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아카데미 사기 룬을 얻었다 (315)화 (315/353)

투기장 테러 (1)

박진우는 고개를 저으며 호흡을 가다듬었다.

카밀라와 함께 걷는 거리.

사실 전에도 몇 번이나 같이 다녀본 적은 있었지만, 이렇듯 미국이라는 낯선 땅에서 둘이 걷는 건 느낌이 또 남달랐다.

게다가 미국은 카밀라의 고향.

박진우로서는 잘 모르는 곳이기도 하기에, 실수하지 않으려고 어깨에 더 힘이 들어갈 수밖에 없었다.

“진우! 이것 좀 먹어봐라.”

그런 박진우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카밀라는 신난 얼굴로 푸드트럭에서 음식을 주문했다.

벌써 네 번째 푸드트럭이다.

처음 이동할 때만 해도 “역시 클랜 마스터는 화끈하다….”와 같은 이상한 소리를 하더니, 금세 텐션을 되찾으며 먹거리 탐방을 시작했다.

핫도그, 와플, 프레첼, 슬라이스 피자….

점심을 거르면서까지 별의별 음식들을 다 먹었는데, 그녀는 질리지도 않는지 또 새로운 푸드트럭을 찾아왔다.

‘베이글….’

도넛처럼 중앙이 뚫린 채 동그랗게 생긴 빵.

반으로 갈라진 모양과 치즈가 가득 들어 있는 안.

이 근방 푸드트럭의 명물이라는 크림치즈 베이글이었다.

그리 좋아하는 음식은 아니지만, 카밀라가 직접 먹여주는 걸 마다할 순 없었다.

박진우는 곧장 베이글의 한쪽을 베어물었다.

“오우- 가 아니라, 음… 맛있는데?”

그리고 평소처럼 전용 감탄사를 쓰려다가…

순간 멈칫 하며 말을 바꿨다.

아까 카밀라가 오기 전의 퀸즈.

자신의 친구가 해줬던 특별 코칭이 생각났기 때문이다.

-너 카밀라 앞에선 그놈의 오우 쓰지 마.

-……? 아니, 왜?

-아오. 좀 쓰지 말라면 쓰지 마.

-…알았어.

마음에 안 들긴 하지만 어쨌든 친구놈은 연애에 있어서 자신의 선배.

조언을 새겨들어서 나쁠 건 없었다.

“하하! 진우, 정말 맛있어?”

그런데 맛있게 베이글을 먹고 있는 박진우의 모습을 보고, 카밀라가 웃음을 터뜨리며 손뼉을 친다.

뭔가 재밌는 광경을 본 것 같다는 얼굴.

그에 박진우는 멋쩍은 기분으로 답했다.

“어, 맛있는데? 왜?”

“이거, 엄청 느끼해. 진우, 싫어할 줄 알았는데.”

“아….”

사실 카밀라의 말이 맞았다.

푸드트럭의 크림치즈 베이글은 분명 맛있긴 한데 계속 먹기엔 물리고 느끼한 면이 있었다.

무엇보다 박진우 스타일의 음식이 아니다.

박진우가 좋아하는 건 대체로 돈까스, 제육볶음, 비빔밥….

전형적인 상남자의 식단이었다.

“진우, 고마워.”

“어? 뭐가?”

뜬금없는 감사 인사에 박진우가 되물었지만, 카밀라의 얼굴은 어느 때보다 평온했다.

“그냥, 다. 이렇게 안 맞는 음식도 같이 먹어주고, 또….”

한국말이 어색한 카밀라가 천천히 문장을 만든다.

“처음 서울 왔을 때 나 도와준 거, 같이 대련해준 거, 친구들 소개해준 거, 클랜 들어가자고 한 거.”

그저 호감의 표시였고, 가슴이 시킨 행동이었다.

그러나 그녀는 그 모든 호의를 깊이 기억하고 있었다.

“공략 같이 간 거, 위기 때 나 지켜준 거, 항상 같이 있어준 거.”

정확히는 방패를 주로 쓰는 카밀라가 팀원들을 지킨 거지만… 그런 건 아무래도 중요하지 않았다.

중요한 건 박진우와 카밀라.

두 사람이 같은 곳에 서로를 마주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바라보는 눈빛 속에, 카밀라는 활짝 웃으며 말했다.

“나 네가 좋아! 나랑 사귀자, 진우!”

상여자는 식단이 아닌 솔직함으로 증명한다.

카밀라의 화끈한 고백에 박진우는 멍하니 선 채 그녀를 바라봤다.

그리곤 천천히 생각했다.

‘특별 코칭… 아무 쓸모없었잖아.’

핑계를 대고 카밀라를 부르고, 둘이 있을 상황을 만들고, 어떻게 고백해야 할지 동선까지 모두 짜두었었는데… 그런 건 아무런 의미가 없었다.

중요한 건 코치가 아니라 골을 넣는 선수.

박진우보다 먼저 고백해버린 카밀라가 원더골을 넣으며 상황을 종료시켰다.

결국 될 놈은 어떻게든 될 예정이었다.

* * *

카밀라에게 추천받은 코스는 공연만이 아니었다.

뉴욕은 LA와 더불어 미국 홀더들이 가장 많이 모인 중심지.

그 때문에 홀더들의 편의나 즐거움을 위해 마련된 문화 생활도 상당히 많았다.

“홀더 투기장?”

“응. 요즘 미국에서 가장 유명한 스포츠 중 하나고, 특히 뉴욕에서 성행한대.”

김채은과 나는 ‘홀더 투기장’이라는 특이한 스포츠를 보기 위해 와 있었다.

원래 미국의 4대 스포츠는 야구, 농구, 미식축구, 아이스하키.

그런데 현대에 홀더와 괴수들이 등장하면서, 특정 규칙 아래 홀더들끼리 서로 싸우고 승패를 가르는 스포츠가 새로 생겨났다.

약간은 위험하긴 해도, 안전 수칙과 성직자들을 잘 마련해 놓는다면 충분히 매력적인 스포츠.

예로부터 가장 재밌는 구경은 싸움 구경이라고 했던가.

사람들은 홀더들끼리 싸움을 하고 승리를 쟁취하는 이 스포츠에 열광했다.

특히 홀더 간 전투는 일반인은 물론, 같은 홀더들조차 쉽게 볼 수 없는 구경이기에 더욱 인기가 많았다.

“이거 보고, 진우네랑 다시 만나서 저녁 먹고, 공연 보면 시간 딱 맞겠다.”

“와- 우리 지금 완전 알차게 보내고 있어.”

낮엔 타임스 스퀘어에서 쇼핑을 하며 시간을 보냈고, 살짝 비는 타임인 지금은 홀더 투기장에 와 있다.

큰 계획 없이 왔던 미국 첫날이었는데, 카밀라의 안내와 김채은의 열성적인 탐구 덕에 남는 시간들을 꽤 알차게 보내고 있었다.

‘진우 녀석만 좀 잘 되면 좋을 텐데….’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다 했다.

우릴 핑계로 카밀라를 맨해튼까지 불러들였고, 안내를 받은 후 따로 있고 싶다며 시간까지 내줬다.

심지어 그 전엔 어떻게 하면 카밀라의 마음을 살 수 있을지 특별한 코칭까지 해줬었다.

이제 여기서부터는 우리의 손을 놓은 영역이었다.

‘설마 또 아무 말 못하고 있는 건 아니겠지…?’

하나뿐인 친구놈이라 그런가 괜히 더 걱정이 됐다.

벌써 카밀라와 알게 된 지도 반년이 넘어가는데, 오늘은 둘이 있는 분위기도 만들어줬겠다 뭔가 결과를 만들어내길 바랐다.

“나 쉑쉑버거 먹고 싶어!”

김채은의 그 한 마디에 우리는 매디슨 스퀘어 근처까지 가서 프리미엄 버거를 구매했다.

버거에 쉐이크, 그리고 감자튀김을 잔뜩 샀다.

홀더 투기장이라는 새 스포츠를 즐기기 위한 준비 단계였다.

“네, 티켓 확인됐습니다. 안쪽 프리미엄 A구역-13으로 가서 앉으시면 됩니다.”

맨해튼에 자리한 커다란 규모의 경기장.

직원의 안내에 따라 그 안으로 천천히 들어갔다.

잔뜩 기대되는 얼굴로 내 팔짱을 낀 김채은이 문득 물었다.

“재현아, 티켓 오늘 산 거 아니야?”

“응, 맞지.”

“근데 어떻게 프리미엄 자리를 산 거야? 자리가 남나?”

홀더 투기장은 인기가 많은 스포츠다.

아직 규정과 안전 등의 문제로 한국이나 여타 나라들엔 상륙하지 않은 스포츠지만, 적어도 미국 내에선 경기 때마다 매진을 기록하는 인기 스포츠였다.

당연히 오늘 경기도 남는 자리는 없었다.

프리미엄석은 물론, 일반석도 구하기 힘든 게 현실.

“돈이 좋긴 하더라고.”

나는 김채은에게 싱긋 웃으며 말해줬다.

뉴욕주는 암표가 합법이었다.

어쨌든 우리는 경기장 안과 가장 가까운 프리미엄 석으로 가 자리를 잡았다.

손에는 아까 사둔 쉑쉑버거와 먹거리들을 가득 쥔 채.

“이거 마력 결계인가 봐.”

“그러게. 이거 만드는 데에 마력석 엄청 썼겠는데?”

경기장 안과 관중석을 가르는 투명한 벽은 [마력 결계]로 이루어져 있었다.

평범한 결계로는 홀더들의 능력이 뚫을 수도 있기에, 총 네 겹의 [마력 결계]가 중첩으로 구성돼 있었다.

경기장의 규모와 넓은 관중석을 고려하면, 상당히 많은 마력석을 사용했을 법한 결계.

한 마디로 돈을 어마어마하게 퍼부었다는 뜻.

‘…괜히 다른 나라에서 쉽게 못 들이는 게 아니지.’

경기장을 구성하는 것만으로 막대한 자금이 드는 스포츠.

확실한 수익 구조가 정립되지 않은 이상, 다른 나라에서 들이는 게 쉽지만은 않을 것 같았다.

-뉴욕 홀더 투기장에 오신 관객 여러분, 환영합니다! 

그렇게 경기장을 구경하며 잠시 기다리고 있자, 중앙 높은 곳에 자리를 잡은 사회자가 마이크를 들었다.

-지금부터 제121회 뉴욕 홀더 투기 경기가 시작됩니다! 다들 확인을 마치고 입장하셨겠지만, 다시 한번 주의사항과 라인업을 꼼꼼히 확인해주세요!

주의사항은 별다를 게 없다.

무기를 사용하고 마법이 등장하기에 유의하라는 점.

가끔 피가 튀거나 상처가 나올 수도 있기에 조심하라는 점 등.

대부분 일반인 관객을 배려한 주의사항들이었다.

그리고 라인업.

“다섯 팀이나 하네?”

“응. 생각보다 많더라. 아마 빨리 끝나는 경기는 너무 빨리 끝나서 그런 거 아닐까?”

총 다섯 팀의 경기가 준비돼 있었다.

그들의 계열과 등급만을 본다면 이런 식이다.

1. 마법사(B) vs 전사(C)

2. 마법사(C) vs 마법사(C)

3. 암살자(C) vs 전사(C)

4. 궁수(C) vs 궁수(C)

5. 전사(B) vs 전사(B)

대부분 C급 홀더들로 구성된 경기였고, 종종 B급 홀더들이 하나씩 섞여 있었다.

하이라이트로 예상되는 라인업은 역시 다섯 번째 경기.

B급 전사 계열끼리의 전투.

아마 기획 측에서도 이게 가장 흥미로울 거란 걸 알기에 마지막 경기로 배치한 것 같았다.

-자! 그럼 제121회 뉴욕 홀더 투기 경기의 첫 번째 경기를 소개하겠습니다. B급 마법사 계열 홀더인 캐롤라인과 C급 전사 계열 헨리의 맞대결! 30초 후에 시작됩니다!

사회자의 말을 끝으로 중앙 탑 위 전광판에 30초가 카운트된다.

경기장 안엔 소개된 두 홀더가 들어오고 있었다.

훤칠한 체격에 전형적인 미국인의 상을 하고 있는, C급 전사 계열 헨리.

그리고….

‘…뭐지?’

B급 마법사 계열, 캐롤라인.

그녀는 분명 서양인의 외모를 하고 있지만, 체형이나 머리카락 색깔, 얼굴의 미묘한 부분들이 일반적인 미국인의 상과는 달랐다.

하지만 어딘가 익숙한 느낌의 외형.

저건 분명….

-경기, 시작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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