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지부 (3)
리플리로부터 마력을 보충하는 건 선택이 아닌 필수였다.
그도 그럴 게, 지금부터 벌어질 2차전에선 쏟아낼 마력과 신성력의 양이 훨씬 많아지기 때문이다.
나는 방금의 설계로 황성연에게 큰 피해를 입혔지만 절대 이걸로 끝이 아니다.
이는 오히려 시작에 불과했다.
“…피를 삼켜라.”
걷히는 먼지 속에서 황성연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궁극스킬 [피의 주인].
마검 [다인 슬라이프]의 힘을 극한까지 끌어올려, 기존의 능력들을 강화시키고 새로운 효과까지 추가하는 스킬.
녀석이 이 스킬을 사용할 거란 걸 이미 예측하고 있었다.
‘…정확히는 유도했다고 봐야지.’
지금까지의 공격들은 내가 그에게 빨리 필살기를 꺼내라고 재촉하는 것과 다름없었다.
아마 황성연도 그걸 알기에 계속 아껴뒀던 거겠지.
하지만 결국은 스킬을 사용하게 되면서 전략 싸움에선 내가 한 발짝 앞서게 됐다.
‘방심하면 안 돼.’
물론, 아껴뒀던 만큼 [피의 주인] 효과 자체는 엄청나다.
특히 지금처럼 승기가 한쪽으로 기울어있던 상황에서 곧바로 역전할 수 있는 힘을 갖췄다.
그리고 내가 경험한 그 능력 중엔…
대표적으로 ‘초재생’이 있었다.
슷- 스스스-.
완전히 걷힌 먼지 속.
턱과 얼굴이 다 뭉개지고 오른쪽 팔과 어깨가 날아간 황성연의 모습이 보였다.
신성력을 최대한으로 끌어올린 상태에서의 [단죄의 벼락].
그것도 바로 앞에서 틈을 향해 날린 공격이기에 위력이 어마어마했다.
‘…저 정도일 줄은 몰랐지만.’
그 대단하던 황성연의 몸과 얼굴이 저렇게까지 망가질 줄은 몰랐다.
평범한 홀더였더면 즉사했어야 할 위력의 공격이었던 거다.
하지만 황성연은 [영웅 살해자]와 [다인 슬라이프], 그리고 [피의 주인]의 힘으로 지독하게 그 위기를 버텨내고 있었다.
슷- 자그르르-.
웬 소름 끼치는 소리와 함께 그의 살과 뼈가 붙기 시작한다.
궁극스킬 [피의 주인]이 발현되며 드디어 초재생이 시작된 것.
일그러진 얼굴과 터져버린 몸이 재생되는 그 과정은 상당히 괴이했다.
육안으로 보고 있음에도 믿기지 않는 현상이었다.
게다가 성능이 극한까지 올라간 [다인 슬라이프]의 능력은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슷- 파아앗-!!
치유와 동시에 역습이 시작된다.
웬 검은 마력으로 구성된 가시가 튀어나온다.
위치는 등 뒤.
정확히는 뒤쪽에 있는 땅 속.
땅 안에선 어느 정도인지 계산하기 힘든 수준의 마력 공격이 쏟아져 나왔다.
그리고 제대로 방어 태세를 취하기도 전.
그 검은 가시들은 날 향해 거침없이 쏘아졌다.
“……!”
나도 모르게 준비 중이던 다음 공격을 멈출 뻔했다.
황성연의 이번 기습은 어떻게든 막아야 할 것 같아서.
하지만 참아야 한다.
내가 가진 룬과 능력, 아이템들을 믿어야 한다.
그래야만 설계한 대로 전투를 이끌어갈 수 있었다.
[응집된 악의 결정체를 감지합니다! 갑옷 안에 새겨진 트릴리온의 찬란한 맹세가 악을 처단코자 깨어납니다. ‘신성한 가호’ 효과가 발동합니다.]
[착용자의 보유 신성 수치는 179. 해당 수치에 비례한 ‘신성한 가호’가….]
[‘은빛 달그림자’ 룬의 특수효과로, 장비의 신성 감응도를 극한까지 끌어올립니다. 가호의 위력이 40% 증가합니다!]
‘됐다.’
아직 발동되지 않았던 아이템 특수효과가 결정적일 때 깨어났다.
전설급 갑옷 [트릴리온의 찬란한 맹세]에 담긴 특수효과, ‘신성한 가호’.
이는 [다인 슬라이프]의 강력한 마력 공격을 모조리 막아내며, 마치 이 공간에 검은색 마력이 없었던 것처럼 완벽한 방어를 선보였다.
핵심 궁극스킬까지 사용하며 역습을 시도한 황성연.
그의 회심의 공격이 무산되는 순간이었다.
‘첫 번째 설계는 성공.’
거대한 마력 공격을 두 개나 쓰고, [하이드 어택], [단죄의 벼락].
심지어 특수효과인 ‘신성한 가호’까지 활용해가며 만들어낸 결과.
이 모든 첫 번째 설계는 황성연의 [피의 주인] 스킬과 [다인 슬라이프]의 능력을 소모시키는 게 목적이었다.
그리고 그에 이어진 두 번째 설계.
‘드래곤 브레스…!!’
나는 주어진 시간을 결코 허투루 날리지 않았다.
리플리에게서 마력을 보충한 이유.
아이템을 믿고 끝까지 공격 준비를 멈추지 않은 이유.
그건 궁극스킬 급의 위력을 보이는 파생스킬, [드래곤 브레스]의 사용을 준비하기 위해서였다.
아무리 [다인 슬라이프]의 초재생이 뛰어나고 황성연이 절대적인 방어력을 보인다고 해도, 이렇게 강력한 마력 공격을 준비도 없이 쉽게 막을 순 없었다.
화아아아-.
쿠, 콰아아아-!!
입 안에서 뿜어져 나온 거대한 마력의 결정체가 전방으로 쏘아진다.
인간의 입에서 뿜어나오는 드래곤 브레스.
황성연은 궁극스킬로 몸을 회복하자마자 그 황당한 공격을 직격타로 맞아야만 했다.
콰강, 콰아아-!!
주변 땅이 뒤집어지고 완전히 폐허에 가까워진다.
모든 걸 소멸시킬 듯한 기세의 브레스.
거대한 불길과 잿더미, 마력의 잔재들이 곳곳에 흩날렸다.
그리고…
나는 그 뜨거운 틈을 뚫고 앞으로 달려갔다.
‘시간이 없어.’
[디바인 블레스]와 [거룩한 자비]의 지속시간이 끝나는 10분.
그 시간이 모두 끝나간다.
황성연과 내가 워낙 빠른 속도로 싸워서 그렇지, 원래라면 지금쯤 10분이라는 시간은 진작에 지났어야 할 짧은 텀이었다.
게다가 아까 미리 사용해뒀던 [광폭화]와 [용인화]도 시간이 다 돼간다.
능력치가 원래대로 돌아오면 불리한 구도로 바뀌는 건 당연한 일.
이를 막기 위해서라도 서둘러 황성연을 끝장내야 했다.
‘무자비한 돌격.’
약간 벌어진 거리를 이용해 [천하제일 경주마]를 활용하고, 거기에 [무자비한 돌격] 룬을 얹는다.
가속도는 높지 않지만, 놈에게 부딪힐 정도의 속력은 충분하다.
그리고.
퍽-!!
둔탁한 충돌음이 들리고, 만신창이가 된 황성연과 마주했다.
속전속결로 이어진 전투.
그 안에서도 한 템포 더 빠르게 가해진 [드래곤 브레스].
예상치 못한 공격의 연속에 놈도 꽤 큰 타격을 입은 것.
구경하고 있을 시간은 없었다.
‘끝이다.’
무구교체술로 다시 손에 성검을 든다.
검 끝에 서서히 모이는 강렬한 마력.
주변을 감싸기 시작하는 ‘물’의 기운.
[용맹한 영원의 물결].
그 두 번째 궁극스킬, [진 파상천검]의 발현을…
“죽음이 닿은 땅으로-”
…하려던 순간.
황성연이 입을 열었다.
그리고 광기 어린 웃음을 지으며, 눈을 부릅 떠 날 봤다.
“-입장하라!!”
“……!!”
설계 안에 없던 변수가 또다시 고개를 내민다.
황성연의 세 번째 궁극스킬.
정체를 알 수 없는 그 언령이 내뱉어지고, 이내 주변은 어마어마한 양의 ‘검은색 마력’으로 뒤덮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크읍…?!”
무게중심이 완전히 뒤로 쏠린다.
뒤쪽에 있던 땅에서 강렬한 손길이 날 붙잡아 당기고 있었다.
마치 거대한 무게로 짓눌러 압박당하듯, 내 몸은 뒤쪽의 땅으로 완전히 넘어졌다.
‘미…친.’
황성연의 반격은 조금의 텀도 없었다.
시간을 주면 그 역시 질 수도 있다는 생각 때문일까.
그동안 내 공격이 그를 쉴 틈 없이 몰아붙였듯, 그 역시 여유를 주지 않고 날 공격해왔다.
“끄, 아아악…!!”
팟, 팟, 팟-!
수십 개의 ‘마력검’들이…
넘어진 내 몸을 덮어와 찌른다.
상상을 초월하는 고통이 온몸에 찌르르 울려퍼진다.
아프다.
죽을 만큼 아프다.
난생 처음 겪어보는 고통의 향연에 난 도무지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빌어…먹을.’
실책이다.
아니, 이건 실책이라고 할 수도 없다.
이 새낀 도대체 궁극스킬이 몇 개나 있는 걸까.
이런 말도 안 되는 수준의 스킬까지 숨겨놓은 상대를 이기는 건 기적에 가까운 일이었다.
“도재현.”
손가락 하나 옴짝달싹할 수 없는 상황.
끝없는 절망이 머릿속을 타고 흘렀다.
어떻게 해야 할까.
어떻게 하면 다시 역전할 수 있지?
스스로 끊임없이 던져보는 질문.
그러나 떠오르는 답은 없다.
그리고 황성연이 마검을 들며 내게 다가왔다.
“넌 재밌는 상대였다. 어쩌면 내 인생 최고의 상대. 앞으로 너 같은 녀석은 또 못볼지도 모르지.”
날 보며 웃는 그는 진심으로 즐거워 보였다.
자신에게 유일하게 대적해왔던 적.
그런 이의 무기력한 모습은 어쩌면 싸이코패스인 그에게 최고의 재미일지도 모른다.
“아쉽지만, 재밌었다.”
그 한 마디 한 마디를 듣고 있는 게 지옥이었다.
당장이라도 자리를 털고 일어나 놈의 목을 베고 싶지만, 빌어먹을 몸뚱아리는 꼼짝도 할 생각을 안 했다.
놈의 귀에 대고 저주라도 퍼붓고 싶은데, 지친 몸으론 한 마디조차 내뱉기 힘들었다.
“잘 가라.”
마침내 끝을 고하는 그.
하늘 위로 들리는 그의 마검.
정말 이대로 끝나는 걸까.
형언할 수 없는 괴로움과 고통이 내 안에서 맞물리는 그 순간.
‘……!!’
한 줄기 빛이 머릿속을 번뜩이며 스친다.
그리고.
실행은 생각보다 더 빨랐다.
‘무구교체술.’
그렇게 나는 눈을 떴다.
[‘퓨어 팔라딘의 방패’에 내재된 스킬, ‘랜덤 트리트먼트’가 발현됩니다. 치유의 신, 레클리스의 힘이 담긴 신성 주문이 무작위로 결정됩니다.]
[착용자의 보유 신성 수치는 179. 해당 수치에 비례해 주문의 위력이 올라갑니다!]
[‘은빛 달그림자’ 룬의 특수효과로, 장비의 신성 감응도를 극한까지 끌어올립니다. 주문의 위력이 40% 증가합니다!]
그렇다.
아직 ‘10분’이 끝나지 않았다.
10분이 지나지 않는 한, 황성연을 향한 내 공격은 멈추지 않았다.
내겐 아직 황성연을 상대할 힘이 남아있었고 계속해서 그를 상대해야 할 의무가 있었다.
마지노선으로 정해 놓은 이 시간 안에서만큼은, 내 설계는 아직 끝나지 않은 것이다.
그리고.
[신화 속에서 사라졌던 신성 주문, ‘리저렉션’이 선택됐습니다! 착용자에게 주어진 상처, 피해, 저주 등 모든 부정적인 요소들이 소멸됩니다. 체력적으로 완벽에 가까운 상태를 되찾습니다.]
어디에 있는지 모를 신들조차 내 손을 들어주었다.
화아악-!!
막대한 양의 신성력이 온몸으로 쏟아지고, 내 안을 감싸던 모든 고통이 사라진다.
마찬가지로.
내 몸을 속박하던 검은 가시들도 모두 사라진다.
자유의 환희가 온 피부를 타고 흘렀다.
“미친….”
그리고 당황한 황성연이 서둘러 검을 내려찍으려던 찰나.
나 역시.
세 번째 설계의 준비가 끝이 났다.
“쇄도하라.”
이내.
일렁이는 공간이 나의 복귀를 환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