뱀파이어의 땅, 벨테인 (7)
일반적으로 S급 홀더는 S급 괴수를 홀로 사냥할 수 있다.
능력치, 룬 활용, 아이템 등 모든 면에서 S급 홀더가 앞선다.
신성 계열이나 특수 계열처럼 솔플이 거의 불가한 직업군만 아니라면, S급 괴수의 사냥은 의외로 가벼운 축에 속한다.
괜히 S급 홀더들이 범국가적 인재로 꼽히는 게 아니다.
‘나도 마찬가지.’
그리고 나는 최근에 공인이 끝난 S급 홀더.
그중에서도 유독 솔플에 특화된 홀더다.
때문에 지금껏 S급 괴수급으로 추정되는 테르멘의 상급 전사들을 손쉽게 상대할 수 있었다.
이건 내 계약자들이나 궁극스킬 같은 특별한 힘을 사용하지 않고도 이뤄낸 성과다.
‘최상급부턴 좀 달라진단 말이지….’
하지만 눈앞에 있는 펠타네드라는 테르멘 전사의 등급은 최상급.
나로서도 처음 맞이하는 등급이다.
아마 뿜어내는 기운으로 봐선, 지금껏 마주쳤던 어떤 괴수들보다 강력한 힘을 지닌 것 같기는 한데… 그렇다고 <초월자> 드래곤들이나 <마검의 소유자> 황성연만큼의 기운을 뿜어내지는 않았다.
즉, 평범한 강자와 절대강자들 사이에 있는 어중간한 강자라는 뜻이다.
‘이래서 등급 재조정이 필요하다니까.’
최근 들어 학계에서 강력히 주장되는 부분이다.
이미 S급 괴수를 뛰어넘는 능력의 괴수들이 상당히 많이 나왔고, 그들의 무력 측정도 대다수 이루어진 상태다.
그렇다면 SS급 괴수 혹은 SSS급 괴수라는 새 명칭이 나와야 하지 않는가- 라는 게 요즘의 기조다.
특히 홀더와 괴수 간에 등급 구분이 일치하지 않아 혼란을 야기한다는 주장도 꽤 많아, 사실상 홀더 및 괴수 등급의 재조정은 필연적이라고 봐야 했다.
국제 홀더 협회가 워낙 보수적인 탓에, 이런 변화들에 미온적인 태도를 보인다는 게 문제였지만 말이다.
“전투에 집중해라, 도전자!”
잠깐 한눈을 판 사이 펠타네드가 자신의 주무기인 철퇴를 휘둘렀다.
그렇다.
‘철퇴’다.
펠타네드는 주무기로 철퇴를 사용하는 독특한 전사였다.
지금껏 마주친 테르멘 전사들이 전부 검을 썼던 것과는 확연히 다른 모습.
어쩌면 최상급 전사부터는 자신만의 특별한 무기를 사용하는 걸지도 몰랐다.
‘심지어 빨라.’
펠타네드는 속전속결로 날 밀어붙이고 있었다.
저렇게 리치가 길고 무거운 무기를 쓰는데도 속력에서 전혀 밀리는 느낌이 없다.
나는 성검을 맞대며 결코 만만히 봐서는 안 될 상대임을 직감했다.
‘게다가 저 응집되는 마력….’
펠타네드의 철퇴엔 공격 때마다 수시로 마력이 응집되어 추가타로 날아왔다.
마법사 계열 홀더들이 마력을 응집시키듯 철퇴 겉면에 마력이 모이는데, 그 속도가 마법과는 달리 매우 빠르고 과정은 간결하다.
특히 응집량이 생각보다 많아서, 마치 내 능력 중 진화하기 전의 [파상천검]을 보는 듯한 느낌이 났다.
확신할 수 없지만 저 능력은 아마도 펠타네드의 ‘의지’일 확률이 높았다.
‘펠타네드의 의지는 직접 전투 관련이구나.’
사실 이번에 획득한 [의지를 발현한 전사] 룬.
그 하위룬으로 등록된 의지들은 대개 ‘정신’과 관련된 효과들이 많다.
절망, 교만, 두려움, 호기심, 나태….
의지의 이름에서도 확인할 수 있듯 주로 상대의 정신에 추상적인 공격을 가하거나, 스스로의 정신 상태에 버프를 주는 계열의 능력들이었다.
즉, 직접 전투와는 연관이 없는 능력들.
오직 [탐욕의 의지]와 [집착의 의지]만이 전투 관련 룬이었다.
그중 [탐욕의 의지]는 일전에도 확인했듯 상대의 마력을 조금씩 흡수하는 힘.
[집착의 의지]는 같은 대상의 같은 부위를 계속해서 공격할 때, 최대 10중첩으로 추가타를 입힐 수 있는 힘이었다.
직접 전투 관련 의지들이 이렇게 흔하지 않듯, 최상급 전사인 펠타네드의 의지 또한 상당히 희귀한 능력 같았다.
‘오케이. 파악 완료.’
대략적으로 상대의 능력을 분석한 나는 곧바로 적극적인 전투 태세로 변환했다.
‘광인화, 용인화.’
마지막 공략을 위해 남겨뒀던 능력치 버프를 모조리 사용한다.
순식간에 몸에 활력이 넘쳐흐른다.
곧바로 [전사들의 강화술]을 활용해 직접 전투에 필요한 능력들을 보조한다.
몸놀림은 가벼워지고, 집중력은 냉철해지며, 회복력은 빨라진다.
나는 끓어오르는 힘을 전투 보조에 마음껏 실으며 성검을 움직였다.
카아앙-!!
카그그그-.
펠타네드의 커다란 철퇴와 성검이 맞부딪힌다.
녀석의 철퇴엔 또 아까처럼 ‘응집된 마력’이 생성돼 있었지만, 무구의 마력 활용은 펠타네드의 전유물이 아니다.
내 성검 역시 마력과 신성력으로 뒤덮여, 강하게 이를 상쇄시키고 있었다.
게다가 [탐욕의 의지].
깨알 같은 마력 흡수가 놈의 신경을 건드린다.
“빌어먹을. 또 에드레드의 의지를…!!”
죽은 동료가 농락당하는 것에 펠타네드가 분통을 터뜨렸지만, 그 징징거림을 받아주고 있을 틈은 없었다.
나는 검과 철퇴가 맞부딪히자마자 곧바로 필살기 하나를 꺼냈다.
“쇄도하라.”
궁극스킬 [왜곡의 그림자].
일정 거리 안에 있는 상대에게 다가가 방어력을 무시한 공격을 날리는 스킬.
하지만 그 거리가 바로 앞의 지척이라면 단순히 ‘이동’만 이루어지진 않는다.
전방의 마력 배열을 완전히 망가뜨리며 공간 자체를 건너기에, 가까이서 쓰면 내가 들고 있는 검이 상대의 신체를 관통하며 지나간다.
즉, 스킬을 사용한 순간 펠타네드의 몸에 내 검이 박히는 것.
사실 이건 황성연과의 결전에서 처음 실험해봤던 활용법인데, 극적으로 큰 효과를 봤던 터라 이렇듯 곧장 주력 활용법으로 쓸 수 있었다.
삿- 사삭-
파아앗-!!
“크아아악…!!”
순식간에 펠타네드의 쇄골과 등짝을 관통한 내 성검.
그 강렬한 타격으로, 고통에 겨운 비명이 들려온다.
여기서 활용할 수 있는 스킬은 여러 가지다.
그대로 [진 파상천검]의 일격 형태를 활용해도 되고, 신성력을 가득 담아 [자비로운 참마검]을 활용해도 된다.
‘원초적 맹공.’
하지만 여기서 내 선택은 [전사들의 강화술]의 [원초적 맹공]이었다.
이유는 간단하다.
물리 공격이기에 투입 마력량이 없고, 준비 시간이 가장 적게 든다.
[왜곡의 그림자]는 순수 물리 공격 스킬이기 때문에, 공격이 끝나고 나서 검에는 마력이 담겨있지 않다.
즉, 이 안에서 마력 공격을 하려면 새로 마력을 부어야 한다는 뜻.
당연히 궁극스킬 정도의 마력은 그 양과 시간에서 소모값이 크다.
펠타네드 정도의 실력자와의 전투에선 0.1초의 시간이 치명타 혹은 죽음을 가르기에 더 확실한 방향을 선택해야 했다.
쿠- 콰아아-!
“크으으악…!!”
순식간에 무구교체술로 너클을 갈아 끼우고, 구멍이 난 녀석의 어깨에 치명적인 일격을 가한다.
효과는 확실했다.
이미 왼쪽 어깨 부근이 아작이 난 펠타네드는, 빈틈없이 들어오는 주먹 공격에 연달아 비명을 질렀다.
“죽…어라!!”
그러나 최상급 전사는 역시 다르다.
평범한 괴수라면 이미 [왜곡의 그림자]에서 끝났을 승부인데, 펠타네드는 그새 의식을 붙들며 반격을 이어갔다.
그의 오른손에서 휘둘러지는 거대한 철퇴.
상당히 가까운 거리에서 들어오는 공격이기에 맞는다면 큰 타격을 입는다.
‘무구교체술.’
나는 곧바로 [퓨어 팔라딘의 방패]를 꺼내들었다.
원래라면 직접 공격을 피했겠지만, 지금처럼 가깝게 붙어 내 필살 기술들을 사용한 상태에선 방어가 더 효과적이다.
‘철벽 수비.’
프, 카앙-
콰가가-!!
방패에 마력과 신성력을 듬뿍 담아 펠타네드의 철퇴를 막아낸다.
근거리에서 다가온 회심의 일격이지만 허무할 정도로 가볍게 막아버렸다.
“이게 무슨….”
이를 지켜보던 펠타네드의 표정은 최악에 가까웠다.
내 공격은 전부 먹이고, 상대의 공격은 모두 막는다….
그 이기적인 딜 교환을 보고 참아낼 상대가 있을까.
펠타네드는 결국 참지 못하고 고함을 질렀다.
“비, 빌어먹을…!! 후려쳐라!!”
드디어 언령이 나왔다.
그가 마지막까지 아껴뒀던 궁극스킬이 발현된다는 뜻이다.
하지만 나는 그 공격이 결코 효과적이지 않을 거라고 확신했다.
‘너무 멀리 왔어.’
이미 펠타네드는 내 연이은 공격들에 너무 큰 타격들을 입었다.
[왜곡의 그림자]와 [체인 라이트닝] 콤보로 왼쪽 어깨는 거의 박살이 나다시피 했고, 중간중간 시간이 빌 때마다 사용한 ‘정신 계열 공격’들과 [포이즌 어택] 등 살살 신경을 긁는 스킬들이 그의 주의를 흐트려놨다.
서서히 조금씩, 그러나 정밀하게.
이미 그의 전투 능력은 갉아먹히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 상태에서 사용하는 궁극스킬은 절대 그 위력을 온전히 발휘할 수 없다.
이미 승기는, 내 쪽으로 급격히 기운 상태였다.
“급류로 흘러라.”
살짝 거리를 벌려 기세를 갈무리한 다음, [진 유수활검]으로 놈의 궁극스킬을 완벽히 막아낸다.
팟- 파아앗-!
쿠콰- 콰아-
콰아아-!!
펠타네드의 궁극스킬은 마력으로 형성된 철퇴 모양의 공격이 무작위로 사정거리 안에 쏟아지는 스킬이었는데, 일종의 투사체 형태를 띄는 스킬의 특성상 [진 유수활검]으로 막아내기가 너무 쉬웠다.
2초.
펠타네드의 공격을 막아내는 데에 걸리는 시간은 2초면 충분했다.
“…….”
충격적인 결과에 펠타네드가 멍하니 내 쪽을 바라봤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다시 무구교체술로 너클을 들었다.
너클로 공격할 수 있는 가장 강한 스킬을 한 번 사용했지만, 펠타네드에겐 안타깝게도 내겐 스킬 쿨타임을 한 번 제로로 만들어주는 개사기 스킬이 있었다.
‘자비로운 유예기간.’
[세드닐렌의 견습 대리자] 룬의 파생스킬, [자비로운 유예기간].
이미 말했듯 파생스킬의 쿨타임을 초기화시켜주는 사기적인 스킬이다.
그리고 [원초적 맹공]은 예외 스킬에 해당하지 않는 스킬.
당연히 쿨타임 초기화가 가능하다.
슷- 스스으-
파아앗-!
신화급 룬에 담긴 파생스킬이 빛을 내며 내 주먹에 녹아든다.
아까 사용했던 [원초적 맹공]의 쿨타임이 돌아오며, 곧바로 사용 가능 상태가 됐다.
그리고.
싱긋- 웃으며 펠타네드를 본다.
“한 대 더 맞자.”
“끄, 끄아악…!!”
원래 때린 곳 또 때리는 게 가장 아프다.
맞는 대상이 괴수든, 전사든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