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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카데미 사기 룬을 얻었다 (320)화 (320/353)

유럽에서 (2)

이번 유럽 여행은 총 4박 5일이다.

원래는 일주일 정도 시간을 두고 여유롭게 여행하려고 했지만, <벨테인> 공략과 클랜 일정이 겹치면서 아쉽게 기간이 줄어들었다.

하지만 문가은은 그 짧은 일정 속에서도 다양한 나라를 찾을 계획을 만들어왔다.

“프랑스, 이탈리아, 영국. 이렇게 세 군데 갈 거야!”

“5일 동안 그렇게 많이 간다고?”

“응. 딱 수도들만 갈 거거든. 첫 이틀은 파리, 나머지 이틀은 로마, 마지막 날은 런던.”

“어디 갈지는 정해뒀어?”

“아니! 자유 여행인데?”

“…….”

김채은이 J 성향이라면, 문가은은 극한의 P였다.

나라는 프랑스, 이탈리아, 영국.

도시는 파리, 로마, 런던.

이것과 호텔을 잡아둔 것 말고는 아무런 여행 계획도 짜두지 않았다.

아니, 이럴 거면 계획을 왜 세운 거야?

내가 황당하다는 얼굴로 그녀를 바라보자, 문가은은 무슨 문제 있냐는 듯 웃으며 날 마주봤다.

거기에 거드는 사람도 한 명 더 있다.

“…재밌겠다.”

“아니, 이게?”

문가은과 강주연이 괜히 절친이 된 게 아니다.

강주연은 낯을 많이 가리는 성격임에도 불구하고, 문가은이 하자는 건 어지간해선 다 좋아했다.

물론, 나와 만나게 된 이후로는 내가 하자는 것도 다 좋아한다.

“그렇다잖아! 빨리 가자, 빨리. 당장 나가서 뭐가 재밌을지 찾아봐야겠어.”

문가은의 재촉으로 우린 호텔을 나서 밖으로 나갔다.

가장 먼저 찾아간 곳은 노트르담 대성당.

프랑스에 오면 꼭 들르는 명소 중 하나.

강주연과 문가은은 워낙 고위 클랜 출신이라 이런 명소들을 안 좋아할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관심이 많았다.

아니, 정확히는….

“뭐야, 강주연! 왜 너 혼자만 팔짱 끼고 있어.”

“…내 맘이야.”

“이씨- 이 불여우가… 잠깐 한 눈 팔면 그새 재현이랑 놀고 있네.”

“그러려고 여행 온 건데.”

“그건 맞지만…!!”

…나와 있으면 어디든 좋은 모양이다.

어쨌든 노트르담 대성당은 그 명성에 걸맞게 엄청난 규모와 웅장한 자태를 자랑했다.

특히 최근 들어 ‘전설급 성물’로 불리는 [잔 다르크의 장창]이 보관되면서, 이를 구경하러 오는 홀더들이 상당히 많아졌다.

이쪽 방면에선 이미 루브르 박물관이 최고의 지위를 갖췄는데, 노트르담 대성당이 난데없이 ‘아이템’을 끌고 오면서 그 아성을 넘보고 있었다.

“신기하다. 잔 다르크가 썼다던 창도 아이템 화가 되는구나.”

대성당 내부에 비치된 성물을 보며 문가은이 감탄했다.

그에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부연 설명을 해줬다.

“생각보다 많아. 송도혁 홀더님이 쓰는 ‘용광검’도 해모수가 썼다던 검이고, 황성연이 썼던 마검도 북유럽 신화에 나오는 검이니까.”

가만히 내 말을 듣던 강주연이 덧붙인다.

“…엑스칼리버도.”

“맞아. 영국의 S급 홀더, 윌리엄 모리스가 쓰는 검도 아서 왕의 엑스칼리버니까.”

“와- 그렇네. 생각보다 많구나.”

“시스템에 등록된 룬 능력이나 아이템 같은 것들이, 온전히 이계의 것만은 아니라는 거지.”

요즘 들어 학계에서 내미는 핵심 주장이었다.

현재의 ‘홀더 시스템’은 이계와 현계의 역사들이 뒤섞여 있다는 것.

룬이나 아이템으로 획득되는 대부분의 능력들이 이계의 것을 따르곤 있지만, 앞서 말한 것처럼 현계의 전설이나 신화와 관련된 능력들도 종종 나오곤 한다.

‘…요괴들도 마찬가지고.’

당장 내가 <안티 빌런> 써클 시절에 공략했던 일본 던전들.

그리고 거기서 나왔던 괴수, ‘요괴’만 해도 그렇다.

요괴는 보통 일본의 전설이나 민담으로 여겨지는 괴물들인데, 이들이 일본에 자리한 던전에서 나왔다는 건 둘 사이에 분명한 상관관계가 있다는 뜻이었다.

“다음은 에펠 탑이야! 빨리 가자.”

문가은의 재촉에 우리는 서둘러 행선지를 옮겼다.

노트르담 대성당부터 시작해, 에펠 탑, 루브르 박물관, 개선문 등….

파리에서 유명하다 싶은 명소는 다 찾아갔다.

자유 여행인데도 불구하고, 어쩐지 계획 여행보다 더 일정이 빡빡한 느낌이다.

어쨌든 우리는 첫째날 여행을 모두가 만족하며 보낼 수 있었다.

아까도 말했듯 강주연은 은근 문가은과 취향이 비슷했고, 난 이번 여행만큼은 그녀들이 만족한다면 오케이였다.

“후아, 진짜 안 쉬고 달렸다.”

“체력도 좋네.”

산뜻한 표정을 짓는 문가은에게 한 마디를 던지는 강주연.

그러자 문가은이 허리에 손을 올리며 투덜댔다.

“이씨- 강주연. 내가 진짜 말 안 하려고 했는데, 너 언제까지 재현이 팔짱 독점할 거야?”

“…넌 아까 나 몰래 키스했잖아.”

“어, 어? 봐, 봤어?”

…어째서 내가 이 캣파이트의 희생양이 되어야 하는지 모르겠다.

나는 그새를 못 참고 또 싸우려는 두 친구를 말리며 말했다.

“그만 싸우고 이제 우리 분위기 좋은 곳 가자.”

“분위기 좋은 곳?”

“……?”

갑작스러운 내 말에 두 연인이 모두 의아한 듯 날 바라봤다.

이번 여행은 온전히 그녀들에게 맡긴 자유 여행.

하지만 그 안에서도…

내가 계획한 게 아예 없는 건 아니었다.

* * *

“와아, 엄청 예뻐.”

“…예쁘다.”

두 사람을 데려온 곳은 몽블랑 산.

이탈리아 국경과 맞닿은 알프스 산맥에 자리한 산으로, 유명 브랜드의 어원이 되는 산이기도 하다.

특히 유럽에선 최고봉으로 불리는 산이기에, 정상에 오르면 내려다보는 경치가 상당히 아름다웠다.

곳곳에 보이는 구름과 여기저기 쌓인 눈더미.

그 풍경들이 우리의 시야에 가득 들어왔다.

대자연의 아름다움.

이는 때로 기록하지 않아도 머리에 각인되는 힘을 갖곤 했다.

“…좋아해.”

팔짱을 끼고 있던 강주연이 어깨에 머리를 기댄다.

그리고 조심스레 꺼내는 고백.

몇 번을 들어도 설렌다.

그러자 문가은이 펄쩍 뛰며 내게 달라붙었다.

“아앗. 불여우가 또! 나도 좋아해, 도재혀언.”

“하하. 주연이한테 너무 그러지 마. 둘 다 똑같이 좋아하니까.”

“치- 나만 나쁜 여자 만드는 거야?”

“그럴 리가 있나.”

살짝 삐지려고 하는 그녀의 이마에 입을 맞춰주었다.

그러자 문가은이 배시시 웃음을 되찾는다.

“근데 재현아, 여긴 어떻게 빌린 거야?”

한국 및 타국의 산지들이 대부분 그렇듯, 몽블랑 산은 결계 밖 필드다.

우리가 서 있는 곳은 몽블랑 산 필드 최정상의 ‘안전 지대’.

그런데 주변엔 프랑스 홀더 협회 직원들밖에 없다.

출입을 담당하는 그들을 제외하면, 사실상 이곳에 있는 건 우리뿐이라는 뜻.

그렇다.

내가 빌렸다.

“…안전 지대를 빌릴 수가 있어?”

“중간 휴식 지점 이후의 사냥터를 통째로 빌리면 가능하더라고.”

“…….”

기왕 여행 오는 김에 화끈하게 돈 좀 썼다.

물론 우리나라가 아닌 프랑스 협회와의 논의이기에 단순히 돈만으로는 해결이 어렵지만, 프랑스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홀더가 내 인맥 중에 있었다.

-허가, 받아냈습니다.

-감사합니다, 르메르 홀더.

-별말씀을요. 제가 도재현 홀더에게 품었던 오해를 생각하면, 이보다 더한 일도 해드려야죠.

-아직도 그때 이야기를 하십니까? 전 정말 괜찮습니다.

-제가 부끄럽고 죄송해서 그렇습니다.

장 르메르.

프랑스의 S급 홀더이자, 내 승급 심사를 봤던 특별위원.

첫 만남 때는 나에 대해 안 좋은 인식을 가지고 있었지만, 심사 과정을 통해 오해가 풀렸고 인사를 나누며 연이 닿았었다.

엉겁결에 프랑스에서 최고의 위치에 있는 홀더를 인맥으로 두게 된 것.

덕분에 몽블랑 산 최정상 안전 지대를 빌리는 것 정도는 일도 아니었다.

“어쨌든 오늘 밤은 여기서 마무리하는 걸로.”

“…좋아.”

“너무 예뻐!”

우린 산 아래에 펼쳐진 절경을 감상하며 행복한 시간을 나눴다.

그리고.

“이건 선물.”

마법 가방에서 두 사람을 위한 작은 선물을 꺼낸다.

강주연과 문가은의 눈동자가 동시에 커졌다.

“어?”

“…뭐야?”

문가은에게 초록 빛깔의 보석이 박힌 작은 브로치를, 강주연에겐 찬란한 금색으로 빛나는 귀걸이를 선물한다.

몽블랑 산을 빌리는 건 오늘 급하게 르메르에게 부탁했다면, 이 선물들은 오래 전부터 그녀들을 위해 준비해왔던 것이었다.

“내가 그동안 채은이한테 선물해준 건 많은데, 가은이랑 주연이한텐 선물해준 게 별로 없는 것 같아서… 이번 여행 때 꼭 전해주려고 준비했어. 마음에 들었으면 좋겠다.”

“뭐야아-.”

“…….”

문가은의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 맺히려는 게 보인다.

강주연도 보기 드물게 감동한 얼굴로 날 빤히 바라봤다.

…이런 반응을 보려고 선물한 건 아니었는데.

나는 헛기침을 몇 번 하며 아이템들을 설명해줬다.

“주연이 건 ‘베르데의 눈물’이라는 귀걸이인데, 기존에 사용하는 마법의 절반 위력으로 더블 캐스팅을 할 수 있게 해준대. 주연이는 플로리안 주문을 써서 더블 캐스팅이 어려우니까, 이걸로 대체했으면 해서.”

“…비쌀 것 같은데.”

“나 돈 많아.”

김채은은 [아드리안 주문] 룬을 활용하기에 더블 캐스팅에 용이한 반면, 강주연은 정석적인 [플로이안 주문]을 활용하는 마법사다.

물론 그만큼 더 파괴적이고 강렬한 주문이 가능하긴 하지만, 더블 캐스팅을 했을 때 가져가는 이점이 많을 것 같아 [베르데의 눈물]을 선물했다.

아마 그녀라면 이를 통해 훨씬 다채로운 전투 구도를 만들어낼 수 있을 것이다.

“가은이 건 ‘가호받는 자의 마음’이라는 브로치야.”

“어? 이거 설마….”

“맞아. 발키리 전용 아이템. 찾느라 고생 좀 했어.”

문가은이 보유한 [전장의 발키리].

그중 파생스킬인 [발키리의 가호]는 수호하고자 하는 영웅을 설정하고, 해당 영웅에게 전투 시 자신의 ‘내구’와 ‘속력’ 수치를 20%씩 부여하는 스킬이다.

당연히 여기에 설정된 영웅은 나.

덕분에 나는 문가은과 함께 전투를 할 때면, 대략 15~20의 능력치들을 부여받곤 했었다.

“이건 반대로 가호를 받는 사람이 능력치를 부여해줘.”

“지, 진짜?”

“응. 대신 근력과 마력으로.”

지금 내 근력과 마력은 각각 110.

여기서 20%를 문가은에게 추가로 부여해주면 무려 22의 능력치를 준다.

즉, 문가은은 나와 함께 전투할 때 평소보다 훨씬 더 강한 힘을 얻게 되는 것.

…이젠 떼 놓으려 해도 떼 놓을 수 없는 관계가 돼버렸다.

“꺄, 꺄아- 고마워, 재현아!”

문가은이 전력으로 달려와 날 껴안았고, 이내 행복한 얼굴로 입을 맞췄다.

그걸 보던 강주연이 눈을 치켜뜬다.

“또 혼자만 키스하려고.”

“뭐, 어때! 내 남친인데!”

“…나도 할래.”

아름다운 풍경과 진심을 담은 선물.

내가 준비한 여행 계획들도 잘 마무리되면서, 유럽 여행의 첫 번째 날이 저물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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