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아카데미 사기 룬을 얻었다 (313)화 (313/353)

뉴욕 더블 데이트 (2)

미국의 실질적 수도라 불리는 뉴욕.

뉴욕시는 뉴욕주뿐만 아니라 미국을 통틀어서 가장 규모가 큰 최대 도시이고, 경제적 혹은 문화적으로도 중심 지역이라 불릴 만한 전통 깊은 대도시다.

그 규모가 워낙 방대해서 세계적인 도시로 꼽히기도 한다.

그리고 이러한 뉴욕의 유명세는…

단순히 일반인들의 세계에만 국한되지 않았다.

“미국 홀더 계에선 양대산맥 도시로 불려.”

“양대산맥?”

신기하고 재밌는 듯 되묻는 김채은.

그녀도 아마 공부해서 대충은 알고 있는 내용일 텐데, 이렇게 또 내 입으로 듣는 게 좋은 모양이었다.

“응. LA랑 뉴욕. 홀더들의 수가 가장 많고, 세계적인 대형 클랜들도 자리한 곳. 당연한 얘기겠지만, 주로 대도시인 곳들이 홀더 도시로도 유명해지더라고.”

뉴욕은 미국의 양대산맥 홀더 도시로 불린다.

로스 앤젤레스와 더불어 가장 규모가 크고, 대형 클랜과 고위 홀더들이 많이 자리잡고 있는 도시.

우리도 결국 수도이자 최대도시인 서울에 홀더 인프라가 잘 구축된 것처럼, 미국도 유명하고 큰 도시에 홀더들이 모일 수밖에 없는 구조였다.

“와… 사람 진짜 많아.”

그래서인지 우리가 도착한 [워프 게이트]에도 엄청난 홀더들의 인파가 기다리고 있었다.

뉴욕의 워프 게이트는 중심지인 맨해튼에서 강을 건너야 나오는 퀸즈에 자리하고 있는데, 이곳은 JFK 공항(*뉴욕의 중심 공항)이 있는 곳이기도 하다.

‘인천하고 비슷하네.’

한국의 국제 워프 게이트가 인천 국제공항에 자리하고 있듯, 미국 역시 각 지역의 공항 내에 국제 워프 게이트가 자리하고 있었다.

다만 차이점이 있다면.

미국의 초대형 공항으로 불리는 ATL 공항이나 LAX 공항에 비해 다소 작은 편이던 JFK 공항이, 국제 홀더들의 허브가 되면서 그 규모가 훨씬 커졌다는 것 정도?

“홀더들의 중심 도시라 공항이 더 커진 거야?”

“응. 뉴욕 쪽에 오려는 홀더들은 다 이 공항 거치니까.”

미국 홀더들의 중심 도시, LA와 뉴욕.

국제 이동을 하는 홀더들은 당연히 이 두 도시의 워프 게이트를 애용한다.

즉, 미국을 오가는 홀더라면 대부분 둘 중 하나를 이용하는 것.

그 때문에 JFK 공항 내부의 유동 인구는 어마어마한 수준이었고, 덕분에 주변 편의시설이나 부속 건물들도 상당히 화려하게 구축돼 있었다.

“와아- 너무 신나, 재현아!”

도시의 명성에 걸맞은 뜨거운 숨결.

그들이 맞이하는 환영인사가 마음에 들었는지, 김채은이 환한 미소를 지으며 내 팔을 잡아당겼다.

“그러게. 여행 온 기분 확 난다, 그치.”

“응응! 우리 호텔은 어디야? 이 근처야?”

“아니, 호텔은 맨해튼 쪽에 있어. 저기 국내 이동 워프 게이트로 바로 가면 되긴 하는데….”

해당 게이트에 살짝 시선을 돌렸다가, 말 끝을 흐리며 김채은을 본다.

초롱초롱한 눈망울로 빤히 날 보고 있는 그녀.

그건 마치, ‘저 여기 더 있고 싶어요…!’라고 외치고 있는 것만 같았다.

그에 나는 참지 못하고 웃음을 터뜨렸다.

“퀸즈도 조금만 구경하다 갈까?”

“응!”

역시 김채은이 원한 건 다채로운 여행.

바로 맨해튼 호텔로 가 짐을 풀고 쉬고 싶은 마음도 있었지만, 미국까지 건너온 이상 내키는 대로 움직이며 여행하는 것도 좋았다. 

다행히 비행기를 탄 게 아니기에 체력은 충분한 상황.

우리는 마법 가방에 캐리어와 짐들을 넣은 후 곧장 공항을 나설 준비를 했다.

“…어?”

낯선 곳에서 마주친 익숙한 얼굴.

박진우를 보기 전까진 말이다.

“네가 왜 여기 있냐?”

“…….”

떨떠름한 얼굴로 우릴 보고 있는 박진우.

그는 머리를 긁적이며 한숨을 쉬더니, 이내 천천히 우리 앞쪽으로 다가왔다.

“야, 도재현.”

“어?”

처음 듣는 박진우의 차가운 음성이 나온다.

난데없는 상황 전개와 전혀 익숙지 않은 톤.

그 조합에 왠지 모르게 나도 긴장이 됐다.

그리고 박진우가 말을 이었다.

“약속 지켜.”

“약속?”

“어.”

“…뭔 약속?”

“특별 코칭! 클랜 만들면 특별 코칭해준다며!! 근데 이 빌어먹을 자식이 한참을 미뤄두고 있다가, 아직 코칭 시작도 안 했는데 일 핑계로 여친이랑 놀러와?! 야, 이 자식아. 나부터 살려내…!!”

분노에 가득 찬 박진우의 고함이 귓가와 주변을 강하게 때린다.

마치 당장이라도 내 멱살을 잡을 듯한 기세.

그 황당한 상황에 나는 순간 놀랐다가…

이내 번뜩 떠오른 생각에 머리를 탁- 쳤다.

‘이 새끼, 아직도 고백 못 했구나.’

훈련과 성장에 미쳐, 그간 연애하곤 담을 쌓았던 박진우.

그와 카밀라의 연애 전선은…

아무래도 여전히 답보 상태인 모양이다.

* * *

“그러니까… 카밀라가 휴가 내고 잠시 미국에 온다길래 무작정 따라는 왔는데, 아직 너 미국에 왔다는 말도 못 했다고?”

“오우- 정확해….”

박진우가 살짝 풀이 죽은 얼굴로 답했다.

평소 그를 알던 이에겐 매우 보기 드문 모습.

하지만 난 그런 모습에 전혀 동정이 가질 않았다.

‘아니, 그냥 연락하면 되잖아.’

나도 미국에 왔는데 한 번 보자.

그냥 궁금해서 한 번 연락했다….

그런 게 뭐가 그리 어렵다고 망설이는 걸까.

어휴, 등신….

그 말이 목구멍까지 올라오는 걸 겨우 참았다.

평소라면 거리낌없이 했을 감탄사 같은 욕이지만, 지금처럼 자신감을 잃은 박진우에겐 웬만해서 아끼는 게 좋았다.

“하아… 휴가도 5일이나 냈는데….”

박진우의 푸념에 내 눈썹이 꿈틀거렸다.

“뭔 휴가. 설마 이블 헌터?”

“그럼 내가 클랜 말고 휴가 쓸 데가 어디 있냐. 아카데미는 휴강 중인데.”

“넌 왜 휴가를 써놓고 마스터한테 말 한 마디 없냐.”

“오우- 네가 데이트에 정신 팔려서 안 들은 거겠지. 애초에 긴급 소집도 끝난 마당에, 인사팀 승인만 받으면 되잖아.”

“…그건 그렇지.”

박진우치고 쓸데없이 논리적이네.

이 자식은 말을 이렇게 잘 하면서 왜 카밀라 앞에선 바보가 되는 거야?

괜히 민망해져서 머리를 긁적였다.

“헤에- 진우가 카밀라를 좋아했었구나….”

그리고 옆에서 묘한 얼굴로 감탄 중인 김채은.

그러고 보니 박진우가 카밀라를 좋아한단 사실은 나 말고 아는 사람이 없었다.

그동안 꽤 티를 많이 내고 다닌 것 같은데, 의외로 이를 눈치채는 클랜원이나 친구들이 없었다.

“김채은, 다른 사람한테 절대 말하지 마. 무조건 비밀이야.”

박진우가 그녀에게 신신당부한다.

그 모습에 나는 가볍게 핀잔을 줬다.

“야, 채은이가 어디 가서 떠벌릴 성격이냐? 걱정하지 마.”

“…누가 여친 아니랄까 봐.”

“꼬우면 너도 연애하든가.”

“진짜 뒤질래? 특별 코칭하기로 해놓고 까먹고 있던 거 다 계산해볼까? 당장 어떻게 코칭할지나 생각해.”

“미안. 지금 필사적으로 생각 중이야.”

한 번 개겼다가 곧장 고개를 숙이며 반성했다.

사랑에 눈을 뜬 박진우는 무섭다.

“근데 있잖아.”

우리의 만담을 보며 까르르 웃던 김채은이 문득 생각난 듯 말을 꺼냈다.

“카밀라는 캘리포니아 아카데미 소속 아니었어? 우리 아카데미랑 교류했던 곳은 거기잖아. 근데 왜 진우는 뉴욕에 있어?”

“아, 그거….”

LA 외곽에 자리한 ‘캘리포니아 홀더 아카데미’.

뉴욕 홀더 아카데미와 더불어 미국에서 가장 유명하고 뛰어난 아카데미다.

카밀라 플로레스는 여기서 교류 학생으로 건너온 홀더였고, 당연히 휴가 차 미국에 왔다면 있어야 할 곳도 LA였다.

“카밀라 부모님이 이사 왔대, 뉴욕으로. 행정 절차 다 끝난 상황에 아카데미는 굳이 갈 필요 없기도 하고, 어차피 카밀라도 휴가 차 미국에 온 거라서 뉴욕으로 왔나 봐.”

즉, 지금 카밀라도 뉴욕에 있다는 뜻.

이를 술술 설명하는 박진우의 모습에 나는 물었다.

“미국 와서 연락 한 번 못해봤다더니, 의외로 빠삭하다?”

“한국에 있을 때 들은 거야.”

“한국에선 어떻게 들었는데.”

“…이탈자의 방 공략 때. 클랜 회의 끝나고.”

“넌 진짜 내가 클랜 안 만들었으면 어쩔 뻔했냐?”

“제발 좀 닥쳐.”

조금만 더 하면 녀석이 칼을 뽑을 것 같아서 난 조용히 입을 다물었다.

역시 사랑에 눈을 뜬 박진우는 무섭다.

“그럼 만나면 되는 거 아니야? 같은 뉴욕이면.”

문득 고개를 갸웃하며 묻는 김채은.

역시 내 여자친구.

하는 생각이 나와 매우 비슷하다.

박진우는 도재현mk2의 등장에 몸을 부르르 떨다가, 차마 김채은에게마저 화를 내긴 힘든지 한숨을 쉬며 답했다.

“그게 그렇게 쉽게 되면, 내가 이러고 있겠냐….”

애초에 박진우가 그 정도로 연애를 잘했다면, 카밀라가 뉴욕에 있든 LA에 있든 상관없다.

당장 만나자고 연락하고 만나러 가면 되니까.

…녀석에겐 그게 복잡하고 어려워서 문제였다.

“그럼 같이 만날까?”

“어?”

뜬금없는 제안에 나와 박진우의 시선이 동시에 쏠린다.

김채은은 뭐가 문제냐는 듯 손가락을 피며 말했다.

“혼자 만나기 힘들면 같이 보면 되잖아. 카밀라랑 진우, 나랑 재현이. 서로 같이 한 활동도 많아서 어색하지도 않고.”

명쾌한 해답을 꺼낸 김채은이 환하게 웃었다.

“뉴욕 더블 데이트, 어때?”

* * *

김채은의 제안에 우린 바로 결단을 내렸다.

카밀라에게 문자를 보내기로.

처음엔 박진우에게 직접 전화하라고 시켰는데, 도저히 그건 못하겠다고 하길래 문자로 합의를 봤다.

다행히 채은이와 나도 시간이 된다.

헨드릭스의 공식 초청은 내일이었기에 아직 여유로웠다.

다만.

“김채은, 너 진짜 괜찮아?”

박진우가 괜히 미안했는지 계속 묻는다.

어쨌든 채은이로서는 오랜만에 즐기는 나와의 데이트, 그것도 단 둘이서 있는 시간.

이를 자기 문제 때문에 뺏는 것 같아 녀석도 마음이 복잡했던 모양이다.

저토록 배려심 깊은 놈이 자기 연애는 또 못 한다.

“응. 어차피 우리 길게 여행 온 거라 시간도 많고, 나도 언젠가 더블 데이트라는 거 해보고 싶었거든.”

그렇게 말한 김채은이 잠깐 내게 시선을 돌린다.

자긴 괜찮은데 난 어떠냐는 듯한 눈빛.

그에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나도 괜찮아. 애초에 진우 녀석 내가 특별 코칭 해주기로 했었으니까. 이번에도 더블 데이트로 제대로 가르쳐 줘야지.”

그 말을 듣던 박진우가 이마를 찌푸리며 핀잔을 준다.

“야. 그게 네가 코치해주는 거냐? 김채은이 해주는 거지.”

“어떻게 보면 난 감독이지. 채은이는 내가 데려온 코치고. 좋은 코치 데려오는 것도 감독 실력이야.”

“아오, 말이나 못하면.”

얄미운 내 대답에 녀석이 항복 선언을 했다.

그리고 틀린 말도 아니다.

실제로 채은이를 미국에 데려온 것도 나고, 카밀라에게 보낸 문자도 그녀와 합심해 직접 써줬다.

“너 뉴욕에 온 건 카밀라가 알아?”

“어, 저번에 한 번 말했었어.”

“오케이. 그럼 이렇게 보내면 되겠다.”

최대한 자연스럽고 부드럽게 문자를 보낸다.

나, 김채은, 박진우, 카밀라.

이렇게 넷이서 함께 만나는 제안에 대해.

당연히 ‘더블 데이트’라는 말은 절대 쓰지 않고, 그저 친구들이 일정 상 미국에 오게 됐는데 같이 노는 게 어떠냐는 식의 문자였다.

그리고.

“왔다!”

소리치며 핸드폰을 붙드는 박진우.

[카밀라 플로레스] 좋아. 같이 가. 마스터, 채은. 미국 구경. 우리가 도와주자.

카밀라에게서 긍정적인 답이 왔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