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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카데미 사기 룬을 얻었다 (297)화 (297/353)

흩어져도 잘 산다 (6)

파스스스-.

끼이이-!!

소름 끼치는 비명이 들려오고, 또 하나의 퍼플 스펙터가 소멸했다.

유은설은 속으로 한숨을 쉬며 검을 휘둘렀다.

‘…많네요.’

<죽음이 닿은 미로>라는 함정에 빠진 후, 유은설은 자신의 관할인 사냥 1팀을 이끌고 출구를 찾아 움직였다.

그리고 맞닥뜨린 막대한 양의 언데드들.

다른 팀들도 괴수를 상대하긴 하겠지만, 유은설의 팀이 찾아온 이곳은 유독 그 물량이 많은 느낌이었다.

‘그리고 까다로워요.’

구역 내에 출현하는 언데드의 종류도 문제다.

지금껏 마주친 놈들만 해도 가이스트, 레이스, 퍼플 스펙터, 블랙 팬텀….

의미는 모두 ‘유령’을 뜻하는 단어들이지만, 생김새와 능력들이 조금씩 달라 홀더 계에서 별개의 괴수명을 부여받은 놈들이었다.

놈들의 가장 큰 특징은 어지간해서 물리 공격이 통하지 않는다는 것.

신성력 혹은 마력을 활용해야 공격이 먹히고, 개중엔 상대를 통과할 수 있는 능력을 지닌 놈들도 있다.

그야말로 ‘사령’이라는 명칭이 누구보다 잘 어울리는 괴수들.

일반적인 전투 방식이 먹히질 않으니, 앞선을 선 전사 계열 클랜원들도 고전을 면하기 힘들었다.

‘내 힘도….’

게다가 유은설의 능력이 다수와의 전투에선 효과적이지 않다는 점도 불리한 구도에 한몫하고 있었다.

암살자 계열의 톱클래스인 유은설.

그녀는 계열 능력에 맞게 일대일 구도에서 큰 힘을 발휘한다.

당장 [설원유섬낙화]나 [천화엽살] 같은 그녀의 궁극스킬들도, 오직 한 대상에게 강력한 일격을 가하는 단일 스킬이었으니까.

끼이이이-!!

스스스-!!

듣기 싫은 레이스들의 울음소리가 또다시 퍼진다.

잠시 생각에 잠겼던 유은설은 이내 이를 악물고 무기를 들었다.

고위 언데드들이 어지럽게 돌아다니며 팀원들을 위협하는 상황.

지금 누구보다 힘을 내야 하는 건, 팀장이자 클랜 부마스터인 유은설 자신이었다.

“하압…!!”

S급 홀더의 공격이 유령들 사이로 내려앉는다.

보법류 룬 중 최강으로 손꼽히는 [설산의 발자국].

그리고 검술보단 미학에 가까운 [설중매화].

무공의 미학을 담아낸 두 룬이 교차되었을 때, 무엇보다 아름다운 검무가 전장에서 펼쳐지고 있었다.

비록 궁극스킬처럼 강력한 한 방은 없지만, 가진 바 룬의 활용만으로 강렬한 퍼포먼스를 보인다.

다섯, 열, 스물, 서른….

다 세기도 힘든 수의 유령들이 쓰러져갔다.

이대로만 싸운다면, 그 많던 언데드들도 모조리 사냥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안 좋아요.’

하지만 이는 너무 희망적인 가정.

아무리 S급 홀더라 해도 체력과 마력은 정해져 있고, 사용할 수 있는 손과 발에도 한계가 있다.

끝이 보이지 않는 이 언데드의 늪에서…

유은설과 1팀 클랜원들은 지쳐갈 확률이 높았다.

‘마스터… 재현이 필요해.’

그녀는 문득 도재현의 도움이 절실한 걸 느꼈다.

다양한 능력과 확실한 실력을 갖춘 그는, 유독 이런 다수 대 소수 전투에서 강했다.

기동성 높은 계약자들을 통해 전장을 휩쓸고 다녔고, 본인의 장점인 멀티 스킬들을 활용해 불리한 전투 구도를 항상 유리하게 끌고 갔다.

유은설이 무소속 홀더로서 지금껏 많은 파티 사냥을 경험해 왔지만… 그 많은 기억들을 모두 돌이켜 봐도, 그와 둘이서 진행했던 2인 공략만큼 빠르고 효율적인 전투는 없었다.

‘…약해졌네요. 이런 생각이나 하고.’

유은설은 마음을 다잡으며 손에 쥔 검에 힘을 줬다.

사실 이보다 더 악조건 속에서, 더 부족한 팀원을 데리고도 싸워봤었다.

그리고 어떻게든 절망적인 상황을 이겨내고 공략에 성공했었다.

지금도 그때와 비교하면 크게 다를 바 없는 상황.

다만 자신이 아끼는 제자가 이끄는 클랜이라는 점.

그 일원들을 하나도 죽지 않고 지키고 싶다는 점.

…그런 점들 때문에 그녀의 마음이 조금씩 흔들릴 뿐이었다.

스슷- 스스스-!!

끼이이이-.

지독한 유령들이 또다시 덮쳐든다.

이번엔 단체로 공격을 시도하는 블랙 팬텀 무리.

입술을 꽉 물며 유은설도 다시 검을 들었다.

…아니, 검을 들려고 했다.

“떨어져라.”

그 목소리가 들려오기 전까진 말이다.

들었던 검에 힘이 탁- 풀리는 느낌이 든다.

짤막하게 들려온 언령과 함께 나타난…

너무나 보고싶었던 얼굴.

그리고.

팟- 파밧-!!

끼기기기-!!

이내, 주변에 있던 블랙 팬텀 무리가 삭제되어갔다.

말 그대로 ‘삭제’.

아득하기만 하던 유령들의 무리로 들어간 남자는, 캐치하기도 힘든 속도로 그 사이를 누비며 단검을 휘둘렀다.

유은설은 그 스킬의 정체를 알고 있었다.

‘낙화의 미학….’

언령과 스킬 효과를 봤을 때, 저건 도재현이 만들어낸 [낙화의 미학]이 분명했다.

단검술 무공 중 열화판이라 불리는 [매화검법].

그 안에서 도재현이 기어코 만들어낸 궁극스킬.

그리고 유은설이 그의 클랜 <이블 헌터>에 들어오며, 공동 연구 조건으로 내걸었던 스킬이기도 했다.

그런데 그 완성된 형태의 시전이…

그녀의 눈앞에서 펼쳐지고 있었다.

“부마스터. 크게 다친 덴 없으십니까?”

옆에서 또 다른 남자가 다가와 물었다.

<이블 헌터> 사냥 2팀의 팀장, 임현.

무소속일 때 함께 공략도 많이 했던 동료 홀더였다.

분명 <죽음이 닿은 미로>에 떨어지며 뿔뿔이 흩어졌던 클랜원들인데, 어느새 도재현을 기점으로 모두가 한데 모여있었다.

유은설은 놀란 기색을 감추지 않으며 답했다.

“…보다시피요. 다른 클랜원들도 모두 모인 건가요?”

“예. 클랜 마스터가 저희들을 다 찾아냈습니다. 정말 대단하십니다.”

임현의 신뢰 가득한 눈빛과 목소리.

그와 함께 시선이 전투 중인 전방으로 향한다.

그곳엔 신성력이 가득 담긴 소검 두 자루로, 유령들 사이를 마음껏 휘젓는 도재현의 모습이 있었다.

그리고 그 모습을 보고, 유은설은 자신도 모르게 안도감이 드는 걸 느꼈다.

정말 신기하고 놀라운 일이지만…

그 대상이 또 도재현이기에 납득이 갔다.

“그러게요. 정말…”

…대단한 제자님이네요, 재현은.

그 말을 삼키며 유은설은 입가에 미소를 품었다.

클랜 마스터와 클랜원들이 모두 모였다.

이젠 이 지긋지긋한 함정을 나갈 시간이었다.

* * *

함정을 직접 구성했다던 리플리의 말엔 거짓이 없었다.

그녀가 만든 마력 출구를 따라 들어가니, 정말 다른 공간과 새로운 종류의 언데드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처음 도착한 곳은 임현 홀더와 2팀이 있는 구역이었는데, 그들이 있는 곳으로 바로 도착할 순 없어서 들어오고 난 후 조금은 걸어야 했다.

“여기도 내가 있던 곳처럼 같은 곳을 빙빙 도는 구역인가?”

걷는 도중 궁금한 점이 생겨 꺼내는 질문.

그에 리플리는 고개를 저었다.

“그건 도재현, 네가 있던 구역만 설정된 함정. 이 지점의 함정은 중간에 자리한 거대한 구덩이. 거기 빠지면 신체와 마력을 다 써도 나오기 힘들어.”

“뭐?”

미친.

그럼 빨리 구하러 가야 하는 거잖아.

“걱정 마. 감지되는 인원은 아직 없어.”

리플리는 손가락을 까딱거리며 날 안심시켰다.

“그리고 여긴 벌써 다른 인간들이랑 만났네.”

“만났다고?”

“응. 도재현, 네가 있던 구역이랑 달리 다른 구역들은 서로 연결돼 있는 곳이 많거든. 그렇다 해도 최종 지역으로 가려면 결국 매개 장소를 찾아야 하지만.”

그녀에게 인상착의를 들으니, 3팀 인원이었다.

현재 2팀과 3팀 인원들은 서로를 찾는 데에 성공한 모양이었다.

“최종 지역이라는 건 뭔데? 거기도 함정이야?”

리플리는 그 물음엔 히죽- 웃으며 답했다.

“몰라!”

“…모른다고?”

“응! 나도 의뢰에 따라 만들었을 뿐이거든. 거기에 특별한 함정 같은 건 없지만, 뭐가 있을진 나도 잘 몰라. 하지만 꼭 거길 거쳐야 이 미로를 나갈 수 있어. 내가 그렇게 설계했거든.”

마치 그게 자랑스럽다는 듯 허리에 손을 올리는 리플리.

그 모습에 난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앞으로 나갔다.

역시 가진 능력이 엄청난 것과 달리, 성격과 말투는 꼭 말괄량이 여동생 같은 그녀였다.

“뭐지, 그 표정은?!”

그리고 이마를 잔뜩 찌푸린 채 다시 내게 다가오는 그녀.

“리플리. 궁금한 게 하나 더 있는데.”

“응! 말해.”

…제압은 쉬웠다.

나는 아까 계약할 때부터 가장 궁금했던 내용을 물었다.

“넌 내 신성력 안 거슬려? 다른 사령들은 신성력 때문에 다 계약 거부하던데.”

76이라는 높은 신성 수치.

그리고 [광기의 신앙심].

심지어 [은빛 달그림자]라는 룬까지 있다.

거의 성기사라고 불러도 될 정도의 순도 높은 신성력.

당연한 이야기지만, [어둠의 서약] 룬이 없는 상태에서 이렇듯 강렬한 신성력의 발현은 언데드들에게 기피 대상이 된다.

그동안 내가 단 한 마리의 사령과 계약하지 못했던 것도 그런 이유였고, 뱀파이어인 리플리 역시 어쨌든 분류는 언데드에 속하기에 마찬가지일 것이었다.

“응! 난 고귀한 벨테인의 백작이니까. 고작 그 정도 신성력으론 계약이 방해되진 않아.”

“…….”

그리고 답은 간단했다.

…고작 그 정도 신성력.

난 꽤 순도가 높아졌다고 생각했는데, 리플리에겐 아직 계약에 무리가 갈 정도로 타격이 있는 수준은 아니었던 모양이다.

‘쩝. 어쨌든 안 좋은 건 아니네.’

그녀의 말이 시사하는 바는 컸다.

그동안의 언데드들이 내 신성력을 넘지 못하는 수준이었다는 뜻도 되고, 내 신성력을 넘은 리플리가 그만큼 강한 계약자라는 뜻도 되니까.

우연치 않게 맺은 계약이 점점 긍정적인 방향으로 흘러갔다.

“마, 마스터!”

“괜찮으십니까, 마스터!”

아무튼 리플리와 나는 금세 클랜원들이 있는 곳으로 도착했다.

리플리가 말한 ‘구덩이 함정’이라는 곳에 빠지기 바로 직전에.

예상대로 모인 클랜원들은 2팀과 3팀의 인원들이었고, 다행히 사망자는 없었다.

그렇게 우리는 천천히 흩어진 클랜원들을 찾아냈다.

“카밀라? 아버님이라고 한 번만 더 해 보렴.”

“오우, 도재현. 나 퇴사할게. 팀장 힘들어.”

데스 나이트와 리치 무리를 만났다는 박진우의 5팀부터.

“끝없이 타올라라! 타올라라! 타올라…!!”

“주, 주연아. 그만해, 이미 죽었어. 아니, 애초에 궁극스킬은 한 번밖에 못 쓰잖아.”

자신들과 똑같은 성향의 적들을 만났다던 4팀.

…그리고 어딘가 어긋난 듯한 내 연인들.

“재현, 결국 다 찾아내셨네요.”

“고생하셨습니다, 스승님.”

마지막으로 이 미로에서 가장 많은 수의 괴수들이 자리하고 있다는 ‘유령 구역’.

그 안에서 클랜원들을 지키며 홀로 고군분투하던 스승님의 1팀까지.

나는 조각난 퍼즐을 맞추듯 기어코 모든 클랜원들을 찾아냈고, 다행히 <이블 헌터>의 정예들은 이 극한상황에서도 사망자가 없었다.

“가자, 리플리.”

“응! 그럼 출발할게~”

환하게 웃는 리플리의 인도 하에, 우리는 미로의 ‘최종 지역’이라는 곳으로 무혈입성할 수 있었다.

그리고.

[‘죽음이 닿은 미로’의 끝에 다다랐습니다. 구역을 작동시키는 마력의 결집 지점입니다. 해당 지점에 마력을 투입하면, ‘죽음이 닿은 미로’를 탈출할 수 있습니다.]

눈앞에 나타나는 정보창과-

“오랜만이군, 도재현.”

-몇 번이나 봐왔던 아주 익숙한 얼굴.

미로의 끝엔 그 녀석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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