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급 홀더 도재현 (1)
도재현.
서울 홀더 아카데미에 재학 중인 2학년 학생 홀더.
하지만 그 당연한 직급이 무색하게 느껴질 정도로, 요즘 그의 인기는 하늘을 찌를 듯 높았다.
홀더들 중에서도 압도적으로 잘 생긴 외모.
큰 키와 다부진 체격으로 완성한 피지컬.
동 나이대는 물론, 국내 전체를 봐도 따라잡기 힘든 실력.
홀더로서 갖출 수 있는 모든 능력을 겸비한 그는, 홀더들뿐만 아니라 일반인들에게도 선망의 대상이었다.
-아카데미의 영웅, 도재현. 이번엔 한국을 구하다!
-국내 최고의 유망주, 도재현! 유은설 넘을 수 있을까?
-<초월자의 방> 찾은 도재현, 이번엔 <울펜서>…
-도재현의 신규 클랜 창설! 이름은 <이블 헌터>.
사실 1년 전 혹은 반년 전까지만 해도 이 정도는 아니었다.
아카데미 습격사건과 빌런의 몇몇 간부를 처리하며 아카데미 내부와 국내 홀더 계에서 인지도를 얻긴 했지만, 어디까지나 아는 사람만 아는 홀더에 불과했었다.
그러나 ‘빌런 대소탕 작전’을 치르고, 유은설과 함께 <초월자의 방>을 찾아내면서부터 언론 1면에 꾸준히 노출되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어진 <울펜서> 공략과 <이블 헌터> 클랜 창설.
바로 최근엔 <이탈자의 방> 공략과 루덴아크 학파의 격파까지.
큼지막한 사건들을 연달아 해결하면서 그의 주가는 나날이 높아졌다.
이는 비단 국내 홀더들뿐만 아니라, 그의 공로를 기사로 접하는 일반인들, 심지어 바다 건너 해외에 자리한 홀더들마저 도재현의 가능성에 주목했다.
국내 최고의 유망주에서…
국내 최고의 홀더가 되기까지.
전문가들이 주목했던 그의 잠재력이 너무 이른 시간에 터져버리면서, 그 역시 범국가적인 인지도를 얻게된 것이다.
-도재현은 더 이상 A급 홀더가 아니다!
-하루 빨리 그의 S급 승급 심사를!
-국민 영웅이 최고가 아니면 누가 최고일까.
그리고 그런 평가가 지속될수록.
그의 홀더 등급에 관한 논의도 계속해서 제기됐다.
지금의 도재현이 A급 홀더인 건 말이 안 된다.
하루라도 빨리 S급 승급 심사를 봐야 한다….
요즘의 한국 홀더 계에서 꾸준히 조성되는 여론이었다.
특히 적응자들의 던전 <울펜서>의 공략을 마친 후 진행했던 기자회견.
-가능하다고 봅니다.
거기서 분명 도재현이 입을 열었었다.
S급 승급 논의에 대해 본인도 인지하고 있고, 곧 도전하겠다는 의사표명까지 직접 했던 것.
그 때문에 들끓던 관심도는 폭발 직전까지 달해있었다.
다만 ‘홀더 납치 사건’과 <이탈자의 방>.
그 해결을 위한 루덴아크 학파와 대격돌.
큰 사건들이 쉴 새 없이 터지면서 잠시 숨죽이고 있을 뿐이었다.
그리고.
<이탈자의 방> 공략이 어느 정도 마무리된 후.
루덴아크 학파와의 대치 상태도 안정권에 접어든 지금.
-도재현, S급 홀더 승급 심사받는다! 기간은 일주일 후.
-유은설 이후 7년만의 S급 홀더, 과연 탄생할까?
-심사 주관은 국제 홀더 협회. 심사위원은 한/미/일 S급 홀더 2명과 유럽의 S급 홀더 3명, 그 외 특별 심사위원 6명으로 구성돼….
드디어 도재현의 승급 심사 일정이 공개됐다.
* * *
“와, S급 홀더라니… 안 믿겨.”
침대에 걸터앉아 기사를 읽던 문가은이 말한다.
나는 그 모습에 헛웃음을 지으며 답했다.
“꼭 가은이 네가 승급하는 것 같다?”
“치- 네 일이 내 일이고, 내 일이 네 일이지.”
입술을 삐죽 내밀며 날 흘겨보는 문가은.
그녀는 내 옷인 흰색 와이셔츠를 입고 있었는데, 그 아래엔 아무것도 입지 않아 매끈한 다리가 드러나고 있었다.
…내 여자친구들은 왜 이리 자극적인 의상을 좋아할까.
덕분에 난 눈을 둘 데가 없어 덥썩 그녀를 뒤에서 안았다.
“그러게. 옷을 그렇게 입고 있으니까 꼭 나 같네?”
“왜애? 참기 힘들어?”
“응. 엄청.”
곧장 원하는 대답을 꺼내주자, 눈웃음을 지으며 날 보는 그녀.
그리곤 묘한 얼굴로 말을 잇는다.
“그럼 더 해도 되는데….”
“안 돼.”
칼 같이 말을 자르자, 문가은의 얼굴이 울상이 된다.
“씨이… 왜 또.”
“방금 네가 말해줬잖아. S급 홀더. 그 승급시험이 곧인데 지각할 순 없지.”
길었던 전투들을 끝내고 맞이하는 달콤한 시간.
나도 기왕이면 문가은과 더 시간을 보내고 싶었지만, S급 승급 심사 일정이 코앞까지 다가온 탓에 슬슬 나갈 준비를 해야 했다.
그러자 문가은이 다시 입술을 삐죽 내밀었다.
“치- 나야, S급 홀더야?”
“세기의 난제인데 그거.”
“…진짜 죽을래?”
슬그머니 주먹을 드는 문가은을 더 세게 안아준다.
저 주먹에 맞으면 죽을 것 같아서 그러는 건 아니다.
…진짜 아니다.
“미안미안. 일정이 이렇게 잡혀버린 걸 어떡해. 승급 끝나면 제대로 놀아줄게.”
“진짜지?”
“응. 약속.”
그녀의 허벅지를 가볍게 쓸어가며 손까지 닿는다.
이내 천천히 맞잡는 손.
그 부드러운 감촉에 기분 좋은 미소를 짓던 문가은이, 문득 벌떡 침대에서 일어났다.
그리곤 허리에 손을 올린 후 날 보며 말한다.
“그럼 캠핑 가자!”
“갑자기 캠핑?”
“응. 그리고 주연이도 같이! 나 원래 이맘 때쯤에 항상 주연이랑 우정여행 갔었거든.”
몰랐던 내용이다.
두 사람이 원래 어렸을 때부터 친한 건 알았지만, 한 번씩 날을 잡고 여행을 가는 것까진 몰랐다.
내가 연인들과 만나게 된 지 아직 반년도 채 지나지 않았기에 종종 새로 알게 되는 사실이 있었다.
문가은은 입가에 웃음을 가득 지으며 내게 말했다.
“승급 심사 끝나면 주말에, 어때?”
아마 이건 문가은의 단독 계획이 아닌, 강주연과 이야기가 끝난 사항이겠지.
이렇게 바로 여행 일정을 탁- 하고 생각해내는 걸 보면.
그녀들도 그동안 쉬지 않고 치열한 전투를 이어오며, 나와 놀면서 쉬기를 한참 기다렸나 보다.
한껏 신이 난 듯한 그녀의 모습에 웃음이 절로 나온다.
나는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다.
“당연히 좋지. 어디로 갈 건데?”
“음, 그건 안 정했는데….”
“그럼 유럽 가자.”
크게 고민하지 않고 곧바로 튀어나온 내 제안.
그에 오히려 문가은이 더 당황했다.
“유, 유럽?”
“응. 그리고 주말 말고, 평일 껴서 한 나흘이나 일주일 코스로.”
평일에 시간이 나지 않을까 봐 주말로 말했겠지만, 생각보다 시간은 꽤 충분하다.
현재 아카데미는 여러 사건으로 인해 휴강 상태.
재개강을 선언하긴 했어도 아직 날짜가 정해지지 않았다.
확실하게 결정될 때까지 시간이 붕 뜨는 것.
나는 그런 빈 시간들을 이용해 S급 승급 심사를 보고, 그동안 못 다 했던 연인들과의 시간을 보내고자 했다.
‘아마 출석 인정도 해줄 거고.’
만약 재개강이 빨리 찾아오더라도 큰 문제는 없다.
이번 사건에서 <이블 헌터>의 활약은 엄청났다.
국내 3대 클랜과 어깨를 나란히 하며 ‘제1구역’의 공략을 마쳤고, 연이어 ‘제6구역’까지 공략에 성공하며 작전 참여 클랜 중 유일하게 2개의 구역을 정리한 클랜이 됐다.
당연히 사건과 관련이 있는, 그리고 <이블 헌터>의 창설을 도왔던 아카데미 입장에선 쌍수를 들고 환영할 만한 활약.
이런 점들을 근거로 스승님과 이야기를 나눠본다면, 아마 우리 클랜의 학생 클랜원들에게 ‘출석 인정 자체휴강’을 줄 확률이 높았다.
“그리고 채은이랑은 미국에 가니까, 너희랑은 유럽 쪽으로 가면 또 좋을 것 같아서.”
“아, 맞아!”
내 말에 문가은도 생각났다는 듯 손뼉을 친다.
최근 세계 최강의 홀더로 불리는 리암 헨드릭스가 날 미국으로 초청했다.
명목은 <자유의 날개> 클랜과 <이블 헌터> 클랜의 대면.
이번 루덴아크 격파와 관련해 큰 활약을 했던 두 클랜이었기에 꽤 의미가 있는 만남이고, 나 역시 향후 일정 중 상당히 중요한 코스로 여기던 방문이었다.
그래서 나 역시 S급 승급 심사가 끝나는 대로 곧장 일정을 소화할 예정이었다.
그런데 마침 김채은이 자신도 같이 가고 싶다고 말하면서 함께 미국을 가게 됐다.
어쩌다 보니 미국 일정에 얹어 여행 겸 데이트도 하게 된 것.
이렇듯 선수를 친 김채은의 모습에 다른 두 연인들이 귀여운 투정을 부리는 건 당연했다.
“으으, 김채은… 자기만 미국 여행 같이 가고. 선수쳐서 당했어.”
“하하. 그러니까 우리도 여행가자, 유럽으로.”
그래서 마침 생각난 김에 그녀들과도 여행 일정을 잡기로 했다.
물론 이 일정을 다 소화하면 아카데미를 거의 한 달가량 빼먹는 거긴 한데….
‘…스승님이 어떻게든 해주겠지.’
그만큼 <이블 헌터>가 펼친 활약이 엄청났으니 재단 이사인 스승님이 어떻게든 잘 처리해줄 거다.
* * *
“이번 S급 승급 심사에 참여할 S급 홀더는 총 9명이에요. 그중 한국 홀더는 2명이죠.”
그렇게 문가은, 강주연과의 여행 약속을 잡은 후.
S급 승급 심사를 위해 찾아온 홀더 협회.
여기에 클랜 부마스터이자 스승님인 유은설이 배웅을 나와줬다.
그리곤 내게 승급 심사와 관련된 이런저런 조언들을 건넸다.
나는 그중 가장 궁금했던 걸 그녀에게 물었다.
“그럼 혹시 스승님이…?”
그러나 가볍게 고개를 젓는 스승님.
“심사위원으로 선정된 국내 S급 홀더는 박지환 홀더와 송도혁 홀더예요. 아무래도 재현과의 여러 관계를 고려해서 선정된 심사단 같아요.”
난 특이하게도 국내 S급 홀더들과 두루 연이 깊었다.
당장 옆에 있는 유은설은 내 스승님이자 클랜의 부마스터였고, <불의 심판>의 강우현은 무려 내 장인어른이 될 분이다.
게다가 황건욱 역시 문가은의 영향력이 큰 <로열> 클랜의 마스터.
안 그래도 얼마 없는 S급 홀더들을 모두 가까운 지인으로 두고 있다보니, 협회에서도 심사위원 선정에 꽤 골머리를 앓았을 것 같다.
‘따지고 보면 나머지 둘도 다 친한데….’
그렇다고 심사위원이 된 두 S급 홀더가 나와 연이 없는 것도 아니다.
송도혁은 우리 클랜과 우호 협정을 맺은 <용광검로>의 마스터.
심지어 박지환은 내 절친의 아버지에 그동안 수많은 작전들을 함께 해 온 전장의 동료다.
사실상 관계를 고려해 선정한 방식이 큰 의미가 없다는 뜻이었다.
“미국에서는 리암 헨드릭스가 심사위원으로 왔다고 하더라구요.”
“리암 헨드릭스요?”
“네. 이번에 우리 클랜이 리암에게 초청받은 것과 별개로 S급 승급 심사 일정은 개인적으로 참여하나 봐요.”
리암 헨드릭스가 날 미국으로 초청했던 건 <이블 헌터> 클랜 마스터로서의 공식 일정.
단순히 얼굴을 볼려고 만나는 게 아니라, 클랜 대 클랜으로 만나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기 위함이었다.
그런데 그것과는 별개로 또 내 S급 승급 심사에 참여하는 모양이다.
하여간 리암 헨드릭스 그 양반, 어지간히도 내게 관심이 많다.
“승급 심사는 국내에서만 진행될 거예요. 이례적으로 국제 홀더 협회가 직접 한국에 찾아왔다네요.”
“이번 루덴아크 격파로 한국이 활약해서일까요?”
“그럴 확률이 높겠죠.”
어느새 도착한 홀더 협회 입구.
유은설은 바로 앞에서 걸음을 멈추며 날 봤다.
“그럼… 심사 잘 받고 와요, 재현.”
국내 최연소 S급 홀더.
그 타이틀을 따내기 위한, 위대한 발걸음.
나는 스승님의 작은 응원에 굳게 고개를 끄덕이며 발을 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