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아카데미 사기 룬을 얻었다 (312)화 (312/353)

뉴욕 더블 데이트 (1)

하루 아침에 스타가 됐다.

사실 그런 표현을 쓰기엔 이미 스타였지만…

S급 홀더가 된다는 건 또 느낌이 아예 달랐다.

한 명의 룬 홀더가 다다를 수 있는 최고의 등급.

혹자는 S급 홀더 및 괴수들 사이에도 격차가 심하기에 SS급 홀더를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하긴 하지만, 어찌 됐든 아직까지 국제 홀더 계에서 공인하는 최고의 등급은 S급이다.

그런 홀더가 탄생한다는 건, 단순히 개인의 영광만이 아니라 해당 국가에서도 경사였다.

-21살의 S급 홀더! 도재현이 쌓아 올린 위대한 업적.

-국민들도 염원한 S급 승급… 여론조사 압도적 지지

-도재현은 어떻게 강한 홀더가 되었나?

괜히 홀더 협회와 정부가 직접 나섰던 게 아니다.

열렬한 지원사격은 성공적인 결과와 환대로 돌아왔다.

국내 모든 신문의 1면에 내 이름이 대서특필되며 올라왔고, TV나 동영상 뉴스 등을 틀면 온통 내 승급 사실과 관련된 이야기만이 흘러나왔다.

지인들에게선 축하한다는 문자가 끊이질 않았고, 협회 및 국내 주요 클랜의 간부들에게선 한 번 만나고 싶다는 연락이 빗발쳤다.

그야말로 온 나라가 들썩였다.

역시 홀더가 가장 인정받는 방법은 ‘등급’인 걸까.

원래도 국내 핵심 홀더 중 한 명으로 평가받던 나였지만, 이번 승급을 통해선 완전히 국내 최고의 홀더로 발돋움한 느낌이 들었다.

“마스터, 살려주세요.”

“진짜 이러다 저희 다 죽어요….”

“아니, 무슨 클랜 마스터가 이렇게 활동적이야-.”

파급력은 단순히 인기에 그치지 않았다.

나, 가족, 나와 관련된 모든 사람들.

그리고 내가 직접 만든 클랜 <이블 헌터>에도 관심이 쏟아졌다.

덕분에 이제 막 신설된 클랜 내 대외 관련 팀들은 매일 앓는 소리를 냈다.

“네네. 말씀드린 것처럼 이제부터 저희 클랜을 설명하는 문구엔 꼭 S급 홀더 이야기가 들어갔으면 해서요.”

“안녕하세요, 이블 헌터 홍보팀입니다. 이번 HBN에서 내시려는 기사에 … … ”

가장 일이 많아진 건 역시 홍보팀이었다.

홍보팀 입장에선 마스터인 내 승급 이슈를 통해 클랜 인지도가 확 높아졌고, 이를 기반으로 더 본격적인 브랜드 마케팅을 이어갈 수 있는 상황. 

몇 년에 한 번 올까 말까 하는, 절대 놓쳐선 안 될 기회였다.

게다가 ‘S급 홀더가 이끄는 클랜’으로 클랜 이미지를 재구성할 수 있고, 이러한 관련 이슈들을 얼마나 깔끔하고 세련되게 홍보할 수 있느냐도 큰 관건이었다.

국내 6번째 S급 홀더.

그리고 세계 최연소 S급 홀더.

이건 클랜 입장에서 결코 흘려보낼 수 없는 강렬한 타이틀들이었다.

“네, 이블 헌터 마스터 룸입니다.”

“우호 협정을 맺고 싶으시다고요? 그건 기획팀과 직접 미팅해보셔야 하는데, 원하시면 날짜 맞춰서 일정 잡아드릴게요.”

“개인 일정은 당장은 어렵습니다. 예약된 건만 31건인데요….”

비서팀은 ‘그냥’ 바쁘다.

내가 S급이 되면서 나와 연락하고자 하는 클랜과 홀더들이 쏟아지고, 우리 클랜과 뭐라도 함께 하거나 협력 관계를 구축하려는 이들이 상당히 많았다.

이들과 가볍게 컨택하고 일정을 잡는 건 비서팀의 일.

원래도 일이 많았지만 이번 승급으로 더더욱 쌓여갔다.

게다가 내 개인 일정은 이미 승급 전부터 꽉 차있었기 때문에, 쏟아지는 미팅 일정을 조율하는 데에 상당히 애를 먹었다. 

“…진짜 고생하네.”

홍보팀과 비서팀.

두 팀은 정말 하루가 멀다 하고 일에만 몰두했고, 덕분에 요즘 들어 우리 클랜에서 가장 바쁜 팀들이었다.

홀더 직원들이 아님에도 이토록 바쁜 팀을 가진 클랜은 아마 <이블 헌터>뿐일 거다.

“그래서? 보너스는 좀 줬어?”

클랜 얘기가 재밌는지, 김채은이 웃으며 물었다.

나는 장난기 가득한 그녀의 코를 살짝 잡으며 답했다.

“당연하지. 신생 클랜이지만, 클랜원들이 받는 대우는 업계 최고로. 단기간에 클랜을 만들어낸 내 운영 모토야.”

“헤에- 멋있어. 그래서 얼마 줬는데?”

“그건 비밀. 마스터의 사정을 너무 알면 다쳐.”

“뭐야아-.”

억지로 삐진 얼굴을 하는 김채은.

하지만 아무래도 좋은지 이내 내게 낀 팔짱에 가슴을 더 밀착해왔다.

“너무 신나.”

“그렇게 좋아?”

“응! 우리 이거 엄청 오랜만에 데이트잖아.”

“그치. 던전만 연달아 몇 개를 공략하느라 정신 없었으니까.”

하다 못해 승급 심사 결과가 늦어졌으면 이 여행도 미뤄졌겠지.

“공략도 깔끔하게 끝내고, 재현이도 S급으로 승급하고… 다 잘 마무리하고 편하게 가는 여행. 헤헤, 좋아.”

“그것도 해외로 가는 거니까?”

“그래서 더 좋아!”

김채은과 내 손엔 커다란 캐리어가 하나씩 들려있었다.

마법 가방에 넣어도 되긴 하지만, 김채은이 여행 분위기를 내고 싶다며 굳이 손에 들고 있다.

지금 우리는 미국으로 가기 위해 이동 중이었다.

여행과 데이트가 실제 목적이긴 하지만, 표면 상으론 클랜 일정을 위한 미국 방문이었다.

리암 헨드릭스와 <자유의 날개>가 <이블 헌터> 클랜에 제의한 공식 초청.

나는 클랜의 마스터이자 대표로서 이를 가게 됐고, 마찬가지로 클랜원인 김채은은 그 동반 인원으로서 참여하게 됐다.

‘원래는 스승님이었지만….’

사실 처음 동반 인원으로 제의받은 건 부마스터인 유은설이었다.

클랜 공식 일정에 마스터와 부마스터가 동시에 참여하는 건 굉장히 드문 일이지만, <자유의 날개> 클랜이 세계 최고 클랜으로서 권위가 높은 클랜이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다만, 스승님의 개인 일정이 너무 바쁜 탓에 미국 방문은 아쉽게 무산됐다.

그녀는 클랜 부마스터이기 전에, 한국을 대표하는 S급 홀더이자 국내 최고의 암살자 계열 홀더.

특히 최근엔 ‘아카데미 강사 활동’이나 <초월자의 방> 공략 등으로 시간을 많이 뺐었기에, 그간 미뤄뒀던 개인 일정이 산더미처럼 쌓여있었다.

심지어 유일한 제자인 내가 S급 홀더 승급까지 해버린 상황.

관심도는 폭발하고, 인터뷰 요청은 쏟아진다.

안 그래도 바쁜 일정이 더욱 촘촘해질 수밖에 없었다.

-협회고 뭐고 그냥 다 엎어버릴까요…?

-지, 진정하세요, 스승님.

-저도 재현과 미국 가고 싶었는데….

무서운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내뱉으며 진한 아쉬움을 표했던 유은설.

어쨌든 그렇게 그녀가 동반 인원 자리를 양보하면서 김채은이 함께 갈 수 있었다.

어차피 대외 업무를 처리할 기획팀과 운영팀 인원들도 별개로 참석하기에, 동반 인원으로 가는 홀더는 누가 가든 큰 상관은 없었다.

“재현아.”

“응?”

고개를 돌리니 김채은이 살짝 불안한 얼굴을 하고 있다.

“그 혹시… 다른 애들은 뭐래?”

“다른 애들?”

잠깐 고개를 갸웃했지만 곧장 생각이 났다.

“가은이랑 주연이?”

“응.”

“왜, 이제야 막 뒤가 두려워?”

끄덕끄덕-.

미어캣 같은 표정으로 고개를 몇 번 끄덕이는 김채은.

“나 애들한테 통보만 해놓고 톡방 안 봤거든, 무서워서…. 애들 뭐래? 나 막 한국 돌아오면 몸 숨겨야 할 정도야?”

“하하하.”

선수 치고 통보만 하는 게 이렇게 무섭다.

저번 문가은의 화난 얼굴을 생각해 보면 충분히 납득이 가는 불안이다.

나는 웃음을 지으며 김채은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걱정 마. 주연이랑 가은이도 여행 가기로 해서 화 풀렸어.”

“…여행?”

처음 듣는 이야기에 김채은이 눈을 동그랗게 뜬다.

“아… 말 안 했었나? 다른 애들도 오랜만에 여행가고 싶다고 하길래, 이번에 쉬는 김에 날 잡고 같이 가기로 했거든. 채은이랑은 미국 같이 가니까, 주연이랑 가은이는 유럽 쪽으로.”

“유럽?!”

깜짝 놀라 소리치는 김채은.

가던 길조차 멈춘 채 제자리에 선다.

…그리곤 날 와락- 껴안으며 초롱초롱하게 올려다봤다.

“저도 가고 싶어요, 유럽.”

“시작부터 존댓말은 반칙인데?”

요즘 들어 은근히 날 조련하려 하는 김채은이다.

그녀는 껴안은 손을 풀지 않은 채 눈을 깜빡였다.

“같이 가면 안 돼?”

“당연히 안 되지.”

“아, 왜애- 나도 갈래애- 왜 셋이서만 가아아-.”

“그야 미국은 우리 둘이서만 가니까. 양보할 땐 양보할 줄 알아야지.”

“우으… 그건 맞지만… 나도 유럽 안 가봤는데….”

아쉬움 가득한 그녀에게 가볍게 입을 맞춘다.

그리곤 양 볼을 잡으며 말했다.

“다음에 가자. 대신 이번에 미국에서 재밌게 놀면 되잖아.”

“우음….”

나도 마음 같아서는 미국이든 유럽이든 다 데려가고 싶다.

세 명의 연인과 각각 다른 날에 둘만의 여행을 떠나고 싶은 마음이 왜 없을까.

다만 우리는 연인이면서 직장 동료이기도 했다.

<이탈자의 방> 공략이 휴전 상태에 돌입한지 얼마 지나지 않았고, 이제 막 창설된 <이블 헌터> 또한 아직은 내실을 다져야 할 단계다.

지금이야 잠깐 휴식을 냈다지만, 언제까지나 놀고만 있을 순 없는 노릇이었다.

때문에 이렇듯 촘촘한 일정을 쪼개고 쪼개 연인들과 시간을 보내는 것이었다.

“헤헤, 알겠어.”

김채은도 그런 사정들을 알기에 금세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그녀도 괜히 투정을 부려봤을 뿐이라는 걸 나도 알았다.

그래도 이해해주는 그녀가 고마워 한 번 더 입을 맞춘 후 손을 맞잡았다.

“그럼 가자. 늦을수록 즐길 시간 부족하니까.”

“응!”

* * *

…그리고 도착한 미국.

타국에 대한 기대감이 부풀기도 전.

나는 황당하다는 얼굴로 앞을 보고 있었다.

아마 보이진 않지만, 옆의 김채은도 비슷한 얼굴일 거다.

“네가 왜 여기 있냐?”

“…….”

낯선 땅에서 마주친 익숙한 얼굴.

내 절친이자 <이블 헌터>의 핵심 클랜원.

박진우가 떨떠름한 얼굴로 우릴 마주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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