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급 홀더 도재현 (4)
한국은 홀더 강국이다.
현재 미국, 일본과 더불어 세계 최고로 꼽히는 나라.
5명의 S급 홀더를 비롯해 수많은 고위 홀더들을 배출해냈고, 국내 3대 클랜이라고 불리는 대형 클랜들은 국제 홀더 계에서도 주목할 만한 활약을 펼치고 있다.
홀더 계에서 교류를 끊고 내수화로 방향을 튼 중국을 제외하면, 사실상 세계 2위에 해당하는 홀더 국력을 지니고 있었다.
심지어 절대적인 홀더의 수 자체도 밀리지 않는다.
미국, 중국, 인도에 이어 네 번째로 많은 수의 홀더를 보유 중이다.
다른 나라들에 비해 인구가 그리 많지 않은 한국의 상황을 고려하면, 그건 확실히 이상한 일이었다.
재능이 탄생하는 영역은 인구 수에 비례하지 않는 걸까.
홀더 탄생의 재능들이 집결된 특이 지역이 바로 한국이었다.
‘…유난 떨기는.’
그러나 이런 한국을 아니꼽게 보는 이도 있었다.
장 르메르.
프랑스의 유일무이한 S급 홀더이자, 도재현의 이번 S급 승급 심사에 특별 심사위원으로 초빙된 인물.
국제 홀더 협회장 빌 클라크의 부탁으로 이 자리에 왔지만, 내내 불편한 얼굴로 시험장 안을 바라보고 있는 사람이었다.
사실 르메르는 처음부터 이 시험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이유는 간단했다.
홀더 강국이라고 불리는 한국은, 그가 그다지 좋아하는 나라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한국은 S급을 너무 쉽게 봐.’
어떻게 그리 단기간에 홀더 강국이 된지는 모르겠지만, 한국은 유독 자신들의 실력에 관한 자부심이 강했다.
S급 홀더를 5명이나 배출한 건 단지 5명의 재능이 그곳에 있었을 뿐인데, 그것이 마치 자신들의 교육력 혹은 올곧은 행정 덕분인 것처럼 밀어붙인다.
그도 그럴 게 최연소 S급 홀더 유은설의 탄생 이후로 S급 승급 심사를 봤던 한국의 A급 홀더만 벌써 3명이다.
이번 도재현까지 합치면 4번째.
원래 S급 홀더는 심사 단계에 들어가는 것부터 매우 까다롭고 복잡하다.
전 세계를 통틀어도 1년에 1번도 채 보기 힘든 게 S급 승급 심사.
그런 점들을 돌이켜 봤을 때, 한국의 승급 심사 횟수가 얼마나 많은지 가늠할 수 있었다.
‘…S급은 그렇게 쉬운 등급이 아니라고.’
르메르는 그게 마음에 들지 않았다.
프랑스의 홀더들은 지금껏 승급 심사 기회조차 딱 두 번밖에 주어지지 않았고, 그는 그 틈을 뚫고 승급에 성공해낸 S급 홀더다.
결코 가볍게 취급되어선 안 될 등급인 것.
그런데도 한국은 매번 S급 심사를 밀어붙여왔고, 유은설 이후로는 심사에 통과하는 홀더도 없었다.
당연히 그에 대한 인식이 더 안 좋아질 수밖에 없었다.
‘도재현도 얼마나 잘하겠어?’
이번 심사의 주인공인 도재현도 마찬가지다.
르메르는 한국이 또 특유의 ‘스타 홀더 만들기’에 취해서, 단지 조금 뛰어날 뿐인 유망주를 과대포장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심지어 이번엔 21살의 풋내기 홀더다.
아직 아카데미조차 졸업하지 못한 학생 홀더를 마치 세계 최고의 홀더처럼 앞세우며 S급 홀더 승급에 도전시키고 있다.
한국의 리암 헨드릭스라는 말까지 들려올 정도니, 생각할수록 어이가 없고 기가 찰 노릇이었다.
“그럼, 2차 심사 시작하겠습니다.”
그렇게 불편한 시선 속에 2차 심사가 시작됐다.
도재현은 골렘 무리의 앞으로 섰다.
2차 심사는 허수아비로 만들어진 특수 마력 골렘을 통해 평가가 진행된다.
심사를 받는 홀더는 자신이 원하는 유형을 직접 선택할 수 있는데, 도재현은 이들 중 ‘골렘 무리’… 즉 광역 대상을 선택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모습에 르메르는 코웃음을 쳤다.
‘최악의 선택을 하는군.’
그 역시 2차 심사의 허수아비 시험은 잘 알고 있다.
주로 직접 전투 계열에게 부여되는 형태의 시험으로, 자신이 보유한 주력룬의 활용도를 보여줘야 하는 평가 항목.
이를 평가하는 심사위원들 중 대부분이 각국의 S급 홀더이기에 그 기준은 높고 까다롭다.
때문에 반드시 보유 룬을 극한으로 활용해야만 심사위원들을 납득시킬 수 있다.
그런 점에서 도재현의 골렘 무리 선택은 최악이었다.
‘공격형 전사 계열은 단일 골렘을 고르는 게 최선이지. 자신이 쏟아낼 수 있는 최대한의 데미지를 보여줘야 하니까. 한국에선 심사 전에 그런 것도 교육하지 않나 보군.’
이런저런 능력을 보유한 멀티 홀더라고 알려져 있지만, 어쨌든 도재현의 주력 계열은 암살자 계열 혹은 공격형 전사 계열.
그리고 그러한 계열의 최대 강점은 역시 ‘공격력’이다.
심사에서 자신이 보유한 강력한 공격력을 보여줘야 하고, 이를 위해선 당연히 단일 골렘을 선택하는 게 최선이었다.
그런데도 도재현은 굳이 골렘 무리를 선택했다.
광역 마법을 통해 능력을 증명하는 마법사 계열도 아니고, 굳이 이해가 가지 않는 선택이었다.
“지금부터 제가 보여드릴 룬은 ‘매화검법’입니다.”
심지어 장검을 꺼내는 것도 아니고, 계약자를 활용하는 것도 아니다.
꺼내든 무기는 그저 작은 크기의 소검 두 자루.
그리곤 [매화검법]이라는, 매우 흔하고도 평범한 룬을 보여주겠다고 선언하고 있었다.
‘오만이 하늘을 찌르는군.’
르메르 역시 심사위원이기에 그에 대한 간략한 정보는 알고 있다.
[파상검법]과 [유수검법].
한국의 아카데미 교수들이 직접 만들어냈다는 무공룬들.
도재현의 주력룬은 분명 스승인 그들이 전수해준 두 룬.
이건 아마 르메르뿐만 아니라 다른 S급 심사위원들도 아는 내용일 거다.
그런데 난데없이 소검을 꺼내들곤, [이십사수매화검법]의 열화판 무공인 [매화검법]을 사용하겠단다.
그야말로 오만이라고 볼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슷- 츳츠-
팟바바-.
그럼에도 도재현은 꿋꿋이 평가를 준비했다.
그의 주변으로 알 수 없는 기운들이 모여든다.
마력은 아니었다.
자세를 취하고 있는 그에게선 어떤 마력의 흐름도 느껴지지 않았다.
다만, 특정 스킬들을 사용할 때 나타나는 전조의 기운.
그가 무언가 강력한 스킬을 사용하려 한다는 걸 알 수 있었다.
그리고.
“떨어져라.”
준비를 마친 그가 언령 하나를 짧게 내뱉었을 때.
츳- 파바밧-!!
팟- 팟…!!
스캉, 캉, 캉…!!
검의 꽃이 아름다운 춤이 되어 골렘들에게 떨어졌다.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빠른 속도와 움직임.
긁어내는 모든 걸 망가뜨리는 강렬한 파괴력.
표적을 모조리 긁어내는 압도적 공격 범위까지.
한 번도 본 적 없는…
그러나 완벽에 가까운 궁극스킬이 펼쳐지고 있었다.
“저게….”
“대체 무슨 스킬이지?”
르메르를 포함한 모든 S급 홀더 심사위원들이 눈을 부릅 떴다.
분명 서 있는 상태로 보고 있는데도, 자리에서 일어나야만 할 것 같은 느낌이다.
그 정도로 도재현이 보여준 스킬은 충격적이었다.
“후우….”
그리고 마지막 골렘까지 그어낸 후.
도재현은 천천히 무기를 늘어뜨리며 숨을 몰아쉬었다.
가장 앞 왼쪽 골렘부터 파고들며 스킬을 사용하던 그는, 어느새 전체 골렘을 다 쓸어내며 그 옆 오른쪽 골렘으로 돌아와 있었다.
그리고 학계에서 개발해낸 시험용 골렘의 심장 부근에선….
<피해량: 70/100>
-D급 이하의 괴수 즉사
-C급 괴수 치명상
-B급 괴수 이상 측정불가
이런 측정 결과가 기록되고 있었다.
D급 이하는 즉사, C급은 치명상, B급부턴 괴수의 성향에 따라 달라지는 피해량.
광역 스킬로 가할 수 있는 피해 중엔 거의 최고 수준에 다다른 공격임을 말해줬다.
그리고 무엇보다.
‘…다 똑같잖아.’
장 르메르는 멍하니 골렘들의 피해량 수치를 봤다.
다 똑같다.
뭐 하나 어긋나는 수치 없이, 모두 70의 피해량으로 똑같은 수치를 기록하고 있다.
그 말은 즉, 스킬을 사용한 도재현이 완벽한 수준으로 이를 다뤘다는 것.
처음 보는 궁극스킬인데도 완성도가 극한까지 다다랐다는 말과 같았다.
르메르는 넋을 잃은 채 시선을 도재현에게 옮겼다.
말끔히 스킬을 마무리한 그는 천천히 무기를 집어넣으며 웃고 있었다.
“이게 제가 직접 개발해낸 궁극스킬, 낙화의 미학입니다. 현재 습득자는 저와 제 스승님인 유은설 홀더, 두 명. 학계에는 현재 등록 진행 중인 스킬입니다.”
궁극스킬 [낙화의 미학].
열화판 무공이라고 불리며 하급룬 취급을 받던 [매화검법].
그 안에서 도재현은 이 스킬을 스스로 만들어냈다.
또한 해당 스킬의 압도적인 성능 및 효과를 선보이며, 누구보다 완벽히 이를 다루고 있음을 증명해냈다.
S급 승급의 2차 심사.
‘룬 활용도’에 있어 가장 적합하다고 볼 수 있는 모습이었다.
그리고.
“통…과.”
장 르메르의 입에서 ‘통과’라는 단어가 나온다.
심사 시작부터 이번 시험에 불만이 있었고, 도재현을 가장 아니꼽게 보고 있던 프랑스의 S급 홀더.
그러나 시험장에 모인 모든 심사위원 중, 가장 먼저 2차 심사의 통과를 선언했다.
그만큼 압도적인 스킬이다.
그만큼 편견을 부순 능력이다.
“…통과입니다.”
도재현은, 자신을 싫어하던 사람도 인정하게 만드는 결과를 보여주고 있었다.
* * *
2차 심사도 순조롭게 끝이 났다.
[매화검법] 룬에서 만들어낸 궁극스킬 [낙화의 미학].
이건 스승님인 유은설도 탐냈던 스킬이고, 나 스스로도 꽤 자랑스럽게 여기고 있는 스킬이기에 분명 보여주면 좋은 결과가 있으리라 생각했다.
그리고 결과는 만장일치.
궁극스킬을 보여주고, 이를 만들어내게 된 과정을 간략히 설명하자 나는 곧바로 2차 심사에서 통과됐다.
사실 여기에 더해서 [용맹한 영원의 물결] 룬 활용까지 보여줄 계획을 지니고 있었는데, ‘더 볼 것도 없이 통과!’가 돼버리면서 큰 의미가 없어졌다.
‘어쨌든 다행이네.’
룬 활용도 심사는 홀더가 해당 룬을 어떻게 다루고 있고, 얼마나 더 깊이 있게 연구하고 있는지를 평가하는 항목.
그런 의미에서 궁극스킬을 만들어냈다는 건, 해당 룬을 극한까지 활용했다는 것과 다름없다.
이런 점들을 고려하며 자신 있게 2차 심사에서 꺼내보였는데 결과가 좋아 다행이었다.
“3차 심사는 전투 능력 평가입니다.”
그리고 나는 지체하지 않고 다음 심사로 넘어갔다.
전투 능력 평가.
홀더의 던전 공략 능력과 전투 센스, 간단한 전략 활용 등을 평가하는 시험.
S급 승급 심사는 계열마다 평가항목이 조금씩 달라지곤 하지만, 직접 전투 계열인 내겐 거의 필수적이라고 봐야 할 평가항목이었다.
“심사 던전은 오우거의 숲으로 결정됐습니다.”
상급 던전 <오우거의 숲>.
던전 내 괴수가 거의 오우거밖에 나타나지 않는 매우 특이한 형태의 던전.
하지만 오우거의 등급부터가 B급이고, 종종 A급인 블랙 오우거나 트윈헤드 오우거 등의 괴수들도 출몰하기에 공략 난이도는 꽤 높은 편이었다.
그리고 공략 형태가 단순해서, 3차 심사로 가장 적합한 던전이기도 했다.
“지금부터 어떤 형태로든 던전 내의 괴수들을 사냥하시면 됩니다. 직접 괴수들을 사냥하셔도 되고, 몰이사냥으로 탱킹 능력을 보여주셔도 됩니다만… 도재현 홀더의 전투 형태에 따라 심사 점수가 달라질 수 있음을 유의하시기 바랍니다.”
마지막으로 유의사항을 전달하는 심사위원 겸 협회 직원.
그 말을 끝으로 본격적인 3차 심사가 시작됐다.
그라아아아-.
그으으으…!!
초입을 넘어서니 어느새 오우거 무리가 모여들었다.
“…아.”
그 모습을 보고 난 곧장 검을 꺼내들까 하다가, 이내 머릿속에 번뜩 떠오른 생각에 움직임을 멈췄다.
그리곤 마력을 끌어올려 조용히 선언했다.
‘계약의 부름.’
슷, 스스스-!
손등으로 마력이 모이고, [계약의 법칙] 룬이 움직인다.
그리고 저 너머에서 잠들어 있던 계약자가 소환됐다.
그 주인공은….
-뭐야, 소환됐네? 어, 도재현? 아, 맞다! 야! 도재현! 너 죽을래? 누구 맘대로 내 마력을 그렇게 가져다가 쓰는 거야! 그때 마력 고갈로 쓰러질 뻔했다고…!!
네 번째 계약자이자 첫 번째 사령 계약자.
뱀파이어, 리플리 백작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