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아카데미 사기 룬을 얻었다 (296)화 (296/353)

흩어져도 잘 산다 (5)

[신선한 피를 갈구해 영생을 찾으리라! 저주받은 벨테인의 한 영주가 마력을 뿜어냅니다. 특수 사령인 ‘뱀파이어 일족’은 일반적으로 자신의 영토와 적응 지역에서만 머무르지만, 종종 계약을 통해 비적응 지역으로도 나오곤 합니다.]

[‘용언이 맺은 약속’ 룬과 뱀파이어의 제안이 감응해 특수 조건을 만족합니다. 고고한 벨테인의 뱀파이어, ‘리플리 백작’과의 계약이 가능해집니다. 만약 그들과 계약한다면 혹독한 대가를 치러야만 합니다. ‘죽음의 군단장’ 룬으로 인해 계약 가능 사령 수에 제한을 받지 않습니다.]

-너, 나랑 계약할래?

그 말과 함께 쏟아진 정보창.

그리고 뱀파이어라고 소개된 소녀는 싱긋- 웃으며 날 봤다.

“대신, 나랑 계약하려면 심장을 바쳐야 해.”

심장을 바친다.

분명 아까의 네크로맨서도 계약을 원하며 했던 말이었다.

무슨 이유에선지 끝자락에 계약이 성사되지 않은 것 같지만, 어쨌든 놈도 그런 조건 때문인지 마지막의 위기까지 계약을 미뤘었다.

나는 고개를 갸웃하며 그녀에게 되물었다.

“심장을 바친다는 게 무슨 말인데?”

“말 그대로야! 내가 계약과 동시에 네 심장에 표식 하나를 새길 건데….”

말끝을 흐리던 그녀가 더욱 진한 웃음을 보인다.

그 뒤에 꺼내는 말은 살벌했다.

“그 표식이 언젠가, 널 파멸로 이끌 거거든. 어때?”

이건 뭐, 뱀파이어가 아니라 거의 악마다.

안 그래도 신비롭고 예쁜 얼굴인데…

환하게 웃기까지 하니 더 예뻤다.

아마 평범한 사람이 제안을 받았으면 내용도 안 듣고 오케이 할 정도로, 그녀는 사람을 홀리는 무언가를 갖고 있었다.

하지만 난 외적 아름다움에 나름 적응이 된 사람.

다른 사람들보단 이성적인 판단이 가능했다.

“그딴 조건을 누가 받아들여. 말이 파멸이지 걍 뒤진다는 거잖아.”

“…….”

심장에 새겨진 표식이 언젠가 날 파멸로 이끈다.

직관적인 뜻으론 아마 죽음에 이른다는 거겠지.

정말 황당하기 그지없는 조건이다.

어떤 미친 사람이 죽는 걸 뻔히 알면서 계약을 하겠냐고.

하지만 뱀파이어는 그런 내 말에 뾰루퉁한 얼굴로 말했다.

“너, 말이 좀 험하구나?”

“기분 나빴다면 미안.”

나도 모르게 사과해버렸다.

잔뜩 찡그려진 얼굴에서 삐진 게 보여서.

정말 말 그대로 내 말투가 거칠어서 화가 난 모양이다.

뱀파이어 주제에 말투는 또 곱게 쓰고 싶다니… 아이러니하지만, 생긴 건 순수 소녀 같아서 나름 매칭이 됐다.

“그래서, 계약 안 할 거야?”

그래도 내 논리가 효과가 있었던 걸까.

반박은 못 하고 막무가내로 밀어붙이는 뱀파이어.

설득보단 당당한 태도로 방향을 튼 모양이다.

나는 그런 그녀의 제안에 잠시 고민하다가…

이내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할게. 심장, 그거 한번 바치지 뭐.”

뱀파이어, 혹은 흡혈귀.

인간들에게 그렇게 불리는 이들은 일반적인 괴수의 영역을 넘어선 매우 특별한 존재다.

홀더 계에 잘 알려진 라이칸 스로프, 데스 나이트 등과 더불어 개체 별로 서로 다른 힘을 지닌 ‘고유 괴수’인 데다가… 기본 개체들도 최소 A급 이상의 실력을 보유한 강자들.

다양한 마법과 특수 능력을 자유자재로 활용하고, 종종 무기를 사용하는 돌연변이 뱀파이어들도 있었다.

당연히 발견부터 쉽지 않고, 그런 존재와의 계약은 다시 오지 않을 기회.

위험하다고 그냥 놓칠 순 없었다.

‘게다가….’

난 뱀파이어가 내건 조건을 온전히 받아들일 생각도 없었다.

그녀가 말하는 표식이라는 게 정확히 어떤 종류의 표식인진 모르지만… 적어도 시스템의 영향을 받는 ‘저주’의 형태라면, 나도 나름 믿는 구석이 있었으니까.

그런 내 대답에 뱀파이어의 눈이 동그랗게 커진다.

“어? 진짜?”

“응. 할게, 계약.”

너무도 간단한 긍정의 대답.

이에 그녀의 입가에 환한 미소가 번졌다.

그리곤 신난다는 듯 다가와, 내 손을 붙잡으며 격하게 흔들었다.

“와! 이렇게 빨리 계약하는 인간은 네가 처음이야! 역시 너, 재밌는 인간이구나.”

…정말 어이없게도.

이걸로 계약이 성사됐다.

[계약에 성공합니다! ‘용언이 맺은 약속’ 룬의 계약 대상 목록에, ‘리플리 백작(특수)’이 추가됩니다. 온전하지 않은 조건부 계약으로, 계약자의 능력이 일부분 제한됩니다.]

[현재 계약 사령 목록(1/999+)]

[벨테인의 고귀한 존재와 계약을 맺었습니다. 놀라운 계약 결과는 때때로 룬에 대한 당신의 이해도를 급격히 상승시킵니다.]

[‘용언이 맺은 약속’ 룬의 레벨이 올랐습니다.]

[‘용언이 맺은 약속’ 룬의 레벨이 올랐습니다.]

[룬의 성향으로 통솔을 5 획득합니다.]

[고귀한 뱀파이어, 리플리 백작의 상징은 ‘씨앗’입니다. 계약자의 상징이 당신에게도 영향을 줍니다.]

[계약자의 성향으로 땅 내성을 5 획득합니다.]

뭔가 상당히 많은 양의 정보창들이 떠오른다.

[죽음의 군단장] 룬 특수 효과가 처음으로 적용되어, 무제한인 ‘계약 사령 목록’에 첫 번째 사령이 추가됐다.

리플리의 격이 얼마나 높았는지 [용언이 맺은 약속] 룬 또한 단숨에 2레벨이 올랐다.

하지만 얼핏 이해가 안 가는 내용이 보였다.

‘상징이라는 게 뭐지?’

리플리 백작의 ‘상징’이라는 씨앗.

구체적이지 않은 정보였지만, 이 덕분에 땅 내성 능력치가 5나 올랐다.

이건 아마 리플리의 계약자 정보를 들여다봐야 더 자세히 알 것 같았다.

그리고.

[리플리 백작과의 계약 조건으로, 당신의 심장에 ‘의심의 씨앗’이 심어집니다. 씨앗이 완전히 개화해 꽃을 피는 순간, 리플리 백작은 당신의 목을 물어 피를 가져갈 것입니다.]

[‘명경지수’ 룬의 특별한 힘이 대상의 맑은 정신을 유지하게 합니다! 어떠한 저주나 상태 이상에도 흔들리지 않습니다.]

‘빙고.’

나는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예상했던 대로 내가 준비한 대비책은 제대로 적중했다.

아니, 대비책이랄 것도 없다.

애초에 보유하고 있던 룬의 성능이니까.

‘의심의 씨앗’의 정확한 정보는 모르지만, 리플리에게서 관련 이야기를 들었을 때부터 확신했다.

표식의 형태 자체는 ‘저주’ 계열일 거라고.

그도 그럴 게 특별히 마력 함정을 설치하는 것도 아니고, 원격으로 대상의 죽음에 관여하는 건 저주나 상태 이상 말곤 찾기 어렵다.

그리고 저주나 상태 이상에 관해서라면…

난 뭐든지 면역되는 특수룬을 보유하고 있었다.

‘…진짜 개사기네.’

다시 한번 감탄이 나온다.

저주의 지속 기간이 장기든 단기든 상관없다.

일단 걸렸다 하면 면역이다.

괜히 [명경지수]가 [구도자의 땀방울]만큼이나 사기룬으로 불리는 게 아니었다.

“넌 이름이 뭐야?”

계약이 모두 끝난 후.

리플리가 생글생글 웃으며 내게 물었다.

성공적인 계약에 한껏 신이 난 듯한 표정.

나는 여기서 한 가지 정보를 더 얻었다.

‘모르는 구나, 씨앗 없앤 거.’

리플리가 내게 건 저주, ‘의심의 씨앗’이라는 녀석은… 한 번 술자의 손을 떠나면, 그 진행 과정에 대해선 파악할 수 없는 모양이다.

정보창에선 개화하면 피를 빤다고 적혀 있었는데, 아마 그 결과가 나왔을 때만 리플리에게 전해지는 것 같다.

‘이거 은근 스릴 있네.’

나는 왠지 모르게 흥미가 돋워지는 걸 느꼈다.

지금껏 충성도가 매우 뛰어난 계약자(아스, 제이텐)나 자아가 강한 계약자(티르본드)를 만나긴 했어도, 이번처럼 특별한 의도를 가진 계약자는 처음이었다.

게다가 인간의 모습을 하고 있어서 괴수 같은 느낌도 전혀 안 들고.

‘꼭 말괄량이 여동생 하나 생긴 기분이네.’

…실은 인간을 가볍게 죽일 수 있는 뱀파이어지만.

“야! 이름이 뭐냐니까.”

허리에 손을 올리며 또 입술을 삐죽이는 리플리.

…진짜 뱀파이어 맞긴 한 건가?

나는 헛웃음을 지으며 되물었다.

“넌 계약자 이름도 몰라? 시스템 정보창에 뜰 거 아냐.”

“그건 내가 적응자일 때나 그렇고. 여긴 벨테인이 아니잖아.”

아까의 정보들로 미루어 볼 때, 벨테인은 뱀파이어 일족과 그 권속들이 머물고 있는 땅.

리플리는 뱀파이어이기에 당연히 그곳에선 ‘적응자’다.

‘적응하지 못한 곳에선 시스템 활용을 못 하는구나.’

그녀와 계약하고 나니 새로운 정보가 물 밀듯이 밀려온다.

추측컨대 완전히 사용 못 하는 건 아니고, 정보창을 못 읽는 정도가 아닐까 싶었다.

“도재현.”

“도…재현?”

“응. 너처럼 귀족 작위는 없고, 그냥 도재현.”

“당연하지! 귀족 되는 게 쉬운 줄 알아? 자기 영토도 있어야 한다구!”

“…말이 그렇다는 거지.”

하여간 누가 말괄량이 뱀파이어 아니랄까 봐.

아주 한 마디를 안 진다.

“도재현… 특이한 이름이네.”

몇 번이나 내 이름을 되뇌이던 리플리.

그녀는 이내 다 손뼉을 치며 말했다.

“다 외웠어! 이제 가자!”

“…진짜 뱀파이어 맞아?”

너무 밝고 명량한 성격인데.

나는 한숨을 쉬고 바닥에 손을 얹었다.

[야만왕의 후예]의 하위룬인 [먹잇감 탐색]을 통해 마력 탐지를 사용하기 위함이었다.

“뭐 해? 가자니까.”

“좀 기다려 봐. 출구를 찾아야 나가지.”

네크로맨서와 언데드들이 모두 사라지긴 했지만, 미로처럼 뒤얽힌 함정의 출구를 찾는 건 별개의 일.

간만에 탐색류 룬을 사용하는 이유였다.

그런데 내 말을 듣던 리플리는 순간 멍한 표정을 짓다가… 이내 깔깔깔 웃음을 터뜨렸다.

“꺄하하하. 안 찾아도 돼, 그거.”

“…뭐?”

뜬금없는 이야기에 고개를 돌리자, 리플리가 서 있는 곳 앞쪽에 커다란 구덩이가 생겨났다.

생긴 건 꺼림칙해도…

그건 분명 마력으로 구성된 하나의 출구였다.

“이 도돌이표 함정, 내가 만든 거거든. 아, 정확히는 이 거대한 미로 자체를 직접 제작했지.”

그리고 들리는 충격적인 사실.

리플리는 활짝 웃으며 말을 이었다.

“혹시 가고싶은 장소라도 있어? 계약한 기념으로 데려다줄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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