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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카데미 사기 룬을 얻었다 (289)화 (289/353)

제6구역 - 죽음이 닿은 땅 (4)

데스 나이트는 본디 언데드 중에서도 악명 높은 괴수다.

그동안 각 클랜들이 공략해온 사령 관련 던전에서 종종 등장하곤 했던 괴수고, 등장 때마다 홀더 계를 깜짝 놀라게 만들었던 언데드였다.

엄청난 근력과 빠른 스피드.

출중한 검술 실력과 마력 활용.

신체 능력은 거의 짐승형 괴수들에 맞먹었고, 현란한 기술들은 전사 계열 홀더들을 꼭 빼닮아 있었다.

‘마치… 원래 인간처럼.’

이를 통해 홀더 계는 데스 나이트에 대해 확실히 정의내릴 수 있었다.

데스 나이트는 특수한 마법 처리와 연금술을 통해 ‘생전에 기사였던 존재’가 부활한 언데드다… 라고.

아무리 봐도 인간으로 보이는 전투 스타일.

변수들에 당황하지 않는 육탄전 경험.

그 외 다른 실력적 요소들을 둘러봐도 쉽게 추측할 수 있는 사실이었다.

그리고 그에 따라…

데스 나이트의 괴수 등급 또한 명확하게 측정할 수 없었다.

생전의 영혼이 얼마나 강하냐에 따라 무력이 달라지고, 제작자의 수준에 따라 육체의 강도도 달라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어떤 데스 나이트는 A급 괴수인 반면.

어떤 데스 나이트는 S급, 혹은 그를 넘어서는 등급인 경우도 있었다.

캉!

카가가-앙!!

그리고 부딪힌 검격에서 느껴지는 충격으로 난 알 수 있었다.

‘…최소 S급.’

눈앞의 데스 나이트는 적어도 S급 괴수의 실력을 지니고 있었다.

[광기의 신앙심]으로 발현해낸 신성력을 검에 듬뿍 발랐고, 부딪힐 땐 [용맹한 영원의 물결]의 묘리를 이용했었다.

즉 단순히 검을 부딪히려고 한 게 아니라, 나름 전설급 무공의 변초들을 활용하며 공격한 건데…

데스 나이트 녀석이 이를 모두 맞받아치면서 서로의 검이 부딪힌 상황이 된 것이다.

그 유연한 검술과 순간적인 판단력, 압도적인 반응속도.

심지어 내 신성력까지 모두 버텨냈다는 건 상대가 결코 보통내기가 아니라는 걸 말해줬다.

-더러운 배신자…!! 여기서 다시 만나는 구나!

그런데 맞부딪힌 데스 나이트의 상태가 이상했다.

‘뭐라는 거야?’

[언어] 룬을 타고 흘러 들어오는 녀석의 말.

거친 쇳소리가 섞여 확실히 들리진 않았지만, ‘배신자’라는 단어는 명확하게 들려왔다.

날 언제 봤다고 배신자래?

-같잖은 성직자들에게 세례를 받았다고 본질이 달라질까! 네놈은 뼛속까지 테르멘의 기사다!

연이어 들려오는 고함 섞인 말들.

당연히 알아먹기 힘든 개소리다.

보니까 날 누군가 다른 이로 착각하고 있는 것 같은데… 내 [언어] 룬 레벨이 낮아, 그의 말을 알아들을 순 있어도 의사를 전달할 수 없는 게 아쉬웠다.

채쟁-

채애앵-!!

카그그그-.

할 수 있는 건 열심히 검을 맞대고 싸우는 것뿐.

애초에 적에게 여유를 베풀 수 있는 상황도 아니었기에, 나는 온 힘을 다해 그를 척살하는 데에 집중했다.

‘연격.’

부딪힌 상태에서 몸을 아래로 뺀 후, 상대의 허리춤 쪽으로 [연격]을 사용한다.

S급 괴수인 데스 나이트에겐 아무런 효과도 없을 법한 스킬이지만, 거의 도배를 하듯 신성력이 발라진 [연격]은 평범한 스킬이 아니었다.

[광기의 신앙심], [은빛 달그림자] 등 각종 신성 계열 룬의 보조를 받고, 아이템 [참회자의 검]은 이러한 신성력에 대해 감응도가 뛰어나다.

하지만.

-소용없다!!

캉-!

하는 소리로 적 데스 나이트가 [연격]을 맞받아친다.

아까도 봤지만 정말 깜짝 놀랄 정도의 반응속도다.

‘이 새끼, 검 존나 잘 쓰네.’

극찬이 절로 나온다.

외관은 투박하기 짝이 없는 해골 기사인데, 사용하는 검술이나 움직임은 상당히 유연하고 부드러웠다.

무엇보다 신성력.

이 녀석은 신성력에 대해 마치 면역이라도 된 듯, 전혀 타격을 입지 않은 모습으로 내 공격을 막아냈다.

아니, 면역은 아니다.

신성력은 확실하게 주변의 어둠을 잡아먹으며 타격을 입히고 있다.

다만, 상성을 뛰어넘는 힘을 발휘해 억지로 이를 막아내고 있을 뿐이었다.

-테르멘의 반역자는 이 네일리드의 검에 모조리 죽는다!!

자신의 이름을 밝히며 날 몰아붙이는 네일리드.

난 살짝 수비적인 태세로 검을 막아내며 생각했다.

‘이 새끼, 말도 존나 많네….’

데스 나이트 주제에 뭐 이리 말이 많은 걸까.

게다가 자꾸 날 ‘테르멘의 반역자’라고 부르는데 솔직히 뭔 말인지 하나도 못 알아먹겠다.

그래도 어쨌든 녀석이 평범한 전사가 아니라는 건 충분히 알겠다.

가진 바 능력도 출중하고, 신성력에 버티는 힘도 갖췄다.

일반적인 방법으론 죽이기 쉽지 않은 상대였다.

-주인님, 말씀하신 대로 길을 터놨습니다.

‘잘했어, 제이텐.’

-저는 이제 한계입니다. 사방에 적들이 너무 많습니다.

‘그래. 돌아가도 좋아.’

[계약자 ‘제이텐’이 ‘계약의 법칙’ 룬의 파생스킬, ‘긴급탈출’을 사용했습니다.]

그래서 나는 더 확실하게 놈을 죽일 방법을 준비했다.

제이텐이 [긴급탈출]을 써야 하는 상태까지 다다르며 만들어낸 일직선의 길.

그 사이로 눈처럼 새하얀 여자가 다가오고 있었다.

그리고.

“한 떨기 꽃을 피워라.”

그녀의 트레이드 마크 궁극스킬이 발현된다.

[설원유섬낙화].

일순간 자신의 몸과 검에 마력을 폭발시켜, 춤을 추듯 적을 공격하는 스킬.

그 움직임은 빠르지만 너무 부드러워서, 마치 적들로부터 새하얀 눈송이 꽃들이 피어나는 듯한 외양을 보였다.

스승님, 유은설.

그녀가 내가 있는 전장 한가운데로 도착한 것이다.

-크으, 으아악…!!

네일리드가 곧바로 고통에 겨운 비명을 질렀다.

아무리 S급 이상의 괴수라고 해도, S급 홀더가 펼쳐내는 극강의 궁극스킬은 쉽게 막아낼 수 없다.

나 또한 저 공격을 막아내기 힘들 것 같은데, 하물며 별다른 방어 수단을 갖추지 않은 데스 나이트는 더했다.

‘신성력이 안 통하면 마력으로 찍어 누르면 되지.’

신성력은 어디까지나 보조 수단이다.

어둠속성의 괴수들을 상대할 때, 그들을 압도할 수 있을 만한 마력 공격을 펼쳐낼 수 있다면…

굳이 신성력은 필요치 않았다.

“재현, 괜찮나요?”

네일리드에게 타격을 입힌 스승님이 내 쪽으로 오며 여유롭게 물었다.

“괜찮습니다. 다른 클랜원들은…”

“후방 인원을 제외하고 전원이 안쪽으로 파고들어 왔어요. 특히 재현이 진형을 흐트려놓은 탓에, 광역 마법이 구역마다 효과적으로 들어가고 있어요.”

빠르게 현 상황을 설명해주는 스승님.

그녀의 말처럼 곳곳에선 클랜원들의 광역 마법이 터지는 소리가 들려왔다.

전사 계열 클랜원들은 어느새 우리가 있는 곳까지 도착한 후 주변을 지키고 있었다.

“이젠 같이 싸워요. 혼자 싸우기엔 너무 많은 수예요.”

스승님의 그 말에 나도 고개를 끄덕였다.

솔플은 여기까지면 충분했다.

-테르멘의 배신자를 내 손으로…!!

카각-!!

아직도 테르멘이 어쩌고 하는 헛소리를 내뱉는 네일리드의 가슴팍에 [참회자의 검]을 꽂는다.

이미 스승님의 [설원유섬낙화]에 만신창이가 된 언데드에게, 신성력이 종합세트처럼 담긴 검격은 치명상.

거침없이 날 몰아붙이던 데스 나이트의 허무한 최후였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 일어났따.

구동장치 역할을 하는 놈의 마력석에 검을 꽂았을 때, 문득 [참회자의 검]이 묘한 빛으로 물들었다.

흰색과 검은색이 어우러진 독특한 빛깔.

그건 마치…

데스 나이트에게 감싸져 있던 짙은 어둠이 검 안으로 빨려들어와 흡수되는 듯한 느낌이었다.

‘뭐지?’

너무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라 제대로 된 분석이 안 된다.

단순히 데스 나이트가 죽을 때 나타나는 기현상인 건가?

아니면, 루덴아크 학파가 남겨놓은 어떤 마법적인 처리가 검에 닿은 건가?

별의별 생각이 다 들었지만…

안타깝게도 여기에 더 시간을 쏟을 여유가 없었다.

“재현, 앞에!”

“예!”

아마 군단 내에서 가장 강력한 존재인 네일리드를 죽였지만, 아직 우리 앞엔 수천의 언데드들이 남아있었다.

* * *

몇십?

아니, 몇백의 언데드들을 쓸어넘겼을까.

다 세기도 힘든 수의 괴수들과 그 잔해들이 산처럼 주변에 쌓여갈 때쯤, 우리는 기이한 현상을 발견할 수 있었다.

“적들이 물러납니다!!”

압도적인 물량의 군세로 전투를 이어가던 언데드 군단.

그들이 한순간 물러서기 시작한 것이다.

천천히, 조금씩 움직이다가…

이내 돌격이라도 하듯 아예 등을 돌려 달아난다.

마치.

누군가에게 ‘퇴각 지시’라도 받은 것처럼.

“당장이라도 쫓아야…!!”

“그만. 멈추겠습니다.”

나는 간단히 손을 들어 정지 신호를 보냈다.

몇몇 전사 계열 클랜원들이 흥분에 가득 차 저들을 추격하길 원하는 것 같지만, 크게 의미가 있진 않다고 생각했다.

어쨌든 우리가 제6구역 <죽음이 닿은 땅>에 온 목표는 구역의 공략과 루덴아크 학파원들의 척살, 혹은 관련된 실마리를 더 잡아내는 것.

여기서 언데드 몇 마리 더 잡는다고 달라지는 건 없었다.

“잠시 정비하고 출발하겠습니다.”

그보다 중요한 건 휴식과 앞으로의 계획.

때문에 난 클랜원들을 진정시키며 정비 시간을 갖기로 했다.

별다른 준비도 없이 갑작스러운 전투를 오래 치른 만큼 충분한 휴식이 필요했다.

“마스터. 이걸 좀 보셔야겠습니다.”

그리고 던전 내 한쪽에서 앉아 쉬고 있을 때.

2팀 팀장인 임현 홀더가 날 찾아와 말을 건넸다.

이걸 좀 보셔야겠다.

그렇게 말하는 그의 손엔, 웬 거무튀튀한 빛깔의 마력석 하나가 얹어져 있었다.

“5팀 팀장 박진우 홀더가 처치했다는 데스 나이트의 마력석입니다. 일종의 구동 장치 역할을 하는 심장 같은 건데… 확실히 죽였는데도 이상하게 이런 어두운 기운이 맴돌고 있습니다.”

묘하게 어두운 기운이 일렁이고 있는 마력석.

그건 분명…

아까 [참회자의 검]에 빨려들어온 기운과 똑같은 형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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