흩어져도 잘 산다 (3)
네크로맨서.
강령술사 혹은 사령술사라고도 불리는 특수 계열.
일반적으로 사령 혹은 언데드로 불리는 괴수들과 계약을 맺는데, 그 능력의 범위가 넓다면 종종 데스 나이트, 리치, 심지어 뱀파이어와 같은 특별하고 강력한 괴수들과도 계약을 맺기도 한다.
그런 힘을 지닌 국내 홀더로는…
전 <빌런> 클랜의 마스터, 황동연이 대표적 케이스.
사실 빌런 대소탕 작전이 있기 전까진 그의 능력 자체가 베일에 싸여 있었기에, 그가 사령술사라는 게 잘 알려져 있지 않았었다.
하지만 작전 당시 섬을 가득 메웠던 언데드 군단과 그 통솔 능력, 심지어 [융화의 질서]를 거의 완벽히 다루는 모습에 학계에선 “실력만큼은 국내 탑이었다”고 평가를 내렸었다.
‘죽음의 군단장 룬부터 사기니까.’
지금은 나도 보유하고 있는 [죽음의 군단장] 룬.
이 룬은 다수를 지휘할 때 능력치가 상승하고, 계약할 수 있는 ‘사령의 숫자’에 제한이 없어진다.
계약 유지 마력만 충분하다면, 사령들을 몇 십이고 몇 백이고 부릴 수 있는 것.
황동연은 과거 이 룬을 자신의 주력룬으로 삼으며, 군단급 언데드 수를 부리는 위용을 보였었다.
그가 보여준 전투 시간이 굉장히 짧고, 그마저도 본드를 나한테 허무하게 뺏기며 연합군에게 발리긴 했지만…
어쨌든 국내 최고의 네크로맨서로 평가 받았던 건 그런 막강한 힘을 보였기 때문이다.
‘…난 제대로 못 쓰지만 말이야.’
아쉽게도 난 이 룬을 제대로 쓸 수가 없다.
[죽음의 군단장] 룬은 그 힘 자체가 ‘사령’과 계약했을 때 큰 효과를 보이는 룬.
하지만 현재 난 계약 중인 사령이 단 하나도 없다.
원래는 본 드래곤과 임시 계약을 맺었었지만, 그마저도 이 녀석이 티르본드로 각성하며 ‘사령을 벗어난 완전한 아룡’의 형태로 바뀌었기에 다시 제로가 됐다.
물론 그렇다고 사령 계약에 아예 생각이 없는 건 아니다.
어쨌든 [용언이 맺은 약속] 룬은 조련, 정령, 사령 계약을 모두 가능케하는 전설급 계약룬이고, [죽음의 군단장] 룬이 있는 이상 사령 계약엔 전혀 제한이 없으니까.
계약만 한다면 언데드들도 내 홀더 전력에 큰 도움이 될 게 분명했다.
‘…계약이 가능하다면 말이지.’
계약이 가능하다고 해서 모두 실행으로 이어지진 않는다.
계약은 결국 해당 계약자와 홀더인 내가 서로 동의해야 맺어지는 것.
내가 사령들을 계약자로 삼고 싶어도, 그들이 거부한다면 계약은 실패로 끝난다.
그리고 <죽음이 닿은 땅>에서 마주한 언데드들은…
거의 모두가 나와의 계약을 거부했다.
‘신성 수치가 너무 높아도 문제네.’
본드와 계약할 때와는 달리…
지금의 내 신성 수치는 너무 높아졌기 때문이다.
[어둠의 서약] 혹은 악성향 신 계열 룬을 보유하지 않은 상태에서 신성력이 높다면, 사령들은 이를 무조건적인 적으로 판단하고 계약을 거부한다.
기본적으로 신성력 자체가 어둠 쪽에 물들지만 않으면 빛속성을 띄기도 하고, 내가 지금 사용하는 성검조차 그런 성향을 가지고 있으니까.
그래서 던전에 들어온 후 사령들과의 계약은 구경조차 할 수 없었다.
“이 미로에 나오는 언데드들은 모두 계약된 사령들. 맹약자님이 미로 안을 헤맬 때마다, 땅 속에 숨은 네크로맨서가 계속해서 이들을 소환하고 있는 겁니다.”
어쨌든 나와는 달리 사령들과 대량 계약을 한 술사.
아스는 그런 네크로맨서의 존재를 확신하며 내게 현 상황을 설명했다.
나는 턱을 매만지며 곰곰이 생각하다 물었다.
“그럼 네크로맨서는 한 명인 거야?”
“현재 파악되는 바로는 그렇습니다.”
“한 명이 이 정도로 많은 언데드들 다룬다고?”
나와 제이텐이 미로 속을 헤매며 사냥한 언데드 수만 100이 넘어간다.
이 정도로 많은 수와 계약을 맺었다는 게 믿기지 않았지만, 아스는 확신에 찬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맹약자님께서도 그 방법을 잘 아시잖습니까.”
“아.”
[죽음의 군단장].
계약 가능한 사령의 수에 제한이 사라지는 룬.
아무래도 이 네크로맨서 또한, 그 룬을 보유한 모양이었다.
“맹약자님께서 워낙 빠른 시간에 사냥을 마치셔서, 소환 유지에도 마력 소모가 크지 않았을 겁니다.”
그리고 내가 언데드들을 신나게 쓸어제끼고 다닌 탓에, 유지에도 큰 마력이 들지 않았을 거라는 추측.
그에 나는 헛웃음을 지었다.
“오히려 도움을 준 꼴이네.”
“그래도 당황했을 겁니다. 사령을 소환하는 속도보다, 사냥하는 속도가 훨씬 더 빨라버렸으니까요. 그래서….”
아스는 말을 하다 말고 순간 마력을 집중시켰다.
그에 문득 허공에서 물방울 하나가 생겨나더니…
이내 기다란 물줄기가 되어 바닥을 뚫고 들어갔다.
아까 아스가 말했던 지점, ‘네크로맨서의 현 위치’라고 언급했던 곳이었다.
“이렇게 쉽게 위치까지 드러낸 겁니다. 마력을 숨기는 게 허술해져서 말이죠.”
쏴아아아-!!
파밧- 파바밧-!
콰, 콰가가-
거대한 물줄기가 폭포처럼 바닥을 꿰뚫고, 거침없이 안쪽을 파고들어간다.
물이 땅을 뚫으며 들어가는데 그 소리가 마치 대포라도 터진 듯한 굉음이었다.
그 광경을 지켜보며 나도 혀를 내둘렀다.
‘…살벌하네.’
말이 물줄기지 저거 완전 살인병기다.
[마력제어]와 물속성 마력룬을 거의 마스터한 수준의 마법은 기세만으로 미로 내부를 진동시켰다.
게다가 물 안에 담긴 마력량 또한 엄청나서, 정통으로 맞으면 정말 골로 갈 것 같은 급류였다.
그렇게 아스의 물 마법이 펼쳐지고 얼마 후.
폭발적인 물줄기는 기어코 바닥 아래 가장 깊숙한 곳까지 침투하며, 우리가 찾고 있던 대상을 가볍게 건져 올려냈다.
“풉푸, 푸아아…!! 으아아-! 어떤 미친 놈들이…!!”
짙은 검은색 머리카락의 한 남자가 바닥에서 치솟는다.
그렇다.
남자…
언데드가 아닌, 인간이다.
던전에 거주 중인 루덴아크 학파의 일원일 확률이 높단 뜻이었다.
나는 놈을 보자마자 조금도 망설이지 않았다.
그대로 자리를 박차고 뛰어들어, 그를 향해 성검을 찔러들어갔다.
즉각 반응한 탓에 마력을 담진 못했지만, 반응하기 어려운 속도와 신성력으로 승부를 본다.
“흡…!!”
카아앙-!!
그, 그그그-.
분명 네크로맨서가 반응할 수 없는 속도였다.
달리 [마력 방어막]을 만들기도 어려웠던 시간.
하지만 상대의 옆구리 쪽에 자연스럽게 모여든 ‘검은색 마력’은 내 찌르기를 단단하게 막아냈다.
루덴아크 놈들의 전매특허, [블랙 쉴드]였다.
“이, 이 괴물 새끼가…!!”
이 새끼, 당황했다.
단지 [블랙 쉴드]의 성능이 너무 뛰어나서 자동으로 방어가 됐을 뿐, 이 녀석은 내 고속 공격에 대해 전혀 반응하지 못한 거다.
이해는 간다.
갑작스러운 물속성 마법으로 ‘숨어있던 공간’에서 끄집어내지고, 거기서 쉴 틈도 없이 연이어 검격을 몰아치니… 누구라도 당황할 만했다.
덕분에 마주친 놈의 눈빛에선 날 향한 두려움과 당혹스러움이 동시에 섞여있는 게 보였다.
“이, 일어나라!!”
판단력까지 흐려진 걸까.
아니면 지금이 유일한 기회라고 느낀 걸까.
상대 네크로맨서는 이를 악문 채로 내 앞에서 언령을 외쳤다.
그리고 이는.
나 또한 너무나 잘 아는 궁극스킬의 언령이었다.
‘데스 리바이벌.’
[죽음의 군단장] 룬의 궁극스킬, [데스 리바이벌].
미리 제작해 놓은 사령들과 ‘동시 계약’을 맺으며, 그들 전원을 단숨에 일으켜 소환하는 스킬.
일전에 빌런 대소탕 작전에서 황동연이 쓴 적 있는 강력한 계약 계열 스킬이다.
놈은 역시 예상대로 [죽음의 군단장]을 보유하고 있었다.
구어어어-.
카각- 카그그-!!
이미 다 제거됐던 언데드들의 사체를 밟고, 또 다른 언데드들이 소환된다.
얼핏 봐도 가늠하기 힘들 정도로 많은 수.
당장 내 눈앞을 모두 가릴 법한 물량이다.
아까처럼 제이텐과 함께 움직여도 되겠지만, 아스를 소환한 이상 더 좋은 방법이 있었다.
“제이텐, 들어가! 그리고 아스!”
“준비됐습니다!”
전직 드래곤의 부하답게 전투에서도 뛰어난 센스를 보여주는 아스.
그는 이미 내가 뭘 생각하는지 알고 있었다.
“뉴 웨이브!”
[소용돌이를 삼킨 파도]의 [뉴 웨이브] 스킬이 펼쳐진다.
나는 이미 한 번 썼던 스킬.
당연히 이번엔 더 강력한 아스의 스킬이다.
쏴, 쏴아아아-!!
콰가가가-!!
거대한 파도가 다시 미로 속을 덮친다.
오른쪽에서 쏟아지는 물과 왼쪽에서 파고드는 물.
다 합치면 마치 바다를 이룰 것처럼 보이는…
방대한 양의 대홍수가 일어난다.
아스는 물속성에 있어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실력을 지는 마법사고, 관련 룬 레벨과 마력을 다루는 솜씨만큼은 나와 비교하기 힘든 수준이다.
당연히 같은 [뉴 웨이브] 스킬이라도, 그 효과는 차원이 달랐다.
“미, 미친… 이게 다 무슨…!!”
이미 아스의 물속성 마력 공격 맛을 한 번 찐하게 본 네크로맨서는 PTSD가 온 듯 치를 떨며 이 광경을 지켜봤다.
그 많던 물량이 허무하게 갈라진다.
순식간에 형성된 급류에 언데드들이 휩쓸렸고, 행동에 제약이 걸리면서 숫자의 이점이 사라진 것이다.
그리고 이게, [뉴 웨이브]의 진짜 강점이기도 했다.
물속성 마력 공격으로서 적에게 타격을 주기도 하지만, 스킬의 진짜 목적은 광역으로 시전되어 해당 구역의 구도를 완전히 무너뜨리는 것.
이 때문에 물에서 활약하기 힘든 제이텐을 미리 소환 해제했었다.
“아스!”
-이번에도 준비됐습니다, 맹약자님!
쿠, 쿠우우웅-!!
목소리의 형태 바뀐 외침과 함께…
전장에 거대한 거북이 한 마리가 모습을 드러냈다.
[폴리모프]의 해제.
그리고 내겐 훨씬 익숙한 아스의 원형.
귀룡, 아스피도켈론의 위용이었다.
“흡…!!”
나는 곧바로 아스의 등껍질 위로 올라서며 전방을 바라봤다.
목표물은 네크로맨서.
시간은 [뉴 웨이브]의 물이 모두 바닥날 때까지.
구어어어-!!
카그- 카가그그-.
비록 그새 몸의 균형을 되찾은 언데드들이 우리를 가로막으려 다가왔지만….
‘아스, 출발하자.’
-위대한 존재와 맹약자님의 뜻대로.
[수송 전문가]인 아스에게 있어.
이 정도 장애물 달리기는 껌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