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아카데미 사기 룬을 얻었다 (292)화 (292/353)

흩어져도 잘 산다 (1)

나는 머리를 긁적이며 주변을 둘러봤다.

미로에 갇혔다.

그것도 괴수들을 상대하며 출구까지 찾아야 하는 미로에.

“…….”

사건의 발단은 갑작스러웠다.

성검을 들고 신나게 언데드 군단을 척살하고 다니고 있었는데, 문득 클랜원들이 디디고 있는 바닥에 마력이 집중되며 땅이 무너져 버렸다.

특수 지형 변화는 후방 인원들부터 집어삼키며 천천히 전 지역을 잠식했고, 이내 권역 내에서 벗어났던 전사 계열 클랜원들까지 모조리 휘말리게 됐다.

한 마디로 그 자리에 있던 클랜원들 모두가 결국은 미로로 빠져든 것.

당시 나는 티르본드에 타고 있어서 그 변화로부터 자유롭긴 했지만, 곧장 티르본드에서 내려 그 중심 속으로 걸어들어갔다.

애초에 혼자 남아 <죽음이 닿은 땅> 구역을 공략하는 것 자체가 불가하기도 하고, 내 연인들과 클랜원들이 모두 미지의 영역으로 빠져드는데 그걸 가만히 지켜만 볼 순 없으니까.

[‘죽음이 닿은 미로’에 발을 디딥니다. 구역의 소유자가 만들어낸 특수 구역입니다. 구역을 작동시키는 마력의 결집 지점을 찾아야만 탈출할 수 있습니다.]

그렇게 빨려 들어온 곳이 이 미로.

최대한 연인들이 있던 4팀 쪽으로 떨어져 들어오려고 했는데, 결과는 좋지 않았다.

그녀들이 있는 곳에 도착하긴커녕, 다른 어떤 클랜원도 주변에 없었다.

마력이 집중되며 지형이 변화하던 시점에 같은 장소에 있었어야 함께 갈 수 있는 건지, 홀로 들어왔던 나는 미로 속에서도 혼자였다.

당연한 얘기지만…

이는 전혀 바람직하지 않은 구조였다.

“…클랜원들이 걱정인데.”

혼자 떨어진 건 문제가 안 된다.

애초에 나야 워낙 솔플이 익숙한 홀더고, 실제 보유 능력 자체도 멀티 홀더로서 다양한 역할군을 갖췄으니까.

하지만 다른 클랜원들, 그중에서도 4팀이 문제였다.

그나마 다른 팀들은 정비가 끝난 상황이라 팀끼리 모여 있는 상태에서 떨어졌는데, 4팀은 전투가 막바지였던 상황이라 함께 뭉치지 못했다.

전사 계열은 전사 계열끼리 떨어졌고, 후방 인원은 후방 인원대로 떨어졌다.

일반적인 파티 구성을 갖추는 것부터 난관이 돼 버린 것이다.

“꼬였네.”

사실 너무 쉽게 풀린다곤 생각했다.

<이탈자의 방>은 지금껏 홀더 계에서 공략해온 던전 중 유례없을 정도로 규모가 큰 던전이다.

루덴아크 학파라는 특정 단체가 전체 영역을 소유하며 ‘적응’에 성공한 던전.

그 안에 무수히 많은 구역들이 설정돼 있고, 해당 구역들을 공략한다 해도 던전의 끝이 나오지 않는다.

앞으로 얼마나 더 많은 구역이 남아있을지도 모르고, 어떤 함정이 숨어있을지도 모른다.

하다 못해 당장 인간들이 던전에 침입했단 사실을 루덴아크 학파 또한 눈치챘을 텐데, 그에 관한 어떤 대응도 나오지 않고 있었다.

각 구역을 순조롭게 공략하고, 언데드들을 사냥하곤 있었지만… 그런 과정이 너무 쉽게 이어지고 있던 것이다.

“제대로 한 방 먹었어.”

그런 면에서 <죽음이 닿은 미로>는 우리에게 거하게 한 방 먹이는 함정이었다.

너무 순조로운 공략 도중 갑작스러운 함정.

어딘가의 소설에나 나올 법한 전개였다.

게다가 이 미로는 구역 소유주인 데이브의 특수 마법과 구역 자체의 지리적 특성이 결합돼 만들어진 함정일 확률이 높다.

단순 마력만으로 만들어진 함정이라고 치기엔, 고위 홀더들로 구성된 <이블 헌터> 클랜원 전원이 빠져들었으니까 말이다.

일종의 ‘구역 기믹(Area Gimmick)’이라고 봐도 무방했다.

“…괴수들 수준도 갑자기 확 올라갔고 말이야.”

나는 주변을 둘러보며 중얼거렸다.

정신을 차려 보니 어느새 날 둘러싼 언데드들.

그 생김새와 무장 수준은…

누가 봐도 그들이 ‘데스 나이트’임을 말해줬다.

-테르멘의 반역자!!

-네놈은 내가 죽이겠다…!!

-반역자에게 처단을!

한결 같은 대사에 헛웃음이 절로 나온다.

그 와중에 모여든 녀석들은 전부 테르멘 출신인가 보다.

하여간 켈빌리드 자식.

신의 권능을 빌려 쓴 놈답게 적도 참 많았다. 

“그래. 일단 쓰러뜨리고 보자.”

나는 성검, [켈빌리드의 진정한 회개]를 들며 말했다.

어쨌든 낙하지점만 달랐을 뿐, 미로는 하나로 연결돼 있을 거다.

이건 마력 변형 현상이 동시에 일어났기에 가능한 추측.

그 때문에 난 당장의 단기적인 목표를 세웠다.

그건 이 빌어먹을 언데드 놈들을 일단 닥치는 대로 잡고, 흩어진 클랜원들을 한데 모으는 것이었다.

* * *

“다들 괜찮으십니까?”

박진우는 최대한 침착함을 유지하며 말했다.

갑작스럽게 변화한 지형과 공간.

특수 함정의 확률이 높은 <죽음이 닿은 미로>.

당황하지 않았다면 거짓말이지만, 그는 이제 한 사냥팀의 팀장.

위기 속에서도 팀원들을 먼저 챙기는 게 우선이었다.

“이상 없습니다.”

“문제없어요, 팀장.”

“괜찮습니다!”

5팀 팀원들은 신뢰가 가득한 눈빛을 보내며 답했다.

사실 사냥팀 팀장들 중에서 가장 어린 A급 홀더에, 유일한 학생 홀더라서 그런지 클랜에서 일종의 막내팀장 취급을 받는 박진우지만… 5팀 내 팀원들의 신임만큼은 절대적인 편이었다.

그 이유는 간단했다.

늘 선봉에 서서 압도적인 전투력을 선보이는 박진우 본연의 무력과 <파문 공격대> 부공대장 시절부터 쌓아온 단단한 리더십, 클랜 전술을 확실하게 이행하는 행동력까지.

어리다는 것만 빼면 팀장으로서 전혀 모자랄 게 없는 박진우였다.

무엇보다 제1구역 <버려진 연구소>에서의 전투.

갑작스럽게 등장한 ‘인간 키메라’에 팀원들 모두가 망설이고 있을 때, 과감하게 앞으로 나서며 적을 처단하던 결단력.

그 강렬했던 이미지는 사냥 5팀의 결속력을 확실히 끈끈하게 만들어줬다.

“다행이네요.”

안도의 한숨이 절로 나온다.

갑작스러운 마력 변동에 살짝 어지러움을 표하는 팀원은 있었지만, 다행히 다들 전투에 지장이 갈 정도의 부상은 없는 것 같았다.

그렇다면 지체할 이유가 없다.

박진우는 곧장 팀원들에게 새 지시를 내렸다.

“아무래도 이 미로는 제6구역 내에 구성된 함정 구역인 것 같습니다. 정보창에 있는 내용대로라면 특정 지점을 찾아야 탈출할 수 있으니, 다들 바로 이동할 준비를…”

아니, 내리려고 했다.

시선을 돌리다 마주친 한 남자를 보기 전까진.

“…아빠?”

“그냥 협력 홀더입니다, 박진우 팀장님.”

S급 홀더이자 자신의 아빠인 박지환이 바로 옆에 있었다.

아니, 이 사람이 여기 왜 있어?

황당한 얼굴로 바라봤지만, 그는 멋쩍은 표정으로 머리를 긁적이며 해명했다.

“박진우 팀장님 잘 이끌고 계시는지 보려고 잠깐 5팀 쪽에 왔었습니다. 알다시피 당시 상황이 좀 여유로웠잖습니까. 그런데 갑자기 이상 현상이….”

“…….”

한 마디로 아들 잘하고 있나 보려고 구경왔다가, 함정에 같이 휩쓸렸단 뜻이다.

“엄청 편한 설정이네요.”

“세상 일이 다 그렇죠.”

“원하시면 지휘권 넘겨드리겠습니다.”

“어허! 무슨 소립니까, 그게. 하던 대로 하십시오, 하던 대로. 저도 원래 하던 프리롤로 5팀을 보조하겠습니다.”

어색한 존댓말을 써가며 손사래를 치는 박지환.

그 모습을 빤히 바라보던 박진우는…

이내 한숨을 쉬며 다시 오더를 내렸다.

“그럼 바로 출발하겠습니다. 우선, 궁수 계열인 유현석 홀더가….”

그러나 이번에도 오더는 끝을 맺지 못했다.

“팀장님! 뒤에서 마력 공격이…!!”

마력 탐지에 능숙한 궁수 계열 클랜원의 다급한 외침.

급습은 순식간이었다.

콰, 콰아앙-!!

콰가- 콰가가-!!

엄청난 폭발이 사냥 5팀을 덮쳤다.

<죽음이 닿은 미로>는 지상이라고 봐도 될 정도로 커다란 넓이와 길이를 자랑하지만, 어찌 됐든 그 구조 자체는 벽이 존재하는 일종의 방.

불속성 마력 공격과 폭발이 동시에 펼쳐질 때의 위력은 상상을 초월했다.

“끄아아악!!”

“현석준! 빌어먹을…!!”

“지은미 홀더! 빨리 큐어를…”

“지금 하고 있어요!”

팀원들 대부분이 빠르게 방어를 펼치고 공격을 피했지만, 화마에서 벗어나지 못한 팀원이 꽤 많았다.

그중 마법사 계열 한 명은 아예 다리를 못 움직일 정도로 큰 부상을 입었다.

신성 계열 클랜원이 재빨리 붙어 치료를 시도하고 있지만, 미로에 들어오자마자 바로 맞닥뜨린 파괴적인 공격에 팀원들이 모두 혼란스러워하고 있었다.

“빌어먹을….”

박진우는 입술을 질끈 물며 검에 손을 올렸다.

감히 자신의 팀원을 죽일 뻔한 언데드 새끼들을, 단숨에 베어버리려는 생각이었다.

하지만.

탁-.

거칠고 뭉툭한 손길이 그의 손목을 붙잡았다.

돌려진 시선 속엔 익숙한 얼굴이 잡힌다.

아까의 장난끼는 온데간데없는 아빠, 박지환이었다.

박지환은 굳은 얼굴로 전방에 시선을 놓지 않으며 말했다.

“리치다.”

“리치요?”

“그래. 이 정도 마력 공격을 단기간에 펼칠 언데드는 리치밖에 없어. 그러니 섣불리 움직이지 마라. 까딱하면 팀장인 네가 당할 수도 있으니.”

그렇게 말한 박지환은 힐끔 뒤쪽을 살폈다.

그리고 그곳엔.

리치만큼이나 위험한 언데드, 데스 나이트들이 몰려오고 있었다.

“진우 넌, 저 앞의 데스 나이트들을 상대해라. 네 쾌검이라면 충분히 시간을 벌 수 있다.”

“그럼 리치는…”

“내가 상대한다. 그리고 진우야.”

촉박한 시간 속에서도 아들과 시선을 맞추는 박지환.

그는 확신에 찬 눈빛으로 말했다.

“잊지 마라, 네가 가진 구도자의 힘을. 최악의 위기 속에선, 그게 언제나 상황을 타파하는 열쇠가 될 거다.”

S급 홀더 박지환.

그는 S급 홀더이기 이전에, 박진우가 각성했던 ‘구도자의 힘’을 먼저 깨우친 홀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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