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급 홀더 도재현 (2)
“어서오세요, 홀더님.”
협회 안에선 이지혜가 날 반기고 있었다.
어차피 한국 홀더 협회 내엔 자체적으로 S급 승급을 심사할 홀더나 직원이 없기 때문에, 그들이 맡는 역할은 어디까지나 장소 대여와 심사 보조, 그리고 대외적인 행정 처리 정도다.
그래서인지 협회에서도 날 보조해줄 직원을 굳이 다른 데에서 찾지 않고 이지혜를 선택한 것 같다.
그녀가 그간 나와 오래 일하며 친하기도 하고, 또 이젠 그녀도 꽤 높은 자리를 차지하는 협회 고위 직원이니까.
전에 이지혜에게 듣기론 협회장이 나와 친분이 깊은 그녀를 상당히 아낀다고 들었다.
“오늘 지혜 씨가 에스코트 해주시는 거예요?”
“네. 혹시 실망하셨어요?”
“그럴 리가요.”
가벼운 농담을 주고받으며 발을 맞춰 걷는다.
오랜만에 오는 홀더 협회는 꽤 분주해 보였다.
아무래도 최근 터진 사건들이 워낙 굵직하다 보니 직원들도 바쁠 수밖에 없었다.
“승급 심사는 총 3번에 걸쳐 진행될 거예요.”
이지혜는 태블릿을 꺼내 보여주며 오늘 있을 심사의 개요를 설명했다.
“첫 번째는 능력치 평가예요.”
“…능력치 평가?”
“네. 홀더님 혹시 처음 홀더 되시고 아카데미 입학 시험 보실 때 기억나세요?”
아카데미 입학 시험.
직접 선택한 계열의 홀더 능력을 평가하고, 가벼운 대련 등을 통해 ‘임시 반’을 선정하는 시험.
나는 여기서 하급반에 선정됐었고, 마찬가지로 임시 하급반이던 박진우와의 결투를 통해 [구도자의 땀방울] 룬을 얻었었다.
그동안 내 능력치 향상에 커다란 기여를 해준 효자룬이자, 내 [룬 사냥꾼]이 첫 번째로 사냥에 성공한 룬이기도 했다.
불과 2년도 채 되지 않았는데, 이제는 뭔가 아득히 먼 옛날 얘기처럼 생각난다.
나는 괜히 감상에 젖는 걸 느끼며 고개를 끄덕였다.
“당연히 기억나죠.”
“사실 해마다 진행되는 아카데미의 입학시험은 홀더 협회가 협력을 하거든요. 룬 보유 및 등급 평가에 관한 건 협회 고유의 권한이라서요.”
“아하….”
대련 평가 이전에 있던 능력치 평가 등을 말하는 것 같았다.
아무래도 룬 활용도나 능력치를 가늠하는 건 홀더 협회가 꾸준히 등급 심사를 통해 해왔던 일이니까.
“그때 측정기구로 사용했던 것들은 각종 마력석과 아이템들을 연구해 만들어진 일종의 마도구예요. 룬을 보유한 홀더들이 만져야만 반응할 수 있도록 만들어서, 시험 대상이 룬 홀더가 정말 맞는지 쉽게 확인할 수 있었죠.”
이지혜가 휙- 하고 태블릿 화면을 넘긴다.
그러자 웬 손잡이와 보석이 붙어있는 특이 형태의 마도구가 나타났다.
총 6개의 마도구가 있었는데, 그 안엔 각기 다른 색깔의 보석들이 아름답게 빛나고 있었다.
“이 마도구들도 그와 비슷한 방식으로 설계되고 제작됐어요. 이건 능력치를 측정하는 마도구들인데, 완전한 수치를 측정할 순 없고 특정 수치를 넘는지 아닌지만 알 수 있죠. 아마 예전에 C급 승급심사 보실 때도 쓰신 적 있으실 거예요.”
기억났다.
협회에서 승급 심사 시 능력치 측정을 위해 사용하는 특수 마도구.
C급 홀더의 승급까지는 협회에서 정한 기준능력치가 있기 때문에, 이 능력치 측정을 통과해야만 해당 등급으로 승급할 수 있었다.
사실 C급 승급이 워낙 오래 전에 했던 일이고, B급과 A급부터는 능력치 측정을 하지 않아서 깜빡 잊고 있었다.
빛을 내는 보석이 6개인 이유는 홀더에게 주어진 일반 능력치가 총 6개이기 때문이다.
“재현 홀더님도 잘 아시겠지만, 원래 B급 홀더 산정부터는 능력치를 측정하지 않거든요. 능력치보단 룬 활용을 더 높게 치니까요.”
“S급부턴 능력치도 기준점이 된다는 말이군요.”
“네. 그치만 생각하는 것보다 기준이 높진 않을 거예요. 선택하신 계열과 주력 능력치에 한해 90만 넘으면 되니까요.”
“정말 낮네요.”
기준능력치 90 측정.
이지혜의 말대로 생각보다 허들이 높진 않았다.
앞서 말했듯 B급부턴 능력치 측정이 없기에 특정 등급에 정해진 능력치는 없지만, 통념처럼 떠도는 일반적인 수치는 분명 존재했다.
‘S급은… 아마 150이던가.’
그리고 일반적으로 사람들이 생각하는 S급 홀더의 기준능력치는 150.
3년 전에 한 A급 전사 계열 홀더가 131의 근력 수치를 지니고도 S급 승급에 성공하지 못해 강하게 항의했던 사건이 기폭제가 되어 알려진 수치다.
당연히 S급 홀더는 능력치만으로 되는 게 아니기에 고위 홀더들 대다수는 이 수치를 거의 무시하다시피 했지만, 해당 사건이 워낙 화제가 됐었던 터라 넷상이나 비공식으론 거의 정설처럼 여겨지는 수치였다.
심지어 세계 최강 리암 헨드릭스가 “내 근력 수치도 150이 넘는다”는 발언을 하면서 어느 정도 신빙성이 생긴 수치기도 했다.
‘나한테는 다행이네.’
그런 면에서 이번 승급 심사의 기준 능력치가 90이라는 건 내게 호재였다.
내 능력치가 타 A급 홀더들에 비해 압도적으로 높은 수치이긴 해도, [광폭화] 같은 스킬을 쓰지 않으면 150까진 힘들기 때문이다.
애초에 난 처음부터 능력치가 아닌, 룬 활용으로 심사에 승부를 보려 했었다.
“그리고 시험이 있어요.”
“시험이요?”
“네. 간단한 이론 문제들과 특수 마력 구조식 등을 해결하는 필기/실기 종합시험인데, 계열에 따라서 시험의 성질이 조금씩 달라져요.”
“…S급 홀더는 공부도 잘해야 하는군요.”
“아하하. 재현 홀더님한텐 그렇게 어렵지 않을 거예요. 홀더님은 무려 강동욱 교수님과 공동 연구도 하신 분이잖아요.”
말을 잇던 이지혜가 문득 생각났다는 듯 손뼉을 쳤다.
“아, 맞다. 원래는 여기에 성과 평가까지 들어가는데, 홀더님은 이미 그 항목에서 만점이에요. 아마 현 국내 홀더들을 다 통틀어도 재현 홀더님보다 성과가 뛰어난 분은 거의 없을 거예요.”
매 등급 심사마다 함께 평가되는 홀더 성과.
나는 그 부분에서 이미 만점이었다.
…사실 만점이 아닌 게 이상하다.
던전 공략은 말할 것도 없고, 아예 홀더 협회와 연합을 구성해 진행한 작전에서도 여러 번 크게 활약했었으니까.
덕분에 꽤 많은 요소를 평가받는 1차 심사는 꽤 단축이 됐다.
“이걸로 심사가 끝은 아니죠?”
“당연하죠. 이건 어디까지나 국제 홀더 협회의 주관 하에 진행되는 1차 심사예요. 특별 심사위원으로 초빙된 S급 홀더들은 2차 심사부터 참여하세요.”
이야기를 하다 보니 어느새 목적지에 도착했다.
협회 건물에서 대관용으로 사용하는 17층의 커다란 강당.
그 문 앞에서 이지혜는 나를 마주봤다.
“그럼 1차 심사 무운을 빌게요, 홀더님! 아마 무조건 붙으실 테니까, 전 미리 2차 심사 안내 대기하고 있을게요?”
상큼하게 웃으며 파이팅 자세를 취하는 그녀.
그에 나도 웃으며 주먹을 쥐고 파이팅을 했다.
‘뭔가 응원해주는 사람이 많아졌네.’
스승님도 그렇고, 지혜 씨도 그렇고….
내 S급 홀더 승급을 기대하는 사람이 많다.
그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서라도 꼭 승급에 성공해야 할 것 같다.
* * *
“…….”
도재현의 S급 홀더 승급.
그 1차 심사가 진행되는 협회 11층 대강당.
한국 홀더 협회장 권영훈은, 긴장한 얼굴로 그 심사의 현장을 바라봤다.
‘잘 성공해야 할 텐데.’
도재현의 S급 승급은 비단 개인의 달성과제만은 아니다.
한국에서도 유은설 이후 아주 오랜만에 등장하는 S급이었고, 만약 승급에 성공한다면 국내 S급 홀더의 수가 6명으로 늘어나는 쾌거가 된다.
특히 한 나라의 S급 홀더 수가 국제 홀더 계에 끼치는 영향을 생각하면, 이는 정치적인 영역으로도 연결될 수 있는 논제.
국제 홀더 협회의 심사 주관.
타국 S급 홀더들의 심사위원 선정.
그런 특별한 일들이 당연하게 일어나는 것도 이러한 정치적인 이유가 섞여있었다.
때문에 협회에서도 도재현의 승급 성공을 간절히 바라고 있었고, 승급 심사 역시 심혈을 기울여 준비하는 중이었다.
-마력 수치까지 90을 넘겼습니다.
측정을 맡은 직원의 말이 화면 너머로 들려온다.
근력, 속력에 이어 마력 수치까지 90을 넘겼다.
사실상 1차 심사의 능력치 측정 부문은 통과라는 뜻이다.
그에 권영훈은 긴장의 한숨을 몰아쉬었다.
‘다행이군.’
물론 능력치 측정의 기준은 하나다.
주력 능력치로 설정한 수치 중 하나만 90을 넘겨도 통과로 끝난다.
다만 도재현은 멀티 홀더로 홀더 계에 이름을 날렸고, 국제 홀더 계에도 다재다능한 홀더로 홍보가 돼 있는 상황.
그런 상황에서 주력 능력치라 볼 수 있는 근력, 속력, 마력 중 90을 못 넘는 능력치가 있다면 한국 홀더 협회의 자존심이 약간 구겨질 수 있었다.
타국의 홀더들 앞에서, 일종의 체면치레가 된 셈이었다.
“역시 도재현 홀더답군요.”
그를 방증하듯 옆에서 들려오는 유창한 영어.
국제 홀더 협회장, 빌 클라크가 감탄을 내뱉고 있었다.
보통 홀더들의 경우 핵심으로 삼는 능력치 하나만 과하게 높은 경우가 많기에, 아무리 S급 홀더라고 해도 3개의 능력치가 모두 90을 넘는 경우는 흔치 않다.
그간 멀티 홀더로 이름을 날리며 활약해온 도재현.
그의 위명이 결코 헛되지 않았음을 증명하는 측정 결과였다.
‘자식, 놀라기는.’
권영훈은 그런 모습에 괜히 자신이 뿌듯해지는 걸 느꼈다.
타국의 권위 있는 기관의 장에게 인정을 받는 자국 홀더.
아무리 한국이 홀더 강국이라지만 흔치는 않은 일이다.
이런 게 국뽕이라는 걸까?
도재현이 잘 나가는데 어째선지 같은 한국인인 자신이 기분이 좋았다.
권영훈은 사람 좋은 웃음을 지으며 클라크의 말을 자연스레 받았다.
“하하. 한국이 자랑하는 최고의 홀더 중 한 명입니다. 당연히 이 정도는 가볍…”
-내, 내구도 90을 넘었습니다.
그런데 말을 꺼내려던 순간.
화면 안에서 측정 직원의 당혹스러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내구 수치도 90을 넘었다.
즉, 총 4개의 능력치가 90을 넘겼다는 소리였다.
“무, 무슨….”
“그게 가능한 일인가…?”
갑작스러운 그 말에.
심사를 진행하던 간부들의 목소리에서도 당혹스러움이 묻어나왔다.
네 번째 90.
지금까지 세 개의 능력치에서 90을 넘은 S급 홀더는 종종 있긴 했지만, 4개부터는 단 한 명도 없던 미지의 영역이다.
S급 승급 심사가 진행된 이래 최초의 일.
당연히 심사를 맡은 각국 협회의 간부들도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저, 정신 수치도 90을 넘겼습니다! 아니, 이게 대체….
내구까지는 어떻게든 이해해볼 수 있다.
공격뿐만 아니라 방어까지 완벽히 수행하는 전사 계열 홀더.
멀티 홀더의 측면에서 보자면 충분히 가능성이 있는 이야기니까.
그런데 5개째.
심지어 정신 수치의 영역으로 넘어가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정신 수치는 주로 집중력을 요구하는 마법사 계열 홀더나, 이를 주력으로 삼는 특수 계열 홀더들이 사용하는 능력치.
당연히 전사 계열 홀더와는 거리가 먼 능력치였다.
이해의 영역을 벗어난 측정 결과다.
그리고 마침내.
-시, 신성 수치도 90을…!! 이, 이거 고장난 건가?
바보 같은 말투로 혼잣말을 되뇌이는 측정 직원.
그리고 거기까지 들은 1차 심사위원들.
클라크와 권영훈을 비롯한, 각국에서 모인 협회 간부들을 한마음 한뜻으로 같은 생각을 했다.
‘대체 뭐하는 새끼지…?’
6개의 일반 능력치가 모두 90을 넘은 룬 홀더.
이건 분명 상식을 벗어난 형태의 홀더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