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아카데미 사기 룬을 얻었다 (323)화 (323/353)

뱀파이어의 땅, 벨테인 (3)

<도재현 공식 팬카페>.

이름 그대로의 의미를 지닌 이 팬카페는, 독특하게도 유료회원제로 운영된다.

월마다 회원들에게서 정규 회비를 걷고, 해당 회비를 낸 회원들에게만 정회원의 자격이 주어진다.

원래는 회원가입이 자유롭고 도재현의 사진이나 소식을 공유하는 자유로운 카페였는데, 최근 들어 이런 장벽이 생기며 성향이 급격히 바뀌었다.

이유는 간단했다.

-도재현이 너무 유명해졌다!

아카데미 및 국내 최고의 유망주로 떠오르던 초창기에도 유명했지만, 한 명의 클랜 마스터로서 <이블 헌터> 클랜을 창설한 후엔 그 명성이 전국구로 뻗어 나갔다.

국내 3대 클랜과의 우호 클랜 협약.

<이탈자의 방> 공략 내 최대 성과.

<자유의 날개> 클랜과의 우호 클랜 협약….

감당하기 힘든 빅 이슈들이 연달아 터지면서 그를 향한 관심이 폭증했다.

그중 가장 큰 이슈는 역시, ‘S급 홀더 승급’이다.

세계 최연소 S급 홀더라는 타이틀을 가져가면서, 도재현의 인기는 세계적인 수준에 이르러 버렸다.

연예인 급으로 잘 생긴 홀더가 실력마저 최상위.

선망의 대상이 될 수밖에 없었다.

-이대로는 안 된다.

그렇게 팬카페엔 어마어마한 수의 사람들이 몰렸다.

예전보다 비교도 안 될 정도로 많은 수의 회원가입 요청이 진행됐다.

그리고 그에 따라, 카페의 정상적인 운영이 어려워졌다.

온갖 어그로를 끌며 관심을 받으려는 이도 있었고, 도재현의 안티가 숨어들어와 그를 깎아내리는 일도 다반사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운영진은 결단을 내렸다.

팬카페 회원의 유료화.

팬카페 가입을 희망하는 회원들은 일정 회비를 내야만 회원 등록이 되는 걸로 방식을 바꿨다.

심지어 평범한 연예인들처럼 연 회비를 걷는 게 아닌, 월 회비를 걷는 구조로 결정이 됐다.

어지간한 액수로는 팬카페에 몰리는 악질들을 쳐낼 수 없다고 판단한 것이다.

“이건 정말 잘한 것 같네요”

<도재현 공식 팬카페>의 최우수회원, 유은설은 그 파격적인 결정에 고개를 끄덕이며 수긍했다.

운영진이 누구인진 몰라도 할 수 있는 최선의 선택을 한 것 같았다.

물론 돈을 내기 힘든 열성적인 회원들도 있겠지만, 그런 이들은 준회원으로서 꾸준히 활동을 하면 회비를 지원받을 수 있도록 대비책이 마련됐다.

어쨌든 이러한 변화를 통해 최근의 팬카페는 어느 정도 안정을 되찾았다.

그리고 어느 정도 시간이 흘렀을 무렵.

문득 팬카페 내부에선 이런 의견이 제시됐다.

-저희도 팬미팅 한 번 해야 하는 거 아닌가요?

팬미팅!

대형 팬카페와 코어 팬덤을 보유한 셀럽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은 진행하는 팬과의 만남.

셀럽 입장에선 팬들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할 수 있는 기회였고, 팬들 입장에선 셀럽을 실물로 만나며 관련 행사를 즐길 수 있는 축제였다.

이런 의견을 제시한 건 일명 ‘제이텐 파’.

도재현이 전투 때 타는 계약자로 제이텐이 가장 잘 어울린다고 주장하는 세력.

이들은 <이블 헌터> 클랜 창설 이후로 급격히 세력을 불린 팬덤으로, 선물 및 편지 제공, 팬과의 만남, 도재현 생일 행사 등 급진적인 팬카페 정책을 요구하는 신흥 세력이었다.

당연히 이번 팬미팅 주최 또한, 보수적인 <도재현 공식 팬카페> 입장에선 당황스러운 요구였다.

그리고 이러한 요구에, 구 팬덤으로 분류되는 ‘본드 파’는 탐탁치 않다는 태도를 보였다.

[재현의첫키스/최] …굳이 할 필요가 있나.

[포도맛푸딩/최] 음, 나도 굳이? 싶기는 해. 팬미팅이라는 건 팬과 셀럽이 둘 다 동의하고 적극적으로 나와야 하는 건데, 재현이는 팬카페 잘 오지도 않잖아. 헤헤.

[본드주인/최] 하여간 제이텐 파들은 꼭 이해 안 가는 말을 많이 하더라. 애초에 계약자도 어? 당연히 제이텐보단 본드 아니야? 무려 첫 번째 계약자에, 함께 싸웠던 시간이 얼만데-.

여기서 ‘최’는 최우수회원.

팬카페 회장을 포함해 총 5명밖에 없는 고인물 등급이다.

카페 내에서 큰 권위를 지닌 고인물들이 부정적인 의견을 내자, 신진 세력인 제이텐 파도 거세게 반발했다.

[친구동생/우] 다 같이 만나면 좋은 거죠! 안 그래도 바쁘셔서 뵙기 힘든데! 그리고 포도맛푸딩 님. 자꾸 재현 님이랑 친한 척 재현이라고 하지 말아줄래요?

[재현형님은신이야/우] 본드주인 님 말은 도저히 넘어갈 수가 없네요! 아니, 당연히 계약자의 정석은 티르본드보단 제이텐 아닙니까? 그 은빛 갈기! 늠름한 자태! 충성스러운 태도와 용맹한 돌격! 누가 봐도 이상한 뼛다귀 조각이랑은 비교가 안 된다고요.

[재현과연금술/우] 첫키스 님. 전부터 거슬렸는데, 닉변 좀 하시면 안 돼요?

…뭔가 개인적인 대화들이 많은 것 같았지만, 어쨌든 그들 대부분 팬미팅의 주최 여부를 놓고 첨예하게 날을 세웠다.

당장 도재현이 허락한 것도 아닌데, 주최를 시도할지 말지부터 이렇게 대립이 됐다.

그런데 그 의견들 중.

문득 유은설의 눈에 확 띄는 문장이 있었다.

[재현조아/우] 혹시 팬미팅 하면 재현 님 막 춤추고 그런 것도 볼 수 있는 건가요? 그건 좀 보고 싶은데….

순간 유은설의 머리에 번개가 쳤다.

‘…재, 재현의 춤?’

상상치도 못했던 컨텐츠.

유은설은 이 주제에 대해 크게 생각이 없거나 본드 파와 비슷한 의견이었지만, 그 이야기를 보자마자 곧장 생각이 바뀌었다.

보고싶다.

궁금증이 머리를 가득 메운다.

…물론 별다른 의도가 있는 건 아니다.

단지 스승 된 자의 도리로서, 제자의 새로운 모습이 보고싶을 뿐이었다. 

때문에 유은설은 조심스럽게 카페에 댓글을 남겼다.

[재현SS/최] 팬미팅… 저도 나쁘지만은 않을 것 같네요.

[재현의첫키스/최] ……?

[포도맛푸딩/최] 앗! SS님, 갑자기 그걸 동의하시면…!!

[본드주인/최] 아씨, 저 사람은 대체 누군데 최우수 등급이야?

잔잔하던 팬 카페에 폭탄이 떨어지는 순간이었다.

* * *

리플리와 제이텐의 꺼림칙한 시선을 최대한 진정시킨 후.

우리는 캐롤라인 남작령에 계속해서 진입했다.

나는 제이텐을 일단 소환 해제시키고, 길잡이인 리플리와 함께 남작령을 돌아다녔다.

물론, 남작령에 하수인들이 골렘만 있는 건 아니었다.

[‘어둠의 서약’이 새겨진 레버넌트를 교화했습니다. 신성한 세드닐렌의 자비가 검에 닿아 있습니다. 성검 ‘켈빌리드의 진정한 회개’의 성능이 올라갑니다.]

[‘어둠의 서약’이 새겨진 레이스를 교화했습니다. … … ]

캐롤라인 남작 휘하에 있는 수많은 하수인들이 우리 앞을 가로막았지만, 내 성검과 리플리의 마법 몇 방에 다들 금방 떨어져 나갔다.

애초에 처음 만났던 에메랄드 골렘에 비하면 다들 턱없이 약한 녀석들이라 사냥 자체가 매우 수월했다.

혹시나 테르멘 혹은 루덴아크 학파의 일원들이 있는지, 꼼꼼히 살피면서 사냥했지만 딱히 그렇게 보이는 이들은 없었다.

“여기네.”

그렇게 한참을 걷다가 도착한 대저택.

문 앞에 선 리플리가 팔짱을 끼며 말을 꺼냈다.

“여기가 캐롤라인 남작의 저택이야?”

“딱 보면 알 수 있잖아. 이 남작령에 거의 유일하게 존재하는 성이니까. 벨테인에선 ‘뱀파이어 성’이라고 불러.”

“그럼 리플리 네 백작령에 가도 이런 성이 있겠네.”

“장난해? 내 성은 이딴 쓰레기 같은 거랑은 비교도 안 돼. 이 성엔 미학적인 요소가 전혀 없잖아.”

아, 맞다.

살짝 화를 내는 리플리를 보니 생각이 났다.

이 녀석, 무려 18레벨의 [유능한 건축가]였지….

아마 자신의 뱀파이어 성도 직접 제작하고 장식했을 확률이 높았다.

“흠흠. 어쨌든 들어가자.”

“너, 꼭 불리하면 헛기침하더라.”

“뱀파이어 성은 나도 처음 봐서 그래. 네 성을 먼저 봤으면 그런 소리 안 했을 거야.”

“흥. 기대해도 좋아. 내 성을 보면 여기 있는 건 전부 하찮게 보일 테니까.”

“그래, 그래.”

리플리의 호언장담에 맞장구를 쳐주며 우린 성 안으로 들어섰다.

끼기긱-

돌로 쌓인 거대한 성벽 사이 낡은 대문이 천천히 열린다.

밖에서 봤던 외관만으로도 짐작이 갔지만, 캐롤라인의 성은 입구부터 원형 계단이 쭉 올려져 있었다.

일종의 미로 계단 같은 복잡한 구조.

중간 중간에 걸쳐져 있는 철제 장식이나 오래된 구조물들이 성 안의 음산한 분위기를 극대화했다.

“리플리, 이것도 미궁에 속해?”

“뭐, 굳이 따지자면. 근데 너무 수준이 떨어져서, 솔직히 미궁이라고 부르기도 아까워.”

코웃음을 치던 리플리가 턱짓으로 앞을 가리켰다.

“당장 저기에도 마력 함정 다섯 개나 깔려있네. 흥. 저런 함정을 누가 속는다고.”

“…….”

…그게 접니다.

제가 속을 뻔했습니다.

나는 특별히 [야만왕의 후예] 룬을 활용하지 않고 있었기에, 탐색류 하위룬인 [먹잇감 탐색]이 발동하지 않아 함정을 감지하기 어려웠다.

아마 리플리가 말해주지 않았다면 함정에 걸렸을 거다.

물론 그땐 그냥 성검으로 함정을 때려 부숴버리면 그만이라 큰 의미는 없었겠지만 말이다.

함정 따위를 발견하는 게 끝이 아니다.

리플리는 방을 구분할 때도 길잡이 역할을 톡톡히 해줬다.

“그 방은 아니야. 캐롤라인의 기운이 전혀 안 느껴져.”

“이 방도 아니야. 피 냄새가 아예 없잖아.”

“이 안엔 하수인들이 있네. 사냥하고 싶으면 들어가고.”

올라가는 도중 보였던 방들은, 리플리 덕에 굳이 문을 열지 않아도 내부를 알아낼 수 있었다.

그렇게 도착한 성의 최상층.

이번엔 낡은 문이 아닌, 값비싼 금속으로 만들어진 문이다.

이건 리플리의 설명을 듣지 않아도 캐롤라인의 방이라는 걸 눈치챌 수 있었다.

칵, 카가각-.

단단하게 잠가져 있지만 마력을 투입해 간단히 열어낸다.

방 안은 성의 최상층답게 상당히 넓은 공간을 자랑했다.

질 좋은 고목으로 만들어진 책상과 침대, 그리고 곳곳에 휘날리는 양피지들이 눈에 띄었다.

뱀파이어가 살던 곳이라 그런가, 분명 방인데도 생기가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도재현, 저기.”

문득 리플리가 손가락을 들어 한쪽을 가리킨다.

내 시선도 이를 따라 움직였다.

그곳엔 벽장이 있었다.

아주 오래된 흔적이 담긴 듯한 낡은 벽장.

또한, 주변을 감싸고 있는 익숙하면서도 불길한 기운.

-켈빌리드, 동족을 저버린 자여. 그대가 어째서 이곳에 있는가.

그리고 그 벽장 안엔.

갑옷으로 중무장을 한 남자가, 붉은 눈동자를 뜬 채 우릴 바라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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