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구역 - 죽음이 닿은 땅 (3)
짧은 기간이었지만, 나 또한 이번 구역 공략을 준비하며 놀고 있던 것은 아니다.
어떻게 하면 루덴아크의 적들을 효율적으로 공격할 수 있을지 끊임없이 고민했고, 가진 능력 안에서도 어떤 룬들을 조합했을 때 가장 파괴력이 높을지 연구했다.
그리고 오랜 고민 끝에 결론은 하나.
‘신성력.’
답은 신성력에 있었다.
루덴아크 학파는 어둠속성과 악성향의 신들 혹은 악마로부터 힘을 빌려, 강력해진 마력으로 마법을 구사하는 존재들이다.
때문에 빛속성을 다루는 신성력으로부터 약한 것은 당연한 이야기.
당장 내가 가진 신성 계열 아이템, [트릴리온의 찬란한 맹세]나 [퓨어 팔라딘의 버클러]가 이번 공략에서 크게 활약하는 것만 봐도 그 위력을 알 수 있었다.
그래서 나는 어제 A급 신성 계열인 클랜원을 찾아 자문을 구했었다.
“신앙심이요?”
“그렇습니다. 신성 계열을 보조하는 룬 중 하나인데… 신성증폭 룬이 신성력 자체를 폭발적으로 쏟아내는 룬이라면, 신앙심은 신성력의 조금 더 매끄럽고 자연스러운 발현을 돕는 룬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어지간한 고위 신성 계열 홀더들은 대부분 이 룬을 지니고 있죠.”
해당 클랜원은 [신앙심]이라는 신성 계열 보조룬에 대해서 언급했다.
[신성증폭]이 신성력의 양을 보조하는 룬이라면, [신앙심]은 그 퀄리티와 발현 과정을 돕는 룬.
타 계열 홀더들이 신성력을 사용할 수 있음에도 신성 계열만큼 효과적으로 사용하지 못하는 이유가, 이러한 보조룬들이 없기 때문이었다.
“아마 루덴아크 학파 일원들은 신앙심 룬을 보유하고 있을 확률이 높습니다.”
그는 묻지도 않았는데 이런 견해까지 내보였다.
내가 난데없이 신성 계열 관련 룬들을 묻는 이유.
이를 눈치챈 것이다.
“박정민 홀더도 루덴아크가 악성향 신의 힘을 빌려왔다고 생각하는군요.”
“그렇습니다. 그들이 펼치는 검은색 마력엔 분명한 신성력이 담겨 있습니다. 기존에 흑마법으로 불리던 룬만으론 설명할 수 없는 체계죠. 아마 마스터께서 일전에 언급한 악마라는 존재도 그런 내용의 연장선일 겁니다.”
루덴아크 학파 일원들의 공통적인 룬들을 보면 크게 세 가지가 있다.
[루덴아크 주문], [흑마법], [어둠의 서약].
이중 첫 번째는 주문법에 관한 룬.
두 번째는 어둠속성 마법을 발현하는 룬.
그리고 세 번째가 바로 ‘악성향 신’과 연관된 룬이다.
‘아마 어둠의 서약 룬이 저들과 평범한 신성 계열을 가르는 열쇠겠지.’
[어둠의 서약]이 없었다면, 루덴아크의 일원들은 평범한 마법사 및 신성 계열의 멀티 홀더들이었을 것이다.
즉 신의 종류만 다를 뿐, 그들도 신성 계열 보조룬은 보유하고 있다는 것.
그건 어제 아퀼렌을 죽인 후 획득한 룬만 봐도 알 수 있었다.
[결투에서 승리했습니다! 룬 사냥꾼의 신묘한 힘으로, 상대방의 룬 하나를 복제할 수 있습니다. 복제할 룬을 선택해주세요.]
[‘광기의 신앙심’ 룬을 선택하셨습니다. 20레벨의 에픽룬이기에 레벨이 하락해, 10레벨로 등록됩니다.]
[룬의 성향으로 신성을 6, 정신을 2 획득합니다.]
<룬 정보>
◎이름: 광기의 신앙심
◎등급: 에픽(Epic)
◎레벨: 9
◎새겨진 부위: 가슴 (중복)
◎특수효과
1) 신성력의 발현이 상당히 매끄러워진다. ‘마력제어’ 룬의 레벨이 높을 경우, 마력에 신성력을 덧대는 것 또한 자유롭게 펼칠 수 있다.
2) 신앙을 약속한 신과의 감응도가 급격히 높아지며, 해당 신과 관련된 룬의 성능을 20% 이상 끌어낼 수 있다. (*만약 관련 룬이 없다면, 이 효과는 적용되지 않는다.)
3) 악성향 및 어둠속성 신, 혹은 악마와 계약했을 때 룬의 진정한 힘이 깨어난다. (*봉인 상태)
◎파생스킬
[디바인 블레스]
◎세부정보
: 어긋난 신앙심을 지닌 몇몇 특이 존재들의 마음가짐. 그들은 신을 향한 맹목적인 믿음이 때론 집착이 되어 돌아온다는 사실을 잊고 있다. 광기 어린 신앙심을 계속 붙들고 있다면, 언젠가 그 이면에 잡아먹히게 될지도 모른다.
원래라면 노멀룬인 [신앙심]을, 아퀼렌은 무려 에픽 등급 [광기의 신앙심]으로 보유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 룬은 불길한 룬 네임과 세부정보의 설명 그대로, 루덴아크 학파원들이 사용하는 [어둠의 서약]과 호환성이 높은 룬이었다.
그 때문에 핵심 효과로 보이는 3번 특수효과는 쓸 수도 없었고, 마땅히 신앙을 맺지 않은 내겐 2번 특수효과도 무의미했다.
‘…그래도 꼭 필요한 룬이야.’
그러나 지금의 내겐 이보다 더 필요한 룬이 없었다.
일단 신성력을 매끄럽게 발현할 수 있다는 1번 효과가 매우 중요하다.
루덴아크 학파와 황성연을 상대하는 데에 있어 가장 필요한 건 신성력의 발현과 응용인데, 나는 그동안 이 부분을 아이템으로 충당해왔다.
이제 와서 신성 계열 룬을 얻어봤자 효율적으로 키울 자신도 없고, 그럴 시간도 너무 부족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효과 좋은 고레벨의 에픽룬이 보조해준다면 이야기가 또 다르다.
그간 [구도자의 땀방울]과 룬 획득 능력치를 통해 신성 능력치도 꽤 높은 수준까지 키워왔기에, 발현만 매끄럽게 된다면 신성력을 자유롭게 활용할 자신이 있었다.
게다가.
‘디바인 블레스. 이 스킬도 사기야.’
파생스킬인 [디바인 블레스]는 보유 신성 수치를 10분간 30% 상승시키는 스킬이다.
지금 내가 보유한 신성 수치가 76이니까…
스킬을 사용하면 대략 99의 수치까지 상승한다.
거기에 능력치 상승 전용 스킬인 [광폭화]와 [용인화]까지 사용하면 신성 수치는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할 수 있었다.
신성력과 신성 수치가 거의 필수적으로 요구되는 지금 상황에서, 이러한 룬과 스킬의 보조는 정말 천금 같은 일이었다.
아우우우-!!
구구구구-
어쨌든 그런 복잡한 정비 과정이 지난 후.
곧바로 일어난 전투가 지금이다.
엄청난 속도로 달려가는 제이텐과…
그 위에서 신성력을 발현 중인 나.
나는 [광기의 신앙심]을 활용해, 손에 든 검에 신성력을 잔뜩 붓고 있었다.
게다가.
‘제이텐.’
-예, 주인님.
‘너한테 전투 관련 룬을 부여할 건데, 바로 사용할 수 있겠어?’
-최대한 전투에 도움이 될 수 있도록 해보겠습니다.
‘좋아.’
돌진 중인 제이텐에게 새로운 룬까지 부여한다.
이미 자신만의 전투 스타일이 잡힌 제이텐에게 큰 의미가 없는 룬들일 수도 있지만, 스켈레톤과 같은 C급 괴수들을 상대할 땐 오히려 세밀함을 채워줄 수도 있는 룬들이었다.
[‘사슴의 얼음뿔(레어/Lv.6)’ 룬을 계약자 ‘제이텐’에게 부여합니다. 해당 룬이 홀더 정보에서 삭제됩니다.]
[‘이글거리는 불꽃(레어/Lv.10)’ 룬을 … … ]
[‘경직의 눈동자(레어/Lv.8)’ 룬을 … … ]
[‘전투치유(레어/Lv.7)’ 룬을 계약자 ‘제이텐’에게 부여합니다. 해당 룬이 홀더 정보에서 삭제됩니다.]
[이글거리는 불꽃]은 오랫동안 내 마력 공격의 한 축이 되어줬던 룬이지만, [엘리멘탈 마스터] 룬이 생기면서 자연스럽게 활용 가치가 떨어진 룬이었다.
비록 제이텐이 마력을 다루는 데에 익숙하진 않지만, 몸 주변에 자연스럽게 불꽃을 끌어올리는 것만으로 이러한 난전 상황에선 큰 힘을 발휘할 수 있었다.
[전투치유] 역시 [잊혀진 용기사의 긍지] 특수효과 때문에 큰 의미가 없었고, [경직의 눈동자]와 [사슴의 얼음뿔]은 애초에 나와 잘 맞지 않는 형태의 룬들이었다.
나는 이러한 4개의 룬을 제이텐에게 부여하며, 최대한 전투의 다양성을 높였다.
그리고.
가각- 가각-!
가가가각-!!
아우우우-!!
수천의 군세와 제이텐의 몸이 부딪혔다.
제이텐은 가장 처음 맞닥뜨린 스켈레톤의 어깨를 그대로 밟고 도약하며 적진 한가운데로 뛰어들었다.
그의 발과 다리엔 불꽃이 피어오르고, 머리엔 날카로운 얼음이 솟는 특이한 모습이 펼쳐졌지만… 다대일 전투에서 이러한 마력 공격들은 꽤나 큰 효과를 발휘했다.
움직이기만 했을 뿐인데 벌써 스켈레톤 4마리가 타격을 입었다.
-주인님. 얼음과 불, 좋은 것 같습니다.
‘그치? 나도 걔네 엄청 좋아해.’
제이텐도 꽤 만족하는 것 같아 맞장구를 쳐줬다.
-예?
‘아무것도 아니야. 제이텐, 이대로 오른쪽으로 돌아. 이번엔 아래로 파고들어. 내 검이 닿을 수 있게.’
-알겠습니다.
제이텐의 돌격이 마치 급브레이크가 걸린 듯 멈춘다.
그리고 그 반동이 끝나기도 전에…
튕겨가듯 오른쪽으로 도는 커브!
꽤 오랫동안 호흡을 맞춰온 덕에 제이텐의 질주도 이젠 경주 차량을 모는 것처럼 부드러웠다.
딱딱 맞아떨어지는 서로의 움직임에 쾌감이 이른다.
나는 그대로 [참회자의 검]에 신성력을 듬뿍 발라 마주치는 적을 모조리 베어넘겼다.
가각- 가가각-!!
카아앙-!!
스켈레톤 다섯, 듀라한 둘, 구울 셋.
하늘에선 스펙터 두 마리를 베었고, 땅속에서 튀어나온 레버넌트 한 마리 또한 즉사시켰다.
[광기의 신앙심]을 통해 자유로운 신성력 배분이 가능해진 난 그야말로 적들을 파도처럼 쓸어갔다.
특히 내 보유 룬 중엔 저주 계열과 싸울 때 위력이 증가하는 효과가 꽤 많고, 아이템 [참회자의 검]은 한 술 더 떠서 언데드를 상대할 때 성능이 50% 증가한다.
우리의 사방이 적들로 둘러싸여 있음에도…
아랑곳 않고 거침없이 활보할 수 있는 이유였다.
가각- 가가가각-!
캉- 캉- 카강-!!
아우우우-!!
베고, 베고, 또 벤다.
벌써 세기도 힘든 수의 언데드들이 산을 이루듯 쌓여간다.
제이텐 역시 새로 얻은 룬과 원래 자신의 힘을 잘 융화시켜 나름대로 적들을 잘 사냥해갔다.
덕분에 우리는 적진 한가운데로 뛰쳐들어왔지만, 전혀 위기에 처한 것 같지 않은 모습을 보였다.
우리의 활약은 의미 없는 몸짓이 아니었다.
“마법사 계열 전원, 광역 공격 마법 투하!”
“마스터를 보좌하라!!”
“언데드들을 모조리 쓰러뜨려라!”
리스크의 리턴은 확실하게 돌아왔다.
시간을 벌어준 만큼 클랜원들은 금세 근처까지 도착했다.
마법사 계열들은 적들을 섬멸할 광역 마법 시전을 준비했고, 전사 계열들은 너나 할 것 없이 전장으로 뛰어들며 날 돕기 시작했다.
이제부터…
완전한 전면전의 시작이었다.
그리고.
카가가강-!!
어디선가 해골 기사 하나가 바람처럼 날아와 내게 검을 맞댄다.
중무장한 갑옷과 거대한 투구.
그 사이로 비치는 붉은 빛의 안광.
방금까지 상대한 잡졸들과 비교도 안 되는 기세와 마력량.
최소 S급 괴수일 확률이 높은…
데스 나이트의 등장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