뱀파이어의 땅, 벨테인 (7)
[‘전사의 혈통’ 룬을 선택하셨습니다. Max 레벨의 에픽룬이기에 레벨이 하락하지 않고 그대로 등록됩니다.]
[룬의 성향으로 근력을 2, 속력을 2, 내구를 2 획득합니다.]
테르멘 전사들을 처치하면서 가장 먼저 획득한 룬은 [전사의 혈통]이다.
이 룬은 시작부터 Max인 레벨에서 알 수 있듯, 고유 성향 혹은 종족 특성 등과 연관된 룬이다.
내 보유 룬으로 따지면 [용족의 흔적(Lv.Max)].
리플리로 따지면 [고귀한 핏줄(Lv.Max)]에 해당하는 룬.
즉, 테르멘 전사들이 부족 특성으로 보유하고 있는 혈통.
이 룬이 있어야만 ‘의지’라고 불리는 테르멘의 힘을 사용할 수 있는 것이다.
덕분에 나는 이 룬을 통해 테르멘 전사들의 능력을 그대로 복제해 활용할 수 있었다.
[테르멘의 의지 중 ‘탐욕’이 발현됩니다. 상대가 사용한 마력 공격의 일부를 흡수합니다. 흡수된 마력의 양이 축적되면, 실제 마력으로 변환됩니다.]
[당신의 ‘탐욕’이 막대한 양의 마력을 축적했습니다! 항아리를 넘칠 정도로 흡수된 마력이 실제 마력으로 변환됩니다.]
[룬의 특수효과로 마력을 1 획득합니다.]
‘개사기네, 진짜.’
그중 가장 미친 성능을 보이는 게 바로 이 [탐욕의 의지]였다.
[탐욕의 의지]는 말 그대로 상대의 것을 욕심내 탈취하고자 하는 의지.
그런데 그 대상이 물질적인 것이 아닌, 상대의 공격 안에 담긴 ‘마력’이다.
상대의 특정 마력 공격을 방어할 때 이 의지를 발현하면 자연스럽게 내 몸에 해당 마력이 흡수돼 축적되고, 그 축적된 마력은 일정 양을 넘어서면 실제 마력 수치로 변환되어 내게 돌아온다.
한 마디로 일반 능력치 ‘마력’을 올릴 수 있는 하나의 수단.
룬의 성능 자체가 이 특수효과밖에 없긴 하지만, 워낙 효과가 뛰어나 [구도자의 땀방울]에 버금가는 느낌을 주는 에픽룬이었다.
‘물론 구도자의 땀방울 급은 절대 아니지만.’
효과만 보면 거의 무제한으로 마력을 획득할 수 있을 것 같지만, 막상 경험해보면 그렇지도 않다.
일단 마력 1을 올리기 위해 흡수 및 축적해야 하는 마력량이 어마어마하게 많고, 그 이후엔 흡수의 통 자체가 커진다.
다시 말해 처음 마력 1을 획득할 땐 쉬웠지만, 그 다음 마력 1을 획득할 땐 요구되는 양이 급격하게 많아진다는 것.
때문에 나 역시 중립지역을 공략하는 동안 3의 마력밖에 못 올렸다.
4부터는 요구 축적량이 너무 커진 탓에 그냥 포기했다.
어쨌든 나는 이 ‘의지’들을 하나하나 사냥하는 맛으로, 중립지역 공략에 박차를 가하기 시작했다.
“이, 이건 에드레드가 지닌 탐욕의 의지? 네놈이 이걸 대체 어떻게…!!”
“이거? 그냥 쓰러뜨리니까 주던데?”
새 중립지역에서 마주치는 테르멘 전사들은 내 힘에 당황을 금치 못했다.
당연한 이야기다.
테르멘의 상급 전사부터는 ‘의지’가 고유한 형태를 띤다.
즉, [탐욕의 의지]는 아까 죽인 에드레드만 보유하고 있던 에픽룬이란 뜻.
중립지역의 도전자라는 녀석이, 동료의 그런 고유 능력을 그대로 복사해 와 사용하고 있으니…
테르멘 전사들 입장에선 어이가 없을 만도 했다.
[도전자 ‘도재현’이 소유자 ‘도브레드’ 및 휘하 방어병력을 모두 처치하고, 중립지역 ‘칼리만’의 소유권을 획득했습니다! 이는 고결한 뱀파이어 심판관 ‘클로이’가 검증한 적합한 결과입니다.]
[특별한 업적! 벨테인 내 중립지역 ‘칼리만’의 소유권을 획득했습니다. 중립지역의 소유권을 획득하는 건 도전자들에게 있어서 커다란 영광 중 하나입니다. 명예로운 업적에 당신의 능력들이 감응해 성장을 이룩합니다.]
[모든 일반 및 특수 능력치, 내성 능력치를 각각 1씩 획득합니다.]
[강인한 전사들과의 부딪힘은 때론 당신에게 수련의 동기를 부여합니다! 전사로서의 신체적 요건과 활용 가능한 강화술이 크게 발달합니다.]
[‘전사들의 강화술’ 룬의 레벨이 올랐습니다.]
[‘야만왕의 후예’ 룬의 레벨이 올랐습니다.]
이번 공략으로 얻는 소득이 상당히 많았다.
중립지역은 공략할 때마다 모든 능력치를 1씩 올려주며 능력치 복사 버그를 보여줬고, 테르멘 상급 전사들은 처치할 때마다 새로운 ‘의지’를 선물하며 보유 룬들을 채워갔다.
그뿐만이 아니다.
테르멘 전사들은 상급부터 대부분 S급 괴수 정도의 실력을 보인다.
그렇게 강한 족속들과 도전을 명목으로 싸우다 보니, 보유 룬들의 숙련도 상승에도 큰 도움이 됐다.
주로 [전사들의 강화술]과 [무기의 달인] 룬 등이 큰 상승 폭을 보였고, 오랫동안 정체 상태였던 [야만왕의 후예]도 레벨이 꽤 올랐다.
“…도전자, 다음 중립지역도 진행하실 겁니까?”
“예. 물어 뭐합니까.”
뱀파이어 심판관 클로이의 얼굴이 무표정에서 질린다는 눈빛으로 바뀌어있다.
웬 미친놈 하나가 중립지역 9개를 동시에 공략 신청하더니, 그 실행까지 하루 만에 이어가고 있다.
그런데 심지어 그걸 또 전부 공략에 성공하고 있다.
심판관으로 오래 활동해 온 그로서도 이 결과가 믿기지 않는 모양이다.
‘…심판관이라고 다 딱딱한 건 아니네.’
약간의 인간미가 드러난 그의 모습에 피식 웃음을 흘린다.
이 창백한 얼굴도 자주 보다 보니, 왠지 모르게 친근한 느낌이 들었다.
어쨌든 난 그렇게 뜻밖의 소득들을 얻으며 차근차근 중립지역들을 공략해갔다.
오늘 목표는 9개 중립지역을 모두 공략하는 것.
그리고 그 목표는 얼마 안 돼 가시권에 들어왔다.
“…중립지역 ‘풀린’의 공략 도전이 성공으로 끝났습니다. 이로써 이주민 ‘도재현’은 총 8개의 중립지역을 소유합니다.”
<벨테인>에선 나 같은 부류의 인간이나 이종족을 ‘이주민’이라고 표현하는 모양이다.
어쨌든 클로이의 선언을 통해 내 공략이 8번째까지 성공했음이 인증됐다.
한 번 탄력이 붙고 나니, 중립지역들의 추가 공략은 정말 순식간이었다.
그리고 8번째 중립지역, <풀린>을 소유한 테르멘 전사를 처치했을 때.
내심 기대하고 있던 정보창마저 나타나 날 반겼다.
[‘나태의 의지’ 룬을 선택하셨습니다. 18레벨의 에픽룬이기에 레벨이 하락해, 9레벨로 등록됩니다.]
[룬의 성향으로 정신을 3 획득합니다.]
[현재 조합 가능한 룬이 존재합니다! 룬 사냥꾼의 신묘한 힘을 이용해 상위룬을 획득할 수 있습니다.]
[상위룬: 의지를 발현한 전사 / 하위룬: 절망의 의지, 교만의 의지, 두려움의 의지, 호기심의 의지, 탐욕의 의지, 집착의 의지, 나태의 의지]
“드디어 떴구나.”
테르멘 전사들이 보유한 ‘의지’의 힘은 세부 사항만 다를 뿐 그 종류는 같다.
때문에 이를 획득하다 보면 언젠가 상위룬이 나올 거라곤 생각했다.
그 개수가 무려 7개에 달해서야 만들어진 건 의외였지만.
나는 망설이지 않고 상위룬을 조합했다.
[상위룬 ‘의지를 발현한 전사’를 조합하셨습니다. 절망의 의지, 교만의 의지, …, 나태의 의지 등 총 7개의 룬이 하위룬으로 선택됩니다. 하위룬을 종합한 상위룬의 판정 레벨은 9입니다.]
[새로운 룬을 얻었습니다.]
[룬의 성향으로 모든 일반 능력치를 각각 2씩 획득합니다.]
<룬 정보>
◎이름: 의지를 발현한 전사
◎등급: 전설(Legendary) / 상위(Superior)
◎보유 하위룬
[절망의 의지] [교만의 의지] [두려움의 의지]
[호기심의 의지] [탐욕의 의지] [집착의 의지]
[나태의 의지]
◎레벨: 9
◎새겨진 부위: 어깨 (중복)
◎특수효과
1) 상위룬의 특별한 힘으로 하위룬들에 숙련도 보정을 받는다. … …
2) 전사의 의지는 언제 어디서든 발현된다. 하위룬뿐만 아니라, ‘의지’와 관련된 모든 룬 혹은 스킬의 성능을 20% 보조한다.
3) ‘고고한 전사’ 효과가 상시 적용된다. 홀로 다수의 적과 전투할 경우, 모든 능력치가 10% 증가한다.
◎파생스킬
[의지의 일격]
: 상대의 머리에 혼란을 일으켜 커다란 정신적 타격을 준다. 이 공격은 물리 혹은 마력과는 별개의 공격으로, 오로지 정신 수치에 비례하는 공격이다. 따라서 상대의 방어도 정신 수치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쿨타임: 12시간)
*하위스킬: -
모든 일반 능력치를 2씩 획득.
전설룬의 조합답게 보상 능력치부터 확실했다.
게다가 룬의 특수효과도 괜찮은 것들이 상당히 많다.
‘고고한 전사’ 효과는 솔플 사냥이 많은 내게 있어 무조건 플러스가 될 특수효과였고, ‘의지’와 관련된 능력들의 성능을 20% 보조해주는 효과도 내 룬들을 생각하면 쓸 만했다.
당장 떠오르는 것만 해도 [전사들의 강화술] 특수효과인 ‘불굴의 의지’.
체내 마력이 모두 고갈됐을 때 근력, 속력, 내구가 20%씩 증가하는 특수효과인데, 여기에 성능 보조를 받으니 24%가 증가한다는 것.
얼마 안 되는 것 같은 퍼센티지지만, 실제 전투에선 이런 작은 퍼센트들이 의외로 승패를 결정하기도 했다.
“의지의 일격은… 어딘가 쓸 데가 있겠지.”
[의지의 일격]은 저주와 비슷한 성향의 정신 계열 스킬.
그렇다고 신성력을 쓰는 스킬은 또 아니라서 독특한 면이 있지만, 아무리 읽어봐도 내 전투 성향과 크게 잘 맞을 것 같은 스킬은 아니다.
그래도 일전에 [결계 파괴] 스킬을 써먹었던 데가 있었던 것처럼, 이 스킬도 가만히 두면 언젠가 쓸 데가 있을 것 같았다.
어쨌든 전설급 룬의 파생스킬이기에 상황만 맞다면 성능은 끝내줄 것이다.
“중립지역 ‘데켈트’에 대한 공략 도전을 시작합니다. 이 공략 도전은 뱀파이어 심판관인 저 클로이가 참관하며, 벨테인의 규칙에 적법한 도전입니다.”
그리고 9번째 중립지역, <데켈트>.
나는 새로 얻은 룬의 위력을 체감하며, 파죽지세로 마지막 중립지역의 끝까지 밀고 나갔다.
그리고 <데켈트>의 끝자락엔 펠타네드라는 테르멘 전사가 기다리고 있었다.
‘쟤가… 가장 센 애였던가?’
올란드의 설명에 따르면, 펠타네드는 테르멘의 ‘최상급 전사’다.
<벨테인>으로 넘어온 테르멘 전사들 중 가장 강력한 무력을 지녔고, 기존 족장 전사였던 타슈마드를 대신해 이곳에서 족장 전사 행세를 하고 있다고 한다.
하지만 그래봤자다.
그의 휘하 전사들은 모조리 내 칼에 썰려나간지 오래였고, 동료 전사들은 중립지역과 ‘의지’까지 전부 뺏긴 상태였다.
이제 남은 건 그 혼자.
…그래서일까?
“도대체 네놈은 뭐냐! 검도 쓰는데, 마법도 쓰고, 웬 늑대 새끼도 소환하고… 심지어 내 동료들의 능력까지…!! 씨발!! 대체 뭐하는 새끼냔 말이다!”
시뻘겋게 달아오른 얼굴로 날 삿대질하는 그의 모습엔, 처절하다 싶을 정도의 분노가 담겨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