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급 홀더 도재현 (3)
<홀더 정보>
◎이름: 도재현
◎성별: 남(21)
◎보유 능력치
-일반
[근력: 110] [마력: 110]
[속력: 111] [신성: 94]
[내구: 91] [정신: 90]
-내성
[불: 30] [물: 31] [땅: 28] [바람: 23]
[번개: 28] [독: 26]
-특수
[통솔: 82]
…
…
다 내려 읽기도 힘든 양의 <홀더 정보>를 확인한다.
확인하고자 하는 부분은 ‘능력치’.
작년 초까지만 해도 바닥을 기던 일반 능력치들은 어느새 모두 90을 넘기며 화려한 수치를 자랑하고 있었다.
게다가 특수한 상황 혹은 조건에서만 생성되는 ‘내성 능력치’와 ‘특수 능력치’.
일반적인 방법으론 올리기 힘들기에 고수치를 기록하진 못했지만, 그래도 내성은 대부분 30에 가까워져 있고 통솔은 무려 80을 넘기고 있다.
내성 수치가 10만 되도 해당 속성에 꽤 강한 저항력이 생긴다는 걸 고려하면, 이 수치들이 얼마나 높은 건지 체감할 수 있었다.
츠파앗-!
스스스-.
그리고 이들은 자연스럽게 기록의 도구들이 돼줬다.
내 앞에서 반짝이는 주황색 빛깔의 보석.
나는 총 6개의 측정 마도구 중 마지막까지 반응을 끌어내며, 모든 능력치가 90 이상을 기록하고 있음을 증명해냈다.
S급 승급의 1차 심사, 그중 ‘능력치 부문’.
이를 완벽에 가깝게 통과해낸 것이다.
사실 주력 능력치만 심사받고 나머지는 숨길까도 생각해봤는데, 이미 극강의 멀티 홀더라는 걸 세상 사람들이 다 아는데 굳이 그럴 필요가 있나 싶었다.
‘어쩌다 보니 놀래켜버렸네.’
바로 옆의 당황한 협회 직원을 바라본다.
아까부터 내 능력치 측정을 도와주던 직원인데, 이런 사기적인 현상이 믿기지 않는지 몇 번이나 측정 기구를 매만졌다.
혹여나 기구가 고장난 건 아닌지, 자신이 잘못 측정한 건 아닌지….
말하지 않아도 그의 생각이 훤히 보였다.
‘…괜히 미안하네.’
그거 고장난 거 아니고 정상이에요….
조용한 외침이 들릴 리 없었다.
-다음은 간략한 필기 시험과 특수 마력 구조식 해결입니다.
충격적인 능력치 측정 이후 1차 심사의 잔여 시험들이 이어졌다.
그리고 이는 이지혜의 말대로 생각보다 어렵지 않았다.
특수 마력 구조식 문제는 까다롭긴 해도 내 [마력제어]로 충분히 커버가 가능했고, 필기 시험은 아카데미 이론 수업을 꼼꼼하게 들었다면 해결할 수 있는 수준이었다.
‘…여기서 떨어져도 상관없기도 하고.’
게다가 여기서 떨어진다고 끝이 아니다.
S급 홀더 승급은 모든 심사 과정을 마친 후, 총괄 평가를 통해 점수를 매기며 결정된다.
즉, 당장 여기서 점수를 깎아먹는다고 해도 다른 곳에서 메꿀 수 있다는 뜻이었다.
-종료. 도재현 홀더의 S급 승급 1차 심사가 모두 마무리되었습니다.
1차 심사가 모두 끝이 났다.
느낌 상 주어진 문제들을 막힘없이 다 풀었던 것 같다.
그 결과에 개인적으로 만족하고 있을 때쯤.
화면 너머에서 누군가 말을 걸어왔다.
-안녕하십니까, 도재현 홀더. 저는 국제 홀더 협회장 빌 클라크라고 합니다. 귀하의 S급 승급 1차 심사가 성공적으로 끝났음을 전해드립니다. 괜찮으시다면 바로 2차 심사로 넘어가시겠습니까?
빌 클라크.
룬 연구가로 이름을 알린 학자로, 홀더 등급의 체계화에 가장 큰 공헌을 세운 사람.
그리고 이번 S급 승급 심사에선, 한국 협회와 더불어 총괄을 맡은 국제 홀더 협회의 협회장이었다.
뉴스에서 자주 봤던 얼굴인데, 실제로 보니 더 깔끔하고 점잖게 생겼다.
그 옆엔 익숙한 얼굴인 한국 홀더 협회장 권영훈이 있었고, 주변으론 잘 모르는 각국의 협회 간부들도 자리하고 있었다.
-예. 바로 2차 심사로 넘어가시죠.
그리고 나는 긍정의 답을 보내며 그대로 자리를 이동했다.
어차피 계속 봐야 할 승급 심사.
굳이 뜸을 들일 필요는 없었다.
* * *
“역시 홀더님이라면 그냥 붙으실 줄 알았어요!”
아니나 다를까 시험장을 나오자마자 밝게 날 반기는 이지혜.
내가 붙은 게 그리도 좋을까.
마치 자기 일처럼 기뻐해주는 그녀의 모습에 나도 웃음을 지으며 고맙단 말을 건넸다.
그리고 2차 심사장으로의 이동과 설명이 이어졌다.
“2차 심사부터는 특별 심사위원들이 참여해요.”
“S급 홀더들 말이죠?”
“네, 맞아요.”
한국, 미국, 일본에서 각각 2명씩.
또한 유럽에서도 3명의 홀더.
총 9명의 S급 홀더가 특별 심사위원으로 초빙돼 심사를 본다.
아무래도 1차 심사까지의 내용들은 협회 직원들도 판가름할 수 있는 일반적인 영역이지만, 그 다음의 심사부터는 본격적으로 홀더의 능력을 다루기에 심사 난이도가 확 높아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2차 심사엔 기사에도 대서특필됐던 S급 홀더들이 참여한다.
그리고 어쨌든 협회 직원들이 없으면 진행 자체가 어렵기에, 국제 홀더 협회와 한국 홀더 협회에서 각각 3명씩의 고위 홀더 직원들이 차출돼 공동심사를 본다.
총 15명의 심사위원이 진행하는 2차 심사였다.
“2차 심사는 룬 활용도 심사예요.”
다음 심사에 관해 말해주는 이지혜.
심사 내용은 예상했던 대로였다.
“A급 홀더 때랑 비슷하네요?”
“네. S급 홀더라곤 해도 어쨌든 기본적인 룬 홀더의 틀을 벗어나진 않으니까요. 룬을 잘 다루고, 상황에 맞게 적절히 사용할 수 있는 홀더. 다만, 그 기준이 확 높아질 뿐이에요.”
사실 1차 심사가 일종의 맛보기 평가였다면.
2차 심사는 홀더 승급의 꽃이라고 볼 수 있다.
1차 심사에서 평가한 항목들이 지금까지 홀더 승급에서 흔히 볼 수 없던 부문들인 반면, 2차 심사의 ‘룬 활용도 심사’는 전 등급에 걸쳐 진행되는 핵심 평가 부문이기 때문.
E급 홀더부터 시작해 A급 홀더, 그리고 지금의 S급 홀더까지.
모든 승급 심사에서 룬 활용도 평가는 필수였다.
게다가 이번엔 심사위원들이 무려 선배 S급 홀더들이다.
나로서도 살짝 긴장이 될 수밖에 없었다.
‘…20레벨 룬이 없는 게 아쉽긴 한데.’
물론, 내 룬 레벨들은 평균적으로 높지 않다.
고위 홀더를 넘어선 초고위 홀더의 룬 레벨 척도를 보통 20레벨로 보는데, 홀더 경력이 턱없이 부족한 나는 14레벨이 최고 레벨이었다.
그마저도 [구도자의 땀방울] 룬이 있어서 단기간에 이만큼 올린 거지, 나와 비슷한 경력의 홀더들은 10레벨 달성하기도 힘든 게 현실이다.
‘어쨌든 활용도를 평가하는 거니까.’
하지만 홀더 승급 심사는 ‘숙련도’를 평가하는 시험이 아니다.
말 그대로 룬의 ‘활용도’를 평가한다.
해당 룬을 얼마나 잘 이해하고 있는가.
해당 능력을 적재적소에 잘 쓸 수 있는가.
그런 점에서 나는 다른 S급들에 뒤처지지 않을 자신이 있었다.
어지간한 프로 홀더들보다 훨씬 많이 쌓아온 전투 경험과 던전 공략, 그리고 3번이나 단체를 이끌어 본 리더의 경력이 내게 자신감을 불어넣어줬다.
“반갑습니다, 도재현 홀더.”
그렇게 도착한 2차 심사 시험장.
협회 건물 지하 3층에 자리한 거대한 규모의 실내 연무장.
이곳엔 15명의 심사위원들이 모두 모여 있었다.
그리고 그중엔, 세계 최강의 홀더 리암 헨드릭스도 있었다.
“생각보다 일찍 만나게 됐군요.”
“저도 미국 초청 때 뵐 줄 알았는데, 여기서 뵐 줄은 몰랐습니다.”
“하하. 그때까지 참기가 힘들어서 말이죠. 게다가 세계적으로 주목받는 도재현 홀더의 S급 승급인데, 심사 과정에 제가 빠지면 섭섭하지 않겠습니까?”
나는 리암과 악수를 하며 가벼운 인사를 주고받았다.
그에게는 이번 작전에서 도움을 받기도 했지만, 개인적인 이유로도 고마운 마음이 매우 크다.
전 세계 다부다처제의 포문을 열었던 선구자.
여러 아내를 거느린 홀더 계의 카사노바.
내 연인들과의 문제를 해결해준 장본인이나 다름없었기에 호감이 안 갈 수가 없었다.
그래서일까.
분명 처음 만나는데도 어색함이 전혀 없고 반갑기만 했다.
“그런데 영어를 생각보다 잘 하는군요?”
“언어 룬을 보유하고 있어서요. 어지간한 외국어는 다 할 줄 압니다.”
“정말입니까? 와우, 역시 트루 멀티 홀더는 다르군요.”
트루 멀티 홀더.
요즘 들어 날 지칭하는 새로운 호칭이다.
워낙 많은 룬을 보유하고 있고, 또 그 룬들을 상황에 맞게 잘 쓰는 홀더.
지금껏 등장했던 평범한 멀티 홀더들과는 꽤 다른 길을 걷고 있고, 또 확실한 차별점도 있었기에 이런 별칭이 붙은 것 같다.
“…….”
그렇게 내가 유창한 영어로 리암과 대화를 이어가자, 주변에 있던 다른 S급 홀더들도 조금씩 놀라는 게 보였다.
단순히 영어를 잘해서가 아니다.
리암 헨드릭스는 S급 홀더지만, 같은 S급 홀더들에게도 동경의 대상.
그런 세계적인 인지도를 보유한 홀더와의 대화를, 이제 막 S급에 도전하는 신흥 홀더가 아무렇지도 않게 이어간다는 게… 그들이 보기엔 상당히 신기했던 모양이다.
“자. 그럼 사담은 잠시 뒤로 미루고, 심사를 시작하도록 하죠.”
방금까지 친근하게 이야기를 나누었지만 금세 분위기가 돌변한다.
사는 사고, 공은 공.
리암 헨드릭스는 일과 친분을 확실히 구분할 줄 아는 홀더였다.
‘안녕하세요, 홀더님들.’
나는 이에 미처 인사를 나누지 못한 지인들에게 눈인사를 건넸다.
박지환과 송도혁.
나와 대외적으로 꽤 친분이 있는 S급 홀더들.
그들 역시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며 반가움을 전했다.
“이미 설명을 들으셨겠지만, 2차 심사는 룬 활용도 심사입니다.”
그리고 리암의 옆에서 대기하던 또 다른 홀더의 목소리가 들린다.
그 당사자에게 시선을 집중한다.
왼쪽 가슴에 달려있는 국제 홀더 협회의 마크.
협회에서 파견된 A급 홀더 직원이다.
“직접 전투에서 활약하시는 걸 보면서 심사하는 게 가장 좋겠지만, S급에 도전하는 홀더들의 전투는 너무 빠른 시간 안에 끝나기 때문에 육안으로 그 활용도를 직접 파악하기가 힘듭니다.”
따라서 이번 2차 심사는 온전히 룬의 활용도를 평가하고, 나머지는 3차 심사에서의 직접 전투로 넘긴다. 또한, 3차 심사에선 전투 센스 및 전략 활용 등의 평가가 진행될 예정이다….
협회 직원은 심사 과정을 최대한 압축해 설명했다.
그리곤 광활한 시험장 내부를 손으로 가리키며 말했다.
“대신, 도재현 홀더가 자유롭게 룬을 펼칠 수 있도록 최대한 사냥터와 유사한 환경을 만들었습니다.”
시험장 안엔 수백 개가 넘는 ‘허수아비’들이 있었다.
당연히 그냥 허수아비는 아니다.
이들은 온갖 마도구와 마력석을 모조리 사용해 제작된 ‘특수 골렘’.
괴수의 역할을 대신하며, 만약 타격을 입을 경우 데미지의 근사치까지 계산할 수 있는… 일종의 첨단 마도구 골렘이었다.
‘…대박이네.’
요즘 들어 룬 연구 학계의 지위가 많이 올라갔다곤 들었는데, 이 정도로 기술력이 발달했을 줄은 몰랐다.
심지어 그 종류마저 다양해서 다목적 대상의 단일 골렘, 물량으로 밀어붙이는 골렘 무리, 심지어는 공중에서 날아다니는 소형 골렘들까지 있다.
홀더가 편한 방향으로 선택해 심사를 받을 수 있도록 하는 배려였다.
“그럼, 2차 심사 시작하겠습니다.”
그렇게 시작된 2차 승급 심사.
나는 무수히 많은 종류의 골렘들 중, 다수의 허수아비들이 집결된 ‘골렘 무리’로 발을 옮겼다.
그리고 천천히 꺼내드는 무기.
주무기 [켈빌리드의 진정한 회개]가 아닌, 다목적 소형 무기 [클로우 숏소드]다.
‘활용도를 보여주기에 이거보다 좋은 룬이 없지.’
미소를 머금으며 양손에 소검을 꽉 쥔다.
이번 심사의 목적을 가장 완벽히 수행해낼 룬과 스킬이 내겐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