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 더블 데이트 (3)
서울 홀더 아카데미.
충격적인 사건들이 연달아 이어지며 작년에 이어 또다시 휴강이 선언됐지만, 그마저도 <이탈자의 방> 제6구역 공략을 끝으로 안정권에 접어들며 다시 개강을 하게 됐다.
이에 몇몇 학생들을 제외한 대부분의 학생들은 아카데미에 출석했다.
“호, 혹시 송현아 홀더님 아니세요?”
“아, 네… 맞아요. 강의실 가는 중이라 실례할게요.”
“와-.”
그리고 그건 신입생 3인방 역시 마찬가지.
송현아와 박윤서, 최아린.
셋은 오랜만에 함께 강의실을 가고 있었다.
‘홀더 납치 사건’과 <이탈자의 방> 공략으로 꽤 이름을 날리게 된 탓에, 안 그래도 유명한 송현아는 아카데미에서 더 유명해졌지만… 그녀들은 이를 크게 개의치 않았다.
워낙 자주 있던 일이고, 정작 그녀들의 관심사는 따로 있었으니까.
“선배님 진짜 대단하시다… 어떻게 21살에 S급 홀더가 되지?”
늘 그랬듯 박윤서가 가장 먼저 말문을 연다.
S급 홀더 도재현.
21살의 아카데미 재학생이 만들어낸 타이틀.
요즘 아카데미고 학계고 할 것 없이, 모든 홀더 계와 전 세계에서 가장 핫한 이슈.
도재현의 공식 팬클럽 회원인 박윤서는 관련 기사를 수십 번이나 봐왔지만, 아직까지도 그 결과가 쉽게 믿기질 않았다.
그만큼 그가 일궈낸 결과는 그동안의 성과와 비교도 안 될 정도로 대단했다.
“압도적인 재능의 차이란 거지. 최초, 최연소 이런 타이틀은 다 가져가신 분이니까.”
학생 팬 한 명을 가볍게 떼어낸 송현아가 말을 받았다.
그녀의 말처럼 도재현은 최초 혹은 최연소와 관련된 타이틀들을 모조리 가져가는 중이다.
최연소 공격대장.
최연소 클랜 마스터.
최연소 S급 홀더….
여기에 <초월자의 방> 최초 발견이나 <울펜서>, <이탈자의 방> 각 구역 등 각종 미발견 던전을 최초 공략한 건 말할 것도 없었다.
그야말로 홀더로서 쌓아올릴 수 있는 극한의 성과들.
‘빌런 대소탕 작전’으로 원래도 명성이 높은 그였지만, 이번 일들을 통해 학생들 사이에선 완전히 영웅 취급을 받게 됐다.
그간 아카데미에 안 좋은 일이 꽤 많았음에도, 매일이 경사인 분위기도 그런 이유였다.
“선배님이랑 클랜 소속인 학생들 전부 3주간 출석 인정된대.”
“진짜?”
“응. 이번 활약 덕에 아카데미 명성을 세계적으로 알렸고, 또 납치됐던 홀더들을 모두 구해낸 공로를 인정하는 휴가래. 교양 있는 행정 처리지.”
<이블 헌터> 클랜도 덩달아 수혜를 받았다.
처음 창설될 때만 해도 학생 클랜엔 결국 한계가 있지 않겠냐는 말을 들었지만, 의문들을 말끔히 해소해내며 아카데미의 새로운 자랑거리로 떠올랐다.
덕분에 클랜원 전원 3주 휴가 및 출석 인정이라는 파격적인 보상까지 받은 상황.
재밌게도 이러한 특혜에 아카데미 학생 중 누구도 불만을 제기하지 않았다.
“아~ 나도 이블 헌터 들어가고 싶다.”
현재 <이블 헌터>는 클랜원 상시 모집 상태다.
아직 단 1명의 클랜원도 새로 뽑지 않았지만, 클랜에서 마음만 먹는다면 얼마든 추가 인원을 선발할 수 있었다.
그리고 학생 클랜원 TO는 여전히 남은 상황.
하지만 소수 정예 클랜을 지향 중인 도재현이 아직 미숙한 신입생 클랜원을 뽑을 리는 없었다.
박윤서는 안 된다는 걸 알면서도 푸념해봤다.
“아린아, 뭐해?”
그러던 중 송현아의 시선이 최아린에게 향한다.
옆에서 걷는데 혼자 핸드폰을 보며 웃고 있는 그녀.
예전이라면 그녀가 뭘 하든지 딱히 신경도 안 썼겠지만, 저번 ‘홀더 납치 사건’ 이후로 세 사람의 사이는 매우 가까워졌다.
매일 티격태격대며 싸웠어도 결국은 소중한 친구였다는 걸 깨닫게 된 것.
그래서 이젠 송현아와 최아린의 사이에도 전혀 허울이 없었다.
“아, 아무것도 아니야.”
그런데 순간 말을 더듬으며 핸드폰을 덮으려는 최아린.
그에 친구들의 날카로운 센서가 발동한다.
“아무것도 아닌 게 아닌데?”
송현아의 눈빛이 박윤서를 향한다.
그러자 박윤서가 와락- 하고 최아린을 뒤에서 안았다.
“꺅-?!”
“와. 이거 봐, 이거 봐. 역시 재현 선배님 사진 보고 있었어.”
핸드폰 화면을 가득 채운 도재현의 사진.
그리고 상단에 떡하니 기록된 ‘우수회원’의 등급.
그의 공식 팬카페에서, 그것도 당당한 회원으로 보고있음을 알려주는 화면이었다.
“언제는 비즈니스 관계라며.”
“사, 사람은 원래 변해.”
“이 불여우가 진짜…!!”
원래는 도재현에 대해 정말 아무런 감정도 없던 최아린.
감정은커녕, 오히려 광신도처럼 덕질을 하는 친구들이 이해가 가지 않았었다.
그런데 그런 그녀도 <버려진 연구소>에서의 구출로 완전히 생각이 바뀌었다.
누구보다 먼저 그녀를 구하러 와 준 사람.
위험한 상황 속에 그녀의 안전을 우선했던 사람.
도재현.
그를 향한 강렬한 선망과 동경이, 이미 최아린의 마음 속에 가득 자리 잡은 상태였다.
“와, 근데 아린이 우수회원 엄청 빨리 달았다.”
“그게 중요해? 우린 오늘 아린이가 거짓말을 한 대가를 받아내야 해.”
“아, 맞지. 이해가 안 간다고 우리한테 뭐라 할 땐 언제고. 혼 좀 나야 돼, 최아린.”
“이, 이거 놔!”
그렇게 세 친구가 농담반 진담반으로 티격태격 싸우던 찰나.
“저, 실례합니다.”
그녀들의 앞에 문득, 정장을 입은 한 남자가 나타났다.
“…누구세요?”
“아, 저는 이런 사람입니다.”
의아한 눈길이 모여들자, 남자는 품 안에서 명함을 꺼내 보여줬다.
그리고 명함을 확인한 세 사람의 눈이 순간 확 커진다.
<이블 헌터 클랜 스카우트팀>
-총괄 스카우트 팀장 윤재호
안에 적힌 내용이…
그녀들의 최대 관심사 중 하나였기 때문이다.
“가시는 길을 방해해 죄송합니다. 다름이 아니라 저희 클랜에서 이번에 비공식 신규 클랜원 모집을 하는데, 세 분께 채용 면접 제의를 하고자 이렇게 찾아왔습니다.”
“……!”
“저, 저희를요?”
“네. 원래는 신입생 클랜원을 뽑지 않을 생각이었지만, 세 분이 이탈자의 방 초입 구역에서 연합군을 도와 싸웠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다들 극찬이 자자하더군요.”
제1구역 <버려진 연구소>에서 최아린이 구출된 후.
송현아와 박윤서는 그대로 현계로 돌아가지 않고, 던전에 남아 연합군을 도와 언데드들을 사냥했다.
처음엔 아카데미 측의 반대가 심했지만, 친구를 납치한 루덴아크와 꼭 싸우고 싶다는 두 사람의 의지를 말릴 수는 없었다.
거기에 최아린도 직접 전투 마도구를 제작하며 힘을 보탰고, 덕분에 초입 구역에서 세 사람에 대한 이야기는 꽤 유명했다.
-언데드와 맞서 싸운 1학년의 천재들!
언론에서도 한 번 언급된 적이 있는 이슈.
아까 송현아가 걸어갈 때 곧장 알아보는 학생이 있던 것도 그런 이유였다.
“면접이 그리 어렵진 않을 겁니다. 세 분 모두 참여해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특히 최아린 홀더는 꼭 참여해달라는 마스터의 전언이 있었습니다.”
“재, 재현 선배님이요?”
“네네.”
…그리고 그런 그녀들에게.
열심히 싸운 후 뜻밖의 보상이 찾아오고 있었다.
* * *
“그럼 신입생들도 클랜원으로 받는 거야?”
김채은이 신기하단 눈빛으로 묻는다.
딱 5명으로 제한된 1학년 클랜원 TO.
원래 그중 1명도 채울 생각이 없었지만, 이번에 생각이 바뀌었다.
“전부는 아니고, 일단 그 3명만 면접으로. 그리고 워낙 대단한 애들이라 걔네가 확실히 온다는 보장도 없어. 한 명은 용광검로 마스터 여동생에, 한 명은 꼭 영입하고 싶은 천재 연금술사, 그리고 한 명은….”
시선을 살짝 옆으로 옮긴다.
카밀라의 옆에 서서 딱딱히 굳어 있는 박진우.
원래 저 정도까지는 아닐 텐데 ‘더블 데이트’라는 말 때문인지 오늘따라 유독 더 긴장한 듯 보였다.
나는 김채은에게만 들리게 조용히 말했다.
“진우 녀석 동생이니까.”
“아, 그 박윤서라는 분?”
“응. 진우랑 다르게 똑부러지고 실력도 괜찮은 애거든. 기왕이면 클랜원으로 들어왔으면 좋겠네.”
이번 공략을 통해 확실히 느꼈다.
재능 있는 홀더들은 나이와 경력을 따지지 않는다.
아무리 학생 클랜원이라고 해도 실력만 충분하다면 공략에서 활약할 수 있었고, 경력 많은 프로 홀더라고 해도 얼마든지 실수를 저지를 수 있었다.
마스터로서 클랜 단위 전투를 지휘하며 나도 이번에 배운 게 많았고, 덕분에 생각도 꽤 바뀌게 됐다.
“마스터! 여기가 브로드웨이다!”
문득 카밀라가 가운데에 서며 손을 번쩍 들었다.
그녀는 박진우에게 문자를 받고 마침 시간이 여유롭다고 금방 나타났었는데, “뉴욕에 왔으면 이건 꼭 봐야지!”라고 외치며 우릴 이끌고 온 게 바로 이곳이었다.
맨해튼 남부, 브로드웨이.
바둑판처럼 배열된 거리가 끊임없이 연결된 대로.
뉴욕 명소 중 하나인 타임스 스퀘어가 자리한 곳이며, 뉴욕의 거리 중 가장 유명하다고 볼 수 있는 번화가였다.
그리고 그 명성에 걸맞게, 어마어마한 인파가 거리를 가득 메우고 있었다.
‘원래라면 퀸즈 여행을 했을 텐데.’
박진우의 성공적인 연애 사업을 위해 퀸즈 여행은 잠시 보류하기로 했다.
김채은이 눈을 빛내며 주변을 둘러봤다.
“와- 뉴욕은 어딜 가나 사람이 많네.”
“아마 브로드웨이라 그럴 거야. 여기가 쇼핑하기도 좋고, 공연 쪽으로도 성지로 불리거든.”
그런 내 말에 카밀라가 다시 손을 번쩍 들었다.
“맞다! 그래서 우린 오늘 공연 볼 거다. 뉴욕에 오면 공연 꼭 봐야 하니까!”
브로드웨이는 세계 연극, 뮤지컬의 성소라고도 불린다.
공연 예술에선 영국 웨스트엔드와 더불어 최고로 꼽히는 지역.
덕분에 이곳을 찾는 일반인 중엔 공연 문화를 즐기는 팬들도 상당히 많았다.
“뉴욕에서 꼭 봐야 하는 건 자유의 여신상 아냐?”
“그건 밤에 볼 거다. 밤에 보면 꽤 예쁘다.”
“다 계획이 있구나.”
카밀라는 갑자기 불려왔는데도 계획이 철저했다.
그 짧은 시간에 우리와 뭘 할지 미리 정해 놓고 온 모양이다.
이래서야 누가 누굴 도와주러 온 건지 헷갈릴 정도였다.
“마스터, 채은. 특별히 보고싶은 공연이 있나?”
“글쎄, 공연 쪽은 잘 몰라서….”
카밀라의 질문에 말끝을 흐린 나는 흘깃 박진우를 봤다.
녀석은 여전히 아까의 그 자세로 딱딱하게 서 있었다.
‘아오, 이 자식은 멍석을 깔아줘도….’
그 모습을 보고 난 결단을 내렸다.
이대로 카밀라가 계속 안내를 하다 보면, 우리가 계획했던 방향과는 조금 달라질 수 있었다.
“카밀라. 그럼 잠깐 따로 다녔다가 다시 모이는 건 어때?”
“음?”
갑작스러운 내 제안에 카밀라가 의아한 표정을 짓는다.
“어쨌든 우리도 맞는 공연 찾아보고, 브로드웨이 구경도 다니려면 시간이 걸리니까. 우린 우리대로 움직이고, 카밀라는 진우랑 같이 놀다가… 이따 저녁 먹을 때쯤 다시 모이는 거지. 어때?”
돌려 말하긴 했지만, 사실상 서로 커플로 움직이자는 말.
멍하니 서 있는 박진우에게 힘을 실어주기 위한 회심의 제안이었다.
“읏…?!”
나는 순간 김채은의 어깨를 거세게 잡아 내 품으로 끌어왔다.
-우리는 커플이니 따로 있을 시간이 필요하다!
그런 의사표현을 더 확실히 하기 위한 행동이었다.
“아, 그….”
그런데 그걸 보던 카밀라의 표정이 이상해졌다.
처음엔 이해를 못하는 듯하더니…
이내 급격히 얼굴이 붉어진다.
그리곤 고개를 푹 숙이며 답했다.
“이, 이해했다. 비켜주겠다, 마스터.”
“……?”
뭐야.
제대로 이해한 거 맞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