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아카데미 사기 룬을 얻었다 (319)화 (319/353)

유럽에서 (1)

짧지만 많은 일이 있던 미국 여행이 끝이 났다.

김채은은 남은 시간들을 알차게 보내려는 듯, 미리 준비해둔 여행 계획을 모두 쏟아냈다.

카밀라가 추천했던 공연 관람과 크루즈 데이트부터 시작해, 뉴욕의 각종 명소와 맛집을 찾아가는 것, 뉴욕에 있다는 홀더들의 데이트 던전을 가보는 것 등….

그동안 부족했던 둘만의 시간을 확실하게 채워갔다.

특히 서울로 돌아가기 전날 밤.

마지막 호텔에서 김채은이 건넸던 대사가 압권이었다.

“헤헤. 어서 와, 재현아. 목욕부터 할래? 아님 식사부터? 아니면….”

기어코 필살기를 쓰는 그녀의 모습에 나는 저항하지 않고 몸을 맡겼다.

다채로웠던 뉴욕 여행, 그 끝은 뭔가 번쩍거리면서도 화끈했다.

그렇게 돌아온 서울.

나는 오랜만에 <이블 헌터>의 클랜 타워에 와 있었다.

마스터 룸에 출근하자 늘 보던 비서팀장이 사무적인 태도로 말했다.

“마스터를 뵙습니다.”

“오랜만이네요, 혜영 씨. 잘 지내셨어요?”

“저희는 항상 똑같습니다. 다만, 마스터의 얼굴은 상당히 피곤해 보이십니다.”

“…필살기를 쓴 여자친구가 있어서요.”

간밤에 몇 번을 시달렸더니 피곤함이 얼굴에 남았다.

앞으로는 그 대사를 들어도 절대 넘어가지 않으리라.

작은 다짐을 한 나는 마스터 룸 중앙 자리에 앉으며, 비서팀장에게 간략한 클랜 상황 보고를 받았다.

“마스터가 자리를 비우신 동안, 스카우트 팀에선 꽤 바쁘게 움직였습니다.”

“아, 맞아요. 영입 계획이 있었죠.”

<이탈자의 방> 공략을 진행하며 나는 클랜원들의 수가 부족하다는 걸 여실히 느꼈었다.

그래서 공략이 끝나는 대로 곧장 보강을 선언했다.

그렇다고 아무나 막 받는 건 아니고, 스카우트 팀의 엄격한 선별 하에 유능하고 실력 있는 홀더들을 영입하고자 했다.

“스카우트 팀의 윤재호 팀장과 유은설 부마스터께서 기록한 보고서입니다. 두 분 모두 세 학생 홀더의 영입을 적극 추천한다는 평가를 내리셨습니다.”

그리고 그중 대표적인 인물들이 바로 ‘신입생 3인방’.

송현아, 박윤서, 최아린의 1학년 홀더들이다.

영입 제안과 함께 간단한 테스트를 클랜원들에게 맡겼었는데, 마침 스승님께서 도움을 주며 긍정적인 평가를 내린 모양이다.

‘최아린을 데려온 건 확실히 좋네.’

사실 최아린은 원작에서도 최유민과 함께 최고의 특수 계열로 성장하는 인물이지만, 아직은 어린 학생이라는 점으로 고려해 영입을 유보했었다.

하지만 저번 [원격 마력 나침반]을 기점으로 그 생각이 완전히 바뀌었다. 

그녀는 이미 재능이 만개한 연금술사였다.

클랜에 엄청난 도움이 될 마도구들을 턱턱 만들어내는 그녀를 가만히 학생으로만 놔두는 건 크나큰 손실.

때문에 나는 스카우트 팀장인 윤재호에게 그녀의 영입을 최우선으로 부탁했었다.

물론 송현아와 박윤서 역시 각자의 계열에서 최고의 잠재력을 보유한 유망주들이지만, 희소성이 높은 특수 계열의 특성상 우선순위가 조금 밀릴 수밖에 없었다.

어쨌든 장래가 유망한 세 사람의 영입이 가시권이라는 건 긍정적인 이야기였다.

“근데 송현아 홀더는 영입할 수 있긴 한 건가요? 용광검로에서 말이 좀 나올 것 같은데.”

무려 <용광검로> 클랜 마스터, 송도혁의 여동생인 송현아.

실력이야 의심의 여지없이 출중하지만, 그녀를 영입하려 하면 우호 클랜인 <용광검로>에서 큰 반발이 일어날 수 있었다.

처음 영입 계획을 세울 때도 이 점에 의문이 들었지만, 괜찮을 거라는 윤재호 팀장의 말에 승인을 했었다.

“송현아 홀더가 영입 제의가 간 후 가장 적극적인 의지를 보인 홀더라고 합니다.”

“…그래요?”

의외의 이야기다.

송현아의 성격은 꽤 무뚝뚝하고 딱딱한 편.

명문 가문에서 태어난 만큼 교양을 중시하는 여자였고, 같이 다니는 3인방이 아니면 동기들과 말도 잘 안 섞는 걸로 유명했다.

그런 그녀가 특정 클랜에 적극적인 관심을 보인다는 게 조금 특이했다.

‘…저번에도 나한테 유독 살가웠던 것 같은데.’

생각해 보니 <이탈자의 방>에서도 날 보며 살가운 태도를 보였었고, 최아린을 구해준 것에 대한 감사 인사도 전하곤 했었다.

“특히 용광검로 클랜은 홀더가 된 순간부터 들어갈 생각이 없다고 몇 번이나 선언했었다네요.”

“어, 진짜요?”

“네. 가족 클랜이 아닌 곳에서 자신을 증명하고 싶었다고 하네요. 그러니 용광검로 클랜과의 마찰은 걱정하지 않으셔도 될 것 같습니다.”

즉, 신입생 3인방의 영입은 성공적이다.

비서팀장 임혜영의 그 말에 나는 안심했다.

너무 유명하고 능력 있는 유망주들을 데려오려는 것 같아 계획 당시에도 살짝 걱정이 됐었는데, 다행히 문제없이 진행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영입 확정엔 마스터의 인가가 필요합니다.”

“아, 주세요. 바로 도장 찍어버리게.”

나는 임혜영이 건넨 계약서에 곧장 사인을 한 후 말을 이었다.

“언제 한 번 세 명하고 자리 한번 만들어주세요. 클랜 들어오기 전에 밥이라도 먹으면서 이야기 좀 해봐야겠네요.”

“네, 알겠습니다.”

“아. 그냥 오늘이나 내일 바로 만날까요? 후배님들이 시간이 되려나.”

입단은 빠를수록 좋다.

나로서도 좋은 인재들과 나누고 싶은 이야기가 많았기에 서둘러 일정을 잡고 싶었다.

그러나 임혜영은 어림도 없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

“안 됩니다.”

“그쵸? 아무리 그래도 다들 일정이 있을 텐데, 당일에 갑자기 보자는 건-”

“그게 아니라, 마스터의 일정이 맞지 않습니다. 마스터는 오늘 서울을 떠나셔야 합니다.”

“…네?”

이게 웬 자다가 봉창 두드리는 소리일까.

서울로 돌아온 지 하루도 채 안 지났는데?

임혜영은 간단히 내게 일정표를 건넸다.

“잊으셨나 보군요. 마스터께선 오늘부터 두 사모님과 함께 5일간의 유럽 여행 일정이 있습니다. 마스터께서 저번에 개인 공략 일정이 유럽에서 있다고 하셔서, 사모님들과의 여행 일정은 최대한 빈 시간을 줄여 앞당겼습니다. 두 분께서도 허락한 일입니다.”

“사…모님이요?”

도저히 내가 들을 단어는 아닌 것 같아 되물었지만, 임혜영의 표정 하나 바뀌지 않고 말했다.

“강주연 홀더님과 문가은 홀더님을 말씀하는 겁니다만… 무슨 문제라도 있습니까?”

* * *

…그래서 사모님들과 유럽 여행을 오게 됐습니다.

“아하하. 혜영 언니 진짜 웃기다. 우린 그렇게 부르라고 한 적 없어. 진짜야.”

파리의 한 호텔 방.

가볍게 짐을 풀다가 내 이야기를 들은 문가은이 한참을 웃었다.

요즘 들어 감정 표현이 많아진 강주연도 옆에서 조금씩 웃음을 삼켰다.

비서팀장 임혜영이 던졌던 ‘사모님’이란 단어가 그렇게들 웃긴 모양이다.

“난 내 일정이 이렇게 알아서 정해져 있는지 몰랐어.”

물론 문가은과 강주연에게 여행 계획을 맡겨두긴 했다.

뉴욕 여행 계획을 김채은에게 맡겼던 것처럼, 유럽 여행도 두 연인들이 하고싶은 것들을 모두 하게 해주고 싶었으니까.

다만 그 일정이 너무 빠르게 잡히는 탓에, 여독을 풀기도 전에 또 다른 여행을 오게 됐을 뿐.

“아하하. 미안, 미안.”

내가 풀죽은 얼굴로 한탄하자, 문가은이 뒤에서 날 끌어안으며 볼을 맞댔다.

강주연도 이에 재빨리 비어 있는 내 허리로 얼굴을 기댔다.

“재현이 너 바쁠까 봐 미리 혜영 언니랑 일정 조율한 건데, 소식이 그렇게 늦게 전해질 줄은 몰랐어.”

“…재현이 너무 바빠.”

“맞아. 자유의 날개랑 우호 협정 맺은 거 보고, 나 깜짝 놀랐잖아.”

짧은 시간에 미국에서 있었던 사건들.

투기장 테러 진압.

<자유의 날개>와의 우호 협정.

굵직한 사건들이 연달아 터지는 바람에, 우리 클랜과 내 전담 비서팀에도 연락이 폭주했었다.

…안 그래도 바쁜 비서팀을 왜 그렇게들 괴롭히는지 모르겠다.

“그리고 너 유럽에서 개인적인 던전 공략 일정 잡아놨다며. 그래서 일부러 그 시기랑 맞춰놨지.”

“…그건 잘했네.”

추가로 덧붙이는 문가은의 말엔 나도 고개를 끄덕인다.

사실 유럽 일정은 여행만 있는 게 아니었다.

일전에 계약자인 리플리와 약속했던 <벨테인> 공략.

리플리를 통해 해당 던전인이 ‘영국’에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기에, 이번 여행과 겹쳐 공략까지 함께 할 생각이었다.

무엇보다 뉴욕에서 캐롤라인을 붙잡으며 알게 된 정보들.

뱀파이어 및 테르멘과 루덴아크의 상관관계….

그 실마리를 찾기 위해서라도 <벨테인> 공략을 서두를 필요가 있었다.

“재현아. 근데 벨테인? 거기는 누구랑 공략할 거야? 듣기로는 클랜 단위로 가야 할 던전 같은데.”

문득 문가은이 궁금한 듯 얼굴을 떼며 묻는다.

뱀파이어들의 땅, <벨테인>.

이름과 명성만으로 규모를 알 수 있듯, 어지간한 수준의 공략대로는 엄두도 못 낼 던전이다.

강력한 괴수들과 각종 마력 함정들이 <이탈자의 방>에 버금갈 정도로 득실거릴 게 분명했다.

하지만 난 이미 결정을 내려둔 상태였다.

“이번엔 혼자 갈 거야.”

“에? 진짜?”

“……?”

깜짝 놀라는 문가은과 눈을 크게 뜨는 강주연.

실력에 자신이 있는 고위 홀더들은 던전 공략 시 종종 솔플을 하곤 하지만, 그것도 어느 정도 수준 이하의 던전일 때 이야기다.

중상급 이상의 던전부터는 홀더들 대부분이 ‘파티’ 혹은 ‘공격대’를 꾸려 공략을 시도한다.

그만큼 공략의 난이도와 효율 측면에서 솔플로는 어려운 부분이 있기 때문.

나 역시 마지막으로 솔플을 했던 던전이 언제인지 기억도 안 난다.

<홉고블린 부락>이었던가…?

“응. 이번 던전은 아마 혼자 갈 것 같아.”

하지만 이번 던전만은 다른 파티원 없이 혼자 간다.

그 말을 꺼내는 내 얼굴엔…

왠지 모를 확신이 담겨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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