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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카데미 사기 룬을 얻었다 (295)화 (295/353)

흩어져도 잘 산다 (4)

<이블 헌터> 내 사냥 4팀의 현 상황은 애매했다.

표현이 조금 이상하지만 말 그대로다.

4팀은 <죽음이 닿은 미로>에 빠져든 각 팀들 중 거의 유일하게 팀원들이 계열 별로 분산되어 떨어졌다. 

마법사 계열과 궁수 계열을 비롯한 후방 인원은 후방 인원 별로, 전사 계열과 암살자 계열 등의 전방 인원은 전방 인원대로.

필요한 역할군이 나뉘어 떨어진 최악의 상황.

그런데 막상 안에 들어오고 나선, 별다른 일이 일어나지 않았다.

질리도록 봤던 언데드들도 나타나지 않고, 그 흔한 마력 함정조차 없었다.

운이 좋은 건지 나쁜 건지…

뭔가 애매한 상황에 놓이게 된 것이다.

“마력 탐색에 잡힐 때까지, 최대한 천천히 움직입니다. 답답해도 다들 조금만 참아주세요.”

하지만 팀장 김아름은 이를 가만히 지켜만 볼 순 없었다.

어쨌든 현 상황은 <이블 헌터> 클랜 입장에서 전혀 예상치 못한 변수이자 위기.

이를 타파하기 위해선 함정 탈출과 클랜 합류에 집중해야 했다.

“팀장님. 제가 하텐 타고 한 바퀴 돌고 와볼까요?”

그러던 중 팀원 문가은이 말을 꺼냈다.

그녀는 궁수 계열이지만 조련 계열도 다루는 멀티 홀더로서, 전투 때 라이칸을 타고 움직이는 기마궁수의 모습을 보인다.

늑대의 기동성과 궁수 계열의 탐색 능력.

이미 저번 전투 때도 보였듯 상당한 위력을 보였던 시너지였다.

하지만 김아름은 무겁게 고개를 저었다.

“안 됩니다. 너무 위험해요.”

냉정하게 그건 너무 위험했다.

문가은의 능력은 분명 전투에 큰 도움이 되는 힘이지만, 그것도 상황이 잘 받쳐줬을 때의 이야기다.

지금처럼 전사 계열 인원이 아예 없는 상태에서 혼자 하텐을 타고 움직이다간, 갑자기 나타난 적들에게 동일한 타깃으로 몰릴 수도 있었다.

“이대로 계속 속도를 맞추면서 움직입…”

그렇게 명령을 내리던 찰나.

김아름은 문득 자리에 우뚝 서며 걸음을 멈췄다.

탐색류 룬을 상시 발동하며 움직이던 그녀의 감각으로, 전방에 마력 함정의 낌새가 포착됐기 때문이다.

그녀는 손을 들어 팀원들을 멈춰 세운 후, 조심스럽게 땅바닥에 손을 맞닥뜨렸다.

그리고 천천히 느껴보는 마력의 흐름.

“……!”

김아름의 눈이 번쩍 떠졌다.

있다.

근방에 강력한 마력이 담긴 마법 함정이 있었다.

꽤 먼 거리에 있어서 탐지에 걸려들지 않았지만, 이는 매서운 속도로 사냥 4팀을 향해 다가오고 있었다.

속성은 대지, 종류는 공격 마법.

그리고 방향은….

“강주연 홀더! 피해요!”

팀의 오른쪽 대각선.

임시 클랜원 강주연이 서 있는 곳.

구우우우-.

콰가가가-!!

날카롭게 조각된 대지의 창이 그녀에게 거침없이 찔러들어온다.

정면에서 땅속성 마법을 맞이하게 된 강주연의 표정도 당황에 물들어 있었다.

원래 이 정도 공격은 강주연에겐 너무도 쉽게 파훼 가능한 마법이다.

A급 홀더인 그녀의 수준에선 가벼운 공격이고, 또 주력룬인 [수호하는 영원의 불꽃] 자체가 방어에 특화된 능력이니까.

그러나 아까 문가은의 제안이 거절당한 것처럼, 모든 건 상황에 따라 달라지는 법.

꽤 오래 전부터 준비된 듯한 마력 함정.

그리고 방어할 틈도 없이 날아오는 마법.

[호신화기]를 사용하면 쉽게 막아내겠지만, 마력을 끌어올릴 시간도 없는 상황에선 속수무책이었다.

콰, 콰가갓-!!

그렇게 대지의 창이 지척까지 다가오고, 강주연이 어떻게든 신체 능력으로 이를 피해보려던 찰나.

“얼티밋 프로스트!”

쩌저적-.

대지의 창이 순식간에 얼어붙는다.

준비됐던 마력이 공중과 바닥에서 동시에 일어나고, 강렬한 냉기가 적의 공격에 부딪히듯 쏟아진 것.

[얼어붙은 전장]의 [얼티밋 프로스트].

김채은의 전매특허 공격 마법이었다.

공격 마법을 상대할 땐 방어 마법을 펼치는 게 투입되는 마력량 면에서 훨씬 효율적이지만, 그렇다고 공격 마법으로 막지 못할 이유도 없다.

김채은은 [얼음 여왕의 왕관] 아이템의 특수효과를 활용해, 미리 내재시켜둔 스킬을 사용해 마법을 충돌시켰다.

“주연아, 괜찮아?!”

게다가 막아서려는 건 김채은뿐만이 아니었다.

바로 옆에 있던 문가은은 아예 직접 몸을 내던지며 강주연을 피신시켰다.

높은 속력과 보법류 룬을 활용한 날쌘 움직임.

대지의 창이 그대로 안쪽을 꿰뚫고 들어왔더라도, 아마 최악의 상황은 면했을 것이다.

“…응.”

강주연은 새삼 고마운 눈빛으로 두 친구를 바라봤다.

한땐 한 남자를 동시에 좋아하는 바람에 질투 섞인 다툼도 했었지만, 서로를 인정하고 도와주는 지금 상황에선 그 누구보다 든든한 동료들이 그녀들이었다.

덕분에 사냥 4팀의 피해는 전무했다.

“스노트 월!”

문득 그녀들 사이로, 한 남자가 틈을 뚫고 나와 마법을 시전한다.

거칠고 드센 바람을 일으켜 하나의 벽을 만들어내는 스킬, [스노트 월].

벽이라는 단어만 들으면 ‘방어 형태 마법’ 같지만, 실은 거센 역풍으로 날아드는 투사체를 모조리 되돌려 보내는… 일종의 ‘역습 형태 마법’.

바람속성 마법사 계열 중에서도 최소 A급 홀더들만이 쓸 수 있다는 고위 스킬이었다.

“이유찬 홀더?”

그리고 이런 역습을 펼친 마법사는 A급 홀더 이유찬.

<용광검로> 클랜의 몇 안 되는 베테랑 마법사였다.

<불의 심판>에서 강주연이 파견되고 <로열>에서 문가은이 파견됐듯, 그 역시 <용광검로>에서 파견된 한 명의 임시 클랜원.

<이블 헌터>의 우호 클랜 조약으로 넘어온 클랜원이었다.

그렇기에 4팀 내에서 유독 경험도 많고 실력도 뛰어난 팀원.

그런 그가 난데없이 허공에 스킬을 사용한 이유는 하나였다.

팟- 파아앗-!!

투두- 투두-

투두두-!!

적의 함정이 땅속성 마법 하나로 끝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곧바로 하늘에서 빗발치는 화살의 향연.

그 끝엔 검은색 마력이 묻어있었다.

“함정이 대체 몇 개가….”

그동안 너무 조용했던 걸까.

공격이 시작되자마자 쏟아지는 함정의 연속에 팀장 김아름이 입술을 베어물었다.

안 그래도 앞선을 설 전사 계열이 없는데, 선공을 내주고 방어에만 집중해야 한다는 건 현재의 4팀에게 너무 불리한 구도였다.

“…괜찮아요.”

그런데 그런 김아름의 어깨를 누군가 붙잡으며 말한다.

아까 첫 함정에 당할 뻔한 클랜원 강주연.

그녀는 벌써 기세를 되찾은 후 주력룬을 활용하며, 팀원들 곳곳에 정제된 불꽃을 피어오르게 만들고 있었다.

어떤 공격들이 추가타로 오더라도 막을 준비가 돼 있다는 자세.

그리고 그녀는 조용히 손가락으로 먼 곳을 가리켰다.

“저길 봐요.”

김아름의 시선도 자연스레 이를 따라간다.

1분 전까지만 해도 아무 괴수도 보이지 않았던 공간엔, 어느새 스켈레톤으로 보이는 언데드들이 무리를 지어 다가오고 있었다.

<죽음이 닿은 땅>에서 마주쳤던 군단급의 수는 아니지만, 현 팀원들로 상대하기엔 상당히 많아 보이는 숫자.

그들 중 절반 정도는 무기로 활을 들고 있었고, 또 절반은 로브 같은 옷을 입은 채 지팡이를 들고 있었다.

마치…

궁수 계열과 마법사 계열로 구성된 지금의 4팀처럼.

“저게 대체?”

“스켈레톤 아쳐, 그리고 데미 리치입니다.”

그러자 베테랑 홀더인 이유찬이 앞으로 나서며 팀원들에게 설명했다.

“일전에 언데드들을 사냥해본 적이 있어서 압니다. 저 녀석들은 스켈레톤 계열 언데드 중에서도 궁수와 마법사로 구성된 특수 부대입니다.”

이유찬은 <용광검로>에서 파견 온 베테랑 클랜원.

당연히 원 클랜에서의 굵직한 사냥 경험 또한 갖추고 있었다.

그리고 <용광검로>의 던전 공략 중 가장 유명한 공략으로 손꼽히는… <죽음이 가까워진 방> 공략.

S급 괴수 데스 나이트가 처음 등장하기도 한 이 던전의 공략에 이유찬 역시 대원으로 참여했었고, 그래서 언데드에 관한 지식 또한 상당히 많았다.

“일명 아쳐 앤 위자드. 자신들이 원하는 지형에서 물리 및 마력 함정들을 파놓고, 적들을 사냥하는 언데드들이죠.”

“그 말은 즉….”

“…이제 원점이라는 거죠.”

강주연이 묘한 미소를 띄며 말을 덧붙인다.

그리고 그녀의 뒤에서 거칠게 솟아오르는 불길.

그뿐만이 아니다.

옆의 김채은은 자신의 스태프를 매만지며 아까보다 훨씬 더 거대한 얼음 마법을 준비하고 있었고, 문가은은 이미 하텐을 불러와 뛰쳐나갈 준비를 마친 상태였다.

“…….”

그에 김아름은 잠시 할 말을 잃고 말았다.

아쳐 앤 위자드.

궁수 계열과 마법사 계열의 스켈레톤들이 모였다는 특수 부대.

하지만 그쪽 방면에 있어선…

오히려 사냥 4팀의 멤버들이 더 어벤져스였다.

* * *

결승선에 도달하는 건 식은 죽 먹기였다.

아스는 허우적거리는 언데들 사이를 누비며 거침없이 질주했고, [데스 리바이벌]로 인해 멀어졌던 네크로맨서와의 거리는 순식간에 다시 좁혀졌다.

“괴, 괴물 새끼들… 도대체 정체가 뭐냐!”

믿을 수 없다는 얼굴로 소리치는 네크로맨서.

하지만 그 말을 들으니 절로 코웃음이 나온다.

“새끼, 모르는 척 하기는. 잘나신 부학파장님한테 다 들었을 거 아냐.”

놈들은 이미 <버려진 연구소> 때부터 우리의 정체를 알고 있었고, 심지어 이 자식은 아예 함정을 파놓고 날 농락했다.

그래놓고 정체가 뭐냐니.

웃기지도 않은 거짓말이었다.

“이, 이런 소환수가 있다는 얘긴 못 들었는데…!!”

그야 당연하지.

아스가 활약하는 건 황성연밖에 못 봤으니까.

뭐, 황성연이 루덴아크 학파에 내 정보를 술술 읊었을 수도 있긴 한데… 상대의 꼴을 보니 그렇진 않은 모양이다.

“말이 많다. 이제 좀 죽어.”

나 같은 특이 케이스가 있긴 하지만, 일반적으로 계약자를 부리는 술사들은 본연의 능력치가 낮다.

언데드들의 호위가 불가한 상황에서…

상대는 완전한 무방비 상태.

마무리 일격을 가할 절호의 기회였다.

‘디바인 슬래쉬…!!’

아껴뒀던 공격 스킬을 직격타로 꽂는다.

그동안 자주 사용해온 [참회자의 검] 내재스킬이지만, 아이템이 진화하고 내 신성 수치도 매우 높아지면서 그 위력이 전과는 비교도 안 되게 급상승.

허술해진 네크로맨서가 막아낼 리 없었다.

“젠장!! 리플리 백작! 심장을 바치겠소! 바로 지금…!!”

그런데 들려오는 놈의 알 수 없는 외침.

‘아직도 뭔가 남아있다고…?’

순간 당황했다.

이미 [데스 리바이벌]만 해도 막대한 마력을 소모하는 강력한 궁극스킬인데, 여기서 뭔가를 또 벌이다니.

나는 만약의 상황에 대비해, 곧바로 [단죄의 벼락] 스킬의 사용을 준비했다.

하지만.

“뭐, 뭐야! 약조가 다르잖소!! 분명 심장을 바치면… 끄, 끄아아악!!”

그럴 필요가 없었다.

네크로맨서는 웬 혼잣말을 계속 지껄이더니, 이내 [디바인 슬래쉬]를 정통으로 맞으며 고통 어린 비명을 질렀다.

철퍽-.

그리고 파도 속에 몸이 휩쓸리는 상대.

그대로 숨통이 끊어진 것이다.

“…뭐지?”

분명 뭔가 술수를 부리려고 한 것 같은데 실패한 네크로맨서.

그 묘한 모습에 의아함이 들었지만, 어쨌든 가장 큰 장애물을 해결했다.

놈을 처치했으니 그 많던 사령들도 모두 소환이 해제됐을 거고, 아마 막혀있던 미로의 문도 새로 열릴 것이다.

쏴아아아….

[뉴 웨이브]의 물이 모두 흩어져 사라진 후.

나는 아스의 소환을 해제하며 땅에 발을 디뎠다.

이제 다시 클랜원들을 찾으러 움직일 시간이었다.

“일단 출구부터… 어?”

그런데.

분명 아무런 기척도, 마력도 없던 곳에…

웬 소녀 한 명이 서 있었다.

초록색 긴 머리에 아름다운 외모.

그리고 왠지 모르게.

송곳니가 삐죽 튀어나온 듯한 모습.

특이한 외관의 그녀가 웃으며 말했다.

“너 재밌다. 나랑 계약할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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