최전선이겠지만, 본부 역시 최대한 주어진 정보를 취합하며 척살 방안을 찾고 있었다.
“그럼 이탈자의 방 공략, 제4차 작전 회의를 시작하겠습니다.”
간이 막사 중앙에 있는 남자가 조용히 선언한다.
그는 한국 홀더 협회의 협회장, 권영훈.
이번 사안의 중대성을 깨닫고 현장으로 직접 나선 협회의 리더였다.
“…….”
본부장을 맡은 그뿐만이 아니다.
연합 본부 내엔 기라성 같은 홀더들이 모여있었다.
아카데미를 실질적으로 이끄는 탁원호 교수, <불의 심판> 클랜의 강우현, <로열> 클랜의 황건욱, <용광검로> 클랜의 송도혁 등….
국내 홀더 계를 대표하는 주요 인물들이 모두 포진돼있다.
게다가 현재 제6구역 공략을 떠난 <이블 헌터>의 유은설, 박지환이라는 본명을 밝힌 류지혁까지 합치면… 국내에 존재하는 S급 홀더 5명이 전원 참석한 대형 공략이었다.
그만큼 이번 사안이 얼마나 중대한지 알 수 있었다.
“이블 헌터 먼저 보고하겠습니다.”
막사 내 한쪽에 자리를 잡고 있던 <이블 헌터>의 임시 기획팀장, 한상진이 보고서를 들며 일어났다.
“앞서 협회장님께 선행 보고를 드리기도 했지만, 우선 루덴아크 학파장의 이탈화는 이미 완료됐다는 게 저희 쪽 의견입니다.”
“뭐라고?”
“……!!”
“아니, 어떻게 벌써….”
미리 보고를 들었던 협회장 권영훈과는 달리, 이 사실을 아예 처음 듣는 홀더들은 대부분 놀란 얼굴을 했다.
학파장의 이탈화가 이미 완료됐다.
이는 지금껏 루덴아크가 그 난리를 쳐가며 준비해왔던 계획이, 사실상 성공적으로 끝났다는 말과 동일했기 때문이다.
“1차적으론 던전 초입의 마법사 일원으로부터 심문을 받아냈고, 2차적으로 납치 피해자였던 최아린 홀더의 증언이 있었습니다. 저희 이블 헌터는 현재 의식을 회복하지 못하는 납치 피해자들이 학파장 이탈에 희생됐다고 보고 있습니다.”
-보유 마력이 뛰어난 년이라, 이탈을 마친 학파장님의 힘에 크게 도움이 될 거다.
도재현에게 척살당한 마법사 아퀼렌이 최아린을 두고 했던 말.
즉 이미 학파장의 이탈이 끝났다는 뜻이었고, 연합 본부의 공략 방향이 조금 더 적극적으로 변해야 함을 시사하기도 했다.
“따라서 다음 공략 일정도 최소한의 휴식만을 갖고 출발하려 합니다.”
협회장 권영훈이 말을 이었다.
현재 제6구역으로 공략을 떠난 <이블 헌터>.
그에 이어, 타 클랜들도 곧장 새 구역으로의 공략을 시작한다.
학파장의 이탈화에 온 힘을 다 쓴 루덴아크 학파에게, 시간을 주지 않고 곧장 몰아치려는 전략이었다.
“근데 그렇게 몰아치면 현실은 누가 지킵니까?”
<불의 심판> 클랜 마스터, 강우현이 손을 들며 물었다.
현재 국내 홀더 계는 거의 모든 전력을 <이탈자의 방>에 쏟아넣고 있다.
특정 단체에 의해 홀더들이 납치당하고 공격당하는 초유의 사태가 일어난 만큼, 모든 클랜 활동을 올스톱하고 이들을 소탕하는 데에 집중하는 것.
<빌런> 소탕 때와 유사한 과정이었다.
하지만 그렇게 쏟아넣는 만큼, 현실엔 공백이 생긴다.
이미 ‘이탈자’라는 존재들이 던전 안팎을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다는 사실이 밝혀졌기에, 현계의 홀더들이나 일반인들도 결코 안전하다고 할 수는 없는 상황이었다.
“그건….”
합당한 지적에 권영훈이 수정구 하나를 꺼낸다.
[기록 수정구].
마력을 통해 촬영된 기록물을 확인할 수 있는 아이템.
당연히 특수 아이템이기에 던전 안에서도 영상 확인이 가능하다.
권영훈은 살짝 웃으며 수정구 내의 영상을 틀었다.
그리고 그 안에선.
여기 모인 모든 홀더들이 알아보는…
놀라운 인물의 얼굴이 나오고 있었다.
-한국 룬 홀더 여러분, 반갑습니다. 저는 미국에서 <자유의 날개> 클랜을 이끌고 있는 룬 홀더, 리암 헨드릭스라고 합니다.
“리, 리암 헨드릭스?”
“이게 무슨….”
“와….”
리암 헨드릭스.
미국이 자랑하는 초대형 S급 홀더.
최초로 전사 계열 S급 홀더에 다다른 원로이자, 현 인류 최강의 홀더라고도 불리는 존재.
그리고 세계 최대 규모의 거대 클랜.
<자유의 날개>의 클랜 마스터.
모든 홀더들의 연예인인 그가…
수정구 안 영상으로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이번 사태에 대해선 저 또한 매우 유감스럽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홀더 및 일반인들의 납치와 실험… 절대 현대 사회에서 일어나선 안 될 일이고, 그러한 짓을 저지르는 단체는 뿌리를 뽑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단순 납치가 아니다.
납치한 사람들을 키메라로 만드는 인간 실험을 하고, ‘이탈화’라는 명목 하에 정체를 알 수 없는 마법을 부여했다.
이런 끔찍한 일들이 자행되고 있었다는 점은…
이미 국제 사회에도 전부 기사화되어 알려지고 있었다.
-따라서 저 리암 헨드릭스와 <자유의 날개> 클랜은, 이러한 악의 무리를 처단하고자 한국으로의 파견을 결정했습니다. 이 결정은 한국 홀더 협회의 요청과 미국 홀더 협회의 협력, 그리고 국제 홀더 협회의 중재로 이루어진 사항으로 합당한 명분을 갖습니다. 그럼, 한국에서 뵙겠습니다.
해야 할 말들을 깔끔한 전달한 후, 곧장 끊기는 영상.
권영훈은 다시 수정구를 품에 집어넣으며 홀더들에게 말했다.
“현실 쪽엔 든든한 우군이 도착했으니,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여차하면 던전 공략에도 공동으로 참여할 가능성이 있습니다. 다들 이 점 인지하시고 작전에 임해주시길 바랍니다.”
<이탈자의 방> 공략 및 국내 방어.
그 범국가적인 작전에…
세계 최강의 홀더와 최고의 클랜이 참전하는 순간이었다.
* * *
<죽음이 닿은 땅>은 구역 이름대로 초입부터 죽음의 향이 났다.
“사령의 기운이 느껴집니다, 마스터.”
“아마 이번 구역의 주요 괴수는 언데드인 것 같습니다.”
탐색을 맡은 궁수 계열들은 하나같이 입을 모아 ‘사령’의 존재를 의식했다.
그도 그럴 게 구역 내 땅은 모두 폐허처럼 썩어가고 있고, 곳곳엔 어느 종족의 유골인지 모를 뼈들이 굴러다닌다.
굳이 탐색류 룬을 쓰지 않더라도, 이번 구역에 불쾌한 느낌이 감돈다는 걸 눈치챌 수 있었다.
“…마스터, 저기.”
그리고 마침내 구역 내에 들어온지 10분 만에 괴수들이 출현했다.
4팀 팀장 김아름이 가리킨 곳엔, 저 멀리 해골 병사들의 군단이 보이고 있었다.
스켈레톤, 듀라한, 구울….
심지어 데스 나이트로 추정되는 괴수도 보이고, 공중엔 스펙터와 레이스도 떠다니고 있다.
그야말로 사령 종합 세트라고 봐도 될 만한 군단이었다.
“…….”
“미…친.”
그리고 그 군세를 확인한 클랜원들의 표정도 굳어갔다.
말 그대로 ‘군단’이다.
눈으로 다 헤아리기 힘들 정도의…
상식적이지 않은 숫자가 눈앞을 장식한다.
수백? 아니, 수천?
<버려진 연구소> 초입에서 마주쳤던 키메라들의 수보다 월등히 많은 사령의 수였다.
반면 우리 클랜의 병력은 80명 남짓.
비교가 민망한 수준의 병력 차이다.
‘질로 찍어누르면 돼.’
그러나 양이 부족하다면 질로 찍어누르면 된다.
임시 사냥팀으로 구성된 우리 클랜은 대부분의 클랜원들이 C급 이상.
개중엔 B급 및 A급 홀더도 많이 포진돼 있고, S급 홀더는 무려 2명이나 있다.
C급 괴수 스켈레톤이 아무리 떼거지로 몰려봐야 이길 수 없는 차이였다.
물론 A급~S급 괴수인 데스나이트와 리치의 숫자마저 많다면 상황이 달라지지만 말이다.
“먼저 출발하겠습니다.”
“…마스터!!”
내 무모한 오더에 팀장들이 반발한다.
저번 연구소에 이어, ‘또’ 혼자 가겠다는 말에 경악한 것.
하지만 나로서도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최대한 전투 시작 때 적의 군세를 흐트러 놓아야 합니다. 그리고 그 정도 기동성을 가진 클랜원은 저밖에 없어요.”
사실 조련 계열 홀더가 계약자를 직접 타고 싸우는 전투 방식은 매우 희귀하다.
특히 지금과 같은 상대의 수준 높은 상황에선, 직접 전투 능력까지 탑급이어야 가능한 방식.
그런 멀티 홀더는 우리 클랜은 물론, 국내 홀더 계를 통틀어도 찾기 힘들다.
사실상 내가 아니면 마땅한 적임자가 없었다.
“대신 최대한 빠르게 붙어주세요. 저도 저 정도 규모는 좀 무섭네요. 총 지휘는 부마스터께 맡기겠습니다.”
“하….”
“…알겠습니다.”
클랜원들도 어쩔 수 없다는 걸 이해했는지, 금세 수긍하는 모습을 보였다.
‘계약의 부름.’
덕분에 난 재빨리 계약자를 불러오며 출발할 수 있었다.
불러오는 계약자는 제이텐.
난전에선 누구보다 잘 싸우는 늑대다.
나는 제이텐에게 빠르게 전투 계획을 설명했다.
‘제이텐. 이번 전투는 속전속결이야. 적들을 쓰러뜨리는 것보다, 적 진형을 무너뜨리는 게 중요해.’
-이해했습니다.
다행히 제이텐은 전투에 있어선 명석한 계약자였다.
클랜원들의 딜링이 닿을 수 있을 때까지의 거리.
그 시간을 벌기 위해, 나와 제이텐은 적 군단을 향해 거침없는 돌격을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