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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카데미 사기 룬을 얻었다 (322)화 (322/353)

뱀파이어의 땅, 벨테인 (2)

“굳이 안 도와줘도 되지?”

리플리가 팔짱을 끼며 말했다.

그에 나는 고개를 갸웃했다.

“굳이 안 도와줄 필요가 있나?”

“귀찮아.”

“그렇다면 어쩔 수 없지.”

뱀파이어 귀족이 그렇다는데 이해해야지.

사실 그녀의 말처럼 굳이 안 도와줘도 전투는 무난했다.

“대신 공략 정보는 줄게. 저 선두에 있는 에메랄드 골렘을 노려. 저 녀석이 대장이야.”

리플리의 조언에 나는 눈에 힘을 주며 저 앞을 내다봤다.

과연 초록색으로 빛나는 거대 골렘이 느릿느릿 선두에서 달려오고 있었다.

‘…골렘이라.’

골렘.

이 괴수에 대한 의견은 학자들마다 분분하지만, 공통되는 의견 중 하나는 골렘이 ‘제작 괴수’라는 점이다.

단단하고 촘촘한 외피.

그 자체로 무기가 되는 근력.

다목적성으로 구성된 마력재료.

가동 장치 역할을 하는 마력석까지.

가끔 막대한 자금을 들여 제작되는 골렘들은, 내부에 공격마법이 저장되어 있는 경우도 있다.

즉, 이 모든 게 골렘 제작자에 의해 만들어지는 일종의 ‘마도구’인 것이다.

그런데 그런 골렘들이 캐롤라인 남작령의 하수인으로 있다.

여기서 알아낼 수 있는 사실은 하나.

‘루덴아크가 벨테인에도 손을 뻗쳤구나.’

뱀파이어의 하수인들은 주로 사령 혹은 일반 괴수들이다.

제작 괴수들이 하수인이 되려면, 이를 제작하는 존재들이 있어야 한다.

파괴의 상징을 지닌 캐롤라인 남작이 그 제작자일 리는 없고, 아마 루덴아크 학파의 일원들이 제작을 도와 원조했을 확률이 높았다.

나는 실마리 하나를 더 찾은 것에 만족했다.

‘계약의 부름.’

그리고 세 번째 계약자 제이텐을 불러낸다.

-기다렸습니다, 주인님.

이제 지상 전투에서 이 녀석이 없으면 섭섭했다.

‘제이텐. 최고 속도로 달려.’

-주인님. 어차피 골렘들의 속도를 보면 적당히 달려도 될 것 같습니다.

‘그런 건 상관없어!’

중요한 건 내가 제이텐을 탔고, 탄 순간부턴 일단 달린다는 거다.

그워어어어-!!

그르으으…!!

육중한 골렘들의 괴성이 울리고, 제이텐이 그에 맞서듯 소리치며 달려든다.

평소라면 [와이번 스피어]를 들고 [액셀 피어싱]을 준비했겠지만, 지금은 굳이 그럴 필요성을 못 느낀다.

‘액셀 피어싱이 아까워.’

분명 [액셀 피어싱]은 선공에 있어서 압도적인 성능을 보이는 스킬이지만, 고작 이런 골렘들에게 쓰기엔 아깝다는 느낌이 들었다.

이젠 내가 지닌 룬과 능력치들이 너무 고차원으로 올라가서, 굳이 스킬을 사용하지 않아도 적들에게 충분한 타격을 입힐 수 있었다.

나는 골렘과의 거리가 지척까지 다가왔을 때 제이텐에게 물었다.

‘제이텐. 혹시 혼자 골렘 몇 마리까지 상대할 수 있겠어?’

-주인님. 저는 주인님이 아닙니다.

‘…한 마리도 힘들어?’

-제가 한 마리를 상대하는 것보다, 주인님이 스무 마리를 사냥하는 게 더 빠를 겁니다.

못 본 새에 제이텐이 많이 똑똑해진 것 같다.

너무나도 정론이었기에 고개를 끄덕인다.

‘그럼 그냥 내가 뛰어들 때부터, 앞까지 쭉 달려가서 기다려. 내가 먼저 뛰어들게.’

-알겠습니다.

‘이 땀이 식기 전에 돌아갈게.’

-그게 무슨 뜻입니까?

‘그런 게 있어. 빨리 가.’

-명을 받듭니다.

명령이 끝남과 동시에 나는 제이텐에게서 날아올랐다.

제일 먼저 부딪히는 초록색 빛깔의 골렘.

리플리가 말했던, 그리고 나도 대충 정보가 있던 녀석.

A급 최상위 괴수, 에메랄드 골렘이다.

골렘은 대체로 제작에 사용되는 보석에 따라 그 등급이 달라지곤 하는데, 에메랄드 골렘은 근력과 내구가 거의 최대치로 상승한 괴수다.

게다가 녀석에겐 추가로 붙은 효과가 있다.

‘루덴아크 지독한 새끼들, 여기에도 검은 마력을 넣어놨네.’

에메랄드 골렘의 가동 마력석 근처에서 넘실거리는 검은 마력.

이는 루덴아크 학파가 [어둠의 서약]을 통해 악성향 신성력을 특수 처리로 담은 게 분명했다.

안 그래도 A급 최상위의 위력을 발휘하는 골렘인데, 검은 마력까지 보조를 하고 있으니 잡는 게 쉬워보이진 않았다.

‘박살내면 그만이야.’

하지만 나는 검은 마력을 상대하는 데에 있어서 전문가.

파훼법도, 파훼할 힘도 모두 갖춘 홀더였다.

일단 무구교체술로 너클을 양손에 끼운다. 

거기에 하늘로 날아든 가속력을 그대로 이용해, 에메랄드 골렘에게 풀파워 펀치를 날렸다.

‘원초적 맹공…!’

주먹으로 쓸 수 있는 스킬 중 가장 강한 스킬.

이름대로 원초적인 힘을 너무도 잘 표현한 스킬이다.

팍-.

쩌, 쩌저적-

콰아아앙-!!

엄청난 파공음과 함께 에메랄드 골렘의 가슴팍이 박살난다.

애초에 [원초적 맹공] 자체가 강한 파괴력을 자랑하는 스킬이긴 하지만, 내가 보유한 여러 룬이나 아이템의 ‘특수효과’들에서 알게 모르게 붙는 버프들이 많았다.

나조차 다 세기 힘들 정도의 버프들이 붙은 상태에서 스킬이 나가니 위력이 강할 수밖에.

이건 가벼운 선공에 불과하다.

“단죄의 벼락.”

…전설급 신성 갑옷이 공격 스킬을 숨김.

무슨 웹소설 제목 같은 문장이지만 실제로 내 갑옷이 그렇다.

[트릴리온의 찬란한 맹세]에 담긴 [단죄의 벼락]은 고도로 응축된 신성력을 쏘아내는 스킬. 그 응축량이 워낙 많기에 위력 또한 상상을 초월한다.

하물며 그 대상이 어둠속성 혹은 악성향의 상대라면…

말할 필요도 없이 효과적인 타격을 입히는 스킬이었다.

이는 말하자면, [원초적 맹공]의 신성력 버전이었다.

팟, 파아앗-!!

쿠아아앙-!!

쩌저저적-.

사실상 S급에 다다른 괴수라고 해도, 이 정도 공격을 연달아 받으면 심각한 타격을 받을 수밖에 없다.

에메랄드 골렘이 순식간에 전투 의지를 잃고 빈사 상태가 되는 게 보였다.

나는 여기에 멈추지 않고, 성검을 꺼내들어 녀석의 마력석 부근에 찔러넣었다.

[‘어둠의 서약’이 새겨진 골렘을 교화했습니다. 신성한 세드닐렌의 자비가 검에 닿아 있습니다. 성검 ‘켈빌리드의 진정한 회개’의 성능이 올라갑니다.]

강렬한 신성력과 함께, 에메랄드 골렘이 끝장났음을 알리는 정보창이 나타났다.

그걸 보며 난 깨달았다.

‘…골렘도 교화가 돼?’

아무래도 [어둠의 서약]에 영향을 받은 모든 대상은 성검의 먹이가 될 수 있는 모양이다.

어쨌든 에메랄드 골렘은 마지막 공격을 견디지 못하고 힘을 잃었다.

전투가 시작하고 7초.

제이텐에게서 날아들고선 3초도 안 되는 시간이었다.

그, 그워어어-!!

그르으어어…!!

그렇게 선두에 있던 에메랄드 골렘이 순식간에 쓰러지자, 주변에 있던 골렘들이 갑자기 격노하며 땅을 쿵쿵 울리기 시작했다.

이 새끼들, 화도 낼 줄 알아?

아무래도 에메랄드 골렘이 이들 중엔 나름 대장격의 골렘이었는데, 주먹 한 방에 부품 하나가 아작나는 걸 보니 흥분한 모양이다.

어쩌면 대장격 골렘이 타격을 입으면, 자연스럽게 격분하도록 설계된 걸 수도 있겠지.

뭐가 됐든 상관없다.

그들의 모습을 본 내 감상은 딱 하나였다.

“어쩔 건데? 그래서 니들이 뭘 할 수 있는데.”

느릿느릿하게 달려오는 것 말고 뭘 할 수 있냐고.

격분한 골렘들은 엄청난 기세로 내게 달려오고 있었지만, 그 속력은 안쓰러울 정도로 느리기만 했다.

거기에 이놈들은 에메랄드 골렘보다 위력이 훨씬 떨어지는 골렘들이다.

즉, 광역 스킬 한 방에 전투를 거의 끝낼 수도 있다는 뜻.

나는 생각한 바를 그대로 현실로 옮겼다.

“떨어져라.”

어느덧 양손엔 무구교체술로 [클로우 숏소드]가 들려 있다.

그리고 펼쳐지는 궁극스킬, [낙화의 미학].

날 ‘S급 홀더’로 만들어주는 데에 가장 큰 역할을 한 1등공신이다.

카그그그-!!

쩌적, 쩌저적-.

쿠우우웅-!!

무아지경으로 골렘들을 베어 넘긴다.

카그그- 거리는 불쾌한 금속음이 귓가에 들리고, 내 검이 펼치는 아름다운 낙화는 사정거리 안의 모든 골렘들을 베어냈다.

아니, 모두 베어내려고 했는데…

그 수가 좀 많았다.

‘…너무 많이 데려왔나?’

베어 넘기면서 그런 생각을 했다.

사실 이게 처음 제이텐을 소환해 달리고, 에메랄드 골렘에게 달려들어 공격하는 퍼포먼스를 한 이유긴 하다.

근처의 모든 골렘들을 불러 모으고, 전부 [낙화의 미학] 사정거리 안에 넣기 위해.

하나하나 처리하기엔 너무 많은 수다 보니, 일단 몰이사냥을 하고 후속 처리를 하려고 했었다.

그워어어어-!!

그어어어-.

하지만 그 수가 생각보다 훨씬 많았던 모양이다.

[낙화의 미학] 스킬은 끝나가는데 여전히 골렘들의 괴성은 잦아들 기미가 안 보였다.

‘끝나는 대로 무기 바꿔야겠네.’

할 수 없이 성검을 가져와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 일어났다.

원래라면 [낙화의 미학] 스킬이 끝났어야 할 타이밍인데, [클로우 숏소드] 안에 남은 마력이 빠질 생각을 안 했다.

‘…뭐야?’

끝나질 않는다.

거리 안의 적을 긁어내는 [낙화의 미학]이 계속해서 유지되고 있었다. 

[‘어둠을 삼킨 검’ 룬의 ‘다크 글로리’ 효과가, 궁극스킬 ‘낙화의 미학’에 적용되고 있습니다. 어둠속성을 다루는 상대의 마력이 흡수되어, 스킬을 유지하는 마력에 끊임없이 공급됩니다. 궁극스킬 ‘낙화의 미학’이 유지됩니다.]

이유는 멀리 있지 않았다.

황성연을 처치하고 획득한 [어둠을 삼킨 검]엔 상대의 어둠속성 마력을 30% 가져오는 특수효과가 있는데, 이 효과가 궁극스킬인 [낙화의 미학]에도 적용되고 있었다.

어쨌든 해당 스킬을 사용하는 주체는 [매화검법]이니까.

팟- 파바밧-!!

그워어어어-!!

쿵! 쿠우웅!!

덕분에 난 멈추지 않고 거리 안의 모든 골렘들을 전부 베어낼 수 있었다.

스킬 시전이 모두 끝난 후.

나는 멍하니 전투가 시작됐던 자리에 섰다.

그워어어-.

쿠우웅-.

[낙화의 미학]은 어디까지나 광역 궁극스킬.

스킬 한 번에 골렘들이 모조리 즉사하진 않았지만, 대부분 어디 하나 부품이 망가진 채 바닥에 쓰러지고 있었다.

…대략 40마리쯤은 되는 것 같았는데, 그 물량이 모조리 힘을 잃었다.

“너, 혹시 드래곤이야?”

-주인님. 이제 슬슬 무섭습니다.

언제 다가왔는지 날 보고 읊조리는 두 계약자.

“…억울해.”

이건 진짜 억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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