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지부 (4)
<죽음이 닿은 미로>의 최종 지역.
도재현과 황성연이 하늘로 올라가며 개별 전투를 시작한 후, 육지에선 막대한 언데드 군단이 물량 공세로 밀려 들어오고 있었다.
그리고 이들과 싸우는 클랜원들의 상황은 마냥 좋은 편이 아니었다.
“냉기를 삼켜라…!!”
속박된 데스 나이트를 향해 궁극스킬 [블리자드]를 사용하는 김채은.
이미 많은 팀원들의 공격이 누적된 상황이었기에, 그녀의 마력을 모두 쏟은 궁극스킬은 큰 효과를 보이며 상대 데스 나이트를 얼어붙게 만들었다.
그리고.
“…너무 많아.”
그 옆에서 그녀와 함께 싸우던 강주연이 입술을 깨문다.
이미 각 팀에서 영역을 나눠 언데드들을 사냥하고 있는데도, 너무 많은 수의 언데드들이 몰려 있다.
“4팀 전원 방어 태세!! 리치의 블랙 스피어입니다!”
“2팀 마법사 계열, 하늘 위 키메라 스펙터들을 집중적으로 요격합니다!”
게다가 이번 전투는 양만 넘치는 게 아니다.
괴수들의 질도 확 높아졌다.
최소 A급에서 최대 S급 및 그 이상까지 넘나드는 실력의 데스 나이트들과 다양한 흑마법을 펼치며 까다로운 공격을 이어가는 리치들.
심지어 황성연이 타고 있던 본 드래곤과 유사하게, 루덴아크 학파에 의해 제작된 특이 괴수들도 곳곳에 자리하고 있다.
안 그래도 물량 때문에 상대하기 어려운데, 장군 격으로 있는 언데드들의 수준이 너무 높으니 전투 난이도가 대폭 올라가고 있었다.
“…플레어!”
“하텐! 왼쪽으로 틀어!”
물론, 이쪽도 히든카드가 없는 건 아니었다.
김채은과 강주연처럼 강력한 한 방을 지닌 A급 마법사 계열들이 아까부터 힘을 내고 있었고, 문가은이나 도승민처럼 특수한 힘을 갖춘 클랜원들도 전장을 나다니며 종횡무진 활약하고 있었다.
캉-! 캉-!
카가강-!!
무엇보다 사냥 5팀의 임시 팀장인 박진우.
그의 활약이 압도적이었다.
<울펜서> 공략 때부터 각성한 모습을 보여주며 한층 성장한 모습으로 팀을 이끌었던 그는, 제1구역 <버려진 연구소>와 제6구역 <죽음이 닿은 땅>을 거치며 더욱 다채로운 능력을 선보였다.
특히 데스 나이트를 상대하는 데에 있어선 거의 전문가 수준이 돼 있어서, 전투 시작 때부터 홀로 10마리가 넘는 데스 나이트들을 사냥하며 힘을 보태고 있었다.
“부마스터! 지원이 필요합니다! 땅 속에 레버넌트가 너무 많습니다!”
“2팀 전사 계열 전원 후퇴! 전방에 최상급 저주가 깔려 있어요!!”
하지만 그 모든 활약을 안고도, 여전히 상황은 불리했다.
아무리 <이블 헌터> 클랜원들의 수준이 높고 일당백 홀더들이 있다지만, 절대적인 수의 차이를 뚫어내는 게 쉽지 않았다.
거기에.
“크, 클랜 마스터가…!!”
“아, 안 돼…!!”
설상가상으로 저 멀리서 홀로 싸우는 클랜 마스터, 도재현의 위기가 클랜원들에게 비춰졌다.
팽팽한 접전 때문에 끼어들지 못하고 있었는데, 한 순간 상황이 돌변하며 죽음까지 몰린 도재현.
안 그래도 불리한 전투가 절망에 가깝게 흘러가고 있었다.
‘어떻게 해야 하지…?’
그런 생각들이 지휘하는 각 팀장들에게 자연스레 떠오른다.
지금 상황을 타파할 수 있는 돌파구.
도무지 번뜩이는 방안이 생각나질 않았다.
이대로라면 결국 전투는 패배로 끝날 것 같았다.
<이블 헌터> 클랜의 공략은 여기까지인 것만 같았다.
끝을 알 수 없는 좌절감.
덧없는 절망이 모두의 머릿속에 쏟아지던 그 순간.
탓- 타아앗-
팟-!!
“빛의 검 위에 모여들라.”
“천 개의 꽃잎을 새겨라.”
조용하게 적을 쓰러뜨려가던 남자와 여자.
그들의 입에서 짧은 언령이 흘러나온다.
그들이 쥔 검에서 걷잡을 수 없는 마력이 휘몰아친다.
국내 최강의 S급 홀더 두 명이…
본격적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 * *
[퓨어 팔라딘의 버클러] 내재스킬, [랜덤 트리트먼트].
이는 치유의 신, 레클리스의 힘이 담긴 신성 주문을 무작위로 한 번 사용할 수 있는 스킬이다.
그 범위는 최하급 치유 주문인 [큐어]부터, 최상급 치유 주문 [리저렉션]까지 다양하다.
당연히 운이 나쁘면 [큐어]에 걸릴 수도 있는 것.
화아악-!!
하지만 그 급박한 상황 속에서 나는 [리저렉션]을 뽑아내는 데에 성공했다.
그건 그냥 운이 좋아서라고 볼 수도 있겠지만, 나는 절체절명의 위기 속 해결을 그저 운에 맡길 정도로 단순한 홀더가 아니었다.
‘10분이 안 끝났어.’
미치도록 빠른 속도로 진행된 나와 황성연의 전투.
그 덕에 아직 능력치 펌핑의 10분이 끝나질 않았다.
신성 수치가 여전히 179에 머무르고 있는 것.
거기에 장비의 신성 감응도를 높여주는 [은빛 달그림자]의 효과까지.
[랜덤 트리트먼트]의 신성 주문은 무작위로 선택된다고 하지만, 결국은 사용자의 신성 수치와 감응도에 큰 영향을 받는 스킬이었다.
그 때문에 나는 [리저렉션]까진 아니더라도 그에 버금가는, 최소한 지금 내 몸의 속박을 풀어줄 정도의 치유 주문은 뽑아낼 거라고 확신하며 스킬을 썼다.
그리고.
“쇄도하라.”
그 한 마디에 모든 상황이 역전된다.
눈앞의 공간이 일렁이고, 시야에 들어온 풍경이 바뀐다.
내 손에 들린 방패는 어느새 성검으로 바뀌어있다.
부웅-
날 죽이려 찔러오던 황성연의 마검은 허공을 갈랐다.
그리고 내 손안에 쥐어져있던 성검은….
“커, 커억….”
고통에 몸부림치는 황성연의 목을 꿰뚫고 있었다.
순식간에 벌어진 상황.
그토록 멀게만 느껴지던 놈의 목이 내 손 안에 있다.
세 번째 설계가 정확히 들어맞는 순간이었다.
‘…예상대로네.’
궁극스킬 [왜곡의 그림자]는 일종의 [블링크] 마법처럼 순간적으로 공간을 이동해 적의 뒤를 점거할 수 있는 스킬이다.
정해진 거리 안에서라면, 상대가 반응할 수 없는 ‘동시간’에 몸을 움직인다.
하지만 정확히 말하면 이는 [블링크]와 같은 형태의 스킬이 아니다.
[블링크]가 마력을 집중해 [워프]처럼 좌표를 지정해 공간 사이를 이동하는 마법이라면, [왜곡의 그림자]는 해당 공간 자체를 망가뜨려 사용자를 이동시킨다.
즉, 어쨌든 사용자가 ‘직접’ 이동할 수 있게 되는 스킬인 것.
그래서 나는 항상 이에 대해 의문을 가졌었다.
-그럼 왜곡의 그림자를 코앞에서 쓰면 어떻게 되지?
[왜곡의 그림자]는 일그러진 공간 자체를 통과해 사용자를 이동시키는 스킬.
그렇다면 바로 앞에서 썼을 땐, 그 대상을 통과하듯 움직일 수 있지 않을까?
그리고 지닌 무기 역시 그대로 움직이지 않을까?
바로….
“…지금처럼.”
“……!!”
결과는 시뮬레이션대로였다.
나는 황성연의 바로 뒤를 점거하며 순간이동했고, 내가 든 성검 [켈빌리드의 진정한 회개]는 이동 도중 그의 목을 꿰뚫으며 함께 이동했다.
이동과 공격 사이에 텀이 없다.
두 행동이 동시에 이뤄진 것이다.
그 때문에 황성연은 방어 태세를 취할 틈도 없이, 순식간에 공격을 허용하고 말았다.
게다가 그게 끝이 아니다.
“커, 커억… 어, 둠… 으을… 컥!”
“안 되지.”
“……!!”
죽음이 바로 앞까지 다가온 상황에서도, 무언가 격렬하게 말하려 하는 황성연.
그에 나는 성검을 비틀며 놈의 입을 아예 막아버렸다.
상상을 초월하는 고통에 놈이 몸부림치는 게 성검을 타고 느껴졌다.
“숨기는 패가 더 있을 것 같았거든.”
[피의 주인]에 이어 세 번째 궁극스킬에 당하고 난 후, 난 뼈저리게 깨달았다.
황성연은 틈을 주면 안 된다.
언제 또 무슨 스킬과 능력을 숨기고 있을지 모른다.
기회가 있다면, 무조건 이를 살려 끝장을 내야 했다.
‘그래서 아예 목을 꿰뚫었지.’
[왜곡의 그림자]를 통한 검격으로 놈의 목을 찌른 게 그런 이유였다.
어차피 놈이 지닌 마검의 위력과 검은색 마력 때문에 심장을 찔러도 한 번에 죽지는 않는다.
-그렇다면 말을 못하게 목을 꿰뚫자.
언령을 내뱉어야만 사용할 수 있는 궁극스킬.
그 원천을 아예 차단해버리기 위해, 나는 처음부터 목을 찔러버리며 놈의 뒤를 점거했다.
‘그리고….’
놈은 예상대로 뭔가 숨겨둔 패가 하나 더 있었다.
하지만 궁극스킬을 쓰고 싶어도 언령을 막아버린 성검 때문에 쓸 수가 없다.
나는 무력한 상태의 황성연을 향해 최종 선고를 내렸다.
“이제 진짜 끝이다, 황성연.”
“컥, 커억…!!”
성검에 마력과 신성력을 동시에 모은다.
몸 안에 남아있는 모든 마력과 신성력을 쏟아붓고, 각종 보조룬을 활용해 이들을 증폭시킨다.
팟- 파바밧-
지금부터 쓸 스킬은 두 가지.
하나는 [디바인 슬래쉬].
다른 하나는 [진 파상천검].
각자 별개로 사용해도 강력한 위력을 발휘하는 스킬들이지만, 이번만은 이들을 한 번에 몰아 동시에 사용한다.
“……!”
그러나 막상 기운을 모으다 보니 두 스킬의 동시 사용이 아닌, 완전히 새로운 형태의 공격이 머릿속을 두드렸다.
이건 [디바인 슬래쉬]도, [진 파상천검]도 아니다.
그럼에도 할 수 있다.
능력치가 최대로 오르고, 감각이 극도로 예민해진 지금.
지금이라면 가능했다.
슷- 스스슷-!!
“커어억…!!”
그렇게 모든 기운의 응집이 끝나고…
불길함을 느낀 황성연의 눈동자가 커졌을 때.
나는 마지막으로 선언했다.
“위대한 자비에 잠들라.”
그 언령은…
이미 내 머릿속에 자연스레 떠오른 문장이었다.
그리고.
------!!
파아아앗-!!
눈부신 빛의 폭발과 함께 끝이 났다.
지긋지긋한 악연에, 드디어 종지부가 찍힌다.
…정말 모든 게 끝나는 순간이었다.
[결투에서 승리했습니다! 룬 사냥꾼의 신묘한 힘으로, 상대방의 룬 하나를 복제할 수 있습니다. 복제할 룬을 선택해주세요.]
[1.영웅 살해자 2.회그니의 대리자 3.타락한 성기사의 신념 4.절대자의 강화술 5.어둠을 삼킨 검 6.피로 물든 전장 7.마력지배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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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라운 업적! 아이템에 내재된 스킬 및 보유 궁극스킬의 묘리를 활용해, 새로운 형태의 궁극스킬을 만들어냈습니다! 이 스킬은 ‘성검’을 극한까지 성장시키고, 완전히 이해한 자만이 사용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성검을 다루는 데에 최적화된 특정 룬의 궁극스킬로 등록됩니다.]
[‘켈빌리드의 진정한 회개’ 아이템의 내재스킬, ‘디바인 슬래쉬’가 삭제됩니다.]
…
…
[새로운 룬 ‘세드닐렌의 견습 대리자’(신화)를 획득했습니다.]
[해당 룬에 궁극스킬 ‘자비로운 참마검’이 등록됩니다.]
[룬의 성향으로 모든 능력치(일반,내성,특수)가 7씩 오릅니다. 또한, 신성 능력치가 추가로 10 오릅니다.]
[룬의 성향으로 ‘켈빌리드의 진정한 회개’ 아이템의 성능이 급격히 증가합니다.]
…
…
많다.
뭔가 엄청난 양의 정보창들이 눈을 어지럽힌다.
하지만 난 한 글자도 제대로 읽을 수 없었다.
눈앞이 흐릿해져 그 내용을 확인하기 힘들었다.
모든 게 끝났다는 해방감과 쏟아지는 피로감.
나는 그 탈력 상태를 이기지 못하며…
그대로 바닥에 쓰러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