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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카데미 사기 룬을 얻었다 (321)화 (321/353)

뱀파이어의 땅, 벨테인 (1)

유럽에서의 4박5일은 순식간에 지나갔다.

파리와 로마의 명소를 모두 찾아다니고, 또 홀더들을 위해 마련된 특별한 랜드마크도 다니다 보니 시간이 말 그대로 삭제됐다.

정신을 차려 보니 런던이었다.

‘…시간 진짜 빠르네.’

그런 생각이 절로 들었다.

아마 함께 보내는 시간이 더 각별해서 그랬겠지.

그래도 런던에선 하루뿐이지만 꽉 찬 시간들을 보냈다.

버킹엄 궁전과 타워 브릿지 등 유명 명소들을 찾아 들르고, 뉴욕에서 브로드웨이를 갔듯 런던에선 웨스트엔드를 가봤다.

사실 마지막엔 프리미어리그 경기를 함께 보고 싶었지만, 안타깝게도 비시즌 중이라 볼 기회가 없었다.

그리고 마지막 밤의 호텔.

“우으, 헤어지기 싫다.”

“…계속 같이 있을래.”

당연히 아쉬움은 짙다.

문가은과 강주연은 방에서 내 몸을 잡고 놓지 않으려 했다.

강아지 같은 두 사람의 표정을 보고 있자니 더 아쉬움이 깊어진다.

나는 그녀들을 안아주며 최대한 달래줬다.

“다음에 또 오자. 더 길게, 더 재밌게.”

“우으- 아쉬운데….”

“…같이 있을래.”

그렇게 해도 떼어내기 쉽지 않았지만 말이다.

어쨌든 우리는 런던에서의 밤을 마지막으로 잠깐의 헤어짐을 고했다.

그녀들은 한국으로 돌아가는 [워프 게이트]로.

나는 하룻밤을 더 자기 위해 아까의 호텔 방으로.

내일부턴 오랜만의 솔플 공략을 준비 중인 <벨테인>을 찾아가야 했다.

* * *

다음 날.

“생각보다 일찍 출발하네?”

어느새 소환된 리플리가 팔짱을 끼고 내게 말한다.

그녀는 <벨테인>의 위치를 알고 있는 길잡이.

사실상 그녀가 없으면 이번 공략은 불가능이나 다름없었다.

“그때 이후로 한달은 걸릴 줄 알았는데.”

사실 나도 <벨테인> 공략은 장기 플랜으로 잡고 있었다.

당장 처리할 일정도 많고, 무엇보다 휴식이 필요했기에.

하지만.

“캐롤라인이 워낙 고급 정보를 주고 갔거든.”

“…캐롤라인이?” 

뜬금없이 나온 동족의 이야기에 리플리가 눈을 치켜뜬다.

나는 씨익 웃음을 지으며 답했다.

“그런 게 있어.”

<룬 정보>

◎이름: 파멸의 눈동자

◎등급: 에픽(Epic)

◎레벨: 10

◎새겨진 부위: 눈

◎특수효과

*사용조건: 뱀파이어와 테르멘의 특성을 동시에 보유한 자만이 사용할 수 있다. 

1) 뱀파이어의 상징으로서 ‘파괴’를 갖게 된다. 파괴의 상징은 무언가를 무너뜨리고 부수는 데에 특화돼 있다. 이 상징을 보유한 자는 해당 성향을 띄는 공격의 위력을 10% 증폭시킬 수 있다.

2) 테르멘의 의지로서 ‘분노’를 갖게 된다. 감정을 힘으로 삼는 테르멘의 의지 중 분노는 마력을 대체할 수 있는 특수한 힘이다. 보유한 분노를 소모해, 마력 현상이나 스킬을 활용할 수 있다. (*궁극스킬 제외) 분노를 소모한 능력들은 그 형태가 기존과 조금씩 달라진다. 

◎파생스킬

[결계 파괴] (*중복)

◎궁극스킬

[파멸의 창]

: 마력으로 구성된 22개의 창을 만들어내 상대에게 쏘아낸다. 22개를 동시에 발사하거나, 하나씩 조종해서 쏘아낼 수 있다. 단일 대상에게 사용하더라도 똑같은 위력을 발휘한다. (*분노를 소모해 사용할 수 있는 유일한 궁극스킬.)

(*언령: 파괴하라)

◎세부정보

: 뱀파이어와 테르멘 사이에서 태어난 하프 뱀파이어, 캐롤라인 남작의 ‘상징’과 ‘의지’. 일반적으로 테르멘의 전사들은 죽음 이후 사령이 되는 순간 ‘의지’를 발현할 수 없지만, 캐롤라인은 창조되는 생명의 특수 사령 뱀파이어이자 하프 테르멘이기에 융합된 두 힘을 활용할 수 있다.

[룬의 성향으로 마력을 2, 분노를 10 획득합니다.]

[홀더 정보에 특수 능력치 ‘분노’가 활성화됩니다.]

[*테르멘 부족의 고유한 특성이 없어, 분노 능력치를 활용할 수 없습니다.]

뱀파이어 남작, 캐롤라인을 쓰러뜨리고 획득했던 룬.

처음엔 내용이 너무 복잡해 이해하는 데에 시간이 걸렸지만, 막상 연결고리를 찾아내다 보니 얻게 되는 정보들이 꽤 많았다.

요약하자면 이렇다.

1. 뱀파이어에겐 ‘상징’이라는 힘이 있고, 테르멘에겐 ‘의지’라는 힘이 있다.

2. 그 힘은 해당 종족의 고유 룬을 보유한 자들만이 사용할 수 있다. (예를 들어, 리플리의 [고귀한 핏줄] 룬 같은.)

3. 테르멘은 죽으면 의지를 사용할 수 없다. 그래서 데스 나이트가 된 테르멘 전사들을 처치했을 때도 관련 룬을 획득할 수 없었다.

4. 캐롤라인 남작은 이러한 뱀파이어와 테르멘의 혼혈이다. 그래서 [파멸의 눈동자]는 두 힘을 섞은 형태의 룬이 된 것이다.

즉, 내가 [파멸의 눈동자]를 사용하기 위해선 뱀파이어나 테르멘 관련 룬을 획득해야 한다는 뜻.

하지만 중요한 건 그게 아니다.

중요한 건 캐롤라인이 뱀파이어와 테르멘의 혼혈이라는 점.

어쩌면 루덴아크 학파의 핵심 전력이 될지도 모르는 이들의 실마리를 쥐고 있다는 점이었다.

“리플리. 벨테인에 캐롤라인 남작의 영지도 있어?”

뜬금없는 내 질문에 리플리가 고개를 끄덕였다.

“귀족이니까. 뱀파이어 귀족들은 모두 자기 영지를 소유하고 있어.”

“그럼 캐롤라인 남작의 영지 위치가 어딘지도 알아?”

순간 리플리가 눈살을 찌푸린다.

“너, 바보야? 내가 벨테인 소속 뱀파이어였는데 그걸 모를까?”

“미안. 혹시나 모를까 봐. 아무래도 거기부터 가봐야 할 것 같거든. 그래서 이번 일정도 빨리 잡게 된 거고.”

“흥.”

리플리는 툴툴거리면서도 안내를 계속했다.

그동안 몇 번 겪어봐서 아는데, 이런 말투로 대한다고 해서 화가 난 게 아니다.

리플리가 진짜 화났을 땐, 황성연과의 전투에서 무단으로 마력을 가져갔을 때밖에 없었다.

“근데 리플리.”

“응, 말해.”

“캐롤라인 남작 말고, 우리가 벨테인에 가서 해야 할 일은 뭐야? 리플리 네가 벨테인에 가는 이유는 따로 있었잖아.”

처음 리플리와 약속했을 당시엔 막연하게 <벨테인> 공략을 이야기했었다.

하지만 생각해보니 그 공략이라는 게 애매한 면이 있다.

적응자들의 던전은 애초에 ‘공략’이 정해져 있는 던전이 아니다.

괴수들을 죽이고 보스 룸을 향해 나아가는 일반 던전과 그 형식이 다르고, <이탈자의 방>이나 <벨테인>은 영역의 규모가 워낙 커서 던전 안에서도 구역이 나뉘곤 하니까.

특정 진영을 무너뜨리는 목적이 있던 <울펜서>가 상당히 특이한 케이스였다.

‘그럼 벨테인에서 뭘 해야 하지?’

…설마 다 죽여야 하나?

정해진 공략 코스도 없고, 리플리가 원하는 목적도 명확하지 않다.

꼬리처럼 물린 그 의문들을 내가 묻자, 리플리는 살짝 웃으며 답했다.

“그런 게 있어.”

아까의 업보를 그대로 돌려받았다.

* * *

리플리가 이끄는 대로 가니, <벨테인>으로의 도착은 순식간이었다.

던전 입구는 런던 중심가에 자리한 웬 대저택이었는데, 그 안에 작은 동상 부근에서 들어갈 수 있었다.

이런 식으로 누군가의 집에서 던전에 가는 건 또 처음이다.

그리고 발을 디디자마자, 곧장 정보창들이 들이닥쳤다.

[던전에 입장하셨습니다.]

[놀라운 업적! 죽음 속에서 생명을 창조하는 이들, 피를 갈구하는 자와 그 하수인들의 공간. 뱀파이어의 땅, ‘벨테인’과 맞닥뜨렸습니다. 끝을 모를 죽음의 기운과 진한 혈향이 곳곳에 맴돌고 있습니다. 이 전설 속 공간에 인간이 들어오는 것은 매우 특수한 일입니다.]

[업적의 성향으로 모든 일반 능력치가 2씩 상승합니다.]

[‘발레로프 남작령’에 발을 디딥니다. ‘우울’의 상징이 영지 전반에 퍼져 있습니다. 정신적으로 무기력한 증세가 다가옵니다.]

[‘명경지수’ 룬의 특별한 힘이 대상의 맑은 정신을 유지하게 합니다. 어떠한 저주나 상태 이상에도 흔들리지 않습니다.]

역시 <벨테인>은 놀라운 업적으로 분류되는 던전.

입장하자마자 모든 일반 능력치를 2씩 획득하는 정보창이 떴다.

하지만 나는 그 아래에 뜬 정보들에 먼저 관심을 가졌다.

“발레로프 남작령?”

옆에서 같이 걷는 리플리가 태연하게 말한다.

“응. 벨테인에 들어오면 가장 먼저 맞닥뜨리는 영지야. 나도 처음 이탈할 땐 발레로프 남작의 도움을 받았지.”

“이탈자들은 아무 곳에서나 던전 나갈 수 있는 거 아니었어?”

“그건 루덴아크 애들이 발견해낸 특별한 방법이야. 처음 이탈하면 정보창으로 던전 입구를 찾아가라고 떠.”

“…그렇게 얘기하니까 진짜 홀더 같네.”

“적응자나 이탈자들은 홀더들하고 다를 게 없으니까.”

참고로 <벨테인>에서 영지를 가진 뱀파이어 귀족과 그 하수인들은 모두 ‘적응자’다.

그 말은 즉, 지성 없이 홀더들을 무조건 공격하는 괴수들과는 그 성격이 다르다는 뜻.

그르르-.

딱딱딱-.

덕분에 영지를 걷는 도중 마주친 괴수들도 우릴 공격하지 않았다.

블랙 바르그, 스켈레톤 나이트, 팬텀 등 다양한 괴수들이 나타났지만, 잠깐 시선을 주다가 조용히 지나쳐갔다.

나와 동행 중인 리플리가 무려 ‘백작’의 지위를 지닌 뱀파이어라는 점을 그들도 알기 때문이었다.

“이렇게 편한 던전은 처음이야.”

“하수인들은 귀족의 명을 절대적으로 따르니까. 멋대로 타 귀족을 공격했다간, 문책성으로 소멸할 수도 있어.”

“…문책 치곤 너무 과한 거 아니야?”

“그게 벨테인의 규칙이야. 그리고 발레로프 남작은 나랑 몇 번 본 적 있어서, 쟤들도 나 알 거야.”

어쨌든 우리는 발레로프 남작령을 지나, 다른 뱀파이어 귀족의 영지 세 개 정도를 지나친 후에야 목적지에 도착할 수 있었다.

[‘캐롤라인 남작령’에 발을 디딥니다. ‘파괴’의 상징이 영지 전반에 퍼져 있습니다. 영지 내의 모든 개체가 공격적인 성향을 갖게 됩니다.]

[‘명경지수’ 룬의 특별한 힘이 대상의 맑은 정신을 유지하게 합니다. 어떠한 저주나 상태 이상에도 흔들리지 않습니다.]

캐롤라인 남작령.

뉴욕에서 홀더 투기장을 테러하려던 하프 뱀파이어의 영지.

그곳엔 특이하게 입구부터 거대한 몸집의 ‘골렘’들이 자리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아아아아-!!

그워어어어-!!

얼핏 봐도 수십은 돼 보이는 골렘들이, 우릴 향해 미친 듯이 뛰어오고 있었다.

…그래봤자 느리긴 하지만.

“리플리. 근데 쟤들은 왜 우리 공격하려 하는 거야?”

“주인 없는 개새끼들이 그렇지 뭐.”

“이제 말투도 홀더가 다 됐구나.”

하지만 설득력이 있었다.

나는 리플리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무기를 꺼내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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