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아카데미 사기 룬을 얻었다 (300)화 (300/353)

종지부 (1)

여의도 중심가.

한국 홀더 협회가 자리한 건물의 최상층.

한 층 전체가 회의실로 만들어진 이곳에서, 무장을 갖춘 룬 홀더들이 한데 모여있었다.

그런데 특이하게도 피부색은 하얗고, 눈동자는 파랗다.

미국의 룬 홀더들.

그들은 한국 홀더 협회의 원조 요청을 받아 직접 파견을 온, 미국 <자유의 날개> 클랜원들이었다.

그리고 그들의 중앙, 압도적인 풍채를 지닌 중년의 남자가 거친 카리스마를 자랑하며 서 있었다.

미국의 S급 홀더이자 전 세계 최강의 홀더.

<자유의 날개> 클랜의 마스터, 리암 헨드릭스였다.

“우리는 어떤 상황에도 던전으로 진입하지 않는다.”

그리고 회의실 안에서 헨드릭스가 꺼낸 첫 번째 말.

그에 클랜원들이 곧바로 동요에 빠졌다.

“…그게 정말입니까?”

“아니, 그럼 저희는 왜 여기에….”

모든 클랜은 이권에 따라 움직인다.

그건 한국이든 미국이든 마찬가지.

<자유의 날개>라고 크게 다를 건 없었다.

명목상으론 세계 평화를 지키고 한국을 돕기 위해 왔다지만, 실상은 전 세계적인 관심을 끌고 있는 ‘초대형 미발견 던전’에 조금이라도 발을 담그기 위해서였다.

-정식 명칭 <이탈자의 방>, 홀더 역사상 최대 규모 던전!

최근 <이틀자의 방>이 공개되고 그 대략적인 구조가 밝혀진 후, 이에 대한 홀더 계의 관심은 전 세계적으로 급증했다.

루덴아크 학파라는 악의 무리와 평화를 위환 공익성 공략.

그 목적들을 차치하고서라도, <이탈자의 방>은 흥미로운 부분이 많았다.

일단 그 규모부터 방대해서 던전 내 영역이 광활하게 펼쳐져 있고, 그 안엔 루덴아크 학파와 관련된 각 ‘구역’들이 존재한다.

마치 이중 던전처럼 설정된 구역들.

구역들은 공략 때마다 별개의 보상이 있었고, 당연히 괴수들의 수준이 높은 만큼 보상도 뛰어났다.

홀더들의 관심이 쏠리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마스터. 그럼 저희가 직접 한국까지 온 손해가 너무 크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그런 던전의 공략을 아예 포기하겠다니.

헨드릭스의 폭탄 발언에 클랜원들은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리암 헨드릭스의 표정은 단호하기만 했다.

“우리의 목적은 어디까지나 던전 외부 및 한국의 보호. 그리고 밖으로 튀어나올 가능성이 있는 루덴아크 학파 일원들의 처치다.”

“하지만….”

“폴.”

계속해서 불만을 표시하는 한 클랜원.

헨드릭스는 대놓고 그를 지목했다.

낮은 중저음에 클랜원은 곧장 자신이 실수했음을 깨달았지만, 지목의 이유는 단순히 그를 탓하기 위함이 아니었다.

“자네는 지금껏 던전 안 괴수가 자유자재로 던전 안팎을 오고가는 걸 본 적 있나?”

“…없습니다.”

“나도 마찬가지다. 하물며 괴수가 아니라, 우리와 비슷한 인간이야. 그들의 능력과 지능이 얼마나 위험할지 가늠할 수 없고, 어떤 결과를 불러올지 예측하기도 힘든 상황이지.”

헨드릭스는 고개를 들어 클랜원들을 바라봤다.

“지금의 홀더 계는 격변하고 있다. 그 중심엔 한국이 있어. 우리는 그 사실을 받아들여야 한다. 예전처럼 눈앞의 이권만 챙기며 행동하던 때와는 시대가 많이 바뀌었다는 뜻이다.”

리암 헨드릭스는 냉정히 현실을 파악하고 있었다.

자신과 <자유의 날개> 클랜이 세계 최강인 건 맞다.

워낙 초창기부터 홀더 계를 이끌어왔고, 그 안에서 선구자적인 행보를 취해왔으니까.

하지만 그게 영원하리란 법은 없다.

자신과 <자유의 날개>가 홀더 계 초창기를 이끌었듯, 지금 세계 홀더 계를 이끄는 건 한국의 클랜 및 홀더들이었다. 

“따라서 우린 주어진 임무인 외부 보호에 집중한다. 던전 진입은 한국 홀더 협회와 별도의 추가 협약이 있기 전까진 단독으로 진행하지 않는다.”

헨드릭스는 그 흐름에 편승하며, 세계 평화도 지키고 클랜의 이권 또한 지키고자 했다.

당장 눈앞의 이득만 생각하며 섣불리 움직였다가, 앞으로 트렌드를 이끌어갈 한국과의 관계가 틀어질 수도 있었다.

그런 일을 미연에 방지하는 헨드릭스.

사실상 클랜 마스터로서 최적의 선택을 하고 있는 것이었다.

그리고.

“마스터! 설치해 둔 마력 결계와 마도구들에 탐지 신호가 왔습니다. 한국 연합군의 조언대로입니다! 적들이 던전에서 나왔습니다.”

미리 파견을 나가있던 클랜원 한 명이 다급히 들어와 보고한다.

헨드릭스는 그 말을 듣고 씨익- 웃음을 흘렸다.

이쪽도 가만히만 있던 건 아니다.

이제 움직일 시간이었다.

* * *

끝을 모르고 추락한다.

그리고 추락하는 와중에도…

서로를 향한 검격이 멈추질 않는다.

거센 공기의 압력이 짓누르듯 몸에 부담을 줬지만, 황성연과 나는 그런 건 신경쓰지 않는다는 듯 움직임에 더욱 박차를 가했다.

‘지독한 새끼.’

나도 나지만, 황성연도 어지간하다.

내 주력룬 중 무공류에 속하는 [용맹한 영원의 물결]은 결코 만만한 검법이 아니다.

스승님들께서 수십 년간 자신만의 노하우를 담아오며 만든 [파상검법]과 [유수검법]의 묘리가 녹아있었고, 추가로 베테랑 홀더의 [해류검법]도 융화시킨 검법.

굳이 특수효과나 스킬까지 안 가도, 룬의 활용만으로 웬만한 괴수들은 해치울 수 있는 매우 수준 높은 룬이었다.

그런데 황성연은 이러한 [용맹한 영원의 물결]에 맞서 조금도 흔들림없이 싸우고 있다.

특별히 검은색 마력이나 마검의 힘도 빌리지 않은 채.

그건 황성연 역시 이와 비슷하거나 버금가는 수준의 검법을 보유하고 있다는 뜻이었다.

‘천재….’

십년에 한번 나올까 말까 하는 홀더 계의 천재.

새삼 황성연의 능력과 위치가 실감이 났다.

그리고 한편으론 짜증이 밀려오기도 한다.

이렇게 능력 있고 대단한 자가 왜 살육에 미쳐서 사람들을 해치는 걸까.

사이코패스들의 생각은 도무지 이해하기 힘들었다.

캉-! 카강-!!

부딪히는 검격 속에서 황성연이 나지막이 말했다.

“그대로 떨어지면 위험할 텐데.”

“걱정 마. 떨어지는 건 너니까.”

황성연의 말대로 이대로면 내가 바닥에 처박히는 상황.

아무리 내구 수치가 높고 방어룬이 잘 갖춰져 있다해도, 이 정도 높이에서 떨어지는 건 충격이 크다.

그걸 황성연도 알기에 검으로 몰아붙이는 속도가 빨라졌다.

‘무구교체술.’

그리고 나는 손에 든 성검을 치우고, [퓨어 팔라딘의 버클러]를 꺼내들었다.

한 손엔 방패, 한 손엔 너클…

즉, 방패를 든 맨몸이다.

“…뭐?”

“흡…!!”

순간 황성연의 당황한 목소리가 들리고, 나는 숨을 들이쉬며 격투술을 시전했다.

비록 검술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무술의 달인]을 통해 숙련된 내 방패술과 격투술은 어지간한 관련 전사 계열 홀더들의 실력보다 뛰어나다.

한 손의 방패론 황성연의 검을 막고, 다른 손, 그리고 두 다리로 놈의 몸을 꽉 잡는다.

강렬한 공기의 저항이 느껴지지만, 근력을 극한으로 끌어올리면 이 정도는 무리 없다.

“……!”

[무술의 달인], [야만왕의 후예], [전사들의 강화술], 그리고 [끓어오르는 늑대인간의 힘]까지.

격투술과 관련된 모든 룬의 보조를 받는다.

황성연은 연달아 타깃을 잡아도 단단히 잘못 잡았다.

내가 결투에서 공중전 다음으로 자신 있는 건…

다름 아닌 육탄전이었다.

“하아압…!!”

“뭐 이런….”

순식간에 서로의 위치를 뒤바꾼다.

찔러들어오는 황성연의 검은 방패를 들어 완벽히 막아냈다.

그리고 위와 아래가 뒤바뀐 그 순간.

나는 오른쪽 발에 온 힘을 다 실으며 그를 발로 찼다.

‘원초적 맹공!’

말 그대로 걷어찼다.

물리 공격의 보조룬이 극한으로 활성화된 상태에서 사용하는 [원초적 맹공].

무기 없이 오로지 몸을 사용했기에 위력은 더 올라간다.

구역 내 땅에 맞닥뜨리기 대략 1초 전.

걷어차인 황성연은 한 타임 더 빨리 바닥에 처박혔다.

콰, 콰아아앙-!!

그와 동시에 나는 가볍게 땅에 착지했다.

애초에 [영험한 드래곤부츠] 효과로 공중에서 움직임이 가능하기에, 별다른 충격만 없다면 착지하는 데엔 문제가 없었다.

“…질긴 새끼.”

끈질긴 황성연의 공격에 골치가 아프다.

난데없이 시작된 공중전에서 그 반동으로 이어진 추락전까지.

뭐 하나 쉽게 가는 전투가 없다.

어떻게든 판정승을 거두긴 했지만, 나 역시 티르본드의 소환이 해제되고 주력 스킬들을 사용하는 등 피해가 꽤 컸다.

게다가 이걸로 끝이 아니다.

저 자식은 분명 이번 추락에서도 나름의 조치를 취했을 거다.

타격이 크진 않을 거고, 언제 반격이 들어올지 모른다.

나 역시 쉽게 끝났을 거라 생각하지 않았다.

다만, 조금 더 유리한 고지를 취하기 위한 단계일 뿐이었다.

‘용인화랑 광폭화는 이미 사용했고.’

짧은 시간 동안의 전투 준비를 고민한다.

[광폭화]와 [용인화].

능력치 버프 스킬들은 이미 모두 사용했다.

[끓어오르는 늑대인간의 힘] 속 하울링 스킬 또한, 현 상황에서 효과를 낼 수 있는 것들은 전부 썼다.

‘디바인 블레스.’

그렇다면 신성력을 증가시키는 스킬을 활용한다.

[광기의 신앙심]의 파생스킬, [디바인 블레스].

10분간 신성 수치를 30%나 상승시키는 스킬.

이미 [광폭화] 및 [용인화]로 펌핑이 됐던 신성 수치는, 한 번 더 탄력을 받아 무려 160을 기록했다.

이 정도 능력치면 신성 계열에서 S급을 찍었다고 봐도 될 수준.

어마어마한 양의 신성력이 몸 안에서 흘러넘쳤다.

그리고 하나 더.

“거룩한 자비.”

무구교체술로 다시 성검을 불러온 후, 그대로 착지한 땅 속에 박는다.

성검의 내재스킬 [거룩한 자비].

땅에 검을 찔러 보호 구역을 만든 후, 10분간 해당 구역 안에 있는 모든 아군에게 버프를 주는 스킬.

평범한 버프가 아니다.

어둠속성 공격에 저항력과 면역력을 크게 높이고, 모든 일반 능력치를 10% 상승할 수 있게 만드는… 말 그대로 ‘성검’이기에 가능한 권능 효과다.

지속시간이 짧긴 해도 구역 안에 있는 한, 나를 포함한 모든 아군은 언데드에 대해 막강한 상성을 보유하게 되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건 황성연도 마찬가지.’

마검의 소유자 역시 이 권역 안에선 극한의 상성을 갖게 된다.

우리에겐 버프 스킬이, 저들에겐 디버프 스킬이 되는 것.

“…재미있군.”

추락 직후의 연기가 모두 사라지고, 황성연은 역시나 멀쩡하게 모습을 드러냈다.

아껴뒀던 권능 스킬을 착지하자마자 사용하고…

남은 버프 스킬들을 모조리 때려박은 이유는 오직 하나.

10분 안에 녀석을 끝장내 지긋지긋한 악연을 끝내고, 그를 통해 모든 전투에 종지부를 찍기 위함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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