준비 (4)
<용병 모집 공고>.
제7구역 공략에 필요한 인력을 메꾸기 위해 홀더 계에 대대적으로 내건 공고.
모집 기간이 짧고 급하게 걸어진 공고지만, 뛰어난 홀더들과 능력 있는 클랜들이 대거 모였다.
이들의 지원동기를 읽어보면 대부분 비슷하다.
테르멘, 뱀파이어, 루덴아크….
새로이 인류의 적으로 떠오른 적응자들을 처치하고, 그 영광을 함께 하고 싶다는 내용.
공략 정보를 아예 개방해버리자던 권영훈의 모집 전략이 완벽하게 적중하는 순간이었다.
‘…생각지도 못한 홀더들까지 지원한 것만 빼면 말이지.’
나는 눈앞에 있는 홀더들을 바라봤다.
박지환, 김명현, 나혜린.
한국에서 활동하는 홀더라면 누구나 들어봤을 법한 이름들이다.
나혜린이 지원한 건 쌍수를 들고 환영할 일이다.
그녀는 A급 마법사 계열 중에서도 꽤 희귀한 편인 땅속성을 다루는 홀더였고(땅속성 자체는 흔하지만 이 속성을 A급 수준까지 끌어올린 고위 홀더들은 매우 적다), 이미 무소속 홀더들 사이에서도 정평이 난 실력자였으니까.
애초에 부마스터인 유은설 스승님께서 직접 추천했다는 것에서 끝이다.
그녀 정도의 인재에게 이런 면접은 그저 형식적인 것에 불과했다.
문제는 나머지 두 사람이다.
“박지환 홀더님은 그렇다치고… 스승님은 대체 왜 여기 있으세요?”
질끈거리는 머리를 부여잡으며 묻는다.
박지환은 아마 장난 반 진심 반으로 면접에 지원한 것 같다.
아마 저번 공략에 함께했던 만큼 이번에도 참여를 계획했을 거고, 면접관인 날 놀리기 위해 이렇게 깜짝 지원을 했겠지.
하지만 스승님은 왜?
지금 아카데미에서 수업하고 계셔야 하는 거 아닌가…?
“휴가 냈습니다.”
그리고 말끔하게 의문을 해결해주셨다.
“아니, 그렇게 막 휴가 내셔도 돼요? 학기 중이잖아요.”
“마침 동료 교수가 시간이 비더군요. 가족 문제라고 하니 수강생들도 양해해줬습니다.”
“가족 문제…?”
뜬금없는 이야기에 내가 반문하자, 김명현 교수가 싱긋 웃었다.
“딸아이가 자꾸 목숨이 위험할지도 모르는 던전에 들어가서요. 아비 된 사람으로서 더는 보고만 있기 힘들더군요.”
그 말을 듣자마자 나는 곧바로 머리를 박았다.
“죄송합니다, 장인어른!!”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다.
평생 딸을 지켜주겠다고 약속했는데, 정작 행보는 딸과 손잡고 사지로 걸어가는 꼴이라니.
때려죽여도 시원치 않을 사윗감이었다.
“괜찮습니다. 도재현 홀더를 탓하려고 꺼낸 말은 아니에요. 순수하게 지원 동기를 말했을 뿐입니다.”
다행히 스승님은 자비로우셨다.
평소와 같은 따뜻한 웃음으로 날 용서해주셨다.
그걸 지켜보던 박지환이 묘한 얼굴로 내게 물었다.
“도재현 홀더님, 왜 제겐 지원동기를 안 묻습니까?”
“으으- 그 이상한 존댓말 쓰지 마십시오. 저 놀리려고 하는 거잖습니까.”
내 말에 박지환이 호쾌하게 웃었다.
“하하. 들켰나?”
“예. 티 많이 났습니다.”
누가 박진우 아버지 아니랄까 봐 장난을 치는 종류도 비슷했다.
“뭐, 아무튼….”
어쨌든 초고급 인재들이 한꺼번에 들어왔다.
처음 모집 공고를 냈던 목표에는 부합했다.
그에 나는 만족스럽게 면접장을 둘러보며 말을 이었다.
“세 분 모두 합격입니다. 지원서 내 연락처로 일정을 알려 드릴 테니, 그때 맞춰서 오시면 됩니다.”
“자, 잠깐만요!”
그러자 가장자리에 있던 나혜린 홀더가 당황한 얼굴로 번쩍 손을 들었다.
“저는 아직 면접도 안 봤는데요…?”
질문 한 마디조차 받지 않고 면접이 끝난 게 황당한 듯한 표정이다.
그런 그녀에게 나는 싱긋 웃어줬다.
“땅속성 마법사 계열 A급 홀더. 클랜 경험 3년, 공략대 경험 다수, 소규모 파티 경험은 셀 수도 없이 많으시고. 최상급 던전 짙푸른 초원 공략에도 참여하셨고, 활약 지분은 공대장이던 임현 홀더와 거의 비슷했죠?”
“…그, 그걸 어떻게 다?”
나혜린의 표정이 더 기괴하게 바뀐다.
마치 스토커 한 명을 보는 듯한 얼굴이다.
…어떻게 보면 스토커가 맞기도 하다.
“이 정도 경력을 지닌 홀더님을 불합격시킬 순 없죠. 나혜린 홀더님은 이미 지원하신 순간부터 합격이었어요. 면접은 참여 의사를 재확인하려는 형식적인 절차였습니다. 다시 한번, 반갑습니다.”
왜냐하면 나는…
한참 전부터 나혜린을 눈여겨보고 있었으니까.
‘이번 공략 끝나면 영입 제의해야지.’
세상은 넓고, 홀더들은 많다.
그리고 <이블 헌터>는 여전히 클랜원 부족에 허덕이는 상태.
이번 <용병 모집 공고>는 말 그대로 용병을 모집하는 공고면서, 동시에 예비 클랜원들을 끌어들이기 위한 하나의 수단이었다.
* * *
제7구역 공략까지 D-2.
시간이 정말 얼마 남지 않았다.
이 짧은 기간 동안, 국내 모든 홀더 관련 기관은 각자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행정 처리는 믿고 맡겨도 좋습니다, 도재현 홀더.”
한국 홀더 협회는 주로 보조 업무를 맡았다.
협회 인원들을 총동원하며 <이블 헌터>의 공략 준비 및 용병 모집 등을 적극적으로 도왔고, 각종 언론과 접촉해 대중들에게 현 상황을 체계적으로 전파했다. (그 안에서 또 지켜야 할 비밀들을 칼 같이 지켰다.)
특히 가장 큰 역할은 정부와의 대면.
워낙 대규모 공략인 데다가 홀더들의 목숨이 담보로 잡히는 만큼, 정부와 직접 자리를 마련해 의견을 조율하며 공략에 필요한 법적 조치들을 해결했다.
‘…짬밥은 괜히 먹는 게 아니구나.’
일전에 떠올렸던 생각이 한 번 더 머리를 친다.
믿고 맡겨 두라는 협회장 권영훈의 모습이 그렇게 듬직해보일 수가 없었다.
“공략에 참여하는 학생 홀더들의 출석을 모두 인정합니다.”
아카데미는 늘 그래왔듯 자신들이 할 수 있는 최선의 도움을 줬다.
<이블 헌터>의 공략 주도에 따른 학생 홀더들의 아카데미 이탈.
그로 인해 발생하는 학업적 불이익을 모두 해결했다.
…사실 김명현 교수가 이번 공략에 용병으로 참여하는 것부터, 이미 아카데미의 협조는 극한의 수준이라고 봐야 했다.
-<석양의 꽃> 클랜, 중견 클랜 중 최초로 <이블 헌터> 용병 클랜 합류!
-클랜 마스터 정윤찬, “좋은 기회가 될 거라고 생각한다. 도재현 홀더는 용병 클랜들을 하나로 결집할 리더십이 있는 홀더다. 이미 그간의 성과를 통해 충분히 증명해왔다. 믿고 따르겠다.”
-<블루 아쳐>, <타이탄스>, <조선 마탑>… 신흥 클랜들도 따라붙는다.
-일본 클랜 <남자의 조건>, 해외 클랜 중 최초로 용병 클랜 합류!
가장 바쁜 건 역시 클랜들이었다.
이번 용병 모집 공고에선 개인 부문과 클랜 부문을 나눠서 모집했다.
무소속 홀더들이 대거 들어온 개인 부문도 성과가 있긴 했지만, 역시 가장 핵심적이었던 파트는 클랜 부문.
3대 클랜에 밀려 공략권을 잃은 각종 중견 클랜들이 모조리 용병으로 지원했다.
사실 처음엔 체면이 걱정됐는지 다들 눈치를 조금씩 봤었다.
분명 참여하고 싶긴 한데, 신생 클랜인 <이블 헌터>에 대놓고 숙이고 들어가고 싶지 않았을 테니까.
‘…석양의 꽃이 먼저 손을 내밀 줄이야.’
그런데 참여하지 않을 것 같던 <석양의 꽃>이 가장 먼저 움직였다.
클랜 마스터가 직접 내게 전화를 걸었었고, 흔쾌히 용병으로 오는 걸 승낙하며 협력이 결정됐다.
그리고 그에 따라 다른 중견 클랜들도 연이어 들어왔다.
사실 <석양의 꽃>은 문가은과 맞선을 보려던 후계자 정현석이 있던 곳이라 그리 좋게 보지만은 않았던 클랜인데, 이번 일을 계기로 그런 부정적 인식이 조금은 털어졌다.
“클랜원 파견 형식으로 참여하겠습니다.”
가장 의외였던 건 국내 3대 클랜의 결정이다.
<불의 심판>, <로열>, <용광검로>.
각기 제7구역에 공략권을 보유하고 있던 세 클랜은 전적으로 내게 권리를 이양했다.
이유는 간단하다.
대승적인 차원에서 모든 클랜이 참여하긴 했지만, 원래 <이탈자의 방> 공략 자체에 대한 권리는 <이블 헌터>가 보유하고 있었고… 또 그런 만큼 가장 효율적으로 이를 공략할 수 있는 클랜도 <이블 헌터>라고 판단했던 것.
때문에 그들은 클랜 내 정예 사냥팀을 직접 파견해 우리 클랜의 지휘를 받는 형식을 택했다.
즉, 3대 클랜들 또한 우리 밑의 용병 클랜으로 모집된 것이다.
…솔직히 그 결정을 들었을 땐 나조차 어안이 벙벙했다.
-우호 클랜 협정에 따라, <이블 헌터> 클랜의 원조 요청을 받아들이겠다.
국외에선 <자유의 날개> 클랜이 도움을 줬다.
방식은 저번과 마찬가지로, 이탈자들의 현계 침공에 대비해 한국을 보호하는 형태.
서로 이권을 침탈하지 않는 선에서 최선으로 도움을 줄 수 있는 방식이었다.
어쨌든 이렇게 국내외 홀더 관련 기관들의 적극적인 협조 덕에, 우린 제7구역 공략의 모든 준비를 마칠 수 있었다.
* * *
그리고 한 달 만에 돌아온 <이탈자의 방>.
제6구역, <죽음이 닿은 땅>의 끝자락.
이번 공략을 위해 모인 모든 병력이 한곳에 집결돼 있었다.
S급 홀더가 무려 3명이나 참여했고, 국내 유수의 클랜들은 모조리 용병으로 참여한 부대.
말 그대로 하나의 ‘군단’이라고 봐야 하는 전력이었다.
그리고 그 압도적인 수의 홀더들이, 모두 한곳에서 날 바라보고 있었다.
<죽음이 닿은 땅>의 끝자락.
어둠이 짙게 가라앉은 언덕.
그 위에 홀로 선 나는…
눈부시게 빛나는 성검을 땅에 박고 지지대처럼 붙잡았다.
그리고 조용히.
그러나 모두에게 들릴 정도로 읊조렸다.
“지금부터, 이탈자의 방 제7구역에 진입하겠습니다.”
홀더 계 역사에 기록될, 대형 던전 공략이 재개되는 순간이었다.